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4호 2020년 5 ~ 8월호)

지난 호

일반 논문

한국전쟁의 성격과 그 결과

김영익 113 34
358 6 4
5/19
프린트하기 전체 보기 PDF 보기

1949년 소련은 핵실험에 성공한다. 그리고 중국에서 중국공산당이 내전에서 승리해 미국의 지원을 받은 국민당을 대륙에서 밀어내 버렸다. 그러자 미국은 훨씬 공세적인 대외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1950년 트루먼 정부는 군사비를 3배로 올리는 내용이 포함된 정책 문서인 ‘국가안전보장회의 보고 제68호’(통칭 NSC-68)를 내놓았고, 핵무장에서 우위를 유지하려고 수소폭탄 개발에 착수했다(1952년 첫 수폭 실험). 동아시아에서 미국은 일본의 재무장도 서둘렀다.

 

이렇게 냉전 제국주의 경쟁의 격화라는 맥락 속에서 한반도에서는 열전이 벌어질 여지가 커지고 있었다.

전쟁의 전개

1948년 분단 정부 수립 이후 남북의 정권들은 모두 상대방을 향한 적의를 숨기지 않았다. 상대방과 오랫동안 공존할 의사가 없었던 것이다.

북한에서는 ‘국토완정完整론’이 대두됐다. 1949년 1월 신년사에서 당시 북한 수상 김일성은 국토 완정과 조국 통일을 위해 궐기할 것을 호소했다. 이승만도 마찬가지였다. 국방장관 신성모가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를 지껄였던 것은 당시 이승만 정부의 내심을 잘 보여 줬다. 한국전쟁 발발 전에 양측은 38선에서 수시로 무력 충돌을 벌이고 있었다.

닫기
x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