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 : 어떤 전략과 전술인가?
새 상설연대체 ㅡ 한국진보연대의 재판(再版)이 될 것인가?
1 하는 물음이 제기된 맥락에서 활성화된 연대·연합 논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관심을 끌 만도 했다.
세계 수준에서든 한국 수준에서든 시애틀의 반자본주의 시위 이후 지난 10년 간의 급진화 결과, 단일 쟁점을 둘러싼 연대체 외에도 복수의 쟁점(대량해고, 임금 동결과 삭감, 복지 축소, 민주주의 후퇴, 전쟁과 파병 등)을 포괄하는 연대체 건설 움직임이 있었다. “2000년대 초중반 동안 제국주의 전쟁 반대와 한미FTA, 비정규직 증대 같은 신자유주의 공세 반대가 부상하고, 그 결과 자유주의 포퓰리스트 정치 세력에 대한 환멸이 증대하는 상황에 진보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그러나 2007년 진보·민중 진영의 상설연대체를 자임하며 출범한 한국진보연대는 사실상 자주 계열의 재결집체 이상이 되지 못한 채 진보진영의 다른 경향과 갈등만 더 키우는 결과를 낳았다.
2 확대·재편하는 방식의 상설연대체 건설 방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것이다.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은 “이명박 정권의 총체적 역주행과 탄압에 맞서 진보민중진영의 광범위한 단결”을 3 이루는 것이 새로운 상설연대체의 취지라고 했다. 경제 위기의 고통을 평범한 사람들에게 떠넘기고, 이를 위해 억압을 강화하는 이명박 정부에 맞서 진보진영의 광범한 단결과 투쟁의 구심을 만들겠다는 취지는 적극 공감할 만한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2010년 초 이번에는 민주노총이 나서서 새로운 상설연대체 건설을 발의하자 진보진영 일각에서 이전 한국진보연대 건설 경험과는 다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일시적으로 생겨났다. 민주노총이 지난 3월 중앙집행위원회에서 ‘반MB공투본’을자주 계열의 미완의 프로젝트?
그러나 지난 3월에 시작한 상설연대체 논의는 상반기 내내 진보진영에서 그다지 주목 받지 못했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첫 단추를 잘못 끼웠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한국진보연대가 왜 자주 계열의 재결집체에 머물렀는지, 무엇이 변해야 민주노총 안팎의 좌파 단체들이 3년 전과 달리 상설연대체 건설에 함께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토론하고 성찰하며 불신을 해소하는 데서 출발하지 않았다.
4 여러 정치·사회 단체들과 한 차례 간담회도 없이 단결 취지에 공감하면 참가하라는 식으로 밀어붙이려 한 것이었다. 가령 4월 21일 ‘상설연대체(준) 구성을 위한 제단체 집행책임자 회의’(이하 제단체 집행책임자 회의)를 노동전선, 당시 사노준, 사노련 등에는 제대로 알리지도 않았다. 제단체 집행책임자 회의를 주재한 민주노총 담당자는 실수였다고 인정했지만 공교롭게도 초대받지 못한 단체들은 모두 한국진보연대 설립에 비판적이었고 불참했던 단체들이었다.
자주 계열이 다수라고 할 수 있는 민주노총 지도부는 3월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상설연대체 건설을 결의한 뒤, 대중 조직 지도자들(한국진보연대, 전농,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전국여성연대, 한국청년연대 등)과 협의해 이를 일사천리로 추진할 계획을 내놓았다 — 2010년 5월 1일 노동절 집회에서 준비위 출범 선포, 5월 말 준비위 체계 완료, 11월 본조직 출범 등.5 한다고 주장한다. “정치 그룹들”을 배제하고 “대중 조직(단체)들”의 대표자들끼리 논의해도 사실상 충분하다는 주장이다. 대중 조직은 정치적이지 않다거나 정치적으로 중립적이라는 ‘자율사상’에 은근히 기대려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 자신이 특정 정치를 갖고 있음을 천하가 다 아는 마당에 그런 주장은 자기 기만이거나 위선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상 자주 계열이 대중 조직의 지도권을 장악하고 있는 이점을 이용하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자주 계열 지도자들은 “의견 그룹, 정치 그룹들의 의견과 대중 조직(단체)들의 의견이 같은 무게와 질로 다루어지거나 반영되는 것은 지양”해야6 또다시 답습하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한국진보연대 건설 과정에서 “NL 세력이 먼저 논의하고 추진하는 방식으로 진행함에 따라 진보운동진영 내의 다양한 의견 그룹을 대상화시킨 잘못”을7 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다함께를 포함한 좌파 정치 단체들은 이번 상설연대체 제안이 “한국진보연대가 출범했지만 민주노총의 가입이 이루어지지 못한” 8 자주 계열의 미완 프로젝트를 민주노총을 앞세워 완성시키려는 계획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민주노총 지도부가 지난 상반기에 “한국진보연대 출범에 반대했던 단위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노력”을9 때문이라고 솔직한 속내를 드러냈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첫 제단체 집행책임자 회의 안건지에 한국진보연대의 실패를 “노선의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정파적 대립과 분열”을 앞세운 다른 단체들의 “오해” 탓으로 돌린 한국진보연대 평가안을 10 그대로 인용하기도 했다. 과거 상설연대체 건설 논의 과정에서 자주 계열이 자신들의 고유 이데올로기를 집약하는 표어인 ‘민족 자주’와 ‘반미’를 상설연대체 강령에 넣으려고 고집해 한국진보연대에 다른 정치 경향들이 참가하기 어렵게 한 점을 민주노총 지도부는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실제로 민주노총에서 새 상설연대체 건설 책임을 맡은 양태조 대외협력실장은 “민주노총이 상설연대체 건설에 앞장선 의미[는] … 민주노총이 한국진보연대에 가입 못한 것”그래서 제단체 집행책임자 회의에 참가했던 다함께, 사회진보연대, 노동전선 등은 민주노총이 제안한 단결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진정한 단결을 이루려면 상설연대체 건설 계획을 다소 늦추더라도 한국진보연대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도록 진지한 토론을 거쳐야 한다고 강력히 촉구했다. 그러나 그 후 제단체 집행책임자 회의를 몇 차례 더 진행했지만 민주노총 지도부는 상설연대체 출범 일정을 못박으려는 것 외에 어떠한 진지한 토론도 하지 않으려 했다. 자주 계열의 결집체인 한국진보연대 주요 활동가들도 “왜 우리가 도마 위에 올라야 하느냐”며 자기 성찰적 평가를 완강하게 거부했다. 이런 태도는 상설연대체의 성공적 전망을 기대하기 어렵게 하고 있다.
결국 민주노총이 제안한 상설연대체 건설 논의는 상반기 내내 기대와 달리 제대로 된 공개 토론회 한 번 없이 흐지부지 중단됐다.
자주 계열의 고유 이데올로기와 정치 강령 고집 앞에서 언급했듯이 진보진영은 2005년 말~2007년 1월에도 상설연대체 건설을 논의한 바 있다. 당시에 좌파 정치단체, 예컨대 “다함께는 반전과 반신자유주의 운동에서 연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다수의 쟁점을 둘러싼 새로운 유형의 공동전선을 건설하는 것이 의미 있다는 대의를 우선하며 상설연대체 논의에 참가”했다. 그런데 자주 계열은 자신들 고유의 단계론적 전략을 바탕으로 상설연대체를 ‘자주적 민주 정부 수립의 정치적 조직적 기초’로 설정해, 결국 연대를 해치고 개혁주의를 강화하는 등 문제를 낳았다. “[공동전선이] 원활하게 돌아가려면 이데올로기를 우선시해서는 안 된다. 심지어 다원주의를 표방하는 이데올로기조차 공동전선 안에서 이데올로기를 강조하면 종파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데올로기에는 배제의 원리와 자기 정체성 확립 기능이 반드시 있고, 따라서 연합체 안에서 이데올로기를 강조하면 편가르기와 무리짓기가 꼭 뒤따르게 된다.”
13 민주노동당은 당내에 이견이 있었음에도 중앙위원회를 열어 ‘한국진보연대 가입의 건’을 밀어붙였다(63.7퍼센트로 통과). “한국진보연대의 민족 자주 문제와 관련해 당내 의견 차가 존재[하고] … 연대 운동의 신뢰 복원이 없는 한국진보연대 본조직 출범에 반대”하는 14 목소리가 만만치 않았는데도 말이다.
논의 과정에서 자주 계열이 자신들의 고유한 이데올로기를 상설연대체에 강요하기를 멈추지 않자 결국 다함께, 당시 노동자의힘, 문화연대, 사회진보연대,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인권단체 등 좌파 단체 다수가 한국진보연대(준) 결성에 불참했다.진보진영의 광범한 단결과 투쟁의 구심 구실을 자처한 한국진보연대는 모든 정파를 아우르기는커녕 논란과 분열 속에 — 심지어 내부 분열을 포함해 — 자주 계열의 결집체로 남게 됐다. 한국진보연대는 진보진영의 상설연대체로서는 실패한 것이다.
15 이것은 현실 운동의 다채로운 발전 양태와 대중 의식의 불균등한 발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운동을 자신이 정한 공식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는 태도다.
그런데도 자주 계열은 지금도 “하나의 전선, 하나의 진보정당”이라는 기치 하에 “전선 질서의 발전적 재편”을 추진하려 하고, 여기에 반드시 ‘민족 자주’ 이데올로기와 강령을 바탕으로 한 상설연대체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구체적이고 제한된 목표를 둘러싸고 단결한 공동전선과, 대중운동 안에서 포괄적 사회 변혁 원칙과 정치 강령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변혁 정치 조직이 둘 다 필요하고 별도로 건설될 필요가 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스탈린주의 경향은 종종 자신들의 독자적 ‘변혁 정당’을 별도로 건설하지 않고, 전선체로서 움직이는 것을 선호한다. 자신들의 ‘변혁 정당’이 없으니, 전선체에 자신들 고유의 정치 이데올로기와 정치 강령을 강요하게 된다. 그래서 자주 계열은 자민통(자주·민주·통일) 강령으로 통일하는 것이 전선체의 전제 조건이라고 고집한다. 이런 실천은 자민통 강령에 동의하지 않는 다른 경향들을 이반시키는 한편, 그럴수록 자주 계열 지도자들은 무리수를 써서라도 운동을 지배하겠다는 유혹(패권주의)을 더 키우게 된다. 그래서 갈수록 한국진보연대 지도자들은 마치 자신이 진보민중운동의 대표자인 것처럼 행동한다.
이런 관성은 그들이 스탈린주의 전통의 유산을 물려받은 데서 비롯한다. 스탈린주의자들은 다양한 정치경향들이상설연대체가 진정으로 연대체답게 되려면 자민통 강령에 동의하지 않는 선명 좌파들과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고 공통점을 찾아 단결하는 공동전선 방식으로 운영해야 한다. 즉, 상설연대체에서는 서로 합의할 수 있는, 많지 않은 구체적 요구들 — 즉, 행동강령 — 을 중심으로 활동을 조직하고, 공동 행동이 불가능한 쟁점은 각자 독자적으로 선전·선동·행동·조직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상설연대체가 매사에 단체 간 갈등과 충돌로 공동 행동을 할 수 없게 되거나 기껏해야 상층 회의 기구(잡담 장소)로 전락하는 일을 피할 수 있고, 진정으로 대중 투쟁을 건설하는 그릇이 될 수 있다.
인민전선(적대 계급 간 연합) 전략
16 그러나 앞서도 지적했지만, 진보진영의 단결을 방해하고 분열을 조장한 것은 자주 계열의 자민통 강령 패권주의였다. 그런데 자민통 강령의 이데올로기인 좌파 민족주의는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로 상이한 계급끼리 연합하도록 부추기는 사상이므로, 결국 어느 단계에 가서는 계급투쟁을 약화시키는 데 일조한다. 왜 그런지 살펴보자. 먼저, 크리스 하먼은 좌파 민족주의의 등장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자주 계열은 한국진보연대 결성 과정에서 “상층 정파 논쟁에 휘말려 전선 운동을 둘러싼 대립과 분열이 발생”했다며 한국진보연대 실패의 원인을 좌파 정치 단체들의 ‘분열주의’적 태도 탓으로 돌린다.제3세계와 신흥공업국들에서 … 국가가 민중의 이익을 무시하는 것은 그것이 외세의 도구이고 외세가 강요한 ‘신식민지’나 ‘반식민지’ 국가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외세의 영향력을 제거하고 국가를 공통의 민족 이익 보유고로 재건하기 위해 현재의 국가를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 경향으로 좌파 민족주의가 등장한다.
18 그리고 그것을 위해 범계급적으로 단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에게는 남북화해가 계급투쟁에 선행해야 한다.
한국의 좌파 민족주의는 일제 식민지 경험, 외세에 의한 분단 상황, 친미 군사독재의 경험과 미국의 여전한 지배적 영향력 등에 대한 광범한 대중의 반감에 토대를 두고 있다. 자주 계열 지도자들은 민족 통일을 이 모든 문제들의 (마술적) 해결책으로, 따라서 가장 중요한 과제로 본다. “자주통일운동에 대한 진보운동의 전략적 지향을 강화하고 … 통일에 대한 비전 없이 대안 세력으로 성장하는 것도 불가능하다.”19 칭송하기도 했고, 이들이 죽었을 때 북한 당국은 조문단까지 보냈다. 그러나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보면 현대그룹 정주영 일가는 노동조합을 탄압하려고 식칼 테러까지 서슴지 않는 노동자의 적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현대차 비정규 노동자들의 점거 농성을 파괴하려고 농성장 전기를 차단하고 물 공급도 중단하는 잔인한 짓을 서슴지 않고, 손해 배상 협박, ‘배부른 불법파업’, ‘외부단체 개입설’ 등 이데올로기 공격도 계속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민족화합적’ 자본가들과 냉전적 자본가들을 구별한다. 가령, 죽은 현대그룹 회장 정주영은 ‘민족 자주’의 관점에서 보면 통일 인사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정주영 회장과 정몽헌 회장이 남북관계의 새로운 길을 연 개척자”라며마찬가지로, 자주 계열이 남북화해의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다고 보는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당사자인 김대중과 노무현도 자주 계열의 정치대로라면 협력해야 할 통일 인사다. 실제로 자주 계열은 종종 ‘남북화해’와 계급투쟁이 충돌하는 듯한 상황에서는 정부의 공격에 맞선 노동계급의 투쟁을 선뜻 지지하기를 꺼렸다. 가령,
2000년 남북정상회담 국면에서 일어난 롯데호텔노조·사회보험노조 탄압에 주체주의자들은 침묵했다. 김정일은 공개적으로 “민족 앞에 계급의 이익을 앞세우지 말라”며 김대중이 남한 노동자 운동을 맘껏 탄압하도록 허용했다. … [자주 계열은] 김대중이 북한에 화해적이고 협력적인 정책을 추구하려 애쓰는 듯하다 해서 그를 공격하는 것을 기피했다. 이후 김대중은 이를 이용해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진보진영 다수파를 서로 이간함으로써 노동자 투쟁을 억제하려 해 왔다.
문제는 두 자유주의 정권 하에서 신자유주의 공격을 경험한 민주노총 소속 선진 노동자들이 ‘민족 자주’를 위해 김대중·노무현과 함께할 수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김대중과 노무현이 과연 미국으로부터 자주적이었느냐 하는 문제 자체에 의문의 여지가 아주 많다.
따라서 자주 계열의 ‘민족 자주’ 이데올로기와 자민통 강령으로는 계급투쟁의 어느 수위 이상에서는 민주노총 지도부가 제안한 상설연대체의 기본 취지인 “노동계급의 단결 강화”를 성취할 수 없다. 물론 좌파 민족주의는 강력한 반제 투쟁을 일으킬 수 있고, ‘민족의 이해’를 대변하지 않는 정권에 맞선 투쟁도 고취시킬 수 있다. 그러나 착취자와 피착취자를 묶는 공통의 민족적 이해가 있다는 사상 때문에 노·자 간 계급연합 전략을 추구하기 쉽다. 자주 계열은 민족적 과제 해결의 가장 커다란 방해 요인인 미제국주의와 한나라당에 맞선 투쟁이 우선돼야 하고 이를 위해 중간계급이나 민족적 부르주아지와 동맹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문제는 이런 동맹이 동맹 세력들이 허용하는 수준으로 투쟁 수위를 낮추라는 압력에 빈번히 노출된다는 점이다. 예컨대, 2008년 촛불운동 때 이 점이 잘 드러났다. 2008년 6월 10일 1백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촛불운동이 정점에 도달했을 때 민주당이 한나라당의 국회 정상화 제안을 받아들여 등원 쪽으로 가닥을 잡자 개혁주의자들은 ‘거리의 정치’를 그만두고 운동의 성과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본격적으로 폈다. 그러자 개혁주의자들의 뒤꽁무니를 좇는 한국진보연대는 촛불운동의 속도 조절을 시도했고, 특히 노동계급의 작업장 투쟁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반대했다. 이명박 퇴진 요구를 반대했음은 물론이다. 그리하여 결정적 시점에 운동의 김을 뺐다.
지난해에도 노무현 자살로 표면화된 반이명박 정서는 운동으로 발전해 6월 10일 6만 명이 시청 앞에 모이는 범국민대회에서 정점에 올랐다. 이날 시위는 같은 시기 대량 해고에 맞서 점거 파업을 하고 있던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자신감을 줬다. 그러나 민주당은 아래로부터의 격앙된 대중 정서에 부담을 느껴 범국민대회 직후 숨 고르기에 들어갔고, 개혁주의자들과 한국진보연대는 민주당의 눈치를 보며 운동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이명박은 반정부 운동이 민주당을 추수하는 개혁주의 세력의 통제로 가라앉자, 재빠르게 언론악법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이어서, 외로이 점거 파업을 하던 쌍용차 노동자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했다.
언론악법 저지 투쟁에서도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배신적으로 타협하자 그동안 민주당을 추수한 개혁주의자들은 뒤통수 맞은 신세가 됐다. 최근에도 민주당이 KEC 점거 파업의 중재자로 나서자,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금속노조 지도부는 민주당을 추수해 성과도 없이 점거 농성을 해제시키는 데 한몫했다.
21 보여 준다.
요컨대, 자주 계열이 주도하는 민주당 추수하기는 “민주당의 강령 수준을 넘지 않고, 민주당을 공개 비판하지 않아, 민주당과 최소공배수적 동맹을 유지하는 ‘민주대연합’ 노선이 개혁주의의 문제점을 낳고 있음”을 기업주들이 한나라당뿐 아니라 민주당에도 고액의 후원금을 바치는 것을 보면 민주당이 누구의 이해를 대변하는지 단번에 알 수 있다. 민주당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간 노동계급에게 고통을 강요한 장본인이다. 지금도 민주당은 집권 시절 추진한 비정규직 악법 제정, 이라크 파병, 한미FTA 등을 공개적으로 반성하거나 태도를 바꾼 적이 없다. 그럼에도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는 민주당과 연합을 맺고자 “상대방의 잘못은 뒤로 제쳐두고” “10년 해 온 싸움도 미뤄둘 의향이 있다”고 했다. 이런 실천의 결과 《한겨레21》이 꼬집듯이 “두 당의 정체성 차이는 크지 않은 것으로 비쳤다.” 진보진영이 민주당과 연합을 하고 정치적 비판을 자제한다면 어느 단계에 가서는 투쟁 참가자들의 사기가 떨어질 뿐 아니라 광범한 단결을 통해 대중투쟁을 건설하겠다는 상설연대체가 오히려 대중투쟁의 전진을 가로막는 구실을 할 수도 있다. 민주노총이 주도해 만든 ‘반MB공투본’이 대표 사례다. “반MB연합이 ‘민주연합’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진보연합’이어야 하는가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졌다. … 그러나 대부분의 단체들은 어차피 단체 간 이견 때문에 서로 합의할 수 없는 것이라 여기고 반MB공투본 내 논의를 회피했다. 이 과정에서 반MB공투본은 완전히 마비됐다.”상설연대체 논의 재개 - 그러나 이견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지난 5월 이후 중단된 상설연대체 건설 논의는 민주노총의 제안으로 10월 초에 재개됐다. 그러나 앞서 제기한 쟁점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지난 10월 19일 민주노총이 주최한 ‘상설연대체 건설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에서도 “민주노총 내 각 정파와 시민단체들[원문 그대로]은 새로운 상설연대체 건설에 동의를 표하면서도 건설 방법·시기·운영 방안을 두고 조금씩 의견을 달리했다.”
25 목표를 밝혔고, 한국진보연대 소속 자주 계열 단체들은 ‘민족 자주’ 이데올로기와 자민통 강령을 고집하며 ‘민족 공조의 일 주체’였던 김대중과 노무현 계승자들(민주당, 참여당)과의 계급 동맹을 주장한다. 자주 계열이 지도부의 다수파인 민주노동당도 “[민주당과의 선거연합으로] 민주당, 국민참여당 지지자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이것은 민주노동당이 멀리 보고 민심에 투자한 것이라 확신한다”며 26 반MB 민주연합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 그럼에도 상설연대체 논의에서 계급연합에 반대하는 선명 좌파들의 주장을 접한 자주 계열은 “민주당과 계급연합은 해당 조직이 판단할 문제이지 상설연대체가 강제하거나 논의할 사항이 아니”라며 27 쟁점을 회피하고 있다.
여전히 민주노총 지도부는 상설연대체 제안문에 “범민주 세력까지 견인”한다는지난 두 달 동안 진보진영의 여러 단체들은 2010년 12월 안으로 새로운 상설연대체 준비위를 출범시킨다는 목표로 회의와 토론회를 여러 차례 진행했다. 그러나 앞서 제기한 이견은 전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자주 계열은 여전히 한국진보연대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는 자기 성찰적 평가를 하지 않고 있고, 이것은 투쟁의 구심 구실을 해야 할 진정한 상설연대체의 출범을 요원하게 만들고 있다.
28 중심으로 구축되는 것이 단결을 이루는 데 효과적일 것이다.
상설연대체는 이데올로기와 정치 강령, 선전을 중심으로 할 것이 아니라 경제 위기 고통 전가의 내용을 이루는 많지 않은 구체적 쟁점(대량해고, 임금동결과 삭감, 복지 축소, 민주주의, 전쟁과 파병 등), 즉 행동강령을필자 최영준은 고전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하는 좌파 단체 다함께의 연대협력국장이다.
주
- 김하영 2009, p89. ↩
- 2009년 10월 15일 진보·민중 단체 2백63곳이 참가해 출범한 ‘이명박 심판, 민주주의, 민중생존권 쟁취 공동투쟁본부’의 약칭. ↩
- 지난 10월 19일 민주노총이 주최한 ‘상설연대체 건설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한 말. ↩
- 양태조 2010. ↩
- 최진미 2010, p47. ↩
- <민중의소리>(2006.9.5). ↩
- 사회진보연대 정책위원회 2010. ↩
- 정대연 2010. ↩
- <진보정치>(2010.10.15). ↩
- 정대연 2010. ↩
- 김하영 2007. ↩
- 최일붕 외 2008, p95. ↩
- <참세상>(2007.1.9). ↩
- <민중의소리>(2007.8.19). ↩
- 정대연 2010. ↩
- 지난 10월 19일 민주노총이 주최한 ‘상설연대체 건설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장대현 한국진보연대 집행위원장은 “한국진보연대가 출범 때부터 반쪽짜리가 된 것은 대중 조직 대 정치 단체 간의 분열” 때문이라고 했다. ↩
- 하먼 2010, p140. ↩
- 정대연 2010. ↩
- <민중의소리>(2009.8.17). ↩
- 김하영·최일붕 2006. ↩
- 최일붕 2009. ↩
- 《한겨레21》(2010.2.9). ↩
- ‘반MB공투본’ 활동 평가 자료집(2010.8.12). ↩
- <매일노동뉴스>(2010.10.20). ↩
- 양태조 2010, p10. ↩
- 우위영 2010. ↩
- 한국진보연대 장대현 집행위원장이 지난 10월 19일 민주노총이 주최한 ‘상설연대체 건설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한 말. ↩
- 행동강령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다함께 웹사이트 http://www.alltogether.or.kr/2_aboutus/2_require.jsp를 참조하시오. ↩
참고 문헌
김하영 2007, ‘다함께가 한국진보연대(준)에 불참하는 이유’, <맞불> 31호 (2007.2.10).
김하영 2009, ‘진보진영의 연대, 연합 어떻게 할 것인가?’, 《마르크스21》 4호(2009년 겨울).
김하영·최일붕 2006, 《개량주의와 변혁전략》, 다함께.
사회진보연대 정책위원회 2010, ‘한국진보연대에 대한 반성적 평가 없는 민주노총의 상설연대체 건설 계획은 전면 수정되어야 한다’, <사회화와 노동>(2010.4.27),
http://www.pssp.org/bbs/view.php?board=sola&id=674&page=3
양태조 2010, ‘새로은 상설연대체, 방향과 상에 대하여’, 민주노총 주최 ‘새로운 상설연대체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 토론회(2010.10.19) 자료집.
우위영 2010, ‘반MB연합과 진보대연합 병행 추진돼야’, <민중의소리>(2010.7.3).
정대연 2010, ‘2012년 진보운동의 대도약을 위한 다섯 가지 과제’, 한국진보연대 진보포럼(2010.1.23~24) 자료집.
최일붕 2009, ‘상반기 정치투쟁의 연장이자 대미 장식으로서 쌍용차 투쟁’, <레프트21> 13호(2009.8.29).
최일붕 외 2008, 《민주노동당의 위기》, 다함께.
최진미 2010, ‘민주노총에서 제안한 ‘상설연대체 건설’에 대한 전국여성연대 입장’, 민주노총 주최 ‘새로운 상설연대체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 토론회(2010.10.19) 자료집.
하먼, 크리스 2010, 《새로운 제국주의론》, 책갈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