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6호 2020년 11~12월호)

지난 호

프리드리히 엥겔스

토니 클리프 12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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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842년 역사상 처음으로 총파업이 일어난 곳은 바로 이곳 영국이다. 엥겔스는 이를 직접 목격할 수 있었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예를 들어, 1842년 파업과 관련해 흥미진진한 사실 하나는 바로 플라잉 피켓[파업 노동자들이 여러 작업장을 돌아다니면서 대체인력 투입을 저지하는 것]이 이때 처음 등장했다는 것이다. 다들 플라잉 피켓을 우리가 최근에 개발했거나 우리 세대가 1970년대에 개발한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전혀 아니다. 플라잉 피켓은 1842년에 개발된 것이다. 노동자들이 이 공장 저 공장을 돌아다녔다. 노동자들은 이를 ‘공장을 뒤집는다’고 했다. 노동자들은 전국을 돌며 산업을 뒤집었다. 당시 노동자들이 일궈낸 탁월한 성취였다. 그러므로 엥겔스가 1842년 총파업의 중심지였던 맨체스터에서 차티스트 활동가들을 알고 지냈다는 사실을 빼놓고 《영국 노동계급의 상태》를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엥겔스는 그저 목격자로 머무르지 않았다.

엥겔스가 쓴 책을 보면 오늘날 우리에게는 당연하지만 당시에는 완전히 새롭고 탁월했던 사상들이 나온다. 모든 일이 다 지나고 한참 뒤에 결론을 내리기는 훨씬 쉽다. 1830년대나 1840년대에 살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과연 엥겔스 같은 통찰을 할 수 있었겠는가? 이런 점을 생각해 보면 《영국 노동계급의 상태》가 얼마나 탁월한지 분명해진다.

무엇보다 엥겔스가 겨우 23살 때 이 책을 썼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이 책의 중요한 점은 단순히 노동계급의 삶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그 묘사도 매우 흥미롭기는 하다. 엥겔스는 노동계급의 삶을 그릴 때 찰스 디킨스처럼 “오, 불쌍한 녀석들! 노동자들이 고통받고 있어요. 조금만 더 도와주실 수 없을까요, 높으신 양반들?” 하는 식의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엥겔스의 태도는 정반대였다. 그의 묘사에는 엄청난 낙관주의가 배어 있다. 노동자들은 역사의 희생자가 아닌 역사의 주체로, 역사를 만드는 사람들로 나온다. 이 점을 잘 보여 주는 문장을 인용해 보겠다.

가난한 이들이 부자들에 맞서 벌이는 전쟁은 지금은 개별적이고 간접적이지만 결국에는 직접적인 전면전으로 발전할 것이다. 평화적 해결책은 이미 너무 늦었다. 머지 않아 약간의 충격만으로 산사태가 일어날 것이다. 그러면 전쟁의 함성이 영국 전역에 울려 퍼질 것이다. ‘궁전에는 전쟁을, 판잣집에는 평화를.’ 그제서야 부자들이 정신을 차려도 이미 늦은 일이 될 것이다.

또한 엥겔스는 노동조합의 중요성을 알아봤다. 오늘날 노동조합은 흔히 그저 노동 조건을 개선하려고 애쓰는 노동자 단체로 여겨진다. 게다가 요즘에는 토니 블레어[당시 영국 노동당 대표]의 영향으로 노동조합이 그보다 더 못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노동자들을 고용주에게 팔아넘기는 단체로 말이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대놓고 말하지 않지만 그들에게 노동조합은 오로지 타협을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엥겔스의 시각은 완전히 달랐다. 노동조합 운동이 막 등장하던 시기였는데도 엥겔스는 그 잠재력을 봤다. 이미 1844년에 엥겔스는 이렇게 말한다. “전쟁을 배우는 학교로는 노동조합만한 곳이 없다”. 엥겔스에게 노동조합은 타협이 아닌 전쟁을 배우는 학교였다. 노동조합의 목적은 보잘것없는 성과를 얻고 마는 데에 있지 않다. 왜냐하면 전쟁에는 매우 간단한 규칙이 있기 때문이다. 전쟁에서는 어느 한 쪽만이 이길 수 있다. 엥겔스가 보기에 노동조합은 전쟁의 무기였다. 여러 해가 지난 뒤 레닌은 “노동조합은 공산주의를 배우는 학교”라고 말한다.

엥겔스가 마르크스를 만나기 전부터 이런 용어들을 쓰고 있었다는 점을 명심하라. 엥겔스가 마르크스보다 먼저 노동계급 중심성을 이해했다고 하는 것이 마르크스를 비판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당시 마르크스는 어디에 살았던가? 최근 그의 고향 트리에에 가본 사람이 있는가? 거기서 가장 큰 일터는 아마 마르크스의 집일 것이다! 마르크스와 달리 엥겔스는 당시 세계의 공장인 영국, 그것도 산업혁명의 중심지 맨체스터에 살았다. 그러므로 엥겔스가 노동계급 중심성을 먼저 떠올린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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