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7호 2021년 1~2월호)

지난 호

혐오 표현, 국가 규제 그리고 표현의 자유

양효영 170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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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경험은 우파들의 혐오를 규제하는 법이 생기더라도 그 법이 별로 실효성이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는 그 법의 수사나 기소 권한을 가지고 있는 사법기구(한국에서는 경찰과 검찰)의 미온적 태도와도 관련 있다.

국가 규제 요구는 좌파에게 부메랑이 될 수 있다

혐오 표현 처벌은 실제 차별적 행위들(임금 차별, 괴롭힘이나 폭력 등)에 비해 그 대상이 훨씬 광범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과 국가가 문제 삼는 게 꼭 일치할까? 국가의 판단을 우리가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대체로 유럽의 혐오 표현 관련 법은 특정 인종과 민족에 대한 증오 선동을 처벌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유럽에서는 좌파의 이스라엘 국가 비판이 유대인 혐오라는 이유로 처벌받거나 제재받는 일들이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다. 2015년 프랑스 대법원은 “팔레스타인이여 영원하라, 이스라엘 보이콧 하자”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은 반시온주의 활동가들에게 혐오 표현 유죄를 선고했다. 또 다른 프랑스 활동가들은 이스라엘산 채소에 “보이콧” 스티커를 붙였다는 이유로 “인종 혐오 선동”으로 기소됐다.

물론 혐오 표현을 규제하자는 사람들이 장삼이사들의 일상적 표현을 다 검열하자는 취지로 이 법을 제시하는 건 아니다. 영향력과 파급력이 큰 공인이나 정치인, 고위 관료 등의 발언을 규제하는 것이 이들의 주된 관심사다. 이를 통해 사회 전체에 상징적 효과를 주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이조차도 국가 기구에 의해 의도가 틀어질 개연성은 여전히 있다. 에드워드 스노든과 함께 CIA를 폭로해 퓰리처상을 받은 그린월드는 “유럽에서는 혐오 표현 규제법이 자주 좌파적 관점을 억누르고 처벌하는 데 쓰인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2012년 영국에서 10대 무슬림 청년이 혐오 표현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분노를 표현하며 “모든 군인들은 죽거나 지옥에 가야 한다”고 페이스북에 썼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표현이 “인종차별적”이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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