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7호 2021년 1~2월호)

지난 호

신화에 가려진 쿠바

크리스 하먼 25 37
378 1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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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내셔널 소셜리즘》 편집자들은 1960년의 격동기에 미국의 침략 위협에 맞서 쿠바 혁명을 이렇게 옹호했다(미국의 위협은 이로부터 세 달 뒤에 현실화됐다):

첫째, 쿠바 혁명은 미국 제국주의의 중대한 패배다. … 둘째, 현재 사회 형태를 어떻게 규정하든 이들은 분명 저항에 나선 민중이다. … 그들이 만들어 낸 혁명은 사유재산을 넘어선다는 점에서 여느 부르주아 혁명과 다르다. 그러나 사회주의 혁명도 아니다. 대중 참여를 … 상시적으로 구현하는 정치 기구를 아직 만들어내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 셋째, 소련 공산당과 미국 국무부 모두 제국주의에 맞선 쿠바 민중의 투쟁을 냉전과 결부시키려 할 것이다. … 쿠바인들은 … 소련의 원조를 받을 수밖에 없는 … 처지에 놓여 있다. 쿠바를 소련 블록으로 통합하려는 압력은 혁명의 관료화를 낳을 것이다. … 쿠바인들은 그들이 의지할 국제 노동계급의 권력이 존재하지 않기에 소련의 힘에 기댈 수밖에 없다.86

쿠바 혁명의 사례를 라틴아메리카로 확산하려는 시도가 실패하면서 혁명은 고립됐고, 카스트로는 한때 그와 게바라가 비판했던 기존 라틴아메리카 공산당들의 개혁주의적 정책에 의존하는 소련의 정책을 묵인하는 쪽으로 나아갔다. 그 결과 쿠바 정권은 처음에는 주로 동구권 블록을 대상으로, 그리고 지금은 전체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상품을 생산할 필요라는 제약 속에서 움직여야 했다. 경쟁적 축적을 추구하는 전형적인 구조가 등장했고, 그 대가는 쿠바 대중이 치렀다. 그와 더불어 계급과 착취의 구조가 형성됐다. 카스트로는 말로는 이런 것들을 강하게 규탄하곤 했지만, 그에 맞서 노동자들이 뭉치지 못하게 하려고 억압적인 조처들을 도입했다.

쿠바 혁명의 고립은 중요한 현실을 반영했다. 쿠바 경제가 1950년대 중반부터 후반까지 그리 사정이 좋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주요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여전히 경제가 성장했다. 그 결과 이 국가들에서는 자신감 있는 부르주아지가 등장해 자기 의지를 사회 전체에 관철시킬 수 있었다. 반면 쿠바 부르주아지는 그럴 수 없었다. 쿠바가 1930년대 초의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던 것과 달리, 브라질·아르헨티나·칠레·멕시코는 위기를 벗어났다. 심지어 (1968년 1월 히메네스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혁명이 벌어진) 베네수엘라도 위기를 벗어났다. 칠레와 아르헨티나에서 혁명이 실질적 가능성으로 떠오른 것은 쿠바 혁명이 성공한 지 15년이 지나서였다.

 

다른 모델은 가능하다

이 점은 오늘날 매우 중요하다. 지난 20년 동안 사실상 라틴아메리카 전체에서 그곳의 부르주아지가 난관에 봉착했고 노동자와 농민 모두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1980년대는 “잃어버린 10년”이 됐고 1990년대에는 신자유주의의 충격이 이어졌다. 그래서 지배자들은 1989년 베네수엘라 ‘카라카소’ 반란, 2000년 에콰도르 항쟁, 2001년 말 아르헨티나 정권 전복, 2002~2003년 차베스 정부를 지켜 낸 대중 반란, 2003·2005년 볼리비아 항쟁 등 대중의 불만이 갑작스레 폭발하며 발생한 정치적 충격에서 회복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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