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6호 2020년 11~12월호)

지난 호

문재인 정부의 낙태죄 유지 법 개정안 논란 ─ 낙태는 왜 여성이 선택할 권리인가?

전주현 123 36
362 13 11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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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불법화는 노동계급과 서민층 여성에게 특히 해악적이다. 2010년 이명박 정부의 낙태 단속 강화 방침 발표 뒤 우익 의사들(‘프로라이프 의사회’)이 낙태 시술 병원을 고발하면서 병원이 낙태 시술을 거부하는 일이 크게 늘어난 적 있다.

그러자 여성들은 병원을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굴러야 했고, 낙태할 곳을 문의하는 여성들의 절박한 상담전화가 여성단체에 빗발쳤다. 낙태 비용은 20배까지 치솟았다. 일부 여성들은 원정 낙태를 했고 가짜 낙태약 브로커에게 사기를 당하는 일도 빈번했다. 또한 낙태를 미루다가 임신 후기에야 수술을 받은 여고생이 사망하는 비극적인 일도 벌어졌다.

문재인 정부가 낙태죄 폐지 염원을 뭉개며 시간을 끄는 동안 여성들은 불법 낙태로 인한 부담에 짓눌리고 ‘살인자’라는 비난에 죄책감을 느껴야 했다. 온라인에서는 신뢰하기 힘든 낙태약 홍보가 활개를 쳤다. 온라인 여성 커뮤니티에서 그 위험성을 알리는 체크 리스트가 퍼질 정도였다. 어떤 청소년은 낙태를 하려고 피임약 몇십 알을 한꺼번에 복용해 자궁 출혈로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했다.

낙태가 합법화돼도 국가의 재정 지원이 없으면 낙태 문제의 계급 불평등은 사라지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1973년 낙태 합법화 뒤에도 정부 지원금이 제대로 제공되지 않아 청소년과 빈곤층 여성들이 자가 낙태를 하거나 낙태 비용 마련을 위해 성매매로 내몰리는 일이 벌어졌다. 그래서 노동계급에게는 낙태죄 폐지뿐 아니라 낙태권을 실제로 보장하는 조처들이 중요하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낙태 문제를 남 대 여의 문제로 보지만, 낙태 문제에서 모든 여성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지는 않는다. 2016년, 낙태 처벌 강화 조처를 시도했다가 여성들의 낙태죄 폐지 ‘검은 시위’를 촉발시킨 장본인이 최초의 여성 대통령 박근혜다. 트럼프가 루스 긴즈버그 전 연방대법관의 후임으로 지명한 여성 판사 에이미 배럿은 지독한 낙태 반대 보수주의자다. 지배계급 여성들이 낙태 규제 같은 여성 차별적 조처를 지지하는 이유는 안정적으로 노동력 공급이 이뤄져야 자본주의가 굴러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배계급 여성들도 여성 차별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러나 낙태 문제에서 보듯 부유층 여성들은 성차별로 인한 효과를 상쇄할 자원과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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