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고전 읽기]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 여성차별의 뿌리가 계급 사회에 있음을 밝히다

전주현 123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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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사회주의 이념은 좋지만, 경쟁과 이기심이 내재화된 인간본성은 바꿀 수 없고 사회 변혁도 가능하지 않다고 말한다. 계급과 불평등은 언제나 존재했고, 여성이 남성보다 천성적으로 열등하다는 논리가 오늘날에도 횡행한다. 그래서 불평등의 기원은 인간 사회를 둘러싼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며 혁명적 전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생산양식을 초월해 존재하는 고정된 인간본성이 존재한다는 사상을 거부하며 인간 역사의 일반적 경향에 대한 이론을 발전시켰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1845~1846년에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관념론을 배격하면서도 기계적이지 않은 유물론을 적용해 인간의 본질, 물질적 토대와 상부구조, 이데올로기 문제를 총체적으로 정립했다. 인간이 먹고 사는 방식(생산력)이 변화하면 그에 조응해 생산수단을 둘러싼 인간 관계(생산관계)가 바뀌고, 마침내 전반적 사회 변화가 일어난다고 설명하며 역사유물론을 개괄했다.

엥겔스는 역사유물론을 더 풍부하게 하고 심화시키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왔는지, 오늘날 세상은 왜 이렇게 생겼는지 등에 대한 해답을 제시할 수 있는 기념비적인 저작을 남겼다. 그것이 바로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1884년 출판, 이하 《기원》)이다.

엥겔스의 혁명적 통찰

엥겔스는 인류학 연구에 역사유물론을 접목시켜 초기 인류 사회의 특징과 변화 과정을 설명했다. 특히 《고대 사회》(1877년 출판)를 쓴 미국 인류학자 루이스 헨리 모건의 선구적인 연구를 기초 자료로 삼았다. 엥겔스는 《기원》 초판 서문에 “모건은 마르크스가 40년 전에 발견한 역사유물론의 개념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미국에서 새롭게 발견했다”며 모건의 연구를 높이 평가했다. 마르크스도 모건의 연구에 영감을 받았고, 상세한 주석을 달아 “민속학 노트”를 작성했다. 엥겔스는 이를 기초 삼아, 마르크스 사망 1년 후에 《기원》을 완성했다.

엥겔스는 인간의 진화와 사회 변화를 유물론적이고 역사적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1876년 엥겔스는 《유인원에서 인간으로 진화하는 데서 노동이 한 구실》이라는 소책자에서 인간이 “사교적” 존재로 등장했고 도구 사용이 인간의 진화를 이끌었다고 주장했다. 이런 관점은 《기원》 곳곳에 발전적으로 투영되어 있다. 특히 1884년 초판 서문의 유명한 구절에는 엥겔스의 탁월한 방법론이 압축돼 있다.

“유물론의 관점에 따르면, 역사에서 결정적 요소는 … 직접적 삶의 생산과 재생산이다. … 하나는 생활수단의 생산, 즉 의식주와 이에 필요한 도구의 생산이며, 다른 하나는 인간 그 자체의 생산, 즉 종의 번식이다. 특정 역사 시대의 인간들이 살아가는 사회조직은 이 두 종류의 생산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일부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의 착각과 달리, 엥겔스가 생산과 재생산 모두를 동등하게 중요한 것으로 여긴 것은 아니다. 엥겔스 자신은 계급 사회가 발전하면서 “가족 관계가 소유 관계에 완전히 종속되는” 사회가 생겨난다고 말했다.1

엥겔스는 생산의 변화가 어떻게 인간 사회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했다. 그래서 초기 인류 사회에는 계급도 국가도 존재하지 않았고,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지도 않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는 이런 사회를 “원시 공산주의”라고 불렀다.

엥겔스는 계급이 등장하기 전 인류 사회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

“군인도 헌병도 경찰관도 없으며, 귀족도 왕도 총독도 지방 장관도 또는 재판관도 없고 감옥도 소송도 없지만 모든 것이 규정된 절차에 따라 운영된다. … 가난하거나 불행한 사람이란 있을 수 없다. … 여성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자유로웠다. 노예는 아직 없었으며 다른 종족에 대한 억압도 대체로 없었다.”

이런 엥겔스의 발견에는 혁명적 전망이 내포돼 있다. 착취와 차별이 인간본성이 아니라 역사적 산물이라면 특정 조건에서 계급 지배와 차별 없는 사회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축적된 과학적 증거들은 인류가 수십만 년 동안 평등주의를 추구했음을 확인시켜 줬다. 특히 엘리너 리콕, 리처드 리 등의 진보적 인류학자들이 세계 곳곳에서 엥겔스의 주장을 뒷받침 하는 사례들을 찾아냈다.

캐나다의 수렵-채집 사회를 연구한 인류학자 엘리너 리콕은 선사시대에 “토지의 사적 소유도 없었고, 성별 분업을 제외하면 노동 분업도 없었다. … 사람들은 자기들이 맡고 있는 활동에 관해 스스로 결정을 내렸다. 집단적 활동은 무엇이건 합의를 통해 결정됐다.”고 설명했다.

계급 발생과 여성 차별의 원동력

그러면 “원시 공산주의” 이후 불평등과 차별, 국가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엥겔스는 생산방식의 변화에 주목해 계급, 여성차별, 국가의 탄생을 설명했다. 《기원》에서는 목축과 농업의 출현, 도구의 혁신 등으로 잉여생산물이 축적되고 사적 재산이 발전하면서 이를 토대로 “전혀 새로운 사회관계”가 발생하는 과정이 서술돼 있다. 소수의 남성들이 소유물을 모으고 사유 재산이 몇몇 개인들에게 집중되면서, 빈부격차와 불평등 나타났다.

엥겔스는 계급과 함께 국가도 “역사적 산물”로 분석하며 국가의 본질을 탁월하게 파헤쳤다.

“국가는 계급 간의 대립을 억제할 필요로부터 발생했기 때문에 … 통상적으로 가장 강력하고 경제적으로 지배하는 계급의 국가이다. 이 계급은 국가의 힘을 빌어 정치적으로 지배하는 계급이 된다. 그리하여 피억압 계급을 압박하고 착취하기 위한 새로운 수단을 획득한다. 따라서 고대 국가는 노예소유자들의 국가였으며, 봉건 국가는 농노와 예농을 압박하기 위한 귀족들의 기관이었다. 현대의 대의제 국가는 자본이 임금노동을 착취하기 위한 도구이다.”

엥겔스는 여성차별의 “사회적 원동력”도 계급 발생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기원》은 사유 재산과 권력을 가진 남성들이 주도권을 잡으면서 여성의 지위가 하락하는 과정을 서술한다. “혈통이 확실해야 할 필요성은 아이들이 후에 직계 상속인으로서 아버지의 재산을 소유해야 했기 때문”에 모계 제도의 붕괴와 함께 부계 중심의 배타적 일부일처제가 확립된 것이다.

“모권2의 전복은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였다. 남자는 가정에서도 지배권을 장악하게 되어 여자는 자기의 존귀한 지위를 상실하고 노비로, 남자의 정욕의 노예로, 순전한 산아도구로 전락했다.”

“일부일처제는 자연적 조건이 아니라 경제적 조건에 기초한, 즉 원시적·자연발생적 공동소유에 대한 사적 소유의 승리를 기초로 한 최초의 가족형태였다.”

이렇듯 여성차별과 사사로운 가족제도의 등장이 인류 사회의 보편적 특징이 아니라 계급 발생과 함께 발전한 것으로 본 엥겔스의 주장은 완전히 타당하다. 하지만 왜 소수의 남성만이 지배계급을 구성하고, 모든 계급의 가족 내 여성들이 종속적 지위로 하락하게 됐는지에 대한 설명은 불충분했다.

이 부분은 후대 인류학자와 크리스 하먼 같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인류학과 고고학의 최신 연구를 반영해 보완했다. 핵심을 요약하면 이렇다. 농업의 발달로 잉여생산물이 증대하고, 계급 분화와 분업이 발달하면서 잉여생산물 통제자가 최초의 지배계급이 됐다. 이 시점에서 비로소 남녀 간 생물학적 차이가 중요해졌다. 일정한 곳에 정착한 농업 사회에서 출산이 점점 더 중요해지면서 여성들은 특정 생산적 기능들, 예를 들어 쟁기 경작 등을 맡지 않게 된 것이다. 여성들은 생산적 영역에서 주변부로 밀려났고 남성들이 우세해졌다. 여성이 생산에서 부차적 구실을 한 것은 사회적 지위의 하락으로 이어졌다.3 그러나 모든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지는 않았다. 소수 남성만 지배계급이 됐고, 대다수 남성은 피지배 계급으로 억압당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엥겔스 연구는 미흡한 부분이 있다. 엥겔스가 활동하던 시대에 인류학 분야는 걸음마 단계였고, 선사시대를 파악할 수 있는 고고학적 증거도 충분히 발견되지 않았다. 엥겔스 자신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최신 연구와 조사를 반영해 1891년에 《기원》을 개정했다. 엥겔스는 1891년 서문에서 모건의 연구에 오류가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초기 인류사의 발전 과정에 대한 모건의 “위대한 기본 관점”을 버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마찬가지로 역사유물론의 정수가 담긴 《기원》의 “위대한 기본 관점”을 고찰하면서도 몇 가지 오류와 한계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4 특히 크리스 하먼의 《엥겔스와 인간사회의 기원》(근간), 《민중의 세계사》와 주디스 오어의 《마르크스주의와 여성해방》 등을 보충해서 읽으면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실천적 함의

엥겔스는 뼛속까지 투철한 혁명가였다. 그래서 초기 인류 역사를 조명하며 사회주의 혁명과 해방의 전략적 기초를 제시하고자 했다. 그래서 여성 억압의 “원동력”인 계급 지배를 끝장내고 생산 방식을 혁명적으로 바꿀 수 있을 때 여성 해방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페미니즘이 대세인 오늘날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다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차별이 인류 역사에서 언제나 존재해 왔다고 보기 때문에 차별을 끝장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지 못한다. 기껏해야 기존 사회 질서 속에서 차별을 부분적으로 완화하는 데 그치거나 남성과의 분리를 추구하는 분열적이고 공상적인 대안만 제시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엥겔스가 제시하는 여성 해방의 길은 분명하고 희망적이다.

“생산수단이 공동소유로 됨으로써 개별 가족은 이제 사회의 경제적 단위로는 되지 않을 것이다. 사사로운 집안 살림은 사회적 산업이 되고, 아이들을 돌보며 교육시키는 것은 공공사업이 될 것이다. 사회는 적자나 사생아를 막론하고 모든 아동들을 똑같이 돌보아 줄 것이다.”

“여성의 해방, 남녀의 평등은 여자가 사회적 노동에서 배제되어 사적인 가사노동에만 종사하고 있는 한 불가능하며 … 여성의 해방은 그들이 사회적 규모의 생산에 광범위하게 참여하고, 또 그들이 돌봐야 할 가사가 아주 적을 때에라야 비로소 가능하게 될 것이다.”

엥겔스는 《기원》에서 자본주의를 전복하면 “남성은 평생토록 여성의 굴종을 돈으로 사거나” 여성이 “진정한 사랑 말고 다른 이유로 남성에게 자신을 허락한다”는 것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세대가 탄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통해 자본주의를 분쇄하고, 노동계급 스스로 소외와 차별로 비틀어진 인간 관계를 변혁할 때, 협력과 평등에 기초한 새로운 인류가 미래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인류를 위기와 고통에 빠뜨리는 야만적인 자본주의를 향해 깊은 울분이 쌓이는 요즘, 엥겔스의 이 저작이 착취와 차별을 뿌리뽑고자 하는 이들에게 혁명적 영감을 선사할 것이다.

MARX21
1 일부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의 엥겔스 곡해에 대한 반박은 《크리스 하먼 선집》(책갈피, 2016)의 ‘여성해방과 계급투쟁’을 참고하시오.
2 엥겔스는 ‘모권’이라는 용어를 여성의 지배라는 의미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후손이 모계를 따르는 것을 가리켜 독일의 저술가 바호펜이 사용한 ‘모권’이라는 용어를 채택했다. 하지만 계급 발생 이전 시기에는 “법적 의미의 권리에 대해 말하기 어렵기 때문에 옳은 표현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3 크리스 하먼, 《민중의 세계사》, 책갈피, 2004, pp60~62.
4 정진희, ‘엥겔스와 여성 차별의 기원 다시 보기’, 〈노동자연대〉 164호를 보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