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8호 2021년 3~4월호)

지난 호

《현대 조선의 탄생》 ─ 북한 정권 탄생 신화 재탕하기

최영준 40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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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사령관은 1945년 5월 이후 국내 각지를 돌면서 최후 공격 작전 계획을 전달하고 결전 태세를 독려”했고, 인민혁명군은 경흥요새 돌파 전투, 훈융 해방전투, 웅기·나진·청진지구 해방작전 등에서 파죽지세로 승리했다고 한다.

박경순은 김일성이 이끈 “인민혁명군의 노도와 같은 진격이 없었다면 원폭 때문에 일본이 과연 항복했을까?”라며 인민혁명군이 해방에서 결정적 구실을 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먼저, 김일성은 그의 부대를 이끌고 일본 군대를 격퇴시키며 조선에 들어오기는커녕 해방된 지 한 달이 지난 뒤에야 소련 함정을 타고 조용히 입국했다. 김일성의 임무는 소련군 위수사령관 보조자였다.

당시 김일성은 소련 제25군 정치위원이었던 레베제프에게 “사령관님, 저희들도 소련 제25군과 함께 일본과의 전쟁에 참전했던 것으로 해 주십시오”라고 간청하기도 했다. 1

또, 《탄생》에서 언급한 지역들은 대부분 소련군이 일본군을 격퇴한 곳이다. “만주의 일본 관동군을 쉽게 패퇴시킨 소련군은 8월 12일에 경흥·웅기·나진항·청진항에 도착했다. 8월 13일치 〈프라우다〉는 ‘우리의 육군 전투부대 웅기·나진 두 도시를 점령하다’ 하고 보도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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