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대한민국 금고를 열다》,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계급이 실종된 복지 담론의 취약성
국가재정 문제를 진보적 시각에서 다룬 책이 국내에 처음 출간됐다. 그동안 한국 복지 문제를 다룬 책과 글은 여러 차례 발표됐지만 이를 국가재정과 연결시켜 체계적으로 분석한 책은 처음이다. 필자인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이하 직책 생략)이 술회하듯이 2004년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대거 진입하면서 진보진영도 국가재정을 살펴보는 일이 가능해졌다.
당시 심상정 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한 그는 자신이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던 시절 얻을 수 있었던 ‘특별한’ 정보들을 진보진영에 체계적으로 소개하려고 《대한민국 금고를 열다》(이하 《금고》)를 썼다고 한다. 이 책은 최근 한국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의제로 떠오르고 있는 복지국가론에 관심있는 독자들이라면 꼭 읽어 봐야 하는 책이다. 특히 1부와 2부에서 소개하는 기본 개념과 국가재정 운용 체계를 이해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4부 ‘국가재정을 둘러싼 주요 논점’들은 한국 정부의 거짓말들을 속시원히 폭로한다.
그러나 책 전반에서 오건호가 제시하는 대안과 특히 3부 ‘한국 조세의 문제와 해법’, 5부 ‘대한민국 금고 재설계 하기’를 읽고 나서는 해독제가 필요할 듯하다. 그가 제시하는 대안이 노동계급의 양보와 불가피하지 않은 타협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나는 주로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춰 이 책을 평할 것이다.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이하 《하나로》)는 오건호 혼자 쓴 책은 아니지만 그가 《금고》에서도 대안 모델로 제시한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의 주장들을 모은 책이다. 이 책은 그동안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가 언론에 기고한 글들을 모아 펴낸 것이다. 《마르크스21》 7호에 실린 정형준의 글이 이들의 주장을 잘 다루고 있고 나도 그 주장에 대부분 동의하므로 《하나로》의 세부적 내용들을 일일이 평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로 《금고》를 평하면서 지적하는 문제점들은 그대로 《하나로》에도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이다.
보편적 증세론
낮은 직접세 비중이라고 옳게 진단한다. 복지와 교육 등 꼭 필요한 곳에 쓰일 돈이 적다는 것이다. 물론 낭비 요소가 많다는 점도 지적한다. 예컨대 그는 한국 정부가 민간투자사업이라는 명목으로 대기업들에 수조 원의 재정을 퍼주는 사실을 폭로한다. 인천공항철도의 사례는 그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럼에도 국가재정 규모 자체가 워낙 작다 보니 복지 지출에 근본적 한계가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의 요지다. 곧,
오건호는 한국 재정 문제의 핵심을 하나만 꼽으라면2009년 한국의 복지 재정은 약 GDP의 9퍼센트대로 추정된다. OECD 회원국 평균은 약 20퍼센트로 그 차이가 11퍼센트포인트에 이른다. 그러면 한국이 얼마를 더 복지에 지출해야 OECD 평균에 도달할 수 있는 걸까? 110조 원을 더 복지에 사용해야 한다.(《금고》, 55쪽)
한국의 국가재정 규모는 2009년 GDP [대비] 33.8퍼센트에 달한다. OECD 평균이 GDP의 44.8퍼센트인 것에 비해 11퍼센트포인트 낮다. 금액으로 얼마나 부족한 것일까? 그렇다! 지금보다 약 110조 원이 더 늘어야 OECD 회원국 값을 할 수 있다. 대략 복지 지출 부족분만큼 국가재정 규모도 작은 셈이다.(《금고》, 56)
따라서 그는 국가재정 자체를 늘리지 않으면 한국에서 복지를 OECD 수준으로 높일 수 없다고 옳게 지적한다. 그러나 누구에게서 그 돈을 거둬야 할까?
2007년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21.0퍼센트, 사회보장기여금을 합한 국민부담률은 26.5퍼센트다. 이는 OECD 평균 조세부담률 26.7퍼센트, 국민부담률 35.8퍼센트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재정 수입 문제를 정면 돌파하는 길은 세금을 올리는 것이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가 세금을 내기 싫어한다. 어떻게 하면 증세를 실현할 수 있을까?(《금고》, 100)
근래 오건호의 주장을 읽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 ‘증세’가 부자 증세를 뜻하는 것이라고 지레짐작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요즈음 오건호는 ‘부자에게 세금을’ 같은 요구가 “관성적” 요구라며 “중간 계층이 공공재원 마련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간 계층이라는 규정이 모호하지만 그는 이 ‘중간 계층’에 어지간한 임금을 받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포함된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참여재정’ 운동이 요청된다. 특히 노동운동의 새로운 실천이 필요하다. 노동운동 중심 세력들의 사회적 지위보다 더욱 뒤쳐진 사회적 약자 계층이 넓게 존재한다. 이 때문에 정규직 노동조합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 더욱 따갑다. 위로는 이윤을 독차지하는 자본 세력과 부유 계층이 있지만, 아래로는 하루하루가 힘든 불안정 노동자들이 많다.(《금고》, 250)
1 재정 수입 확대를 위해 노사의 보험료율을 일률적으로 상향하는 것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금고》, 235)
사회보험의
2 삼성전자가 2008년에 실제로 낸 법인세 실효세율은 6.5퍼센트밖에 안 됐다. 3 추가로 1조 원 정도를 감면받은 것이다. 이처럼 대기업들은 정부의 후원 덕택에 법으로 정한 것보다도 세금을 훨씬 적게 내고 있다.
수치상 한국의 조세부담률이 OECD 평균보다 낮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노동자가 아니라 한국의 기업주와 부자 들이 세금을 덜 내기 때문이다. 이들은 각종 감세 제도와 감면 제도 덕택에 실제 세율보다도 훨씬 적은 세금을 낸다. 법인세 감면 등 그동안 알려진 ‘부자 감세’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법정 법인세율은 2008년에 25퍼센트였고 이명박 정부는 이를 20퍼센트까지 낮추는 정책을 추진했는데,4 2005년 기준으로 각국의 시간당 인건비를 그 나라의 경제 수준과 비교 분석한 결과로도 독일은 0.25, 미국과 일본도 각각 0.18, 0.19 정도인데 한국은 0.15밖에 안 됐다.
반대로 실질임금 수준에 견주면 한국 노동자들이 세금을 결코 적게 낸다고 할 수 없다. 예컨대 2009년 산업은행 경제연구소가 발표한 논문을 보면 “한국의 임금 수준은 국가 경제 수준과 비교해도 낮은 수준으로 나타나 산업 성장으로 인한 이익이 노동자들에게 적절하게 분배되지 않고” 있다.요컨대 한국 노동자들은 독일 노동자들이 임금의 40퍼센트를 세금으로 내고 남는 만큼의 임금만 받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한국 노동자들이 받아야 할 임금의 상당 부분을 기업주들이 갈취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누가 세금을 내야 할까?
그림1은 같은 방법으로 추산한 2008년 OECD 국가들의 실질임금 수준을 그래프로 나타낸 것이다. 한국 노동자들이 임금의 20퍼센트만 세금으로 낸다고 해도 실제로는 임금의 40퍼센트를 세금으로 내는 프랑스 노동자들보다 세후소득이 훨씬 적다. 프랑스 노동자들이 풍요를 누리고 있다는 것이 아니다. 최근의 거대한 파업 투쟁이 보여 주듯이 그들도 삶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국가재정 (2009) | 국민부담률 (2007) | 조세부담률 (2007) | 총직접세율 (2007) | 공공복지 (2009) | 사회임금 (2000년대 중반) | |
OECD | 44.8 | 35.8 | 26.7 | 24.6 | 20.6 | 31.9 |
한국 | 33.8 | 26.5 | 21 | 17.5 | 약 9 | 7.9 |
차이 | 11 | 9.3 | 5.7 | 7.1 | 약 11 | 24 |
한편 표1에서 보듯이 국민부담률(조세부담률+사회보장기여금) 항목에서 한국과 OECD 평균의 차이는 조세부담률 항목에서보다 훨씬 크다. 물론 이는 한국의 사회보장기여금 비중이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도 한국의 자본가들이 부담하는 사회보장기여금이 적기 때문이지 결코 노동자들이 적게 부담해서가 아니다. 오건호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그가 자신의 책에 OECD 통계 결과를 인용해 쓴 표에도 이런 수치들이 다 드러나 있다.(《금고》, 113)
OECD 평균 기업주의 사회복지지출 기여 비율은 GDP의 5.4퍼센트고 노동자들의 기여 비율은 3.1퍼센트다. 그런데 한국은 거꾸로 기업이 2.5퍼센트, 노동자가 3.3퍼센트다. 노동자는 이미 더 내고 있고 기업주가 덜 내는 것이다. 이처럼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에 견줘 봐도 노동자들에게 세금을 더 내라고 요구하는 것은 전혀 공정하지 않다. 뒤에서 다시 다루겠지만 오건호가 이런 현실을 못 본 체하는 까닭은 그가 계급적 대안이 실현 불가능하고 ‘국민적(초계급적·계급중립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내가 1년 전 이 저널에 기고한 글에서 보여 줬듯이 서구의 복지국가들이 ‘국민적 합의’가 아니라 격렬한 계급투쟁을 통해 건설됐다는 역사적 사실에 비춰 보면 오건호의 생각이 오히려 비현실적이다.
근본적으로 노동자들이 생산한 부의 상당 부분을 자본가들이 축적해 운영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어떤 식으로든 노동자들더러 부담을 늘리라고 하는 것은 전혀 공정하지 않다. 노동자들을 착취해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하는 자본가들에게서 노동자들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복지를 얻어 내야 한다.
개혁주의자들 사이에서는 “무상의료는 공짜가 아니다”는 식의 얘기가 상식으로 통하는데 이런 주장이 확산되면 노동자들은 복지국가 담론을 홈쇼핑 수준의 상술로 여기게 될지도 모른다. ‘무상의료이지만 보험료를 더 내라’, ‘무상급식이지만 급식비를 내라’ 등등.
재원이 있나?
7 유보율은 자본금에 대한 잉여금의 비율을 뜻하는데 “사상 최대 실적 덕분에 이들 5백52개사의 잉여금은 3백38조 5천4백43억 원으로 6.21퍼센트 늘었다.” 곳간에 쌓여 있는 돈만 3백40조 원이라는 얘기다. OECD 평균 수준의 복지 지출을 따라잡는 데 추가로 필요한 연간 재정 1백10조 원의 세 곱절이다. 그것도 회계 기준이 달라져 삼성전자 등 일부 대기업은 제외된 수치다.
조금 진부한 얘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노동자들에게서 세금을 더 거두지 않아도 재원이 많다는 사실도 짚고 넘어가야겠다. 2010년 상반기 상장기업 5백52곳의 유보율이 무려 7백 퍼센트에 이르는 것으로 보도됐다.불안한 경제 상황을 탓하며 신규투자를 꺼리고(정리해고, 청년실업의 원인),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리고(살인적인 노동 강도, 저임금, 비정규직 양산 덕분에), 정부가 나서서 감세까지(복지 지출 삭감을 낳은) 해 줬으니 놀랄 일도 아니다.
8 SK텔레콤 2만 7천9백8퍼센트, 삼성전자 6천9백9퍼센트, 포스코 6천1백67퍼센트, 롯데쇼핑 5천9백60퍼센트, NHN 4천4백91퍼센트 등이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새로운 회계 기준을 도입한 대기업들의 상반기 실적은 다른 기업들보다도 훨씬 좋았다. 9 이들이 현금, 토지, 건물 등으로 묵혀 둔 자산의 일부만 써도 복지 재정을 마련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삼성전자 등이 포함된 지난해 조사에서는 시가총액 상위 30대 기업의 유보율이 평균 3천 퍼센트에 육박했다.문제는 이들이 가용 수단을 모두(학연·지연·혈연 등으로 얽힌 인맥과 합법·불법을 가리지 않고 입법·행정·사법부 전체에 살포하는 자금 등으로) 동원해서 이 돈을 내놓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자본가들에 기반을 둔 정당들이 —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 자본가들의 이해관계를 거슬러 그렇게 할 생각이 없음은 물론이다.
따라서 복지국가를 건설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이들의 저항을 무력화하거나 심지어 분쇄할 태세가 돼 있는 거대한 대중 투쟁이다.
복지국가와 계급투쟁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복지국가들은 대부분 제2차세계대전부터 1960년대 말까지 이어진 장기 호황과 그 사이에 꾸준히 구축된 노동자 조직의 효과로 건설됐다. 종전 직후 대중의 불만과 기대도 한몫 했다. 훗날 각료가 된 영국 보수당 의원 퀸틴 호그는 1943년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 여러분이 인민에게 개혁을 주지 않는다면 그들이 여러분에게 혁명을 선사할 것이다.” 자본주의가 확장기였으므로 자본가들은 그들 자신의 필요를 위해서라도 복지를 확대할 동기가 있었다. 건강하고 교육받고 정신적으로 안정된 노동자들이 더 양질의 상품을 더 빠르게 생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차피 복지 지출이 불가피하다면 국가 주도의 보편적 복지 체계가 복지 지출을 최소화할 효율적인 방법이기도 했다. 예컨대 무상의료가 도입된 영국에서 1인당 의료비 지출은 미국의 1인당 의료비 지출보다 적으면서도 건강 수준은 더 높았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호황이 끝나고 불황이 찾아오면서 얘기는 달라졌다. ‘복지를 동반한 성장’이라는 말은 발등에 떨어진 위기에 조바심을 내는 자본가들에게 더는 설득력이 없게 됐다. 기업들의 세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복지 삭감 시도가 계속됐고, 자본가들에게서 작은 양보를 쟁취하려해도 훨씬 강력한 투쟁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해서 지배자들의 복지 삭감 공격이 늘 성공한 것은 아니다. 프랑스에서 1995년에 벌어진 노동자 파업이나 얼마전 최초고용계약법CPE 저지 투쟁에서 볼 수 있듯이 노동자들이 이런 공격에 맞서 싸워 종종 승리했기 때문이다.
복지 혜택 수준에서 큰 차이가 있지만 한국에서도 복지 발전은 비슷한 양상으로 진행됐다. 건강보험, 국민연금 등 그나마 있는 복지 제도들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것은 1987년 6월 항쟁과 7~9월 노동자 대투쟁 직후다. 이런 복지 제도들이 처음에 체제 안정과 기금 형성 — 강제 저축으로 국가의 산업 투자 능력 확대를 노린 — 을 노리고 기획된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뿌리내릴 수 있게 된 데에는 노동자 투쟁이 결정적 구실을 했다. 1973년에 박정희가 실시하겠다고 선포했던 ‘국민복지연금제도’가 며칠 만에 백지화된 사례와 대조적이다. 그때와 달리 노동자 대중 조직이 단단히 자리잡은 1990년대 이후 지배자들은 조직 노동계급에게 감히 그런 짓을 할 수 없었다.
계급에서 국민으로
12 그러나 그는 한국 노동계급이 적어도 아직은 복지 확대 요구를 내걸고 싸울 능력이 없다고 보는 듯하다. 한국 노동계급은 복지 “경험”이 부족해 복지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하고, 분열돼 있어 아직 계급으로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금고》와 《하나로》에서 제시하는 대안들에는 계급투쟁이라는 핵심 고리가 빠져 있다.
오건호도 원론적 차원에서는 복지가 계급투쟁의 결과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듯하다. “복지는 역사적으로 볼 때 계급투쟁의 결과라는 측면을 간과할 수 없다.”내부에서 보장성 확대를 달성하는 구체적인 경로를 보여 준다는 점이다.”(《하나로》, 154, 강조는 인용자)
계급투쟁을 불가능하거나 적어도 먼 미래의 일로 여기면서 오건호의 후퇴가 시작된다. 단지 그가 근본적 사회 변혁을 포기했다는 뜻만이 아니다. 그는 더 나아가 제도를 바꾸는 것도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듯하다. 제도를 바꾸려면 법을 고쳐야 하고 법을 고치려면 의회에서 의석을 확보해야 하는데, 진보정당이 당장 의석수를 늘릴 가능성은 없어 보이니 말이다. 그래서 그는 제도를 그대로 둔 채 증세나 보험료 인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보험료 지렛대 방식이 가지는 장점은 국민들에게 건강보험 제도그러나 첫째, 한국에서 노동자들이 복지 확대를 요구하며 투쟁할 가능성이 낮다는 가정은 지나치게 비관적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건강보험 제도의 안착과 발전 과정에도 노동자들의 투쟁이 가장 중요한 구실을 했다. 199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 민주노총과 보건의료노조 등의 주요 요구를 살펴보라. 건강보험 개혁 요구가 빠진 적이 한 번도 없다. 2000년에 시작된 민주노동당의 무상의료 요구도 많은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게다가 최근 여론조사 등에서 드러난 것처럼 어느 때보다 복지 요구가 높다.
유럽 복지국가 형성 과정에서도 흔히 노동자들이 먼저 구체적인 복지 정책들을 요구했던 것은 아니다. 대체로는 일부 지배자들이 인기를 얻으려고 내놓은 복지 공약들이 노동자들의 투쟁 덕분에 비로소 실현되거나, 노동계급의 광범한 불만과 분노를 달래고자 복지 제도가 급조된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복지 요구 채택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대중 투쟁이다. 아직 조직이 건재한 한국의 노동자들도 경제 위기 시기에 고통 전가에 맞서 싸울 잠재력이 크다. 벌써 곳곳에서 노동자 투쟁의 조짐이 보인다. 이런 투쟁이 확대되고 좌파들이 의식적으로 개입한다면, 복지도 투쟁의 주요 요구가 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복지 재정을 분야별로 나눠 어느 예산은 일반회계에서 끌어오고 다른 복지 예산은 사회보험료로 해결하자는 오건호의 ‘구체적’ 설계는 다소 부질없어 보이기도 한다. 복지에 쓸 돈이 없다는 정부의 거짓말을 반박하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말이다.
둘째, 복지 경험 부족이 아니라 나쁜 경험이 문제다. 실질임금은 낮고 보험료는 해마다 오르는데도 혜택은 그만큼 늘지 않는 데다 기업주와 부자 들은 늘 요리조리 피해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는 것을 노동계급은 수십 년 봐 왔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조세 저항’은 이해할 만한 것이다. 이럴수록 기업주와 부자 들에게 세금을 거둬 노동자·서민에게 복지를 제공하는 계급적 대안을 제시해야 노동자들의 복지 염원이 더 커질 것이다. 이와 반대로 세금과 보험료를 더 내면 복지가 저절로 늘어날 것이라는 《금고》와 《하나로》의 주장은 이런 불만을 투쟁으로 연결시키기보다 노동자들의 냉소만 낳을 것이다.
내에서 복지를 확대하는 것이다 보니 세금 내기 싫어하는 노동자들을 탓하고 거꾸로 현 제도는 미화한다. “국민건강보험은 ‘능력에 따라’ 보험료를 내고 ‘필요에 따라’ 급여를 받는 아름다운 제도인 것이다.”(《하나로》, 220) 실로 엄청난 과장이다. 마르크스가 말한 공산주의적 미래가 건강보험 제도로 실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오건호도 이런 계급적 불만이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런데 그가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대안이 제도셋째, 현 제도를 그대로 두고 그 틀 안에서 무상의료 수준의 개혁을 이루겠다는 생각이야말로 비현실적이다. 얼마 전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학술대회에서도 참석한 의사들 대다수가 이런 제안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고 한다. 대형병원들과 제약회사들, 일부 비양심적인 의사들이 어떤 식으로 보험 재정을 축내고 있는지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13 투쟁보다 노동계급 내부의 나눔을 강조한다. 그러나 노동계급 일부가 다른 일부에게 시혜를 베푸는 온정주의적 방식으로는 진정한 정의를 실현할 수 없다.
오건호가 자주 말하는 ‘계급형성론’은 자신의 후퇴를 정당화하려는 면이 강한 듯하다. 그는 “계급형성이 최대강령적 목표”라며그가 즐겨 인용하는 E P 톰슨의 계급형성론은 적어도 이렇게 조야하지 않다. 톰슨의 계급형성론은 계급의 물질적 토대인 착취 관계를 다소 과소평가했다는 약점은 있지만 스탈린주의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서도 노동계급의 경험과 의식과, 투쟁의 구실을 강조하는 아래로부터의 역사관을 부활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대로 오건호의 세계관은 거꾸로 점점 더 엘리트주의적으로 기울고 있다. 노동자들 자신의 투쟁 없이 지식인들이 ‘설계한’ 복지 제도를 경험하게 해 그들의 의식을 고취할 수 있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심상정 의원 보좌관을 지내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지금보다 나은 대안을 제시했다. “재정이 부족하다고? 부자에게서 세금을 거두고 국방비를 절약하라. 이건희 회장의 보험료를 정율만큼이라도 올려라. 시장 생명보험에 흘러간 민중의 보험료를 국민연금으로 되돌려라.”
그러나 계급을 지우고, 투쟁을 포기하고, 제도 내 개혁으로 후퇴하면서 그는 누가 내든 재정을 키우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실용주의적 대안을 내놓았다. 이런 실용주의가 진정으로 누구에게 실용성이 있는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대안은 노동자들의 “무기”가 될 수 없다. 칼자루가 아니라 칼날을 손에 쥐고 흔드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주
- 조세 문제를 다루다가 사회보험 문제를 다루는 것이 이상하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오건호는 사회보험 재정을 국가재정의 일부로 다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도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 ↩
- 법인세 감세를 포함해 2008년에 발표한 감세 규모는 90조 원이 넘는다. ↩
- <프레시안>(2009.7.7). ↩
- 안주희 2009. ↩
- 오건호 2010, p245. ↩
- 장호종 2009. ↩
- <연합뉴스>(2010.9.5). ↩
- <연합뉴스>(2010.4.18). ↩
- <디지털타임스>(2010.9.1). ↩
- 하먼 1995, p172. ↩
- 클리프 & 글룩스타인 2008, p335. ↩
- 오건호 2009. ↩
- 오건호 2007. ↩
- 오건호 2003. ↩
참고 문헌
안주희 2009, ‘산업경쟁력의 국제비교를 통한 국내 산업구조 변화전망’, 산업은행 경제연구소.
오건호 2003, ‘국민연금 재정고갈론, 무엇이 진실인가?’, <다함께> 15호(2003년 9월 20일).
오건호 2007, ‘사회연대전략은 계급형성전략이다’, <레디앙>(2007.3.2).
오건호 2009, ‘구조조정에 격렬히 반대하는 이유와 ‘사회 임금’’, <한림Online>(2009.5.16),
http://www.hanlimonline.com/issue/column/column.asp?c_idx= 880
오건호 2010, 《대한민국 금고를 열다》, 레디앙.
장호종 2009, ‘경제 위기 시기 복지국가 전략의 의미와 한계’, 《마르크스 21》 4호(2009년 겨울).
클리프, 토니 & 글룩스타인, 도니 2008, 《마르크스주의에서 본 영국 노동당의 역사》, 책갈피.
하먼, 크리스 1995, 《마르크스주의와 공황론》, 풀무질.
<디지털타임스>
<연합뉴스>
<프레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