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7호 2021년 1~2월호)

지난 호

혐오 표현, 국가 규제 그리고 표현의 자유

양효영 170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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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람들이 혐오하거나 증오하는 대상이 반드시 차별받는 집단은 아닐 수 있다. 트럼프의 역겨운 말들에 혐오감을 느끼는 사람이 굉장히 많을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지배자들을 증오하고, 광주 학살의 피해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전두환을 증오한다.

물론 일부 NGO 리더들은 좌우를 막론하고 혐오나 증오감 자체가 문제라고 보기도 한다.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는 5.18 피해자 단체들이 전두환 동상을 만들어서 때린 것,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는 아베 전 일본 총리를 규탄하면서 그의 얼굴을 때리는 퍼포먼스를 한 시민단체도 혐오를 부추겼기 때문에 문제라고 비판한다.1 하지만 지배자들의 악행에 분노하고 사람들의 의분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선동하는 것은 체제의 피해자들에게 혐오를 부추기는 것과 질적으로 다르다. 목적과 효과 모두에서 다르다. 전자는 지배계급을 폭로하고 들추지만 후자는 노동계급을 분열시킨다.

한편, 상당수 페미니스트들이나 인권 운동가들이 혐오를 지나치게 넓게 규정해 온 것이 문제를 더 꼬이게 만들 수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한 ‘혐오표현 리포트’는 “장애인은 착하다”, “흑인은 신체 능력이 뛰어나다” 같은 잘못된 일반화와 편견도 혐오 표현이라고 규정했다.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혐오라는 개념을 매우 느슨하게 사용한다. 여성 살해, 여성에 대한 편견, 포르노 등 다양한 수위의 행위들이 모두 여성 혐오로 묶여서 사용된다. 이런 언어 사용은 더 강한 표현을 통해 대중의 경각심을 일깨우려는 의도가 있을지 몰라도, 오히려 진정한 혐오가 무엇인지 흐리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혐오 표현 규제에 찬성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혐오에 대한 운동 내 용어법과 법률 용어를 분리시키자는 절충도 나온다. 운동 내에서는 혐오를 최대한 광범한 의미로 쓰되, 법적으로 처벌할 때는 협소하게 쓰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혼란을 낳을 것이다. 현실에서는 법제도 문제와 운동의 요구가 연결되는 경우가 많고, 운동의 용어와 법률 용어도 칼같이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증오 선동만 처벌하자?

규제 수위를 두고서는 이견이 있는 듯하지만, 좀더 엄격하게 혐오 “선동”을 규정하고 이를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도록 입법해야 한다는 의견도 꽤 있다. 추방, 폭력을 선동하는 말 등 직접적이고 당면한 위협을 가하는 표현만 선별해서 처벌하자는 것이다. 홍성수 교수가 그런 입장이다. 또, 지난해 말 《혐오표현을 거절할 자유》를 낸 이정희 전 의원도 인종차별적 혐오 선동에 대해 제한적으로 형사처벌을 할 수 있게 입법하자는 의견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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