최신호 (34호 2020년 5 ~ 8월호)

지난 호

일반 논문

한국전쟁의 성격과 그 결과

김영익 113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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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1953년 7월 27일에 휴전이 됐다. 어느 쪽도 전쟁으로 더는 얻을 게 없다는 게 확인되고 나서야 비로소 전쟁이 끝났다. 그러나 전쟁으로 한반도 인구의 10분의 1이 희생됐고 1000만 명이 가족과 헤어졌고 500만 명이 난민이 됐다.

전쟁 이후: 냉전의 격화

한국전쟁은 무익하고 야만적인 전쟁으로 냉전의 집약판이었다. 즉, 경쟁하는 제국주의 열강 간 전쟁이었다.

그래서 단순히 한반도에만 국한될 수 없는 전쟁이었다. 일례로 전쟁 발발 직후 미국 트루먼 정부가 취한 주요 조처의 하나가 미군 제7함대를 대만해협으로 보내 중국을 견제한 일이었다.

결국 한국전쟁은 냉전 제국주의 경쟁의 산물이자, 동시에 세계적 차원에서 냉전 경쟁이 격화되는 계기가 됐다. 당시 미국 국무장관 애치슨에게 한국전쟁은 “발발하여 우리[미국]을 구한” 위기였다. 한국전쟁은 미국이 군비를 대폭 증가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은 트루먼 정부가 작성한 ‘NSC-68’ 계획을 실현할 절호의 기회가 됐고, 미국 국방 재정은 1950년의 140억 달러에서 1953년 500억 달러 이상으로 폭증했다. 미국 국민총생산에서 국방비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5퍼센트에서 13퍼센트로 상승했다.

미국의 이런 국방비 지출 증대는 제국주의 경쟁국인 소련을 의식한 조처이자, 동시에 군사적 케인스주의의 발상이기도 했다. 미국 지배자들은 군비 지출 증대가 경기를 부양하는 효과가 있음을 제2차세계대전을 통해 경험적으로 체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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