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7호 2021년 1~2월호)

지난 호

신화에 가려진 쿠바

크리스 하먼 25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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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의 혁명적 과정은 쿠바처럼 고립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현재 이곳은 대중 참여나, 아래로부터 권력을 쟁취하려는 투쟁의 수준이 이미 쿠바보다 높다. 모랄레스를 대통령직에 앉히고 차베스 정부를 지켜 낸 것은 상명하달식 게릴라 집단의 영웅적 행동이 아니라 대중 운동이 아래로부터 가하는 엄청난 압력이었다.

하지만 이 혁명적 과정들은 위험에 직면해 있다. 그 위험은 단지 외부에서, 미국에서, 자신의 무제한적인 지배를 다시 수립하려는 그 지역 자본가 계급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다. 위험은 내부로부터도 오고 있다. 즉, 쿠바 모델을 따라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제약하고 기존에 확립된 관료적 틀 안으로 혁명적 과정을 돌리려는 이들에게서 오는 위험이 있다. 쿠바에서는 승리한 반란군이 수립한 새로운 국가 기구가 그런 길을 닦았다면, 볼리비아와 베네수엘라에서는 국내 부르주아지가 수립했고 이들의 지배와 밀접한 기존 국가 기구가 그런 길에 해당한다. 역설적이게도 쿠바를 대안으로 보는 이들은 쿠바의 길을 추구하면서도 쿠바 혁명만큼 전면적으로 자본주의 사유 재산을 공격하지는 않으려 한다.

쿠바 정부 자신은 이미 오래전부터 다른 나라의 대중 운동을 그저 기존 자본주의 정부들에게 쿠바와 잘 지내라고 압력을 넣는 수단쯤으로 보아 왔다. 1970년대 초반 카스트로는 아옌데와 함께 칠레를 순방하면서 칠레의 운동이 혁명적 방향이 아닌 의회주의적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지지했으며, 1980년대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혁명 정부를 자제시키려 했다. 고트가 주장하듯 “카스트로는 산디니스타가 미국을 불필요하게 적대하지 않도록 설득하려고 애썼다. 카스트로는 혼합 경제와 다원주의적 정치 체제를 수립하는 데에 집중할 것을 [산디니스타에] 권했다.”87

오늘날 베네수엘라 대중 운동이 자국 자본가들에 반대하거나 다국적 기업들과 진정으로 결별하는 것을 쿠바 혁명의 명망을 이용해 막으려는 시도가 있다. 베네수엘라 안에서 보면, 이는 ‘21세기 사회주의’라는 수사를 사용하지만 사실상 사회민주주의 혼합 경제를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베네수엘라를 끌고 가는 것이다. 또, 국제적으로 보면, 자본주의에 확실하게 충성하는 브라질·아르헨티나·우루과이 정부와 쿠바·볼리비아 정부를 묶는 블록을 건설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개중에는 쿠바식 상명하달을 이용해서, 베네수엘라의 혁명적 과정에 뛰어든 사람들, 즉 노동자·농민·빈민·원주민들에게 철저히 혁명적인 방식으로 싸워서 자신들의 요구를 쟁취하라고 고무하는 사람들을 고립시키려는 시도도 있다. 베네수엘라산 석유를 대가로 쿠바 의료진을 보내는 상업 거래는 “사회주의 연대”로 포장되는데, 이는 오늘날 베네수엘라를 혁명의 가능성에서 탈선시키는 데에 이용된다. 46년 전 러시아 석유와 쿠바산 사탕수수를 맞바꾼 거래가 그랬듯 말이다.

하지만 오늘날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 앞에는, 쿠바 혁명이 고립되고 상명하달식 지배가 제도화되면서 쿠바가 걸었던 길과는 사뭇 다른 길이 열려 있다. 두 나라의 노동조합과 사회 운동에 뛰어든 수많은 사람들은 지난 6년 동안 벌어진 위대한 투쟁을 통해 아래로부터의 민주적 의사 결정이 무엇인지를 배웠다. 가장 열성적인 차베스·모랄레스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민주주의와 대중 참여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이유다. 이들이 벌이는 투쟁은 쿠바의 1958년 혁명이 결코 해내지 못한 일, 즉 국경 너머 라틴아메리카 다른 지역으로 확산될 수 있는 사례, 즉 혁명적 민주주의의 살아 있는 사례를 만들어낼 잠재력이 있다. 그 잠재력을 실현하다 보면, 오늘날 결핍과 부패 속에서 고통과 불만이 쌓이지만 47년간의 고립이 미국의 지배로 끝나는 것을 원치 않는 쿠바 대중에게 진정한 목표를 제시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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