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7호 2021년 1~2월호)

지난 호

핵·미사일과 경제난: ─ 북한 국가자본주의의 근본 모순을 보여 주다

김영익 113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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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관료들은 건국 이래 지금까지 국가기구를 이용해 노동자와 농민을 쥐어짜면서 한정된 자원을 중공업에 집중 투자해 왔다. 이들은 미국의 국가 존립 위협에 대처하고 남한과 군사적·경제적 경쟁을 해야 한다는 체제 생존 논리에 따라 이런 선택을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중의 소비는 축적에 체계적으로 종속됐다. 북한이 사회주의 사회였다면 축적은 대중의 소비 욕구에 좌우됐을 테지만, 현실은 정확히 그 반대였다. 중공업에 투자를 집중해 온 결과, 공업총생산에서 생산수단 생산 부문이 소비재 생산 부문을 압도했다. 1953년 당시 공업총생산에서 생산수단 생산의 비중이 38퍼센트이고 소비재 생산은 62퍼센트였는데, 이 비중은 극적으로 바뀌어 1975년에는 각각 66.5퍼센트와 33.5퍼센트를 차지했다.7

그리고 북한에서는 군수공업이 경제 ‘계획’에서 결정적 지위를 차지했다. 1968년 김일성은 “인민경제 부문들 앞에 나서고 있는 가장 선차적인 과업은 모든 힘을 다하여 국방건설을 지원하는 것”이고, “금속공장과 기계공장을 비롯한 모든 부문의 공장, 기업소들에서는 국방건설에 필요한 자재와 설비들을 먼저 잘 생산”해야 한다고 요구했다.8

그러다 보니 북한 정부는 오랫동안 노동자들을 혹사하고도 윤택한 삶을 제공하지 못했다. 한국전쟁 이래 북한 정부는 모든 인민이 ‘쌀밥에 고깃국’을 먹을 날이 올 것이라고 약속해 왔다. 그러나 지난해 3월 김정은은 “전체 인민이 흰 쌀밥에 고깃국을 먹으며 비단옷을 입고 좋은 집에서 살게 하려는 것은 위대한 수령님[김일성]과 위대한 장군님[김정은]의 평생 염원”이라며 이를 위해 노력할 것을 당일꾼들에게 강조했다. 60여 년 동안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음을 실토한 셈이다.

대를 이어 권력을 물려받은 김정일의 통치 기간에도 ‘계획’의 우선 순위는 김일성 때와 마찬가지였다. 이 점은 2006년 북한의 경제학 잡지인 《경제연구》에 실린 한 논문에 잘 나타나 있다. “군수 생산, 생산수단 생산, 소비재 생산 사이의 균형 설정에서 지켜야 할 원칙은 … 소비재 생산의 장성(성장)보다 생산수단 생산의 장성(성장)을 앞세우는 것이다. 군수 생산의 우선적 발전은 생산수단 생산의 우선적 장성(성장)을 요구한다.”9

북한 경제 자체의 모순에 더해 동구권이 붕괴하자 1990년대 북한은 심각한 경제 위기와 식량난에 빠져 들었다(‘고난의 행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규모 홍수 사태까지 일어나 상황이 더 악화됐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 적게는 수십 만에서 많게는 수백만 명이 아사하는 비참한 지경에 이르렀지만, 북한 당국은 경제 위기의 대가를 평범한 인민들에게 떠넘겼고 미국 등의 대북 압박에 대응해 핵·미사일 개발 등 군사력 증대를 우선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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