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5호 2020년 9~10월호)

지난 호

일반 이론 심층 탐구

억압*과 마르크스주의

애비 바칸 42 35
70 2 1
1/18
프린트하기
이 논문은 현재 온라인에서 1페이지만 보실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21》을 구매하시려면, 구입처를 확인하십시오. (구입처 보기)
일부 논문은 전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출처 : Abbie Bakan, “Marxism, Oppression and Liberation”, Marxism no.2, 2004.

번역: 차승일 / 교열·감수: 이수현, 최일붕

혁명기에는 부르주아 체제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강요한 비참하고 고립된 삶이 사라진다. 혁명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억압당하는 모든 이들의 영혼을 해방시킨다. 사람들은 체제의 존재 자체에 집단으로 도전하기 시작한다.1

이 말은 1917년 러시아 혁명에 대해 쓴 것이 아니라, 혁명의 물결이 비극으로 끝난 1973년 칠레에 대해 쓴 것이다. 당시에 저항은 결국 충분히 전진하지 못했고, 피노체트와 미국 CIA가 벌인 반혁명적 피의 숙청으로 분쇄됐다.

그러나 아주 간단한 이 말은 마르크스주의 억압론의 정수를 잘 요약하고 있다. 사회주의 정치의 기본 원칙은, 억압에서의 해방이 자본주의에서 해방되려는 투쟁과 병행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상은 매우 간단하기도 하지만, 전혀 간단하지 않기도 하다. 오늘날 억압에 맞선 투쟁과 마르크스주의의 관계는 좌파들 사이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이라 할 수 있다.2

피억압자들의 투쟁과 마르크스주의 정치가 밀접하게 연결된 때가 있었다. 억압에 맞선 투쟁은 여러 면에서 1960년대 좌파의 전형적인 특징이었다. 인종차별에 반대한 미국의 공민권 운동,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가 일으킨 쿠바 혁명 방어 운동과 함께, 한 세대의 혁명가들이 성장했다. 1960~70년대에 미국과 캐나다와 서구 사회 전체에서 여성 해방 운동이 분출해 지독하게 보수적인 1950년대의 사회적·성적 상식들을 깨뜨렸다. 1969년 뉴욕에서 일어난 스톤월 항쟁은 현대 동성애자 해방 운동을 탄생시켰다.

캐나다 연방 정부에 대항한 퀘벡해방전선FLQ의 투쟁은 전 세계 피억압자들의 투쟁과 비슷했다. 1970년에 연방군 탱크가 계엄령하에서 퀘벡으로 진격했고, 이 잔인한 탄압을 테러 근절을 위한 보안 조처라고 둘러대자, 전국의 사회주의자들이 퀘벡에서 벌어지는 억압 반대 투쟁에 동참했다. 같은 시기에 아메리카 선주민들의 레드파워 운동은 캐나다 국가의 인종차별적·제국주의적 정책에 도전했고, 북아메리카 국경의 합법성에 반대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런 단결 투쟁은 물론이고, 협력적 대화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사실, 오늘날 억압에 관한 주류 이론들은 명백히 마르크스주의와 동떨어져 있는데, 일부는 마르크스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이고 대부분은 비마르크스주의 입장이다. 예를 들어, 세드릭 로빈슨은 마르크스주의 방법과 전망이 근본적으로 인종 해방 이론으로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3 마르크스주의는 인종차별에 맞서는 전략적 수단으로 부적합하다는 것이다. 로빈슨은 흑인 단일 민족주의와 코넬 웨스트[1]의 급진적 민주주의 개념을 조합한 사상을 대안으로 제시했다.4 해방을 위한 투쟁은 노동계급의 자기해방과 혁명적 변화를 주장하는 고전 마르크스주의에서 멀어졌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마르크스주의 억압론을 비롯해 마르크스주의의 기본 입장에 대체로 반대했다. 예를 들어 하워드 위넌트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닫기
x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