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엥겔스

토니 클리프 12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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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겔스가 마르크스의 이인자로 자칭한 사실을 언급하며 강연을 시작하겠다. 마르크스의 이인자도 솔직히 대단한 성취다. 심지어 마르크스의 150인자조차 대단한 것이다! 그러나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자신의 기여를 과소평가했다. 어떤 점에서 엥겔스는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인색했다. 그는 마르크스의 이인자 그 이상이었고 마르크스주의에 지대한 기여를 했다. 그리고 이런 기여는 종종 마르크스로부터 독자적이었고 마르크스를 앞지르기도 했다.

이는 간단하게 입증할 수 있다. 마르크스·엥겔스 전집을 살펴보라. 노동계급 중심성 개념이 어디에 처음 나오는가? 노동계급 중심성을 처음으로 주장한 것이 마르크스였을까? 아니다. 엥겔스였다. 1844년 파리에서 쓴 《영국 노동계급의 상태》라는 책에서다. 이 책은 노동계급이 했던 역사적 구실은 물론 미래 사회에서 수행할 구실을 소개하는 탁월한 입문서다.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점은 이 책에 나온 것과 같은 사상들이 도서관에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위대한 사상들이 도서관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은 꿈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썼듯이, 공산주의자들은 노동계급의 역사적·국제적 경험을 일반화한다. 즉, 노동계급의 경험으로부터 사상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한 예를 들어보겠다. 1848년에 나온 《공산당 선언》은 사회주의 혁명 후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 아주 모호하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이야기하지만 그것이 어떤 모습일지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 후 마르크스는 1871년에 다른 소책자를 쓰는데, 거기에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되면 관료제와 상비군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모든 공직자가 선출되고 소환 가능하며 노동자 평균 임금을 받을 것이라 썼다. 그러면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마르크스가 영국 박물관에서 정말 열심히 연구했구나. 1848년에는 생각지 못했던 것을 1871년에 생각해 내다니!” 전혀 그렇지 않다. 1871년에 마르크스가 제시한 관점은 그해 일어난 파리 코뮌에 영향받아 형성된 것이었고 그것은 현실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파리의 노동자들은 그들의 코뮌을 만들어 냈고 거기에는 관료제도, 상비군도 없었다.

엥겔스가 노동계급 중심성을 발견한 이야기로 돌아가면, 엥겔스는 마르크스보다 더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그 이점은 마르크스가 이주해 오기 전부터 영국에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 영국은 세계 최초의 노동계급 대중 운동인 차티스트 운동이 출현한 곳이다. 당연히 여기 영국의 학교에서는 이런 사실을 가르치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나 영국이 혁명과 거리가 먼 나라라고 배운다. 차르를 죽인 것은 러시아인들이다. 왕을 단두대에 세운 것도 프랑스인들이다. [교수형 당한 영국 국왕] 찰스 1세 이야기는 꺼내지도 마라! 혁명이란 외국에서나 일어나는 현상이어야 하므로 차티스트 운동은 언급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