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8호 2021년 3~4월호)

지난 호

반혁명의 유령들

알렉스 캘리니코스 5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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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분노가 무르시를 끌어내릴 만큼 커졌음이 분명해지자, 지배계급 내에서 가장 강력하고 응집력 있는 기구인 군대가 재빨리 개입해 대중의 분노를 단속하고 대중의 요구를 들어줘야 했다. 정부 수반에 건 이기지 못할 도박에서 빠져 나와 새로운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지배계급을 재편하고 결집시켜야 했다. 새로운 지도자들이 대중의 요구를 실현하고 이집트인을 “하나의 대오”로 단결시킬 영웅처럼 등장할 터였다.
사실 군부는 양쪽에서 타오르는 불길 사이에 갇혀 있었다. 한쪽은 대중 운동의 불길이었다. 무르시가 계속 집권했다가는 이 불길이 일정한 한계를 돌파할 가능성이 있었다. 다른 쪽은 거리의 무슬림형제단과 이슬람주의자들의 불길이었다. 무르시가 퇴진할 시 시나이 반도에서 상당히 복잡한 전선이 형성되고 정도는 덜하겠지만 상이집트[나일강 상류 지역] 일부 지역에서도 전선이 생길 터였다. … 군부는 그런 대가를 치르더라도 대중 운동의 불길을 피하기로 했다. 무르시를 쓰러뜨리는 한편 대중을 달래고 대중 운동의 발전을 저지하면서 무슬림형제단의 불길을 상대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는 편이 대중 운동의 불길을 상대하는 것보다 덜 위협적이었던 것이다. 7

군부가 이런 구실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노동자, 농민, 도시 빈민의 경제적·정치적 열망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능력이 있는, 대중의 강력한 자기 조직 형태 내지 정당을 혁명 운동이 충분히 발전시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해할 만한 실패다. 예컨대, 이집트 혁명적사회주의자단체는 이 한계를 극복하려고 장렬히 분투했지만 사회적 뿌리가 비교적 얕은 소규모 마르크스주의 단체가 수십 년간의 탄압과, 스탈린주의 정치의 왜곡이 낳은 효과를 극복할 수는 없었다. 이집트 좌파를 지배해 온 스탈린주의 정치가 주요 이집트 좌파들을 구국전선으로 들어가게 하고 엘시시를 지지하게 만들었다.

그렇다 해도 6월 30일 시위를 일면적으로 일축하는 것(로버츠가 이를 가장 뚜렷하게 표현했다)은 옳지 않다. 무르시 퇴진은 대중 항쟁 군부 쿠데타 모두의 결과다. 두 결정 요인을 모두 포착하지 못하면 무바라크에 맞선 항쟁으로 분출한, 근본에서 혁명적인 동학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이중성이 낳은 애매함은 단기적으로 군에 유리하다. 이는 6월 30일 시위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펠로울’이 무르시 반대 흐름에 편승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군부가 나세르주의의 이데올로기적 유산을 이용할 수 있었던 탓에 애매함은 더 커졌다. 나세르주의 덕에 군부는 “국민”, “대중” 운운하는 수사(“민주“를 운운하지는 않았지만)로 치장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구국전선의 가장 명망 있는 지도자 함딘 사바히에 의해 강화됐다. 사바히는 2012년 대선 1차 선거에서 인상적인 좌파적 선거 운동을 벌였지만 이후 군부에 끈질기게 구애하면서, 자신이 얻은 표를 조직으로 승화시킬 기회를 스스로 팽개쳤다. 유혈 낭자한 군부 치하 시절 라틴아메리카의 장군들처럼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으스대는 엘시시는 어처구니없게도 새로운 나세르로 선포됐다. 가까운 미래에 엘시시가 이집트를 서방 제국주의에 맞선 저항의 중심으로 만들 기색이 전혀 없는데도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군 장성들이 이전의 군최고평의회나 무르시보다 앞날이 평탄한 것은 아니다. 일단, 무슬림형제단은 깨뜨리기 어려운 세력으로 드러날 것이다. 무슬림형제단은 영국, 나세르, 사다트, 무바라크가 종종 자행한 혹독한 탄압을 모두 견뎌냈다. 군부가 선출된 대통령을 제거한 탓에 무슬림형제단 활동가들은 그들에게 민주적 정당성이 있다는 인식으로 힘을 얻을 것이다. 한편, 이집트 혁명적사회주의자단체가 지적하듯이 이미 무슬림형제단 지도부는 활동가들이 지하드 단체로 이반하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이슬람주의로 가는 의회적 길을 이런 단체들이 거부하는 것이 사태 전개에 의해 입증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무슬림형제단의 “테러리즘”에 대한 엘시시의 공세는 흔히 그렇듯이 더 많은 진짜 테러리스트를 배양할 공산이 크다.

더 근본적으로 이집트는 경제적으로 사실상 파산 상태다. 게다가 (마이클 로버츠가 이번 호 《인터내셔널 소셜리즘》에 실린 글에서 보여 주듯이) 세계경제가 여전히 2007~2009년의 추락과 부진이 낳은 효과와 씨름하는 와중에 그렇게 됐다. 그런데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자 사우디아라비아를 필두로 최근에는 (현재까지는 무슬림형제단의 강력한 후원자였다) 카타르까지, 걸프만 연안 국가들에서 차관이 쏟아졌다. 덕분에 정권은 시간을 벌 것이다. 정권은 무르시가 대중의 반감을 산 전력 차단과 식료품·연료 부족(분명 ‘펠로울’도 일조했을 것이다)을 불식시키려 안간힘을 써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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