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8호 2021년 3~4월호)

지난 호

이집트 혁명에 대한 개괄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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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 ─ 불균등한 운동

무슬림형제단은 2011년 11월과 12월에 치러진 총선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했고, 2012년 6월에는 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무슬림형제단이 20세기 유럽에서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경험했던 파시스트 운동의 전형적 행태들을 보인다는 설득력 있는 증거는 전혀 없다. 대대적인 노동계급 공격, 정적들을 상대로 준군사 조직과 자경단을 조직적으로 동원하기, 민족 정체성과 국가에 대한 집착, 인종적 소수자나 다른 소수자에 대한 배척 같은 것은 없다. 혁명적사회주의자단체RS의 한 지도적 회원은 이렇게 말한다. “무르시와 무슬림형제단 지도자들은 반동적이지만 파시스트는 아니다. 만약 그들이 파시스트였다면 우리는 지금쯤 거리에서 총에 맞아 죽었을 것이다. 우리는 무슬림형제단에 어떠한 환상도 없지만 그들을 이런 식으로 묘사하는 것은 정말이지 아무 쓸모없는 짓이다. 이는 좌파가 이슬람주의의 진정한 문제점을 다루지 못하게 만든다.” 55

이집트의 노동계급 운동은 여전히 매우 활발하다. 2011년 1월과 2월의 사건들 때문에 이집트 사회 전반에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파업이 무바라크 퇴진에서 핵심 구실을 했고, 무바라크 퇴진 직후 자신감에 가득 찬 노동자들은 1940년대 이래 가장 광범하고 지속적인 노동 쟁의에 나섰다. 56 많은 파업이 성공한 듯했다. 민간·국영 부문 고용주들한테서 임금·상여금·연금·고용안정 등 여러 양보를 따낸 것이다. 일부는 더 광범한 목표를 추구해, 상공업 핵심 분야를 맡고 있는 지역 정치인과 관료들, 경찰과 보안경찰, 국가가 통제하는 노조의 핵심 인물들을 몰아내려 했다. 2011년 1월 30일 이집트독립노조연맹EFITU이 새롭게 결성됐는데, 이 연맹은 50년 넘게 노동자 투쟁을 억누르고 구 좌파가 국가로 편입되는 데서 중요한 구실을 한 공식 노조 기구를 이집트 전역에서 대체할 잠재력이 있었다. 〈뉴욕 타임스〉조차 이 운동이 “군부와 임시정부에 대한 도전자로 성장하는 중”이라고 인정했다. 57 이집트독립노조연맹은 조합원이 약 250만 명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2012년 10월 기준). 58

수많은 노동자들이 난생 처음 집단 행동에 나서면서 많은 투쟁들이 벌어졌다. 전국적 파업이 연이어 벌어지는데, 공공부문이 뚜렷하게 영향을 받고 있다. 2011년 교사들이 1951년 이후 처음 벌인 투쟁으로 인해 전국 대부분의 학교들이 문을 닫았다. 59 1년 뒤에 의사들은 보건 부문 최초로 전국적 파업을 조직했다. 상대적으로 차분한 시기에 이어 투쟁의 물결이 뒤따르곤 하는데, 소강기였던 라마단 기간 **이 지난 2012년 8~9월에 전국적으로 파업이 1500여 건 벌어져 무바라크 몰락 이후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노동 쟁의가 쏟아졌다. 60 많은 파업이 각지의 노동자들을 단결시켰다. 카이로의 버스 운전사들은 시내 차고지 대부분에서 선동을 벌였고,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매우 효과적인 파업 대체 인력 투입 저지 행동이 벌어졌다. 하지만 투쟁은 아직 불균등하다. 몇몇 투쟁은 실제로 얻어낸 것이 있었고 파업 노동자들의 자신감을 고양시켰지만, 몇몇은 약속만 받았을 뿐이다. 무바라크 몰락 직후 벌어진 많은 투쟁은 고용주들의 양보로 해결된 듯했지만 당시 합의가 모두 이행된 것은 아니다. 노동자들이 이웃한 공장·학교·병원에서 벌어진 투쟁에서 배우는 등 연대와 본받기 사례들이 있긴 하지만, 적잖은 투쟁들이 고립된 채로 벌어지고 있기도 하다.

이집트에서 작업장 민주주의가 전국의 노동자 대표 위원회나 행동 위원회 간의 연락망을 형성할 조짐은 아직까지 보이지 않는다. 2011년 1월 이후 격동적 사건들이 잇달아 벌어지고 있지만, 소비에트의 맹아 같은 기구가 건설돼 정치적 어젠다를 더 광범하게 발전시킬 조짐은 나타나지 않았다. 또, 1980년대 브라질에서 급속히 성장한 종류의 노동자 정당이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2011년 초 결성됐고 이후에 민주노동자당으로 알려진) 노동자 정당 건설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61 이집트 운동은 보기 드물게 활력이 넘치지만, 노동자들의 집단적 이익을 증대시킬 조직화와 정치적 지향은 충분치 못하다. 운동은 2011년 2월 무바라크에 맞서 벌어진 대중 파업에 담긴 더한층 급진적인 변화에 대한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

이 운동은 1973년 칠레, 1974~1975년 포르투갈, 1979년 이란, 1980~1981년 폴란드 등 지난 50년간 벌어진 다른 정치적 격변들과 비슷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운동은 억제돼 있다. 지도적 활동가들이 공유하는 정치적 어젠다가 없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에게는 단지 정당만 없는 것이 아니라(이는 많은 혁명적 격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나리오다), 연대의 네트워크조차 발전하지 못했다. 이는 부분적으로 옛 질서의 저항 문제들과 관련이 있다. 이집트노총ETUF은 50년 이상 작업장 조직을 통제했다. 1957년 나세르 정권 하에서 국가의 일부로 설립된 이집트노총은 산업 투쟁을 억누르고 활동가들을 포섭하거나 고립시키는 구실을 했다. 잠재적 반대파 후보들은 노조 선거 출마가 금지됐고 투표 결과는 조작되기 일쑤였다. 약 60년 동안 23개 산별노조의 집행위원회나 이집트노총 집행위원회에서 직접 선거는 없었다.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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