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4호 2020년 5 ~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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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논문

한국전쟁의 성격과 그 결과

김영익 113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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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중국군의 개입으로 이번에는 미군과 남한군이 밀려 서울을 다시 내줬다(1·4 후퇴). 그러다가 전열을 정비한 미군과 남한군이 다시 공세를 펼쳐 1951년 5월 무렵에 마침내 전선은 38선 인근에 고착됐다.

이처럼 전쟁이 전 국토를 수 차례 휩쓸고 지나가는 사이에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 한국전쟁은 인명 살상 면에서 매우 잔인한 전쟁이었다.

전쟁 초기 이승만 정부는 후퇴하는 와중에도 정치범들과 보도연맹원들을 학살했다. 정확한 규모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10만 명에서 많으면 30만 명이 이 학살로 희생됐다고 여겨진다. 그다음에 서울 탈환 후 돌아온 이승만 정부는 이른바 부역자 처벌이라는 명목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또 죽이고 탄압했다. 학살은 남한군과 미군이 점령한 북한 지역에서도 이어졌다.

미군은 전쟁 내내 제공권을 장악했다. 그리고 북한군이 점령한 남한 지역의 도시와 농촌을 향해 일상적으로 폭격 작전을 수행했다.

심지어 중국군 투입으로 전세가 불리해지자 맥아더는 진지하게 핵무기 투하를 제안했다. 만주와 한반도 국경 일대를 오랫동안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방사능 지대로 만들어 버리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맥아더만이 핵무기 사용을 검토한 것은 아니었다. 트루먼 정부는 핵무기를 동아시아 쪽으로 옮겼고, 핵폭격 훈련도 진행했다. 1951년 초에는 실제로 사용할 뻔했다. 미군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은 1953년 정전 때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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