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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혁명에 대한 개괄 설명

필 마플릿 178 39 39호(2021년 5~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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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필 마플릿, Issue 137(Posted on 9th January 2013), http://isj.org.uk/never-going-back-egypts-continuing-revolution/, International Socialism

번역 김동욱

지난 35년간 이집트는 신자유주의의 실험실이었다. 세계 패권을 장악한 강대국과 금융기관들이 자신들의 세계경제 전략을 펼친 현지 국가였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개발도상국의 주요 자산을 통제하기 위한 정책을 예행연습하는 무대이기도 했다. 그들은 1970년대 중반부터 안와르 사다트와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을 지원했다. 공세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집단적 대응을 억누르기 위해서였다. 2011년 1월 타흐리르 광장에서 반란이 일어났을 때 판돈은 컸다. 세계적 불평등과 불공정을 이집트에 구현하면서 대중을 후안무치하게 억눌러 온 질서, 국가기구에 이집트인들이 맞설 수 있을까? 운동의 구호와 염원이 전 세계에서 공명을 얻었다. 무바라크를 퇴진시키면서, 이집트 활동가들은 ‘타흐리르’(해방)를 더 광범한 저항의 동의어로 만들었다. 2년이 지난 지금[이 글은 2013년 1월에 발표됐다] 이집트 혁명은 여전히 끊임없는 이윤 추구를 뒷받침하는 국가기구와 자본주의적 “자유주의”에 맞서는 투쟁에서 중심에 있다. 혁명은 오늘날 어떠한 상황에 놓여 있는가? 혁명의 잠재력은 무엇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1

유럽과 북아메리카 언론에서는 혁명이 죽었다는 부고장이 매일 나온다. 혁명을 폄하하는 사람들은 타흐리르 광장의 사건들이 “반사작용”이고, 기껏해야 단기간에 참가자들을 기진맥진하게 만든 “반란”에 불과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암울한 현실이 이집트 운동을 가라앉히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슬람주의가 부흥하고, 야만적인 종교 경향이 민주주의의 염원을 짓밟을 것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로버트 말리와 후세인 아가는 2011년 1월 이후 중동의 사건 전개를 분석하면서 “이것은 혁명이 아니다” 하고 주장한다.

아랍 세계에 어둠이 드리우고 있다. … 사태의 포문을 열었던 평화 시위, 그들을 고무한 고귀한 가치들은 아득한 추억이 되고 … 유일하게 일관된 정치 강령은 종교적이며, 과거가 이를 제멋대로 휘두른다. 2

“혼돈과 불확실성 속에서 이슬람주의자들만이 친숙하고 진정성 있는 미래상을 제시한다.” 이집트의 경우, “무슬림형제단이 활개를 친다.” 3

2011년 12월 이집트 총선에서 무슬림형제단이 이기자, 많은 언론인들은 이를 두고 이집트 대중 운동의 실패를 뜻하는 사건이라고 논평했다. “아랍의 봄”이 “이슬람주의의 겨울”이 됐다는 것이다. 4 그들은 타흐리르 광장의 사건들은 그저 막간극이고, 종교적 반동의 토대만 마련한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보수 언론과 싱크 탱크들은 무슬림형제단의 선거적 전진에 안도감을 느끼는 것이 역력했는데, 아랍 무슬림 사회가 급진적 변화를 위한 대중 운동을 지속할 수 없음을 확인시켜 주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는 아랍 국가들이 “진보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퇴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5 2012년 6월 무슬림형제단의 후보 무함마드 무르시가 대선 결선 투표에서 승리하자 이슬람을 혐오하는 사람들은 비난 글들을 썼다. 미국의 국제 정치 전문지인 《포린 폴리시》에 따르면, 이제 “이슬람주의 혁명을 억제”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됐다. “지금은 이슬람주의의 해일로부터 미국의 이익을 방어하고 보호할 때”라는 것이다. 6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네오파시스트 정당 국민전선의 대표 마린 르펜의 발언을 보도했는데, “‘아랍의 봄’은 이슬람주의의 겨울로 바뀌었고”, 그 결과 아랍 국가들로부터 이민 물결이 있을 것이고 유럽인들을 질겁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7 자, 이제 타흐리르 광장은 세계적 저항의 진앙지가 아니었다. 오히려 이집트의 사건들은 북아프리카의 변덕스럽고 후진적인 이슬람 문화가 유럽과 북아메리카 사회를 위협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상상된 “문명의 충돌”의 새로운 라운드였다.

이집트의 경험은 종교적 “해일”이나 “이슬람주의의 겨울”이 아니었다. 2011년 1월 이래 이집트의 종교 활동가들은 복잡한 경험을 했는데, 선거적 성공이 심각한 후퇴와 결합됐기 때문이다. 특히 무슬림형제단은 대중 운동 때문에 애를 먹고 있는데, 대중 운동이 무슬림형제단, 살라피주의자들, 그 밖의 종교 조류들이 내세우는 권위주의적 방식을 점점 더 못 견뎌 하면서 계속 변화를 주장하기 때문이다. 무슬림형제단은 이집트 사회를 이슬람 질서로 이끄는 역사적 사명을 완수하기는커녕, 무바라크 시절에 이룬 응집력이 많이 약화돼 수많은 분열과 탈퇴를 겪고 있다. 2011년 주변적 지위에서 벗어나 선거에서 두각을 나타낸 이집트 살라피주의자들도 마찬가지로 세를 유지하는 데서 고전하고 있다. 한편, 독재 정권 시절 수십 년간 효과적으로 저항하지 못하고 무력했던 세속파 중 일부가 살아나고 있다. 급진 민족주의가 되살아났고, 1940년대 이래 처음으로 새로운 좌파가 이집트 혁명적 운동 내 유기적 요소로 등장했다. 작업장·캠퍼스·지역사회에서 집단적 조직화 수준은 1940년대 이래 그 어느 때보다 발전했으며, 자력 해방과 혁명적 변화에 관한 사상들을 경청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늘었다. 그러나 ─ 중요한 문제인데 ─ 혁명 운동의 핵심 행위자인 이집트 노동자들은 현재 권력자들에게 일관되게 맞서는 것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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