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4호 2020년 5 ~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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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논문

중국의 ‘국공합작’ ― 반제국주의 민족공조의 모범적 사례인가?

최영준 undefined 169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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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담한 비극으로 끝난 1차 국공합작

1924년 1차 국공합작이 시작된 직후인 1925~1927년에 중국 노동자들이 거대하게 분출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혁명적 투쟁은 1927년 국민당 장제스의 군사 쿠데타로 철저히 분쇄됐고 수많은 공산당원과 전투적 노동자들이 학살당하며 비극적으로 끝났다.

1927년 중국공산당은 무장한 노동자들에게 모든 무기를 땅에 파묻거나 장제스 군대에 넘겨 줄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이 때문에 장제스는 손쉽게 노동자 혁명을 분쇄할 수 있었다. 중국공산당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은 스탈린과 코민테른의 강력한 지침에 따른 결과였다.

1925년 중국 노동자들이 반란을 일으켜 제국주의뿐 아니라 자국 부르주아지에게도 맞서 파업과 투쟁을 확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스탈린은 중국공산당에게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국민당과의 동맹을 유지하라고 지시했다. 스탈린은 당면한 중국혁명을 사회주의 혁명이 아니라 제국주의에 맞선 민족해방 부르주아 혁명으로 제한했고, 그에 따라 국민당이 정치적 주도권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봤다.

스탈린의 정책은 1917년 러시아혁명 당시 러시아 멘셰비키 전략을 중국에 적용한 것이었다. 1917년 멘셰비키는 카데츠(입헌민주당)를 포함한 부르주아 정당과의 상시적 동맹을 형성하고 임시정부라는 연립정부를 구성해 부르주아지에게 정치적 지도권을 넘겨 줬다.

1926년 3월 장제스가 광둥 쿠데타를 시도해 공산당 지도자들과 파업위원회를 주도한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구속했음에도 코민테른은 중국공산당에게 국민당을 탈당하지 말고 묵종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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