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특집 : 지금의 이슈들

3대 세습 북한은 어디로?

북한 권력 세습의 정치·경제적 배경과 전망

MARX21

  1. <조선일보> 인터넷판(2002.6.22). 이교덕 2003, p65에서 재인용.
  2. 김정일 위원장이 김정은을 후계자로 결정했다는 교시를 1월 8일 리제강 중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에게 하달하고, 이 지시가 인민군 총정치국을 중심으로 전파됐다는 것이다. <연합뉴스>(2009.1.15), 이기동 2010, p7에서 재인용.
  3. 한 예로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2009년 3월 24일 열린 경남대극동문제연구소 주최 토론회에서 이런 의견을 피력했다. 김근식 2009, pp47-50.
  4. 김광수 2008, p33.
  5. 김광수 2008, p44.
  6. 김광수 2008, pp27-28.
  7. 심지어 김정은 후계 체제가 기정사실이 된 9·28 당대표자회 이후에도 이런 시도는 계속됐다. 예를 들어, 박경순 새세상연구소 부소장은 “후계자 문제에 초점을 맞춰 이번 당 대표자회를 분석하는 것은 매우 협소한 시각”이라며 “김정일 체제의 완성”이라는 데 방점을 둔 분석을 내놓았다. 박경순 2010. 그러나 이것은 최근 삼성의 조직 개편이 ‘이재용 체제’로의 전환을 뜻한다는 관측을 두고 이재용이 이를 부정하며 여전히 “회장님이 (그룹 경영의) 중심에 계신다”고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우스운 얘기일 뿐이다. 또, 북한의 후계자론으로 봤을 때도 “권력 승계”는 “김정일 체제의 완성”과 전혀 모순되는 일이 아니다.
  8. 실제로 이 책은 북한의 후계자론을 소개하며, “‘북한식 순응 승계’가 ‘불편하지만’ 사실로 받아들여지길 기대”한다. 김광수 2008, p40. ‘북한식 순응 승계’는 후계자가 혈통이 아니라 수령으로서의 자질과 인품에 따라 정해지는 원리라고 한다.
  9. 박경순 2010.
  10. 김광수 2008, p195.
  11. 고유환 2009, pp48-49.
  12. 박경순 2010.
  13. 북한 사회에 대한 미국 주류의 평가가 바로 “전체주의와 전제주의가 결합된 절대 권력 체제”라는 것이다. 정영철 2010.
  14. 고유환 2009, p37.
  15. 예를 들어 김세균 교수는 “공산주의적 인간으로의 인간 개조”, “당과 대중의 사상적·정치적 통일 단결”, “대중의 헌신성, 창발성 확보” 등과 같은 북한의 대표적인 억압·통제 기제를 “사회주의적 목표 달성”을 위한 것으로 본다. 김세균 2006.
  16. 조선로동당 규약 제3장 30조.
  17. 조선로동당 규약 제3장 21-22조.
  18. 조선로동당 규약 제3장 24조.
  19. 조선로동당 규약 제3장 25조.
  20. 이종옥(1983년 해임), 김일(1984년 사망), 김일성(1994년 사망), 오진우(1995년 사망).
  21. 조선로동당 규약 제3장 26조.
  22. 후계자 내정은 늦어도 2009년 초, 심지어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박경순 민주노동당 새세상연구소 부소장도 “사실상 수년 전부터 … 후계자 문제를 치밀하게 준비해 왔다고 볼 수 있다”고 인정했다. 박경순 2010.
  23. 박경순 2010, pp32-33.
  24. 북한 보도를 보면, 당대표자회가 당중앙위원회 위원과 후보위원 등을 선출하고, 이어 중앙위원회 전원회의가 개최돼 당중앙위 정치국, 정치국 상무위원회, 비서를 선출하고, 당중앙위 비서국과 당중앙군사위를 조직했다. <통일뉴스>.
  25. 정창현 2010, 이정철 2010.
  26. <로동신문>(1997.10.10), 서동만 2010에서 재인용.
  27. 9·28 당대표자회는 조선로동당 중앙지도기관 선거 전에 첫 의제로 ‘김정일 장군님을 조선로동당 총비서로 변함없이 높이 추대할 데 대하여’를 다뤘다. 이정철 2010.
  28. <조선중앙방송>(2010.9.28), 《주간통일정세》 2010-40에서 재인용.
  29. 백학순 2010, p689.
  30. 《KDI 북한경제리뷰》(2010년 4월), p47.
  3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 제6장 제91조 5항.
  32. <조선중앙방송>(2010.9.30), 《주간통일정세》 2010-40에서 재인용.
  33. 이우영 1996.
  34. 평양 사회과학연구원 철학연구소, 《철학사전》, 김광수 2008, p89에서 재인용.
  35. 박경순 2010.
  36. 김유민, 《후계자론》, 정영철 2005, p90에서 재인용.
  37. <조선중앙통신>(2010.11.4), 《주간통일정세》 2010-45에서 재인용.
  38. <우리민족끼리>(2010.11.9), 《주간통일정세》 2010-46에서 재인용.
  39. 김일성, ‘조선로동당 건설의 력사적 경험’(1986), 이교덕 2003, pp45-46에서 재인용.
  40. 이교덕 2003, pp46-47.
  41. 백학순 2010, p656.
  42. 김재천, 《후계자문제의 이론과 실천》, 정영철 2005, p95에서 재인용.
  43. 평양 사회과학연구원 철학연구소, 《철학사전》, 김남식 2004, p36에서 재인용.
  44.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 제1장 제4조.
  45. 김갑식 2009, p121.
  46.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구일제조사자료집》(1995), 《2009 북한개요》 p22에서 재인용.
  47. 통계청. http://kosis.kr/bukhan/ 남한은 인구 1만 명당 대학생 수가 6백25.6명으로 북한의 세 곱절 가까이 된다.
  48. 한만길 2003, p210. ‘총인구에 대한 각 학교 학생 비율’을 활용해 환산한 것.
  49. 전현준 2009.
  50. 이세현 2009.
  5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 제6장 제1절 제87조.
  52. 최수영·정영태2009. 최수영 2010.
  53. 정영태 2010.
  54. 백학순 2010, p553.
  55. 이대근 2007, p214.
  56. 조선로동당 규약 제2장 11조 2)와 3)
  57. 《로선로동당략사》, 백학순 2010, p600에서 재인용.
  58. 정영태 2007.
  59. Molyneux 2009에서 재인용.
  60. 백학순 2010, p646.
  61. 예를 들면, 박영자 2007.
  62. 이종석 2000 등 많은 북한 연구자들이 이런 견해고, 스즈키 마사유키 1994의 ‘수령제 국가론’도 그렇다. 개번 맥코맥은 1960년대까지는 북한에 우호적이었다가 수령제 확립과 권력 세습 이후 북한을 ‘신전체주의’로 규정한다(맥코맥 2006).
  63. 정영철 2005, p81.
  64. 캘리니코스 2007, p225.
  65. 클리프 2009, p452.
  66. 캘리니코스 2007, p223.
  67. 이에 대해서는 김하영 2002, pp231-351.
  68. 정창현 2007, p540.
  69. <매일경제>(2010.12.8).
  70. 백학순 2010, p599.
  71. 김남식 2004, p40.
  72. 자민통 계열은 진보단체들의 북한 비판조차 흔히 우익(사상)과 같은 것으로 몰아붙이는데(한나라당이라는 둥 CIA 첩자라는 둥), 이는 이런 나쁜 전통의 유산이다.
  73.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형법 제3장 제1절 제59조, 61조.
  74.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형법 제7장 제1절 제219조.
  75.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형법 제7장 제1절 제220조.
  76.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형법 제7장 제1절 제226조.
  77. 조선로동당 규약 제9장 56조.
  78. 오브라이언 2005, pp66-67.
  79. 김정일 1992, ‘사회주의건설의 교훈과 우리당의 총로선’, 이종석 2000, p349에서 재인용.
  80. 몰리뉴 2003, p183.
  81. 몰리뉴 2003, p183.
  82. 클리프 2010, p251.
  83. 러시아 혁명 이후 내전부터 반혁명까지 자세한 설명은 최일붕 2007, pp38-79를 보시오.
  84. 김광수 2008, p56.
  85. 그렇다고 해서 1989년 이후 동유럽 등지에서 일어난 민주주의 혁명을 지지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뜻은 아니다. 절대 그렇지 않다. 민주적 권리들이 없는 곳에서 이런 변혁 덕분에 노동자들에게 정치적 권리가 허용됐다. 그런 변혁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자유·정의·평등 같은 문제에도 눈뜨게 되고 기존 국가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그 본질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86. 소비에트와 의회가 병행돼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는 Harman 2005.
  87. 왕조적 전체주의론의 대표적 주장자는 박형중(통일연구원), 동양적 전제군주제론의 대표적 주장자는 이상우(서강대 명예교수)다. 그러나 개혁·진보 인사 가운데서도 주대환 한국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와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가 북한 체제의 성격을 이와 유사하게 본다.
  88. ‘유격대-정규군 국가론’을 정식화한 와다 하루키 2002 외에도 군사국가적 성격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많다. 서대숙 교수가 한 예다.
  89. 수령체제론의 대표적 주장자는 스즈키 마사유키 1994, ‘유일체제론’은 이종석 2000.
  90. 북한 국가의 형성에 대해서는 김하영 2002, pp231-351.
  91. 조선로동당 규약 서문.
  92. 정영철 2010, p85.
  93. 주목받는 북한 연구자들인 스즈키 마사유키, 와다 하루키, 브루스 커밍스, 찰스 암스트롱(그리고 이들에게 영향받은 학자들)도 이런 경향이 있다.
  94. 김정일 1982와 《주체사상총서》(1985).
  95.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김하영 2005.
  96.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Cliff 1963, Cliff 1964.
  97. Cliff 1963에서 재인용.
  98. 이종석 2010, p388.
  99. 이종석 2010, p388.
  100. 이종석 2000, p154.
  101. 이종석 2000, p178에서 재인용.
  102. 김정일 1982.
  103. 이종석 2010, p408.
  104. 백학순 2010, pp530-554.
  105. 당시 상무위원은 김일성, 최용건, 김일, 박금철, 리효순, 김광협 여섯 명으로 구성됐다.
  106. 양문수 2001, pp28-29.
  107. 정영철 2005, p123.
  108.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당력사연구소 1989, p217.
  109. 이태섭 2009, pp205-207.
  110. 이종석 1995, pp294-296.
  111.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당력사연구소 1989, p217.
  112. “가화폐 제도”는 노동자들에게 날마다 계획 수행에 따른 가짜 돈을 지불하고 월말에 그것을 진짜 돈으로 교환해 주는 제도를 말한다.
  113. 이태섭 2009, pp205-210.
  114. 이종석 2000, p345.
  115. 김일성은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에로의 과도기와 프롤레타리아 독재 문제에 대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자본주의 발전 단계를 정상적으로 거치지 못한 만큼, 자본주의 하에서 마땅히 해결하였어야 할 생산력 발전의 과업을 오늘 우리 사회주의 시대에 와서 실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백학순 2010, p650.
  116.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당력사연구소 1989, p218.
  117. 당시 군 검열 사업에 참여한 전 노동당 고위 간부 신경완(본명 박병엽)은 김창봉·허봉학 등 군부 강경파가 노동당의 후계 구도(김일성-김영주)에 반발했다고 한다. 정창현 2007, pp337-340.
  118. 5차 당대회에서 양형섭이 한 말.
  119. 현성일 2007, pp117-118.
  120. 정창현 2007, p139.
  121. 백학순 2010, pp628-629.
  122. 예를 들면, 정영철 2010.
  123. 백학순 2010, p662.
  124. 이교덕 2003, p25.
  125. 이종석 2000, p509.
  126. 호어 2000, p104
  127. 박경순 2010.
  128. 이종석 2000, pp506-507.
  129. 신경완의 증언. 정창현 2007, pp138-143.
  130. 이석기 2003, pp59-60.
  131. <중앙일보>(2010.11.23).
  132. 김일성, ‘농민을 혁명화하며 농업 부문에서 당 대표자회 결정을 철저히 관철할 데 대하여’(1967.2.2), 이태섭 2009, p205.
  133. 《주체 혁명 위업의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 《근로자》 등에 실린 글. 이태섭 2009, pp296-300.
  134. 한국은행 2009, 한국은행 2010.
  135. 양문수 2010, p55.
  136. <로동신문>(1992.9.9). 현성일 2007, p159에서 재인용.
  137. 백학순 2010, p693.
  138. 양문수 2010, p48에서 재인용.
  139. 특수 경제는 당 경제와 군 경제로 이뤄지고, 군 경제는 순수 군 경제와 군수 경제로 구분된다.
  140. 조명철·김지연 2009.
  141. 해리슨 2003, p494.
  142. 남한의 진보 세력이 이를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면 계급 협조주의 정치에 빠지기 십상인 이유다. 다음의 사례는 “상호 체제 인정·존중”이 개혁주의와 잘 맞물린다는 것을 보여 준다. 북한 당국은 올해 당대표자회에서 규약을 개정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 해방과 인민민주주의의 혁명 과업을 완수”를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 해방과 민주주의 혁명의 과업을 수행”으로 바꾼 것이다. 이정철 2010의 지적대로 “적화의 목표치가 물 빠진 붉은 색으로 하향 조정”된 것이다. 이것은 소련 공산당이 “평화 공존”과 함께 “사회주의로 가는 다양한 길”을 주장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143. 이영훈 2004, p37.
  144. 조명철·김지연·홍익표·이종운 2009, p37.
  145. 위키리크스에 폭로된 주한미대사관의 보고.
  146. 이태섭 2009, p300.
  147. 민주노동당 부설 새세상연구소 논평.
  148. 스테어스 & 위트 2009. 이 보고서는 북한에 급변사태가 발생했을 때 미국은 “점진적인 경로를 통한 통일 방식을 선호”할 수 있는 남한과 “의견 불일치의 가능성”이 있으며, “핵무기와 다른 무기에 대한 안전 확보”를 위해 “일방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149. 스테어스 & 위트 2009.
질문/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