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지금의 이슈들
금융세계화론 비판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현 자본주의를 금융화나 금융세계화로 분석하는 사람들이 많다. 경제 위기의 직접적 촉발점이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 붕괴였고, 그 여파로 전 세계의 대형 은행과 금융기관 들이 도산했고, 금융 위기가 시작된 지 2년이 넘었지만 위기가 해결될 기미를 보이기는커녕 되레 정부의 재정 위기로 옮아가고 있는 것은 경제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도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므로, 금융 문제가 부각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더 나은 사회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은 무분별한 이윤 추구로 세계를 망쳐 버린 금융을 통제하기를 바라는데, 이는 마르크스주의자들도 지지하는 바다.
그런데 자본주의의 근본적 변혁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개혁주의자의 다수는 현 경제 위기가 오로지 금융에서 비롯했다고 여기며 ‘경제의 금융화’를 거론한다. 따라서 많은 개혁주의자들은 금융의 무분별한 확장을 통제해 사회의 자원을 생산적 부문으로 돌리고 임금 인상이나 복지 확대로 수요를 창출한다면, 경제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고 더 나은 자본주의를 만들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윤소영 교수와 전국학생행진의 ‘금융세계화론’은 독특한 점이 있다. 이들은 개혁주의자들과 달리 현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이 금융세계화이므로 자본주의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는 금융세계화를 종식시킬 수 없다고 본다. 다시 말해, 현 자본주의의 현실은 금융세계화 없이 유지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자신들의 ‘금융세계화 반대’가 결국에는 ‘자본주의 반대’를 함축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이 주장하는 요구와 대안 등의 진의를 파악하려면 이들의 금융세계화론을 좀더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1 이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뒤메닐·레비와 아리기에게 크게 빚졌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필요한 경우에 뒤메닐·레비와 아리기의 주장을 대조하며 검토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주로 전국학생행진과 윤소영 교수의 금융세계화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것이다. 그래서 이 글에서 언급하는 “금융세계화론”은 모두 이들의 주장이다.이윤율 하락 경향과 금융세계화 금융세계화론을 이해하려면 이들이 자본주의 경제를 분석하는 좀더 큰 관점을 파악해야 한다. 금융세계화론은 자본주의 경제의 “구조적 위기”와 “순환적 위기”를 구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이들이 개혁주의자들이나 다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경제 분석을 비판하는 핵심이기도 하다. “[케인스파나 구좌파는] 구조적 위기와 순환적 위기 사이의 관계나 순환적 위기의 체계적 전개 과정에 대한 맹목을 보인다. 차이가 있다면 전자는 구조적 위기나 실물 부문의 중요성을 간과한 반면, 후자는 순환적 위기나 금융 부문의 중요성을 간과한다.”
3 다시 말해 ‘장기 파동’이 있다고 주장한다.
“구조적 위기”를 먼저 살펴보자. 이들은 자본주의 경제에는 대략 1백 년을 주기로 하는 순환,4 분석이라고 말한다.
그림1에서 알 수 있듯이 금융세계화론은 1914년부터 1965년까지 약 50년은 이윤율이 상승하는 국면이었지만, 그 후 50년은 하락하는 국면이라고 분석한다. 뒤메닐·레비나 아리기의 주장과 흡사하다. 뒤메닐·레비도 20세기 전반기는 이윤율이 상승하는 시기였지만 하반기는 이윤율이 하락하는 시기였다면서, 자본가들이 이윤율을 회복하려는 시도로 금융화를 추진했다고 주장한다. 이 장기 파동의 요인으로 금융세계화론은 이윤율 변화에 주목하면서, 마르크스가 밝힌 자본주의의 ‘이윤율 하락 경향’이 “구조적 위기의 가능성을 규명”하는마르크스는 애덤 스미스를 비롯한 고전 경제학자들을 따라 노동가치론을 주장했다. 노동가치론으로 보면 상품의 가치는 그 상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노동량에 따라 결정된다. 생산수단(축적된 노동)은 자신의 가치를 생산물에 그대로 이전할 따름이고 노동자들의 노동만이 새로운 가치를 추가한다. 추가된 가치 중 임금을 제외한 부분이 자본가들의 이윤이 되는 것이다.
두루 알다시피 자본가들은 시장 지분을 더 많이 차지하고 이윤을 더 많이 얻으려 한다. 그러려면 계속해서 기술을 혁신해 상품의 생산 단가를 낮춰야 한다. 기술 혁신에 먼저 성공한 자본가는 경쟁자들보다 더 싸게 팔면서도 이윤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기술 혁신은 노동자 한 명이 더 많은 생산수단과 원자재를 다루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이를 두고 마르크스는 기술 혁신으로 말미암아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상승한다고 했다. 윤소영 교수는 이를 “편향적 기술 진보”라고 부른다. “마르크스는 산업에서 노동절약적이고 자본소비적인 편향적 기술 진보가 발생하여 자본생산성이 하락하면서 이윤율이 하락한다고 주장하지요. 즉 기술 진보와 자본생산성 하락이 이윤율 하락의 원인이라는 것이에요.”
자본주의가 가하는 경쟁 압력 탓에 다른 자본가들도 기술 혁신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경쟁자보다 이윤을 더 적게 얻는 일이 계속되면 도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별 자본가들이 이윤을 더 많이 얻고자 벌이는 경쟁의 결과, 체제 전체의 유기적 구성이 상승한다. 다시 말해, 사회 전체에서 투자된 자본과 비교해 고용된 노동자 수의 비중이 줄면서 새로 추가되는 가치가 줄어들고, 결국 평균이윤율(투자된 자본 대비 이윤)이 하락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20세기 전반기에는 어떻게 이윤율이 상승할 수 있었는가? 금융세계화론은 마르크스가 말한 이윤율 하락 경향을 상쇄하는 요인들의 일부인 노동강도 강화와 효율적 관리를 기반으로 하는 경영 혁신 덕분에 이윤율이 상승하고 ‘자본주의 황금기’라 불리는 전후 호황이 올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 뒤 50년은 이윤율이 하락하며 1백 년 주기의 장기 순환이 나타난다. “구조적 위기”는 1백 년 주기의 장기 순환(이윤율의 상승과 하락 국면) 끝에 오는 위기다. 역사적으로 최근의 경제 위기는 미국 헤게모니의 쇠퇴 끝에 온 위기인데, 금융세계화론은 전에는 네덜란드와 영국 헤게모니 시기의 장기 순환이 있었다고 파악한다.
6 아리기도 중국에서 기술 혁신들이 일어나면서 중국이 미국을 대체할 새로운 헤게모니 국가로 발전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금융세계화론은 최근의 “구조적 위기”가 새로운 장기 순환의 이윤율 상승 국면으로 가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세계적으로 볼 때 이윤율을 끌어올릴 기술 혁신들의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점은 분명 뒤메닐·레비나 아리기와는 다르다. 뒤메닐·레비는 기술 혁신들로 1980년대부터 이윤율이 상승 국면으로 진입했다고 주장한다.물론 1백 년 장기 순환 중간에도 경제 위기가 여러 차례 발생했다고 한다. 이런 단기적인 순환이 바로 “순환적 위기”라고 한다. “순환적 위기”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장기 순환과 단기 순환이 어떻게 결합하느냐에 따라 구체적인 위기의 양태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순환적 위기의 요인으로 특히 금융 요소를 잘 살펴야 한다.
현재의 경제 위기는 장기 순환 면에서는 이윤율 하락 경향의 흐름에 있고, 단기 순환 면에서는 이윤율 하락을 상쇄하려는 금융세계화 흐름에 있다고 한다. 1980년대에 이윤율이 상승한 것은 금융세계화의 결과였다. 그러나 장기적인 이윤율 하락 경향을 막을 수는 없어 현 위기가 왔다. 따라서 개혁주의자들의 바람과 달리 세계 지배자들은 금융세계화를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면 곧장 장기적인 이윤율 하락 경향에 노출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배자들이 금융세계화를 계속 추진하더라도 미래는 밝지 않다. “구조적 위기”가 새로운 이윤율 상승 국면으로 바뀔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2012~13년쯤, 늦어도 2010년대 말에는 자본주의의 “최종적 위기”가 올 것이다.
장기파동
7 장기 순환 이론은 특정 시기에 왜 다른 시기보다 성장이 더 빠른지, 또는 왜 다른 시기보다 위기가 더 심각한지를 설명해 주는, 마치 매력적인 분석틀인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금융세계화론은 50년간의 이윤율 상승 국면과 50년간의 하락 국면이 결합된 장기 순환이 있다면서, 이 장기 순환의 끝에 “구조적 위기”(이번 장기 순환의 경우에는 “최종적 위기”)가 온다고 주장한다. 사실 금융세계화론의 장기 순환과 “구조적 위기”라는 개념은 콘드라티에프의 장기파동 이론에서 유래한 것이다. 물론 뒤메닐·레비와 아리기가 이와 유사한 장기 순환을 주장하므로 직접적으로는 이들의 영향을 받았다.8 첫째, 논자들마다 시간대와 주기가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뒤메닐·레비는 “1900년 전후[를] 구조적 위기로부터 탈출하는 과정”으로 보고, 그때부터 1950년까지를 상승 국면으로 해석한다. 9 그런데 앞서 그림1에서 봤듯이 금융세계화론은 1914년부터 새로운 장기 순환이 시작돼 1965년까지가 상승 국면이었다고 주장한다. 아리기는 1929년을 영국 헤게모니의 종료 시점으로 본다. 이렇게 시간대와 주기를 서로 다르게 설정하는 이유는 상승 국면인지 하락 국면인지 모호한 시기를 자의적으로 상승 국면이나 하락 국면에 포함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900~14년처럼 이윤율이 특별히 높지 않은 시기를 뒤메닐·레비처럼 상승 국면에 포함할 수도 있고, 금융세계화론처럼 하강 국면에 포함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장기 순환 이론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10 윤소영 교수는 이윤율 상승 국면과 하락 국면이 거의 정확하게 대칭이라는 자신의 주장이 “마르크스의 과학적 분석에 입각한 것”이라고 말한다. 11 그러나 이는 윤소영 교수식 곡해다. 12 물론 2012~13년에 큰 위기가 올 수도 있겠지만, 마르크스주의는 점성술 같은 것이 아니다. 13
둘째, 경제 위기의 정확한 시점을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표적 인물이 윤소영 교수다. 윤소영 교수는 2012~13년에 자본주의의 “최종적 위기”가 오리라는 점을 자신이 수학적으로 ‘입증’했다고 믿고 있고, 이에 꽤나 자부심을 느끼는 듯하다.자본주의 역사에서 몇몇 위기는 특별히 더 심각하고 몇몇 호황은 다른 호황보다 더 오래 지속되기도 한다. 따라서 이윤율의 장기적 추세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일정한 주기를 갖는 순환’ 개념은 사태를 자의적으로 분석·판단하게 만드는 위험성이 크다. 실물 경제와 금융 등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살펴보고 분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14 이윤율 하락이 “자본 운동의 핵심적 속성” 15 이라고 말하기 힘들 것이다.
셋째, 만약 1백 년 주기의 장기 순환 이론이 옳다면 마르크스의 이윤율 하락 경향 법칙은 현실에서 반박되는 셈이다. 상쇄 요인이 이윤율 하락 경향을 완화하거나 일시적으로만 이윤율을 끌어올리는 것을 뛰어넘어 수십 년 동안이나 이윤율을 상승시키는 구실을 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런데도 금융세계화론자들은 장기 순환 이론과 이윤율 하락 경향 법칙을 절충하려다 보니, 결국 마르크스가 말한 이윤율 하락 경향의 법칙을 왜곡한다. 이들은 이윤율 하락 경향과 상쇄 요인이 비동시적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설명한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말한 이윤율 하락 경향과 그 상쇄 요인은 장기 순환의 서로 다른 국면, 즉 하락 국면과 상승 국면을 각각 설명하는 개념이 아니라, 두 요인의 동시적 작용 결과 이윤율 하락이 왜 더딘지를 설명하는 개념이다.동시에 끌어올리는 모순된 효과를 낸다는 점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불변자본 요소들의 저렴화”를 상쇄 요인 중 하나로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여기에서도 또다시 이윤율의 저하 경향을 낳는 그 요인들이 또한 그 경향의 실현을 완화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7
금융세계화론이 이윤율 하락 경향과 그 상쇄 요인을 잘못 이해하는 이유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술 혁신으로 말미암은 상품 가치 하락이 이윤율을 떨어뜨리는물론 마르크스의 주장이 반박할 수 없는 종교 교리 같은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의 주장은 현실에서 입증돼야 한다. 이를 위해 금융세계화론이 이윤율 상승 국면이었다고 분석하는 20세기 전반기, 특히 1920~30년대의 이윤율 추이를 좀더 살펴보자.
이윤율 상승 국면?
18 1929년 금융 공황이 발생하기 전까지 “1920년대의 이윤율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급속하게 상승했다”는 것이다. 19 그러나 뒤메닐·레비도 인정하듯이 “이윤율은 실제로 1920년대 새로운 성장 기간에 들어서지만 아직 취약한 채로 남아 있다”(강조는 필자). 20 즉, 장기 순환이나 추세선을 머리에서 지우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본다면 1920~30년대를 이윤율 상승기로 볼 근거가 별로 없는 것이다.
금융세계화론뿐 아니라 뒤메닐·레비조차 이윤율의 상승 국면이라고 분석한 시기에는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심각한 위기인 1930년대 대불황이 포함돼 있다. 이는 그들이 자신들의 이론에 현실을 억지로 끼워 맞추고 있다는 뜻이다. 금융세계화론은 뒤메닐·레비를 따라 1930년대가 이윤율 상승 국면 속에 있지만 금융에서 문제가 발생해 대불황이 왔다고 주장한다.
그림2는 뒤메닐·레비가 제시하는 미국의 이윤율 그래프다. 이 그래프를 보면 1890~1930년에 이윤율이 특별히 상승하는 추세였다고 보기 힘들다. 이윤율 수준이 특별히 높지도 낮지도 않은 시기를 두고 뒤메닐·레비는 1900년 전후를 이윤율 상승 국면의 시작으로 해석하는 반면, 금융세계화론은 1914년을 이윤율 상승 국면의 시작이라고 해석한다는 점은 앞서 살펴본 대로다.
22 이라거나 “급속한 기술 혁신” 23 이라고 부른다(뒤메닐·레비는 “진정한 기술 진보” 24 라고 말한다).
그런데 1920년대가 이윤율 상승 국면에 속한다고 해석하는 금융세계화론은 기술 혁신 덕택에 이윤율이 상승했다고 주장한다. 그 기술 혁신이 “편향적 기술 진보”(자본의 유기적 구성 상승)와 정반대 효과를 냈다는 것이다. 이런 혼란스러움을 해소하고자 금융세계화론은 이윤율을 끌어올리는 기술 혁신과 이윤율을 하락시키는 기술 혁신을 구별하면서, 전자를 “탁월한 기술 혁신”25 때문이라고도 한다. 결국 “편향적 기술 진보”가 “수익성 있는 기술 진보의 곤란함”인 것이고(이윤율 하락), “수익성 있는 기술 진보”가 “편향적 기술 진보의 둔화”인 것이다(이윤율 상승).
이는 기술 혁신이 모순적인 효과를 동시에 내지만 결국에는 이윤율을 떨어뜨린다는 마르크스의 주장과 기술 혁신이 이윤율을 끌어올릴 뿐이라는 뒤메닐·레비의 정반대되는 주장을 동시에 하면서 생긴 혼란을 반영하는 말장난이다. 윤소영 교수는 이윤율 하락의 원인을 “편향적 기술 진보” 때문이라고도 하고, “수익성 있는 기술 진보의 곤란함” 아무튼 이들이 말하는 “탁월한”, “급속한” 또는 “수익성 있는” 기술 혁신이란 무엇인가? “컨베이어벨트와 과학적 생산 공정을 고안해 낸 테일러주의, 이를 최초로 노동 현장에 적용시킨 포드주의, 수직 통합된 대규모 법인 기업을 효율적으로 경영하는 법을 체계화한 슬론주의 모두를 통칭하는 20세기 초반 미국에서 일어난 ‘관리자 혁명’이 바로 그런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효율적인 배치만으로도 비용을 엄청나게 축소시키고 노동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다시 말해, 1920년대 들어서면서 마르크스가 말한 기술 혁신(자본의 유기적 구성 상승)을 피하는 새로운 기술 혁신 방식으로 높은 이윤율을 얻었다는 것이다.
28 이 시기에도 마르크스가 말한 기술 혁신(자본의 유기적 구성 상승)이 지속된 것이다. 그림2에서 봤듯이 1920년대 이윤율이 특별히 상승 국면에 있지 않았음을 함께 고려하면 1920년대에도 자본의 유기적 구성은 계속 상승했고 이윤율은 별로 높지 않았던 것이다.
그림3은 뒤메닐·레비가 제시한 자본-노동비율이다. 자본-노동비율은 마르크스가 말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대용 지표라고 볼 수 있다. 1920년대 자본-노동비율은 그전과 비슷한 추세로 상승했다. 뒤메닐·레비와 금융세계화론이 말하는 지배자들의 효율적 경영 관리가 있었을 수도 있지만,그렇다면 금융세계화론이 1920년대에 “탁월한” 또는 “급속한” 기술 혁신이 있었다고 말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그것은 뒤메닐·레비가 그림3에 그은 추세선 ② 때문이다. 여기서는 뒤메닐·레비가 1950년대까지 추세선을 그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그러나 추세선 ② 시기 중에서 실제로 자본-노동비율이 하락하는 시기는 1930년대 중반부터 1940년대 중반까지다. 바로 1930년대 대불황과 제2차세계대전의 시기다.
대불황 때 기업들이 대거 파산했다. 기업이 파산하면 고정자본의 일부가 폐기될 뿐 아니라 파산 기업이 다른 기업에 인수될 때는 고정자본의 가치가 낮게 평가될 것이다. 이 덕분에 이 시기에 유기적 구성이 하락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경제 위기야말로 가장 강력한 이윤율 하락 경향의 상쇄 요인이자 이윤율 상승을 이끌어 자본 축적을 다시 시작하게 만드는 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 1930년대 말부터 시작된 제2차세계대전 시기에는 군수품 생산을 위해 완전고용이 실현되고 노동일 등이 연장되면서 유기적 구성이 하락할 수 있었다. 이렇게 분석하면 1930년대 중반부터 1940년대 중반까지 유기적 구성이 하락한 것은 지배자들의 관리 기술 향상보다는 불황 자체의 효과와 세계대전이라는 특수한 상황 덕분에 가능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29 자본생산성(고정자본 대비 순산출액)을 30 기술 진보의 수준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생산성은 사실상 이윤율(고정자본 대비 이윤)의 대용 지표다. 31 따라서 자본생산성과 이윤율의 움직임은 당연히 같을 수밖에 없다. 결국 뒤메닐·레비는 이윤율 수준을 기술 진보의 수준으로 잘못 본 셈이다.
끝으로, 뒤메닐·레비가 기술 혁신이 이윤율을 떨어뜨리는 경향이 있다는 마르크스의 주장을 폐기하고 오히려 ‘진정한’ 기술 혁신이 이윤율을 끌어올린다는 슘페터의 결론에 도달하게 된 이유는뒤메닐·레비가 마르크스가 말한 기술 혁신과 이윤율의 관계, 즉 자본의 유기적 구성과 이윤율 하락 경향의 관계를 살펴보려 했다면 기술 진보 수준의 척도로 자본생산성이 아니라 자본-노동비율을 선택했어야 한다. 그랬다면 자본-노동비율의 상승과 이윤율 하락이 서로 관계가 있고, 따라서 마르크스가 말한 이윤율 하락 경향이 입증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금융세계화론이 1920~30년대를 이윤율 상승 국면에 포함하는 것이 왜 오류인지를 살펴봤다. 이런 오류는 금융세계화론의 경제 분석에 다음의 몇 가지 영향을 미친다.
32 이런 관점은 최근의 경제 위기를 분석하는 데서 금융세계화론이 금융의 변동에 집중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33
첫째, 경제를 분석할 때 금융을 실물 경제와 사실상 분리해 가장 중요하게 보도록 만든다. “[1930년대] 대불황은 이윤율이 상승하는 국면에서도 금융위기로 인해 커다란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경제 위기에 있어 금융적 요인은 실물적 요인의 부수적인 현상이 아니라 그 자체로 파괴적인 잠재력을 지닐 수 있는 위기의 핵폭탄이 될 수 있는 것이다.”34 하고 말하더라도 말이다.
둘째, 첫째와 연관된 것인데, 실물 경제를 분석할 때도 이윤율 변동을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하게 만든다. 이윤율이 상승 국면인데도 자본주의 최대 위기가 왔다면, 이윤율 변동이 경제 변동의 가장 중요한 변수라는 주장은 공문구가 돼 버린다.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적 변동을 가장 본원적이자 과학적으로 결정하는 지표는 바로 이윤율이다. 투자하는 비용에 비해 얼마나 많은 이윤을 획득할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자본의 운동이 일차적으로 결정되고 이것이 경기순환의 가장 기초적인 조건이 되는 것이다”이런 문제점은 금융세계화론이 “구조적 위기”와 구별해서 보는 “순환적 위기”를 분석할 때도 그대로 나타난다.
순환적 위기의 원인
35 물론 이윤율의 장기적 추세와 각 추세 속에서 벌어지는 순환적 위기의 구체적 특징을 살펴야 경제 상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구조적 위기”, 즉 장기 순환의 원인을 이윤율 변동으로 보는 금융세계화론은 “순환적 위기”를 분석할 때는 이윤율 변동을 부차적으로 본다. 그래서 금융세계화론은 “순환적 위기”의 원인으로 “실물 경제적 요인에는 임금 인상 혹은 생산비 증가로 인한 이윤 하락이나 기업의 투자 저하나 가계의 구매력 저하에 따른 유효 수요의 감퇴 현상 등이 있으며, 금융적 요인에는 증시 하락, 부동산 가격 하락, 신용 공급의 위기, 은행 위기(은행의 도산과 은행 체계의 붕괴), 외채/외환위기가 있다”고 말한다. 36 이것은 사실상 경제 위기의 원인으로 거론되는 것들 중 이윤율 하락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를 얘기하는 것이다.
앞서 살펴봤듯이 금융세계화론자들은 “구조적 위기”와 “순환적 위기”를 구분하면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순환적 위기나 금융 부문의 중요성을 간과한다”고 비판한다.37 기업들은 임금 인상에 대응해 끊임없는 산업 혁신으로 각 산업 부문에서 산업예비군을 창출하고 여성·이주자·농민 등으로부터 노동자들을 계속 충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론적으로 오류다. 따라서 실물 경제 위기의 근원에는 이윤율 하락이 있는 것이다. 다른 요인들도 있지만, 그 요인들은 이윤율 하락 경향을 상쇄하는 데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로 적절한 비중이 부여된다. 금융 요인들도 마찬가지다. 한편으로 이윤율 하락에 따른 투자 감소 때문에 금융 부문의 투기·비대화를 낳고, 실물 경제가 금융자본에게 이자·배당 등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면서 위기가 폭발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많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은 이런 요인들이 왜 경제 위기의 근본 원인이 될 수 없는지를 설명해 왔다. “기업의 투자 저하”는 기업의 목표가 이윤 창출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분명 이윤율 하락과 관련 있다. “가계의 구매력 저하”도 노동자들의 임금 몫 감소를 반영하는 것이고, 임금 몫의 변동은 자본가들의 투자에 달려 있다. 임금 인상으로 이윤이 압박받는다는 주장(이윤압박설)은 뒤메닐·레비가 여러 통계 자료를 들어 반박하는 것일 뿐 아니라,결국 “순환적 위기”의 원인도 이윤율 하락이 그 근원에 있다. 그래서 이윤율 변동을 장기적 추세를 설명하는 개념으로 남겨 둘 수 없는 것이다. 단기적·순환적 위기를 설명할 때도 이윤율의 하락 경향과 그것을 상쇄하는 요인 등을 구체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윤율을 끌어올리는 금융세계화?
38 뜻하지만, 금융자본만이 문제인 것은 아니라고 한다. 왜냐하면 실물 경제의 이윤율이 떨어지자 ‘주주 가치 극대화’를 통해 실물 경제의 주요 기업들도 주도적으로 탈산업화하고 금융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39
앞서 살펴봤듯이 금융세계화론은 반등되지 않을 이윤율 하락 국면의 끝에 현 경제 상황이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자본주의가 그대로 무너지지는 않는데, 지배자들이 금융세계화를 통해 이윤율 하락 경향을 상쇄하려 했고, 그 결과 1980년대부터 이윤율이 상승했다고 분석한다. 그리고 “금융화는 산업과 상업 같은 실물 경제에 대한 금융의 우위”를40 전국학생행진은 “금융화가 진척되는 과정에서는 이제 두둑한 이윤이 확보되지 않은 실물 경제의 이윤율은 더 이상 중요치 않게 되고, 실물 경제의 이윤율을 상회하려는 금융의 이윤율이 핵심적인 위상을 차지한다”고 주장한다. 41 마치 금융이 자체적으로 더 많은 이윤을 만들었다는 투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이라면 금융화가 어떻게 이윤율을 끌어올리는지 의문이 들 것이다. 금융은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소영 교수는 “[이윤율] 상승을 주도하는 것이 실물 경제가 아니라 금융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하지요. 금융의 이윤율이 실물 경제의 이윤율을 상회하면서 평균 이윤율이 상승하거든요” 하고 답한다.42 그러나 금융기관들이 증권을 사고팔아 얻는 수익도 증권 구매자가 지급받기로 한 이자·배당금 등의 일부를 수수료로 얻는 것일 뿐이다. 증권의 이자·배당금 등도 결국 실물 경제의 잉여가치에서 분배받아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수수료 수익도 결국 실물 경제에서 온 것이다.
그러나 금융의 이윤율이 급속히 높아졌다는 것은 단지 실물 경제로부터 잉여가치를 더 많이 분배받았다는 것을 뜻할 뿐이다. 전체 이윤율, 다시 말해 평균 이윤율이 오르는 것은 실물 경제가 더 높은 이윤율을 달성했을 때만 가능하다. 1980년대 이후 다양한 증권이 만들어지고 증권 거래가 증가하면서 금융기관들의 수익이 는 것은 사실이다.이것은 2000년대에 들어 크게 증가한 모기지 증권, 그리고 이에 기반을 둔 다양한 파생금융상품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물론 수학자·물리학자를 동원해 만든 파생금융상품은 그 구성과 수익 구조가 매우 복잡해 전문가들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번 위기 이후 드러났다. 그러나 파생금융상품이 받기로 한 수익도 모기지 증권에서 나오는 것이며 모기지 증권의 수익은 담보대출자가 원금과 이자를 갚는 것에 달려 있다는 단순한 사실 자체는 변할 게 없다.
금융화 시대에 크게 늘어난 환투기·선물·옵션·스와프 등은 말 그대로 ‘제로섬 법칙’이 적용된다. 누군가 버는 만큼 다른 누군가가 손해를 보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것들도 이윤의 재분배일 뿐 이윤 창출은 아니다.
물론 금융 부문의 비대화는 투기로 말미암은 자산 가치 거품으로 소비와 투자를 늘려 실물 경제에 실질적인 촉진 작용을 하기는 한다. 게다가 기업들이 자산을 비싼 가격에 팔고, 자신들이 소유한 증권·부동산 등의 자산 가치를 장부에 부풀려 기재해서 높은 수익을 얻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할 수도 있다. 이런 일들이 1987년 주식시장 대폭락, 1990년대 초반 금융 위기, 1997년 동아시아 경제 위기, 2001년 IT거품 붕괴, 2008년 서브프라임 붕괴 전까지 진행된 일이다.
43 하고 말하면서, 금융화(또는 금융 혁신)가 전체 이윤율을 증대시킨 방식이 있다고 주장한다. 즉, “고정자본의 급증을 통해서 이윤을 증가시키는 방법이 금융화, 특히 인수·합병M&A과 지주회사로의 변모입니다.” 44 다시 말해, 인수·합병을 통해 고정자본의 규모를 키우는 방식이 금융화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45
그런데 윤소영 교수는 “금융화를 거품화와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실물 경제에 대한 금융의 지배를 투기나 심지어 사기로 환원할 수 없거든요”개별 자본가들은 고정자본의 규모를 키워 이윤율이 하락하더라도 이윤량을 더 많이 얻을 수는 있다. 그러나 이것은 금융화(그 핵심인 인수·합병)가 체제 전체의 이윤율을 끌어올렸다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 윤소영 교수 자신도 “잉여가치의 생산이 아니라 오히려 잉여가치의 분배를 둘러싸고 자본간 경쟁이 전개되는데, 예를 들어 인수·합병은 소유권의 이전을 통한 잉여가치의 영유를 목표로 하는 것이에요” 46 하고 인정하듯이, 인수·합병은 이윤의 원천인 잉여가치를 생산하지 못한다.
윤소영 교수는 무언가 단단히 잘못 이해하고 있다.47 그러면서 제너럴모터스가 대우자동차를 인수·합병하고 외국인들이 한국의 은행 지분 상당수를 갖고 있는 현실을 얘기한다. 여기서 우리는 금융세계화론이 왜 미국의 이중적자(무역·재정적자)와 달러 환류 메커니즘(동아시아 국가들의 대미투자)을 금융세계화의 중요 요소로 평가하는지 알 수 있다.
어떤 기업이나 개인이 다른 기업이나 증권을 인수하는 것은 사회 전체로 봤을 때는 투자가 아니다. A의 현금과 B의 소유권이 서로 이전된 것뿐이다. 따라서 인수·합병은 상대 기업을 가치 이하로 구입한 것이 아니라면 경제 전체 이윤율을 끌어올리지 못한다. 이는 윤소영 교수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물론 이런 반론이 제기될 수도 있습니다. 민족 경제 내부에서 고정자본에 대한 소유권이 이전된다고 해도 고정자본의 규모 자체가 증가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이에요. 일리 있는 지적이지요.” 그러나 윤소영 교수는 서둘러서 다음 말을 덧붙인다. “그러나 금융적 축적으로서 집중이 전개되는 장소는 민족 경제가 아니라 오히려 세계 시장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초민족적 수준에서 금융적 축적이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단적으로 말해서 금융세계화가 문제라는 것이에요.”48 유럽과 일본 등의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물론 미국의 대외투자 수익률이 다른 나라들의 대미투자 수익률보다 높았으므로 49 미국의 이윤율은 약간 올랐을 것이다. 50 만약 순전히 인수·합병이라는 금융화 방식이 미국의 이윤율을 끌어올린 것이라면 다른 나라들의 이윤율은 떨어져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금융화 시대 초기에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주요 국가들에서 이윤율이 올랐으므로 체제 전체의 평균 이윤율 상승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문제를 국내 시장에서 세계 시장으로 미룬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전 세계에 풀린 막대한 달러가 미국으로 환류되고 있지만 미국에 공짜로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이 한국의 기업·증권을 산 것 못지않게 한국도 해외(특히 미국)에 투자했다.51 임금·복지의 정체·삭감과 노동강도 강화 등을 통한 착취율 증대, 자본축적율 하락으로 말미암은 고정자본 증가율 하락 등 실물 경제에서 이윤율을 끌어올린 구조조정 때문이었다. 금융이 좀더 나은 수익을 얻었다면 이런 구조조정으로 늘어난 이윤에서 좀더 많은 양을 분배받은 것뿐이다.
따라서 금융화 시대에도 평균 이윤율의 변동을 분석하려면 실물 경제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우선 살펴야 하는 것이다. 1980년대에 평균 이윤율이 일시적으로 올랐던 것은 1980년대 초반 미국과 서유럽에서 대규모 기업 파산과 합병으로 말미암은 고정자본 가치 하락과자본주의의 “최종적 위기”
앞서 살펴봤듯이 금융세계화론은 다른 금융화론자들과 달리 자본주의 내 개혁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려면 금융세계화론이 2012~13년(늦어도 2010년대 말)에 올 것이라고 말하는 “최종적 위기”에 관한 분석을 검토해야 한다. “최종적 위기”를 분명하게 분석하거나 묘사한 내용이 없어서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쉽지 않지만, 군데군데 흩어져 있는 단편적인 묘사들을 종합하면 대략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52 하고 말하면서, 대멸종은 곧 자본축적의 “정상상태定常狀態, stationary state”라고 말한다. 53 ‘정상상태’는 애덤 스미스나 데이비드 리카도 같은 고전 경제학자들이 예상한 경제 상태다. 이들은 자본주의에서 이윤율이 떨어지는 경향이 지속되면 결국 이윤율이 0인 상황에 도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마르크스도 자본의 단순재생산을 분석하면서 추가로 투자되는 자본이 없는 상황을 가정했다. 즉, 윤소영 교수가 말하는 “최종적 위기”는 기업의 3분의 2 정도가 파산(“대멸종”)하고 자본 축적이 정지되는 상태인 것이다.
윤소영 교수는 용어의 어감과는 달리 “최종적 위기”가 자본주의의 자동 붕괴를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자본주의의 붕괴[“최종적 위기”]는 오히려 진화론의 대멸종과 유비할 수 있습니다. 이제까지 다섯 번의 대멸종이 있었는데, 평균적으로 말해서 지구에서 살던 종의 2/3 정도가 소멸하지요”54 자본주의 경제 활동의 목적이 사용가치 증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이윤이 없는 상태에서도 생산이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분석의 단순화를 위해 ‘정상상태’를 가정하기도 했지만, 자본주의에서 생산의 목적은 이윤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지적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평균 이윤율이 0이라면 생산이 지속될 리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윤율이 0인 상황에서 생산이 지속될 수 있을까? 즉, “정상상태”라는 것이 현실에서 존재할 수 있을까? 고전 경제학자들이 ‘정상상태’를 예상했던 것은 이윤율 하락의 원인을 엉뚱한 곳에서 찾은 데다가,윤소영 교수가 ‘정상상태’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의 위기 이론의 취약함과 관련 있다. 그는 “구조적 위기”가 “수익성 있는 기술 진보의 곤란함”에서 비롯한다고 보므로 “수익성 있는 기술 진보” 가능성이 없는 현재는 위기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분석은 윤소영 교수의 주장대로 자동붕괴론은 아니더라도, 스탈린주의의 ‘일반적 위기’론과는 닮았다. 그러나 이윤율 저하는 자본의 유기적 구성 증가에서 비롯하므로 자본의 파괴가 자본의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 공황은 대규모 파산 물결 속에 살아남은 기업들이 이윤율을 회복하고 다시 자본 축적을 시작할 수 있게 해 준다. 만약 윤소영 교수의 예측처럼 2010년대 말에 기업의 3분의 2가 파산하는 사태가 온다면 어떨까? 물론 이 과정에서 전 세계 대중이 겪을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겠지만, 살아남은 기업들은 파산한 공장·기계 등을 헐값에 구입하고 대폭 삭감한 임금으로 노동자를 고용해 다시 생산을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이윤율은 분명 위기 때보다 훨씬 높아져 자본 축적을 재개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윤율 하락 경향은 ‘정상상태’를 향한다기보다 빈번한 위기를 낳는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전쟁은 파괴하는 것인데 어떻게 전쟁을 통해 번영이 가능하겠습니까”(강조는 필자). 55 그러나 파괴된 공장은 자본가들의 장부에서도 삭제될 수밖에 없다. 전쟁은 고정자본을 물리적으로 파괴해서 사회 전체의 자본을 줄여 유기적 구성을 낮춘다는 점에서 경제 위기와 비슷한 구실을 하는 것이다. 이런 점이 자본주의 경제의 모순과 불합리성을 보여 주는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윤소영 교수는 공황이 하는 구실, 즉 공황이 자본의 가치를 심각하게 파괴하고 임금을 삭감해 자본주의적 축적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점은 윤소영 교수의 다음 주장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제2차세계대전 자체가 1930년대 대불황을 해결하고 1950~60년대 자본주의의 황금기를 초래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따라서 만약 2010년대 안에 위기가 더 심각해지더라도 그 상황은 정상상태라기보다는 심각한 위기와 짧은 호황이 반복되는 상황일 것이다.
만약 윤소영 교수의 주장처럼 심각한 위기 후에 경제가 정상상태에 도달한다면 이는 새로운 계급사회일지언정 더는 자본주의라고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정상상태는 노동자들에게서 잉여가치를 착취하는 자본주의의 핵심 메커니즘이 사라지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윤소영 교수도 “최종적 위기”를 “자본주의 붕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윤소영 교수가 “최종적 위기”를 ‘정상상태’라고 이해하는 것은 축적을 다시 시작할 능력을 잃은 지배자들한테서 노동자들이 혁명적 투쟁 없이도 경제 지배권을 빼앗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과 관련 있는 듯하다. 왜 이렇게 추정하지 않을 수 없는지는 이하에서 서술하겠다.
56 라며 폭력혁명의 필요성을 부정한다.
윤소영 교수는 “국유화는 무상몰수일 수밖에 없으므로 국가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폭력 투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런 대안은 스탈린이나 트로츠키의 마르크스주의는 몰라도 마르크스의 마르크스주의가 될 수 없어요. … 광주항쟁의 가장 가슴아픈 교훈은 폭력 투쟁의 후과인데, 파리코뮌과 마찬가지로 결국 옥쇄가 불가피했거든요” 이처럼 폭력혁명에 반대하는 윤소영 교수는 2009년 쌍용자동차 점거 파업에서처럼 노동자들이 자위 차원의 폭력을 쓰는 것에도 반대한다. “스탈린주의자나 트로츠키주의자의 또 다른 문제는 77일간의 정리 해고 반대 투쟁에서 출현한 폭력 투쟁을 정당화하는 데도 있습니다. 그런데 폭력 투쟁은 볼트 새총을 쏘고 시너통에 불지르는 것으로 끝나지 않아요. 결국에는 전투경찰이나 공수부대 같은 군대가 투입되거든요. … 더 큰 폭력이 승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에요.” 《프랑스 내전》에서 천명된 마르크스의 국가론과 《국가와 혁명》에서 역설된 레닌의 국가론 등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주장이다. 이는 윤소영 교수가 유러코뮤니즘의 개혁주의와 친화적이라는 점과 관련 있다.59 하고 전망한다. 즉, “최종적 위기”는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이행기와 비슷하게 자본주의가 붕괴했으나 사회주의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상태를 뜻한다.
게다가 윤소영 교수는 “2012~13년으로 예상되는 자본주의의 붕괴 이후에 마치 봉건제는 이미 붕괴했지만 자본주의는 아직 출현하지 않은 1350~1450년의 유럽 같은 ‘신중세적 무질서’가 확산될지도 모르겠어요”이런 역사적 유비는 폭력혁명을 분명하게 거부하는 윤소영 교수의 태도로 미루어 헤아려 보건대, 봉건제 내에서 ‘평화적으로’ 자본주의가 확대된 것과 비슷하게 “최종적 위기” 이후에 사회주의가 혁명 없이도 확대될 수 있다는 주장과 연결되는 듯하다. 윤소영 교수가 자신의 개혁주의를 변혁 지향적 주장이라고 강변할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자본 축적이 정지될 것이라는 “최종적 위기” 예측인 셈이다.
60 종파적인 주장을 늘어놓고, 임금 인상이나 복지 확대 때문에 “잘못하면 빚잔치로 경제만 거덜이 날 수도 있어요” 61 하고 우려하는 이유도 알 수 있다. 노동자들이 자본 축적 능력을 상실한 자본가들한테서 경제 지배권을 평화적으로 넘겨받는 상황을 염두에 두면서 재정적자 확대를 막는 게 낫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62
이제 윤소영 교수가 “[정리해고 반대와] 임금 인상이나 소득 재분배가 정치적으로 올바를지 몰라도 경제학적으로 오류”라는그러나 해고 반대, 임금 인상, 소득 재분배 등의 요구는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는 요구일 뿐 아니라 노동자들의 단결 투쟁을 촉진해 자본주의에 도전하도록 도울 수 있다. 오히려 금융세계화론자들은 “최종적 위기”라는 자신들의 그릇된 경제학적 분석에 계급투쟁의 현실을 끼워 맞추느라 연대마저 그르칠 위험을 갖고 있는 듯하다.
맺으며
지금까지 전국학생행진과 윤소영 교수의 주장을 중심으로 살펴봤듯이, 금융세계화론은 분명 마르크스의 주장을 왜곡·변형한 것이다.
금융 위기가 계속해서 실물 경제에 악영향을 주는 경제 위기 시기에 경제 상황을 분석·예측하려는 마르크스주의자라면 금융 부문의 구체적 상황과 지배자들의 정책 대응 등을 분석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금융세계화론자들은 현 자본주의 체제가 금융세계화로 연명하고 있으므로 변혁 운동의 핵심 기조를 ‘금융세계화 반대’에 맞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금융세계화 환원론은 앞서 설명했듯이 이론적으로도 잘못된 주장이지만, 정치적으로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 위험이 크다. 체제 자체가 아니라 거의 전적으로 금융만을 문제시하므로 이론은 달라도 정치적 실천 면에서는 케인스주의와 흡사한 대안으로 귀결되기 쉽다. 물론 좌파적 외양을 보존하고자 심지어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 헨리크 그로스만의 축적론·위기론 등 각종 이론들을 절충해 분명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말이다.
또, “최종적 위기”에 대응해 노동자들의 단결을 강화할 수 있는 요구는 ‘비정규직 정규직화’, ‘고용 보장’, ‘파산 기업 국유화’, ‘복지 확대’ 등이 아니라, ‘금융 통제’나 ‘연대 임금’ 같은 자신들의 고유한 요구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종파주의로 빠질 위험성을 보여 주는 듯하다. 물론 실제로 노동자들의 경제투쟁이 벌어졌을 때 사회진보연대나 전국학생행진이 운동의 요구를 수정하지 않으면 절대 지지하지 않겠다고 할 정도로 대책 없는 종파주의에 빠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가령 G20대학생운동본부 제안에서 드러났듯이 자신들의 주요 요구와 주장을 선전하는 것을 운동의 주요 목표로 삼을 때는 이런 태도가 종종 나타나는 듯하다.
금융세계화론이 아니라 마르크스가 밝힌 경제 분석에서 출발해야 종파적이지 않으면서도 혁명적인 방식으로 노동자 운동에 동참하고 이를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주
- 아쉽게도 사회진보연대가 자신들의 금융세계화론을 자세히 설명한 자료는 없다. 그러나 전국학생행진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
- 전국학생행진 2010a, p50. ↩
- “50년 동안 상승하다가 50년 동안 하락하는 1백 년 주기의 순환을 분석한다는 말이에요.” 윤소영 2009b, p69. ↩
- 전국학생행진 2010a, p52. ↩
- 윤소영 2009a, p235. ↩
- 이 때문에 뒤메닐·레비는 개혁주의적 전망으로 이끌리는데, 1930년대 대불황 때와 마찬가지로 현재도 이윤율 상승 국면이므로 금융화를 억제하고 자원을 생산 부문으로 돌리면 새로운 경제 발전의 시대로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
- 뒤메닐과 레비는 장기파동론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해석으로 에르네스트 만델과 이매뉴얼 월러스틴을 들고 있다. 뒤메닐 & 레비 2009, p22. ↩
- 장기파동론에 대한 좀더 자세한 비판은 하먼 1995, p213-220을 참고하시오. ↩
- 뒤메닐 & 레비 2009, p28. “[뒤메닐·레비는] 1900~40년대의 상승 추세, 1950~70년대의 하락 추세, 1980~90년대의 상승 추세를 대비하고 있거든요. 달리 말해서 1990년대뿐만 아니라 1980년대도 상승 추세로 해석한다는 것인데, 그런 새로운 해석을 위해 시기 구분이 전체적으로 10년씩 앞당겨진다는 사실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지요. 나아가 20세기 전반기는 50년간 상승 추세인 반면 후반기는 30년간 하락 추세와 20년간 상승 추세라는 비대칭성에도 주목해야 하겠지요.” 윤소영 2009b, p155. ↩
- “윤소영 교수는 복잡한 수식을 써서 설명하는데 사실 그 내용은 간단하다. 벨 에포크, 즉 금융화로 인한 이윤율 상승 시점을 1981년으로 잡고 그 정점을 1997년으로 잡는다. 사인곡선이므로 파국 시점은 2013년이 된다.” 강동훈 2009, p166. ↩
- 2012~13년에 ‘최종적 위기’가 올 것이라는 윤소영 교수의 주장이 꼭 2012년에 세상이 멸망할 것이라는 마야의 예언과 흡사한 것 같다고 토론자가 지적하자 윤소영 교수는 “제 예상은 마야의 예언처럼 모종의 종말론이 아니라 마르크스의 과학적 분석에 입각한 것이지요” 하고 말한다. 윤소영 2009b, pp82-83. ↩
- 윤소영 교수식 곡해에 대해 한마디 해야겠다. 예를 들어, 윤소영 교수는 국제사회주의 경향은 브레너에 비판적인데 “정성진 교수는 다함께 그룹의 이론적 대변자를 자임하면서도 그런 평가는 무시하고 있어요. 정 교수는 사실 열렬한 브레너 지지자이거든요” 하고 말한다. 윤소영2009b, p195. 그러나 정성진 2006의 제목(‘세계경제 위기와 마르크스주의 공황론: 브레너 비판을 중심으로’)이라도 읽었다면 이런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윤소영 교수는 자신이 뒤메닐·아리기·발리바르를 오해하고 있다는 소문이 인터넷에 돌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윤소영 2009b, p153. 내가 보기에 그 책임의 상당 부분은 윤소영 교수식 곡해에 있는 듯하다. ↩
- 최근에 윤소영 교수는 ‘최종적 위기’의 시점을 확정적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2012~13년에 발생할 것으로 제가 예상하는 최종적 위기 직전의 위기라는 것이에요. 아니면 조금 늦게 2010년대 말에 최종적 위기가 발생할 경우에는 마지막에서 두세 번째 위기가 되겠지요.” 윤소영 2009b, pp25-26. 그러나 2010년대에 더 큰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주장은 2008년 가을 이후에는 누구라도 할 수 있다. ↩
- 금융세계화론은 네덜란드와 영국 헤게모니 시기에도 20세기와 비슷한 이윤율 상승 국면과 하락 국면이 나타났다고 주장한다. ↩
- 전국학생행진 2010b, p25. ↩
- “지난 30년 동안[1835~65] 사회적 노동의 생산력이 이전의 모든 시대에 비하여 현저하게 발달한 것을 고려한다면, 그리고 특히 사회적 생산과정의 전체에 참가하는 고정자본 — 진정한 의미의 기계 이외에도 — 의 거대한 규모를 고려한다면, 지금까지 경제학자들을 사로잡았던 문제 — 즉 이윤율의 저하를 설명하는 문제 — 대신에 그 반대의 문제(즉 왜 이 저하가 보다 큰 규모이거나 보다 급속하지 않는가를 설명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마르크스 1993, p275. ↩
- 마르크스 1993, pp280-281. ↩
- “1930년대 대불황의 원인은 실물 경제가 아니라 금융에 있는 것입니다. 달리 말해서 산업혁명의 성장세를 중단시킬 수 있는 금융의 불안정성 때문에 대불황이 발생한 것이지요.” 윤소영 2010, p58. ↩
- 전국학생행진 2010a, p54. ↩
- 뒤메닐 & 레비 2009, p78. ↩
- 뒤메닐 & 레비 2009, p34에서 재인용. ↩
- 전국학생행진 2010b, p26. ↩
- 전국학생행진 2010a, p52. ↩
- “당시[20세기 전반기] 진정한 기술 진보가 모든 측면에서 명백하게 나타났다. 해를 거듭할수록 단위당 생산에는 더 적은 노동과 자본이 필요했다”(강조는 필자). 뒤메닐 & 레비 2006, pp59-60. ↩
- 윤소영 2009b, p192. ↩
- 전국학생행진 2010b, p26. ↩
- 뒤메닐 & 레비 2009, p35에서 재인용. ↩
- 마르크스는 상쇄 요인으로 “자본 사용량에는 변화가 없이 생산 방식의 단순한 개량”도 언급했다. 마르크스 1993, p277. ↩
- 뒤메닐·레비는 이윤율 하락의 이유가 “기술 진보가 너무 잘 되었던 것이 문제가 아니라 너무 안 되었던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하고 말한다. 이는 새로운 기술 혁신 ‘다발’이 이윤율을 끌어올린다는 슘페터의 주장과 일치한다. 뒤메닐 & 레비 2006, p61. ↩
- 뒤메닐·레비와 윤소영 교수도 인정하듯이 고정자본은 생산성이 없다. 단지 자신의 가치를 생산물로 이전할 뿐이기 때문이다. 자본생산성은 고정자본과 순산출액을 비교하는 지표일 뿐이다. ↩
- 이윤은 순산출액에서 임금을 뺀 것이다. 윤소영 교수는 간단한 수식을 사용해 이윤율과 자본생산성은 비례하고, 자본생산성은 ‘유기적 구성’과 반비례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윤소영 2009a, pp223-226. ↩
- 전국학생행진 2010a, p57. ↩
- “2000년대 후반의 파국 역시 금융세계화를 토대로 형성된 고유한 경기순환의 메커니즘에 의해 발생한 것이었다.” 전국학생행진 2010a, p59. ↩
- 전국학생행진 2010a, p51. ↩
- 각주2 참조. ↩
- 전국학생행진 2010a, p52. 윤소영 교수도 마찬가지다. “구조적 위기론을 보충하는 순환적 위기론, 즉 경기순환론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경기순환에는 실물 경제적 요인과 금융적 요인이 있어요. 실물 경제적 요인은 이윤 압박과 과소소비이지요.” 윤소영 2009b, p72. ↩
- “사건들의 순서가 거꾸로 해석되면 안 된다. 임금의 급속한 상승이 평화롭고 안정적인 자본축적을 혼란스럽게 한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경제 제도를 출현시킨 것은 기술 진보 과정의 중단이었으며, 임금은 그로 인해 조정되었을 뿐이다. [한편] 임금 상승의 정체에도 불구하고 노동 비용은 점차 자본수익성에 부담을 주기 시작했다.” 뒤메닐 & 레비 2006, p61. ↩
- 윤소영 2010, p19. ↩
- 윤소영 2010, pp19-20. ↩
- 윤소영 2010, p20. 마찬가지로 “[19]81년부터 본격적으로 반등하기 시작한 전체 이윤율은 전적으로 금융 부문의 급속한 성장 덕분이다.” 전국학생행진 2010a, p58. ↩
- 전국학생행진 2010a, p59. ↩
- “기업의 인수·합병에 개입하는 것도 증권회사의 본업이에요. 그러나 증권회사는 부업으로 이미 발행된 주식의 유통을 중개하기도 합니다. 게다가 1980년대부터 부업이 본업을 압도하여 요즘은 부업으로 인한 이윤이 본업으로 인한 이윤의 2~3배나 되지요.” 윤소영 2010, p24. ↩
- 윤소영 2010, p19. ↩
- 윤소영 2009a, p234. 전국학생행진이나 사회진보연대는 금융화의 이 측면을 강조하지 않고, 금융 투기 확대와 비슷하게 묘사한다. ↩
- “잉여가치를 직접 생산하여 K[고정자본]를 증가시키는 방법이 실물적 축적으로서 집적이고, 다른 자본이 생산한 잉여가치를 분배받아 K를 증가시키는 방법이 금융적 축적으로서 집중인데, [금융화 시대에] 전자에서 후자로 자본축적의 방법이 변화하거든요.” 윤소영 2009a, p267. ↩
- 윤소영 2009a, p247. ↩
- 윤소영 2009a, pp267-268. ↩
- 한국은 얼마 전 순채권국으로 전환됐다. 게다가 2000년대 들어 소득수지도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강동훈 2010, p287을 참고하시오. ↩
- 뒤메닐 & 레비 2005, pp209-214를 참고하시오. 미국이 해외에서 얻는 순소득은 1980년대 이후 감소해 거의 0이 됐다. 이는 1980년대 이후 다른 국가들의 대미투자가 미국의 대외투자보다 더 빨리 늘었기 때문이다. ↩
- “미국의 총 해외투자 가치는 미국으로 들어오는 외국인 투자 가치의 80퍼센트밖에 안 된다. 그런데도 미국의 해외투자가 벌어들이는 이윤과 이자 수익의 총량이 더 크다. 사실상 나머지 세계의 정부들과 자본가들은 미국에 자본을 들여놓는 대가로 미국 경제에 보조금을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하먼 2009, p76. ↩
- 1979년 볼커의 금리 인상으로 1980년대 초반에 많은 미국 기업이 도산했다. ↩
- 윤소영 2009b, p145. ↩
- 윤소영 2009b, p159. ↩
- 애덤 스미스는 가격 경쟁에서 이윤율 하락의 원인을 찾았고, 리카도는 임금 인상에 따른 이윤 압박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
- 윤소영 2009b, p132. ↩
- 윤소영 2010, p82. ↩
- 윤소영 2010, pp81-82. ↩
- 강동훈 2009를 참고하시오. ↩
- 윤소영 2009b, p77. ↩
- 윤소영 2009b, p205. ↩
- 윤소영 2009b, p190. ↩
- 예를 들어, 윤소영 교수는 쌍용자동차에 대한 구제금융을 비판하면서 지배구조나 구조조정을 쟁점으로 제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쌍용자동차는 국제하청기업인데, 국유화를 한다고 해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는 없”으므로 “구제금융이라는 악순환을 단절하기 위해서는 지배구조와 구조조정이라는 쟁점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쌍용자동차를 청산하자는 것이냐라는 질문이 제기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쌍용자동차의 상태를 정확하게 모르기 때문에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독자생존이 곤란한 경우에는 물론 청산이 불가피할 수도 있겠지요. 그럴 경우 해고 노동자 문제나 지역 경제 문제는 구제금융과는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 오히려 더 적절하다는 것이 제 생각이에요.” 윤소영 2009b, p228-229. 여기서도 윤소영 교수가 “구제금융이라는 악순환”에 따른 재정적자를 걱정하고, 필요하다면 산업 구조조정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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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훈 2010, ‘1997년 경제 위기 이후 한국 경제의 변화’, 《마르크스21》 6호(2010년 여름).
뒤메닐, 제라르 & 레비, 도미니크 2005, ‘21세기 전환기 미국 제국주의의 경제학’, 《‘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 그린비.
뒤메닐, 제라르 & 레비, 도미니크 2006, 《자본의 반격: 신자유주의 혁명의 기원》, 필맥.
뒤메닐, 제라르 & 레비, 도미니크 2009, 《현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그린비.
마르크스 1993, 《자본론》 3권, 비봉.
윤소영 2009a, 《마르크스의 ‘자본’》,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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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학생행진 2010a, ‘경제 위기 분석을 위한 전제’, 《행진》 통권 3호.
전국학생행진 2010b, ‘미국 중심 자본주의의 위기, 세계경제의 탈출구는 존재하는가?’, 《2010 대안세계화 학생포럼 자료집》.
정성진 2006, ‘세계경제위기와 마르크스주의 공황론: 브레너 비판을 중심으로’, 《마르크스와 트로츠키》, 한울.
하먼, 크리스 1995, 《마르크스주의와 공황론》, 풀무질.
하먼, 크리스 2009, ‘스냅사진으로 보는 자본주의의 오늘과 내일’, 《21세기 대공황과 마르크스주의》, 책갈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