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지금의 이슈들

고립의 종식? 팔레스타인과 아랍 혁명

필립 마플릿 66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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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9일 예루살렘 인근 마을들에서 팔레스타인 활동가들이 이스라엘의 아파르트헤이트 장벽에 상징적인 균열을 냈다.1 베를린장벽 붕괴를 기념하는 그들 나름의 방식이었다. 팔레스타인 민중저항위원회는 이렇게 밝혔다. “장벽을 아무리 높게 쌓아도 결국에는 무너질 것이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졌듯이 팔레스타인의 장벽도 이스라엘의 점령과 함께 무너질 것이다.”2 이스라엘이 무슨 짓을 벌여도 팔레스타인인들은 굴복하지 않았다. 그래야만 한다. 팔레스타인 활동가들이 이 장벽에 균열을 내는 동안 이집트 정부가 팔레스타인 영토 주변에 또 다른 장벽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가자 지구와 접경한 국경이었다. 이집트 정부는 라파 근방 이집트 국경을 따라 13km에 이르는 완충지대를 비우고 가자 지구 남쪽을 봉쇄했다.3 두 사건은 팔레스타인이 처한 어려움의 핵심적 측면을 잘 보여준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에게 재산을 빼앗기고 고향에서 쫓겨났으며 괄시받았다. 동시에 그들은 아랍 정권들에게도 배척당하고 고립됐다. 이 포위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2011년 1월 아랍 혁명이 시작되자 해결책이 손에 잡힐 듯했다. 독재자들이 쫓겨나고 대중운동이 국경 너머로 확산됐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유례 없이 어려운 조건에서 홀로 싸우는 처지에서 벗어나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기존 질서에 맞서 일으킨 반란의 일부가 됐다.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시위대는 예루살렘 해방을 외쳤고, 가자 지구로 파견된 대표단은 이집트인과 팔레스타인인이 혁명으로 단결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스라엘 지배자들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우려했다. 이스라엘 국방장관 에후드 바라크는 “역사적인 지진”이 중동을 강타했으며 이스라엘이 정치적 “쓰나미”4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전해에 이스라엘 언론인 알루프 벤은 이스라엘과 미국 정치 지도자들 모두가 “라이스[대통령, 즉 무바라크 — 글쓴이]의 안녕을 위해 기도”5했다고 썼다. 벤은 이렇게 덧붙였다. “전 세계 정치인 중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가장 가까운 인물은 무바라크였다.”6 이 이집트 독재자는 이스라엘의 가장 가까운 동맹인 미국의 충성스러운 친구이기도 했다. 무바라크는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관계를 “정상화”하려 했고 경제적 관계를 돈독히 다졌다.

무엇보다도 무바라크는 대중 저항 역사가 깊은 이집트 사회에서 자주적인 정치 활동을 30년 동안 탄압해 왔다. 무바라크를 물러나게 한 혁명의 기운은 이 전통을 되살리고 발전시켰다. 전례 없는 규모의 거리 시위와 대중 파업이 일어났다. 가자 지구와 서안 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은 연대 시위를 조직했고 타흐리르 광장의 정신을 본보기로 삼아 인티파다를 촉구했다. 오랫동안 이런 투쟁에서 고립돼 있던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제 아랍 지배자들에게 맞서고, 이스라엘을 지탱하는 제국주의적 동맹에 맞서는 것이 공통의 대의임을 확인했다. 한동안 카이로의 혁명적 변화가 예루살렘의 해방을 가능케 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전망은 희미해져 갔다. 아랍의 수도首都들에서 시작된 반혁명 때문만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민족운동 내의 첨예한 위기 때문이기도 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리고 그것이 팔레스타인과 아랍 세계의 혁명적 과제에 관해 함의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 글은 중동이 정치적 격변에 휩싸인 시기에 팔레스타인인들이 처한 곤경, 팔레스타인 민족주의 운동의 성장과 쇠락도 다룰 것이다. 이 운동은 이제 1950년대 이래 가장 약화돼 있다.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의 이데올로기적 지향, 이스라엘과의 타협, 신자유주의의 열렬한 수용도 다룰 것이다. 최근의 혁명적 투쟁들, 특히 이집트 혁명에서 팔레스타인 문제가 띤 중요성, 팔레스타인 투쟁이 중동 전역의 사회정의를 위한 투쟁의 일부가 되는 새로운 전망도 살펴 볼 것이다.

“불간섭”

오늘날 팔레스타인 민족해방운동의 위기가 너무도 심각한 나머지 팔레스타인 활동가들과 학자들은 오랫동안 회피해 오던 문제를 마침내 공공연하게 논의하기 시작했다. 오마르 바르구티는 민족 지도자들이 “완전한 혼란”에 빠졌고 “효과적인 저항 전략을 수행할 능력을 본질적으로 갖출 수 없었다”7고 말한다. 라자 칼리디는 “혁명 정신”이 상실된 것은 아닌지, 운동이 “민족주의의 함정”을 피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한 형태의 식민주의를 다른 형태의 식민주의로 대체”하는 데에 그친 것은 아닌지 묻는다.8 가장 중요한 문제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타락해 이스라엘과 그 동맹들의 손아귀에 떨어진 것이라고 칼리디는 말한다. “오슬로협정 이전에는 전투적인 태도를 취하다가 ⋯ 언제 그랬냐는 듯 이스라엘과 강대국을 포용하고 신자유주의의 유혹에 넘어갔다.”9 그러나 근래의 팔레스타인의 역사라는 맥락 속에서 보면 이와 같은 변화는 그리 놀랍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