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7호 2021년 1~2월호)

지난 호

핵·미사일과 경제난: ─ 북한 국가자본주의의 근본 모순을 보여 주다

김영익 113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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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자들이나 개혁주의 정치인들은 북한이 시장 지향적 개혁·개방으로 나아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1990년대 신자유주의를 도입한 옛 동방 블록의 경험이나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거듭 확인되는 신자유주의의 실패를 보건대, 시장 지향적 개혁·개방은 북한 대중에게 대안이 아니다. 북한 노동계급한테는 ‘옆으로 게걸음 치는 것’일 뿐이다.

옛 소련, 북한 등을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라 “현실 사회주의”라고 여기는 좌파들이 여전히 있다. 그들이 보기에 “현실 사회주의”의 문제점은 관료주의나 “생산력 발전만으로 사회주의를 건설하려는 생산력주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관점은 관료주의와 생산력주의가 어디에서 비롯했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그리고 왜 관료주의와 생산력주의가 특정 시기에는 경제성장을 가능케 한 반면, 다른 시기에는 성장의 족쇄가 됐는지도 설명하지 못한다.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보기에, 이 사회들은 세계 체제에서의 경쟁 때문에 국가 관료들이 노동자들을 자본주의 생산의 법칙에 종속시킨 비시장적 메커니즘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래서 옛 소련과 북한 등을 (문제가 많음을 인정하더라도) 모종의 사회주의 사회라고 본다면,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이라는 사회주의 사상의 정수는 사라지고 만다. “현실 사회주의” 건설 경험을 보면, 사회주의에 반드시 노동자 혁명이 필요한 것은 아니게 되니 말이다. 관료나 게릴라 군대처럼 노동계급이 아니라 다른 사회 세력에 의해 사회주의가 가능하다고 본다면, 그것은 대리주의다. 그리하여 사회주의는 사회 생활의 모든 측면을 노동계급 스스로 결정한다는 의미와는 아무 상관이 없게 된다.

박노자 교수도 비슷한 주장을 한 적이 있다. 그는 경제 계획이나 국유 경제 덕분에 소련이 “다수의 생활수준을 경향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었]”던 반면, 관료의 독재와 민주주의 부재가 진정한 문제였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보면, 왜 관료 독재와 ‘계획’(실은 지령 경제)이 공존했는지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게 된다. 소련은 곱절의 경제 규모를 지닌 미국과 군비 경쟁을 하기 위해 미국보다 곱절의 비중을 군비 부문에 투입해야 했고 이를 위해 정치적 이견을 강력하게 통제해야 했기 때문에 다당제와 민주적 권리들을 허용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관료적 국가자본주의는 정치적 권위주의와 짝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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