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6호 2020년 11~12월호)

지난 호

프리드리히 엥겔스

토니 클리프 12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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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백하고 노골적인 사상만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인종차별주의가 나쁜 사상이고 반동적임을 알아차리기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지배계급의 사상은 초보적인 생각에도 영향을 미친다. 내 딸이 일고여덟 살일 때 일이 기억난다. 그 아이가 나랑 말싸움을 했다.(무엇 때문인지는 기억이 안 난다.) 그러고 나서 그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아빠 말이 맞겠죠.” “왜 내 말이 맞는데?” “나보다 나이가 많잖아요. 그러니까 나보다 똑똑하겠죠.” 그래서 나는 이렇게 답했다. “그래, 내가 너보다 똑똑하다고 치자. 너는 네가 낳은 아이들보다 더 똑똑할 것이고. 그럼 사람들이 점점 더 멍청해지는 거네!” 연장자가 어린 사람보다 더 낫기 때문에 연장자 말을 들어야 한다는 생각, 이것은 서열이다. 이런 서열은 우리가 사는 사회 구조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부자와 가난한 자가 있는 것은 세상의 이치라는 생각을 살펴보자. 흔히들 말한다. “당연히 부자도 있고 가난한 자도 있는 거지. 언제나 그래 왔으니까.” 많은 노동계급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빠도 노동자, 할아버지도 노동자야. 너도 노동자가 될 것이고, 네 아이들도 노동자가 되겠지. 세상은 언제나 가진 자와 없는 자로 나뉘어 있어.” 그래서 결론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부자는 뭔가 특출난 재주가 있는 게 틀림없다.

아버지가 하시던 말씀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아홉 가지 언어로 서명을 할 수 있단다.” 정말이었다. “그런데 내 수표는 맨날 부도 처리 된단 말이지.” 그런데 아무 재능도 없는 누구가 와서 “X” 표로 서명을 한 수표는 아무 문제 없이 처리될 것이다.

우리 사회의 지배적 사상이 지배계급의 사상이기 때문에 그것은 오직 어떤 창조적 행위, 즉 혁명으로만 떨쳐낼 수 있다. 혁명이 쿠데타와 같은 것이라면, 그러니까 어떤 극소수가 다른 극소수를 대체하는 것이라면, 예컨대 50명쯤 되는 군 장성들이 다른 군 장성 50명을 권좌에서 쫓아내는 것이라면, 대중이 지배계급의 사상을 머릿속에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도 혁명은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노동계급의 해방이 오직 노동계급 자신의 행위로만 가능한 것이라면, 대중은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낡은 생각을 떨쳐내야 한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로 나가 그들이 스스로 과거의 낡은 생각들을 떨쳐내도록 하는 데 40년이 걸렸다. 레닌은 “혁명의 단 하루 동안 노동자들은 한 세기 동안 배우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운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이처럼 노동자들이 자기 머릿속에 가득 찬 쓰레기들을 쓸어내기 위해 혁명이 필요하다는 것이 엥겔스의 생각이었다. 혁명 과정에서 투쟁하고 능동적이 될 때에만 노동계급은 비로소 집단적 힘을 발견하고 우러러볼 누군가가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된다. 누군가 나에게 이 개념을 간략히 정리해 달라고 하면, 나는 존 리드의 《세계를 뒤흔든 열흘》에 나오는 일화를 들려준다. 이 이야기는 러시아 혁명의 파장을 기막히게 묘사한다. 당시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 의장이었던 트로츠키가 소비에트 건물 앞에 갔더니 노동자 두 명이 출입증을 검사하고 있었다.(당시에는 반혁명 분자가 폭탄을 던지러 오는 등의 위험이 있었다.) 트로츠키가 자기 외투를 뒤져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정말 죄송한데요, 지금 허가증이 없네요. 하지만 저는 트로츠키입니다.” 그러자 노동자가 대꾸했다. “그쪽이 누구인지는 상관없습니다.” 이것이 노동자 권력이다. 누군가 총리 관저 앞을 지키고 서서 존 메이저 총리[보수당 소속의 당시 영국 총리]에게 감히 “그쪽이 누구인지는 상관없고요” 하고 말할 수 있으려면 반드시 혁명이 일어나야 할 것이다. 즉 진정한 노동자 권력이 들어서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자들이 스스로를 변화시키기 위해 혁명이 필요하다는 엥겔스의 사상은 굉장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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