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8호 2021년 3~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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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조선의 탄생》 ─ 북한 정권 탄생 신화 재탕하기

최영준 40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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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정권의 계급적 본질

스탈린이 장악한 코민테른은 1935년 7차 대회에서 ‘민주주의적인 부르주아지와의 동맹’인 인민전선 노선을 채택했다. 조선공산당의 노선도 바로 이 정책을 따랐다. 해방 직후 박헌영은 ‘현정세와 우리의 임무’(8월 테제)에서 “금일 조선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계단을 걸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일성도 “당의 임무는 자본민주주의 정권 수립”이며 민족통일전선은 “국제공산당 7차 대회의 인민전선”과 “본질에서 같다”고 했다.

하지만 조선의 노동계급과 민중은 해방 직후 ‘자본민주주의’ 단계를 뛰어넘는 행동을 했다. 노동자들은 일본인들을 내쫓고 ‘공장위원회’를 구성해 각 기업과 공장을 접수하고 통제했다. 하지만 소련군은 “모든 조선 기업소들의 재산 보호를 담보하며 그 기업소들의 정상적 작업을 보장함에 백방으로 원조할 것”(소련군 포고문)이라며 노동자들의 행동을 용납하지 않았다. 가는 곳마다 “질서 유지”를 강조했고, 자신들 통제 아래 주요 공장의 정상 가동을 강요했다.

소련군은 ‘공장위원회’의 자주 관리를 “조합주의”라고 비난하며 중단시켰고, 자신들의 통제에서 벗어난 아래로부터의 운동은 모두 “좌경적 오류”라는 딱지를 붙였다. 조선공산당도 “노동자들이 조선인 기업에서도 공장관리 문제를 제기해 … 자본가들에게 일종의 공포감을 주고 … 민족통일전선의 결성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비난했다.

농촌에서도 비슷했다. 소작농과 빈농은 무상몰수 무상분배를 요구했으나 소련군은 이들의 요구를 ‘좌익주의적’이라고 비난했다. 그리고 민족주의자들의 요구를 수용해 소작료로 3을 내고 소작인이 7을 갖는 3·7제 방식을 결정했다.

한편, 소련은 모스크바 삼상회의 이후 남북한 단독정부 수립이 가시화되자, “군대 철수 후에도 소련 국가 이익을 보장해 줄 공고한 경제적·정치적 진지를 아직 쟁취하지 못했다”며 소련 식 체제를 서둘러 이식하려 했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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