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7호 2021년 1~2월호)

지난 호

혐오 표현, 국가 규제 그리고 표현의 자유

양효영 170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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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국가가 규제해도 혐오 표현은 사라지지 않는다. 역사적 경험이 보여 준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혐오 표현을 규제하는 법이 있다. 대체로 나치와 홀로코스트를 경험하면서 제정된 법들이다. 독일에는 인종적 혐오 표현을 폭넓게 규정해 처벌할 수 있는 형법(독일 형법 제130조)이 있다. 영국과 프랑스 등에서도 혐오 표현 규제 법률이 존재한다. 실제 이 법률을 근거로 망언을 내뱉은 일부 우익들이 처벌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 법률이 파시즘이나 극우 포퓰리즘 자체를 막지 못한다. 독일에는 나치가 그 중심에 있는 ‘독일을 위한 대안당’이 만만찮은 세력으로 존재한다. 경제 위기로 이미 정치 양극화 압력이 증대한 상황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지자, 파시즘과 극우는 각종 음모론에 기대 기성 체제에 대한 불신을 부추기고 대규모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지난 8월 독일에서는 코로나19 방역에 반대하는 ‘큐어넌’ 시위에 4만여 명이 모였다.

법률로 혐오 표현을 막을 수 없다. 왜냐면 자본주의 자체가 파시즘과 극우가 자라나는 토양을 계속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또한 특정 표현을 처벌한다 해도, 차별을 낳는 토양이 바뀌지 않는 이상 대체할 표현은 쉽게 개발될 수 있다. 예컨대, 독일 큐어넌 시위대들은 거대한 독일 제국 깃발을 휘날렸는데, 이것은 금지된 하켄크로이츠나 나치 독일 깃발의 대용품이다.

그래서 사실 혐오 표현을 규제하자는 측에서도 규제의 효과에 대해서는 그다지 자신하지 못한다. “혐오 표현 규제는 혐오 표현을 막거나 줄이는 데 기여해야 하지만 혐오 표현의 형사범죄화로 그런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실제로 형사범죄화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들에서도 유의미한 효과가 있는지 제대로 검증된 적은 별로 없다.”(홍성수, 《말이 칼이 될 때》)

실제 혐오표현 규제법이 있는 나라들에서도 법 집행이 자주 있지는 않다. 예컨대, 영국에서 인종적·종교적 증오 선동을 처벌하는 공공질서법으로 실제 처벌받은 수는 1년에 2~3건가량이다. 2007년부터 2017년까지 총 18명이 처벌받았다. 독일이나 프랑스에서도 실제 처벌은 100~200건 정도다. 지난 20여 년간 유럽에서 무슬림과 이주민에 대한 인종적 증오 선동이 상당히 늘어왔던 것을 감안해 보자면 미미한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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