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4호 2020년 5 ~ 8월호)

지난 호

일반 논문

한국전쟁의 성격과 그 결과

김영익 113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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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9월 15일 미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됐다. 당시 북한군 주력은 궤멸 직전 상태로 몰렸다. 압록강 부근까지 미군과 남한군이 밀고 올라가자, 10월 맥아더는 11월 하순이면 북한군의 조직적인 저항은 끝날 것이며 미군 장병들은 크리스마스 이브를 고향에서 보낼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전쟁 양상은 이때 또 바뀌게 됐다. 10월 중국이 참전을 한 것이다. 10월 25일 중국군은 미군과 첫 전투를 벌였다. 소련도 비밀리에 미그기와 대공포를 동원해 한반도 북부에서 미군 군용기를 공격했다. 북한과 중국 모두 하늘에서 미군을 상대할 만한 전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한반도는 미국, 중국 등의 제국주의 군대들이 직접 맞붙는 전장이 됐다.

중국 지배자들이 참전을 결정한 것은 소위 ‘사회주의 형제애’나 중국 혁명을 지원한 북한에 대한 의리 때문이 아니었다. 중국도 나름의 지정학적 이해관계에 바탕을 두고 참전했다. 중국은 미군의 한반도 북부 장악이 중국을 위협한다고 여겼다. 대만의 국민당 장제스 군대, 베트남의 프랑스군, 압록강의 미군으로 세 방향에서 압박을 받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중국은 한반도에 군대를 보내면서 지정학적 경쟁에서 나름의 이득을 취하려고 했다. 중국군이 압록강을 건너기 직전에 마오쩌둥은 군대를 보내 티베트를 침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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