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4호 2020년 5 ~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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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논문

중국의 ‘국공합작’ ― 반제국주의 민족공조의 모범적 사례인가?

최영준 undefined 169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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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항의하는 중국공산당에게 코민테른은 “현 시기는 공산주의자들이 국민당을 위해 쿨리(막일꾼)처럼 봉사해야 하는 시기”라며 불만을 억눌렀다. 장제스가 1927년 쿠데타를 벌이기 직전까지도 그를 중국혁명의 영웅적 지도자로 칭송했고, 코민테른 기관지 〈프라우다〉는 국민당 지도 하에 모든 계급의 단결을 호소했다. 국민당을 혁명적 세력으로 치장해 줬고 장제스를 제국주의에 대항해 전쟁을 수행하는 지도자처럼 묘사한 것이다.

이는 레닌이 주도적 역할을 했던 코민테른과 완전히 다른 정책이었다. 레닌은 식민지 또는 반半식민지 국가에서 민족해방을 위해 자국 내 일부 부르주아지와 일시적 동맹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1921년 창당한 신생 중국공산당이 제국주의에 맞선 운동을 건설하기 위해 국민당과의 일시적 동맹(국공합작)을 추진한 것이 그 적용 사례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레닌은 “억압받는 계급들, 즉 노동하며 착취당하는 사람들의 이익과 실제로는 지배계급의 이익을 뜻하는 민족의 이익”을 구별해야 한다는 마르크스주의의 원칙을 이해하고 있었기에 부르주아지에게 정치적으로 종속되지 말아야 함을 분명히 했다.

레닌은 코민테른 제2차 대회(1920년)에서 “식민지나 후진국의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일시적 동맹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과 하나로 합동이 돼서는 안 되며, 어떠한 상황에서든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독립성을 굳게 지켜야 한다. 설령 프롤레타리아 운동이 아주 초보적 발전 단계에 있는 경우라 하더라도 그렇다”3고 강조했다.

하지만 레닌 사후 코민테른은 중국공산당에게 정치적 묵종을 요구했고, 그로 인해 중국공산당은 양손이 묶인 채 국민당 장제스에게 무기력하게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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