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8호 2021년 3~4월호)

지난 호

[사회주의 고전 읽기] 《프랑스 내전》 ─ 최초의 노동자 권력, 파리 코뮌

김지윤 179 38
388 6 4
5/9
프린트하기 전체 보기 PDF 보기
보통 선거권은 3년이나 6년마다 지배 계급의 어떤 구성원이 의회에서 인민을 올바르게 대표하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대신에 코뮌을 구성하는 인민에게 봉사해야 [한다] …코뮌 제도는 사회에서 자양분을 얻고 사회의 자유로운 운동을 저해하는 ‘국가’라는 기생물이 이제까지 빨아먹은 모든 힘을 사회의 신체에 돌려줄 것이다. … 코뮌의 진정한 비밀은 이것이었다. 코뮌은 본질적으로 노동자 계급의 정부였으며, 전유 계급에 대한 생산 계급의 투쟁의 산물이었으며, 노동의 경제적 해방이 완성될 수 있는, 마침내 발전된 정치 형태였다. 11

코뮌은 자신이 대표하는 노동계급을 위한 조처들을 실행했다. “코뮌은 의회제가 아니라 행정과 입법의 업무를 겸하는 행동 기구” 12 였기 때문에 자신의 공약을 실현하고, 공장주·금융업자들의 기득권에 도전할 수 있었다.

빵집의 야간 노동이 금지되고, 남편을 잃은 여성에게 연금을 지급하고, 임대료 체불 세입자의 강제 퇴거가 금지됐다. 문을 닫은 모든 작업장·공장을 노동자들의 협동조합에 넘겨주도록 했고, 모든 아동에게 무상교육을 제공했다. “동시에 교회와 국가의 모든 간섭이 제거되었다. 학문 자체가 계급적 선입견 및 정부의 강제력이 부과한 족쇄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13 수많은 사람들이 기근에서 벗어났다.

코뮌은 국제주의를 표방했다. 군국주의의 기념물인 나폴레옹 전승 기념 원기둥을 무너뜨렸고, 독일 노동자를 코뮌의 노동부 장관으로 선출하기도 했다.

“코뮌은 다수의 노동을 소수의 부로 전화시키는 저 계급 소유를 철폐하고자 하였다. 코뮌은 수탈자에 대한 수탈을 목표로 하였다. 코뮌은, 지금 무엇보다도 노동의 노예화와 착취의 수단인 토지와 자본이라는 생산 수산을 자유롭고 연합된 노동의 단순한 도구로 전화” 14 시켰다.

파리 코뮌은 프롤레타이라트 독재가 무엇인지를 보여 준 생생한 증거였다. 1891년 파리 코뮌 20주년을 기념해 《프랑스 내전》을 재출간하며 쓴 서문에서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이렇게 말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가 어떤 것인가를 알고 싶은가? 파리 코뮌을 보라.”

닫기
x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