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8호 2021년 3~4월호)

지난 호

《국제사회주의자들의 기원》 서문

던컨 핼러스 88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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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레닌은 마르크스를 따라 이렇게 주장했다.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 이행하는 동안에도 ⋯ 특수한 형태의 억압 기구인 “국가”가 여전히 필요하지만 그 국가는 과도기적인 국가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국가가 아니다. 임금 노예였던 다수가 소수의 착취자를 억압하는 것은 비교적 수월하기 때문이다. ⋯ 이런 국가는 인구 압도 다수에게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것과 조화를 이룰 수 있으며, 그래서 억압을 위한 특별한 기구의 필요성은 사라지기 시작할 것이다. 13

고장 난 자동차도 여전히 자동차인지 14 관료화된 노동조합도 여전히 노동자 조직인지를 놓고 변증법에 대해 아무리 많이 얘기한들, 레닌과 마르크스가 말한 노동자 국가가 소수 착취자에 대항하는 노동계급의 도구였다는 점은 흐릴 수 없다. 트로츠키 자신의 말처럼 특권적 집단이 노동계급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하는 도구가 된 국가를 “노동자 국가”에 포함시키는 것은 베른슈타인만큼이나 마르크스주의를 크게 수정하는 것이다.

사실 트로츠키는 민주집중파의 정치적 입장(혁명)을 수용하면서 그 이론적 근거(반혁명이 벌어졌다)는 거부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새로운 부르주아지”인 네프맨과 쿨라크가 관료를 도구 삼아 권력을 장악했다는 스밀노프 등의 분석이 완전히 틀린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공업화는 국가 소유와 계획이라는 기반 위에서 신속하게 추진됐다. 그러나 관료에 대해서 혁명적 입장을 채택한 것은 소련이 노동자 국가라는 트로츠키의 개념에서 그동안 핵심적이었던 요소, 즉 노동계급이 궁극적으로 권력을 잃지 않았고 개혁을 통한 재건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따라서 새로운 개념이 제출돼야 했다. 이제는 익숙해진 그 주장은 바로 산업의 핵심 부문이 국가의 수중에 있고 사적 자본이 경제에서 미미한 구실만 하기 때문에 노동자 국가라는 것이다. 노동자들에게 권력은커녕 민주적 권리조차 없는데도 말이다. “보나파르티즘” 비유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보나파르트 정체政體들은 부르주아지에게서 권력의 궁극적 원천인 생산수단 소유를 빼앗지 않았다. 그리고 노동계급은 민주적 조직을 통해서만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트로츠키가 자신의 전반적인 정치적 관점을 훼손시키지 않고도 상당히 “수정주의적”인 견해를 채택할 수 있었던 것은 러시아 관료들을 매우 예외적이고 지극히 불안정한 현상으로 봤기 때문이었다. [자본주의의] 부활에 맞서 “노동자들의 지지에 기댈” 세력이라던 관료들은 이제 “부활”의 핵심 세력으로 여겨졌다. 관료들은 “갈수록, 노동자 국가 안에 있는 세계 부르주아지들의 기관이 되고” 15 있으며, “그들이 새로운 소유관계를 전복하고 러시아를 자본주의로 되돌리거나, 그렇지 않으면 노동계급이 관료를 분쇄하고 사회주의로 가는 길을 열어젖힐 것이다.” 16 “관료의 지배가 하루하루 계속될수록 경제의 사회주의적 요소로 이루어진 토대가 침식되고 자본주의가 부활할 가능성이 커진다.” 17

이론적으로는 아주 미심쩍은 개념이다. 물론 어떤 나라의 특권 계급이나 특권층이 본질적으로 해외 부르주아지들의 도구가 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20세기 초 중국의 “매판買辦” 자본가들의 상황이 바로 그랬다. 하지만 이들의 경우에 의존의 기제가 매우 뚜렷했다. 매판 자본가들이 부와 권력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해외 무역 덕분이었고, 이 무역에서 매판 자본은 해외 자본주의 열강 대기업들과 전혀 대등하지 않은 관계에 있었다. 스탈린주의 관료의 경우에는 그런 기제가 전혀 없다. 관료들은 해외 무역을 계속 독점했고, 외국 자본가는 소련 국가를 직접 상대해야 했다. 사실 지금[1971년]도 그렇다. 대외무역부 관료들은 매판 자본가가 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이들은 거대하고 고도로 중앙집권적인 기구의 톱니바퀴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사실, 관료들에게 “복고주의” 경향이 있다는 것은 신화였음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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