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7호 2021년 1~2월호)

지난 호

혐오 표현, 국가 규제 그리고 표현의 자유

양효영 170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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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자본주의에서 지배계급은 이데올로기 생산수단을 통제하고 있다. 돈과 권력이 있는 자들이 미디어를 지배하며 무엇이 방송·출판될 수 있는지 결정한다. 돈이 많으면 그만큼 자신의 생각을 더 많이 퍼뜨릴 수 있다. 그런 재력이 없는 혁명적 좌파는 일상적 시기에 그 주장을 사람들이 수용하냐 여부 이전에 주류 언론들에 비해 자신의 사상을 전파할 수 있는 범위 자체에 한계가 있다.

누구의 표현의 자유인가?

이렇듯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표현의 자유가 불평등하다. 지배계급의 지배적 사상은 사실상 거의 무제한으로 표현될 수 있는 반면, 차별받거나 착취받는 사람들의 표현은 근본적으로 제약된다. 자본주의 사회가 계급으로 분열돼 있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 또한 추상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를 말할 때는 누구의 자유이고, 무엇을 말할 자유인지를 물어야 한다. 진정한 표현의 자유는 노동자와 천대받는 사람들의 의견과 주장을 확대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차별받는 여성, 섹슈얼리티, 소수 인종, 특정 종교 등에 대해 차별하거나 혐오를 선동하는 표현들을 표현의 자유로 옹호해서는 안 된다.

가령, 지난 10월 프랑스 파리에서 한 교사가 무함마드를 조롱하는 신문 만평을 수업 시간에 보여 줬다가 한 무슬림 청년에 의해 참수 테러를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프랑스 지배계급은 교사가 “표현의 자유”를 가르치다가 참수당했다며 분개했다. 하지만 무슬림처럼 프랑스 제국주의에 의해 천대받아 온 집단의 믿음을 조롱하는 인종차별적 행위를 표현의 자유로 옹호할 수 없다.

한국에서도 가령, 박유하 씨가 《제국의 위안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모욕하자 ’위안부’ 피해자들이 박유하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자 진보 지식인들 중 일부가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그 소송을 비판했다. 물론 사회주의자들은 일반적으로 출판물을 법률적으로 금지하는 것을 지지하지 않지만, 박유하 씨가 모욕적인 주장을 철회할 의사가 명백하게 없는 상황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그 방법 말고는 달리 도리가 없었던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표현의 자유를 앞세우는 것은 피억압자들인 ‘위안부’ 할머니가 아니라 박유하 씨를 편들게 된다.

후진적인 주장에 대해서는 아예 발언 기회를 주지 말자?

그렇다면 차별받는 집단에 대한 혐오 표현에 어떻게 맞설 수 있을까? 어떤 수단으로 맞서야 할까? 혐오 표현을 표현의 자유로 옹호할 수 없다는 것은 우파나 반동에게 말할 기회를 원천 차단하라는 것일까? 혹은 법률로 혐오 표현을 금지시키라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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