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7호 2021년 1~2월호)

지난 호

혐오 표현, 국가 규제 그리고 표현의 자유

양효영 170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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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증오 선동과 혐오 표현이 칼로 무 썰듯이 정확히 나눠지지 않는다. ‘난민은 강간범이고 테러리스트다’(혐오 표현)와 ‘난민을 내쫓자’(혐오 선동) 사이에 만리장성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둘 중 무엇이 더 난민에게 직접적이고 당면한 위협을 가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법을 아무리 촘촘히 짠다고 해도 결국 표현들의 수위와 위험성에 대해서 또다시 해석이 필요하게 되는데, 자본주의에서는 국가기구가 그 해석을 독점하고 있다.

개혁주의

혐오 표현을 국가 규제해야 한다는 생각은 차별의 원인을 자본주의와 분리해서 보는 개혁주의 전략과도 연결돼 있다. 혐오 표현의 법적 규제 불가피성을 주장하는 홍성수 교수는 개개인들의 혐오 표현이 쌓이다 보면 혐오 폭력이나 심지어 홀로코스트 같은 대량 학살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그는 “혐오 표현과 차별을 막아야 하는 이유 중 하나가 혐오범죄로 나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2고 말한다. 마치 큰 사고가 나기 전에 예방하는 것처럼 혐오 표현 단계에서부터 예방적·선제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혐오 범죄가 성장하는 이유를 개개인의 행위 문제로 환원해서 보는 관점이 반영된 것이다. 차별을 자본주의와 분리해서 보게 되면 이처럼 개인들의 행위에 초점을 맞추기가 쉽다.

하지만 인종차별, 여성차별, 성소수자 혐오 등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비롯한 것이다. 자본주의는 노동력을 착취해 이윤을 축적하기 위해 노동계급을 분열시키는 차별과 혐오를 체계적으로 재생산하고 부추긴다. 사람들의 생각은 이런 체계적 차별로부터 영향을 받고, 따라서 개개인의 의식은 차별과 혐오의 원인이 아니라 그 결과다.

인종차별은 자본주의 초기 노예무역과 함께 등장했고, 여성 차별은 계급의 발생과 함께 나타나 자본주의에서도 유지되고 있다. 성소수자 차별은 자본주의에서 소위 ‘정상’ 가족제도가 안착하면서 체계적으로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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