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6호 2020년 11~12월호)

지난 호

미국 대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김준효 165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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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재앙도 미국을 강타했다. 대서양 발 허리케인은 미리 정해 둔 이름이 다 떨어져 그리스 알파벳으로 불러야 했다. 관측 사상 두 번째 일이다. 더 묵시록적인 장면은 미국 서부에서 펼쳐졌다. 몇 년 동안의 가뭄 때문에 건조해진 12개 주州에 들불이 번져 서울 면적의 30배 가까이 되는 땅을 불태웠다.

기후 변화 부인론자이고 임기 내내 탄소 배출량 규제와 환경 규제를 완화해 온 자답게, 트럼프는 “날씨 추워지니 [들불이 꺼질 때까지] 두고 보자”고 응수했다. 그러나 두 달이 넘는 지금까지도 불은 계속 타고 있다.

잔인한 인종차별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인종차별은 질병, 경제, 교육, 사법 등 모든 면에서 유색인종의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미국에서 흑인의 코로나19 사망률은 백인보다 네 배 넘게 높았다. 특히, 경찰과 극우의 인종차별적 폭력은 아주 충격적이다. 경찰의 무릎에 목이 눌려 질식사한 조지 플로이드, 자기 차에 타려다 경찰의 총에 등을 일곱 발 맞은 제이컵 블레이크, 집에서 자다가 경찰의 총을 여섯 발 맞은 브리오나 테일러 등.

그러나 희망도 있다. 현대 자본주의의 온갖 병증病症으로 짓무른 미국에서 세계적 주목과 연대를 이끌어 낸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이 분출해 정치 지형을 뒤흔들었다. 이 운동은 세계 약 80개 국으로 번졌다. 〈뉴욕 타임스〉는 2020년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이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운동이라고 지적했는데, 첫 3개월 동안만 1만 건이 넘는 시위·행진·충돌·소요·쟁의가 벌어졌고 미국인 약 40퍼센트가 이런 행동들에 한 번 이상 참가했다. 이 운동은 미국 노동계급의 거의 전체를 포괄하는 진정한 다인종 대중 운동이다. 그전까지 트럼프 정부 하에서 가장 큰 저항이었던 2017년 ‘여성 행진’(약 500만 명 추산)보다 참가자 수가 훨씬 더 많다.(‘여성 행진’에는 민주당과 온건 단체들의 정치적 지원과 기업의 후원금이 훨씬 많이 몰렸다.) 이 운동은 인종차별에 대한 미국 대중의 인식을 크게 바꿨고3, 대중이 직접 행동에 나서면 변화를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을 확산시켰으며, 상당히 급진적인 요구들 ─ 예컨대 경찰 재정 삭감 혹은 경찰 해체 ─ 을 공식 정치의 의제로 부상시켰다.

이런 급진화는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10년 전에는 미국 금융의 중심지 월가에서 “1퍼센트만 구제하는 체제는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외치는 ‘점거하라’ 운동4이 벌어졌고, 4년 전에는 “우리에게는 [민주적] 사회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샌더스 선거운동이 모종의 ‘사회주의’를 공식 정치의 장에 입성시켰다(샌더스에 관해서는 뒤에서 더 다루겠다). 또, 여성 차별, 성소수자 혐오, 이주민 천대, ‘티파티’ 등 강경 우파의 부상에 반대하는 대중 운동들이 분출했고, 노동자들의 경제 투쟁도 조금씩 늘었다. 이 모든 것들이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항쟁에 영향을 미친 전사前史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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