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7호 2021년 1~2월호)

지난 호

혐오 표현, 국가 규제 그리고 표현의 자유

양효영 170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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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운동

혐오 표현 규제론자들 중에 혐오 표현에 맞선 ‘대항 표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다. 혐오에 맞서기 위해 차별받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반론과 비판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완전히 옳다. 그러나 혐오 표현에 대한 규제(특히 형사처벌)가 필요하다고 보는 데에는 운동이나 대항 표현만으로는 혐오 표현에 맞서기 어렵다는 비관이 깔려 있다.

특히 적잖은 지식인들은 노동계급 대중의 의식 변화 가능성에 회의적이다. 노동자들이 성차별적이거나 성소수자 차별적, 인종 차별적이라는 인상이 상식처럼 돼 있다. 그러나 이것은 엘리트주의적 편견이다. 노동계급의 의식은 변할 수 있고, 그리고 변화해 왔다. 예컨대, 한국에서도 지난 20년간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은 크게 변해 왔다. 결혼과 여성 차별에 대한 인식도 상당히 개선돼 왔다.

이는 노동계급의 물질적 조건이 변화해 왔기 때문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많이 진입했고, 여성의 교육 수준도 크게 높아졌다. 사회 전체적으로 결혼을 해 가족을 꾸리는 비중은 상당히 줄었고, 여성이 꼭 출산과 결혼을 해야 한다는 인식도 크게 줄었다. 정상 가족의 약화는 성소수자나 미혼모, 미혼부에 대한 인식도 변화시켜 왔다.

무엇보다, 대중 투쟁 속에서 노동계급의 의식은 빠르게 급진화한다. 대중 투쟁이야말로 혐오와 차별에 맞선 진정한 동력이었다. 투쟁은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주고, 자신의 진정한 이익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한다. 이 과정 속에서 기존의 낡은 지배적 생각들이 크게 도전받고, 새로운 생각에 대해서도 개방적이 된다. 서구에서는 1960~1970년대 흑인·성소수자·여성 차별에 맞선 대규모 저항들이 벌어졌고, 그런 대중 동원이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고, 그래서 혐오가 존중받아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이 투쟁의 여파 속에서 차별적 법과 제도가 개선됐다. 또한 동성 결혼, 시민결합, 차별금지법 등이 도입됐다.

그러나 1970년 후반 운동이 침체하면서 서구 학생운동 내에서 차별에 맞서 항의나 투쟁보다는 좀더 손쉬운 행정적 방식으로 대체하는 분위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학에서는 학생회가 혐오적 표현에 대해 징계, 규율을 하거나 우파들이 여는 토론회 등을 불허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이는 논쟁이나 시위보다 문제를 더 빠르게 해결하는 손쉬운 방법으로 여겨졌다. 특히 좌파들이 그 기구를 운영할 때 그런 생각에 더욱 이끌렸다. 하지만 이런 행정적 방식은 오히려 대중의 모순적이고 후진적인 의식과 논쟁하고 도전하는 일을 회피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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