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 : 어떤 전략과 전술인가?
고전에서 배운다
코민테른에 제출한 트로츠키의 공동전선 테제 *
1. 공동전선에 대한 일반적 고려 사항
1) 공산당의 임무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지도하는 것이다. 노동계급에게 직접 권력을 장악하라고 호소하고 혁명을 성공시키려면 공산당은 압도 다수의 노동계급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다수를 얻지 못했다면, 공산당은 노동계급 다수를 설득하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
이런 임무를 달성하려면 공산당은 분명한 강령과 엄격한 내부 규율이 있는, 완전히 독립적인 조직이어야 한다. 이 때문에 당은 개혁주의자나 중간주의자 들(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이루려 애써 싸우지 않고, 대중이 혁명을 준비하도록 할 능력도 의욕도 없고, 오히려 이런 일을 방해하는 활동만 하는 자들)과 이데올로기적으로나 조직적으로 갈라서야 한다.
따라서 공산당원 가운데 “세력 통합”이나 “전선의 단결”을 들먹이며 중간주의자들과 갈라선 것을 안타까워하는 사람은 공산주의의 기초도 모르는 사람이고 스스로 순전히 우연하게 공산당에 가입했음을 보여 줄 뿐이다.
2) 공산당은 당원들의 완전한 독립성과 이데올로기적 동질성을 확보한 뒤에, 노동계급 다수에게 영향을 끼치려고 투쟁한다. 이런 투쟁은 객관적 상황과 채택한 전술의 적절성에 따라 촉진될 수도 있고 지체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혁명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프롤레타리아의 계급투쟁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경영주·부르주아지·국가권력과 노동계급의 충돌은 어느 쪽이 먼저 시작하든 필연적으로 벌어지기 마련이다.
이런 충돌에 노동계급 전체나 다수 또는 이런저런 노동자 부문의 중대한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면 노동계급 대중은 이런 충돌 과정에서 행동 통일의 필요를 깨닫고, 자본주의의 강력한 공격에 저항하거나 자본주의를 공격할 때 단결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는다. 이와 같은 노동계급의 행동 통일 필요성에 기계적으로 반발하는 정당은 반드시 노동자들한테 비난받을 것이다.
1 사이의 상호 관계 문제가 결코 아니다. 이 시대에는 노동계급에 기반을 둔 다양한 정치 조직들의 분열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공동전선 문제는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에서 노동계급이 공동전선을 펴야 할 긴급한 필요에서 비롯한다.
따라서 공동전선 문제는 그 기원에서 보든 본질에서 보든 공산당 의원단과 사회당 의원단,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사회당 중앙위원회, 〈뤼마니테〉와 〈르포퓔레르〉이런 과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당은 선전 단체일 뿐, 대중 행동을 도모하는 조직은 아니다.
3) 공산당이 아직은 수가 얼마 안 되는 조직인 곳에서는 대중투쟁 전선에서 활동하는 문제가 실천적으로나 조직적으로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는 오래된 조직들이 여전히 강력한 전통 덕분에 결정적 구실을 하면서 대중 행동을 이끈다.
마찬가지로 공산당이 노동 대중을 지도하는 유일한 조직인 나라들(예를 들어, 불가리아)에서도 공동전선 문제는 제기되지 않는다.
그러나 공산당이 이미 규모가 크고 조직된 정치 세력이 됐으나 아직 결정적 규모에 이르지 못한 곳, 예를 들어 조직된 선진 노동자의 4분의 1이나 3분의 1, 또는 그보다 더 큰 부분을 조직적으로 포괄하는 곳에서 공산당은 공동전선 문제에 첨예하게 부딪힌다.
선진 노동자의 3분의 1이나 절반이 공산당에 속한다면, 나머지 절반이나 3분의 2는 개혁주의 정당이나 중간주의 정당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개혁주의 정당과 중간주의 정당을 여전히 지지하는 노동자들도 생활수준을 최선으로 유지하고 투쟁의 자유를 최대한 누리는 데 큰 관심이 있다는 것은 아주 분명하다. 따라서 우리는 미래에 노동계급 전체를 포괄하게 될 공산당이 지금 노동자 투쟁을 가로막는 조직적 장애물이 되지 않게 해 줄 전술들을 발전시켜야 한다.
더욱이, 공산당은 이와 같은 현재 투쟁들에서 단결을 이루려고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공산당은 당을 잘 알지 못해 아직까지 공산당을 지지하지 않고 신뢰하지 않는 나머지 3분의 2의 노동자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만 공산당은 그 노동자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4) 공산당이 사회민주당과 철저히 그리고 돌이킬 수 없게 갈라서지 않는다면,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지도하는 당이 되지 못할 것이다. 공산당은 혁명으로 가는 길에 중대한 첫걸음을 내디딜 수도 없을 것이다. 공산당은 부르주아 국가의 부속품 같은 의회 안전판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공산주의의 기초에서 첫째 항목을 모르는 것이다.
공산당이 매순간 공산당과 비공산당(사회민주당을 포함해) 노동자 대중이 공동 행동을 할 수 있는 조직적 방안을 끝까지 모색하지 않는다면, 공산당은 (대중 행동을 바탕으로) 노동계급 다수를 설득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 드러날 것이다. 공산당은 공산주의 선전 단체로 전락해, 권력을 장악하려는 당으로 결코 발전하지 못할 것이다.
칼을 갖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 칼날을 세워야 한다. 칼날을 세우는 것으로도 충분치 않다. 칼을 휘두르는 법도 알아야 한다.
개혁주의자들과 갈라선 공산주의자들이 조직 규율에 따라 융합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이 조직은 프롤레타리아의 모든 일상 투쟁 분야에서 집단적 활동을 지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것이 공산주의의 기초에서 둘째 항목이다.
5) 공동전선은 노동자 대중만 포함하는가 아니면 기회주의적인 지도자들도 포함하는가?
이런 질문 자체가 오해에서 비롯한 것이다.
우리 자신의 깃발이나 우리의 실천적인 당면 구호로 노동자 대중을 단결시키고 개혁주의 조직들을(정당이든 노동조합이든) 그냥 건너뛸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일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그렇다면 공동전선 문제 자체가 지금 같은 형태로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다.
문제는 바로 이 점, 다시 말해 노동계급의 매우 중요한 일부가 개혁주의 조직에 속해 있거나 개혁주의 조직을 지지한다는 데서 비롯한다. 그런 노동자들은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개혁주의 조직을 떠나 우리에게 가입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이 대중 활동에 실제로 참가한 후에야 이런 관계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바로 그런 변화를 불러일으키려고 우리는 힘쓴다. 그러나 아직은 그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오늘날 노동계급의 조직된 부분은 세 진영으로 나뉘어 있다.
이런 이유로 현재 노동 대중이 착취자들과 부르주아 국가에 맞서 벌이는 운동 일체(아무리 부분적인 운동이라도)를 지지한다.
첫째, 공산당은 사회 혁명을 이루려 애쓰며 바로둘째, 개혁주의 정당은 부르주아지와 화해하려 애쓴다. 그러나 개혁주의 정당은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잃지 않으려면, 피착취자들이 착취자에 맞서 벌이는 부분적 운동들을 (개혁주의 지도자들의 진정한 속내를 거슬러) 지지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셋째 집단인 중간주의 정당은 다른 두 진영 사이에서 끊임없이 동요한다. 그래서 독립적 중요성이 없다.
따라서 현재 상황에서는 이 세 조직으로 모인 노동자들과 그 조직들을 따르는 미조직 대중이 핵심 쟁점을 두고 공동으로 행동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앞서 말했듯이, 공산당은 그러한 공동 행동에 반대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앞장서야 한다. 그것은 투쟁의 애초 구호가 아무리 보잘것없더라도, 더 많은 대중이 운동에 동참할수록 대중의 자신감이 높아지고, 대중운동의 자신감이 더 높을수록 운동은 더욱 단호하게 전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운동의 규모가 커지면 운동이 급진화하는 경향이 있고, 공산당의 구호, 투쟁 방법, 일반적으로는 지도적 구실에 훨씬 더 유리한 상황이 조성되는 것이다.
개혁주의자들은 대중운동의 혁명적 잠재력을 두려워한다. 개혁주의자들이 좋아하는 무대는 의회 연단, 노조 사무실, 중재 기구, 장관 면담실이다.
그와 반대로, 우리는 (다른 모든 고려 사항 외에도) 개혁주의자들을 그들의 은신처에서 끌어내 투쟁하는 대중이 보는 앞에서 그들을 우리 곁에 세우는 데 관심이 있다. 우리의 전술이 올바르다면 그렇게 해서 우리가 손해 볼 것은 없다. 이 점을 의심하거나 두려워하는 공산당원은 최상의 수영법에 관한 명제들은 알면서도 감히 물에 뛰어들지는 못하는 사람과 비슷하다.
6) 따라서 전선의 단결은 개혁주의 조직들이 오늘날 곤경에 처한 프롤레타리아 상당수의 의지를 여전히 표현하는 한, 우리가 일정한 한계 내에서 특정 쟁점을 둘러싸고 실제로 개혁주의자들과 공동 행동을 할 태세가 돼 있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는 개혁주의자들과 갈라서지 않았는가? 그렇다. 우리는 노동계급 운동의 근본적 문제들을 바라보는 견해가 그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개혁주의자들과의 협약을 맺으려 하는가? 그렇다. 그들을 따르는 대중이 우리를 따르는 대중과 함께 공동 투쟁에 참가할 태세가 돼 있고 그들 개혁주의자들이 어느 정도는 이런 투쟁의 수단이 될 수밖에 없을 때는 우리는 그들과 협약을 맺으려 한다.
그러나 개혁주의자들은 우리가 그들과 갈라서고도 여전히 자기들을 원한다고 떠들어 대지 않을까? 그렇다. 그들은 그렇게 떠들 것이다. 우리 대열 여기저기서도 누군가는 그런 말에 겁을 먹을 것이다. 그러나 광범한 노동 대중은(심지어 우리를 지지하지 않고 아직 우리 목표를 이해하지 못한 채 두세 개의 지도적인 노동자 조직들이 단순히 병존한다고 생각하는 노동자들도) 우리의 행동을 보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것이다. 분열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대중의 행동 통일을 위해 온 힘을 쏟고 있다고 말이다.
7) 물론 공동전선 실현을 목표로 하는 정책이 모든 경우에 저절로 행동 통일을 실제로 이뤄낼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반대로, 많은 경우에 그리고 아마도 대다수 경우에 단체들 사이의 협약은 반쯤만 이뤄지거나 전혀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투쟁하는 대중은 항상 다음과 같은 점을 스스로 확신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 즉, 행동 통일이 이뤄지지 않은 것은 공산당의 형식적인 비타협성 탓이 아니라 개혁주의자들에게 진정한 투쟁 의지가 없기 때문이라는 점 말이다.
다른 단체들과 협약을 맺으면, 우리는 당연히 일정한 행동 규율을 따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규율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개혁주의자들이 투쟁에 브레이크를 걸면서 운동에 분명한 손실을 가져오고 상황과 대중 정서에 맞지 않게 행동한다면, 우리는 항상 독립적인 조직으로서 투쟁을 끝까지 지도할 권리가 있고, 우리의 일시적인 동맹 세력들이 없더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이 때문에 우리와 개혁주의자들 사이의 투쟁이 다시 첨예해질 수 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우리가 이제 더는 골방 서클 안에서 똑같은 사상을 그저 되풀이하지 않고, 우리의 전술이 올바르다면 우리 영향력이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집단에게 확대될 것이다.
8) 이런 정책을 개혁주의자들과의 화해라고 보는 것은, 편집실에 틀어박혀서 개혁주의를 의례적으로 비판하면 개혁주의를 떨쳐낼 수 있다고 믿는 언론인의 관점에서나 가능하다. 그런 언론인은 노동 대중의 눈앞에서 개혁주의자들과 맞붙는 것, 노동자들이 공산당과 개혁주의 정당을 대중투쟁이라는 동등한 잣대로 평가할 기회를 얻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처럼 “화해”를 두려워하는, 언뜻 보면 혁명적인 듯한 태도의 이면에는 현 상태를 유지하려는 정치적 수동성이 도사리고 있다. 다시 말해, 공산당과 개혁주의 정당이 서로 엄격히 분리된 각자의 세력권, 집회 청중, 간행물을 그대로 유지하고 이 모든 것이 만만찮은 정치투쟁이라는 환상을 만들어 내는 상황을 존속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9) 우리는 노동운동 내부의 배반, 배신, 머뭇거림, 미적지근함을 완전히 자유롭게 비판하려고 개혁주의자들, 중간주의자들과 갈라섰다. 따라서 우리가 비판하고 선동할 수 있는 자유를 제한하는 조직적 협약은 어떤 것이든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는 공동전선에 참여하지만 단 한순간도 공동전선에 용해돼서는 안 된다. 우리는 공동전선 안에서 독립적 파견 부대 노릇을 한다. 투쟁에 참가하면서 광범한 대중은 우리가 다른 자들보다 더 효과적으로 싸운다는 것, 우리가 다른 자들보다 더 명확히 사태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 우리가 더 대담하고 단호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공산당의 확실한 지도 아래 단결한 혁명 전선 구축을 더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2. 프랑스 노동운동 안의 단체들
10)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의 정책 전체에서 이끌어 낸 앞의 테제들을 토대로 공동전선 문제를 프랑스에 적용하려면, 스스로 다음과 같이 물어봐야 한다. 실천 활동으로 볼 때 공산당은 보잘것없는 소수파일 뿐인가? 아니면 반대로 조직 노동자의 압도 다수를 아우르고 있는가? 아니면 그 둘 사이의 어디쯤에 있는가? 다시 말해 공산당의 대중 운동 참여가 매우 중요할 만큼 공산당이 꽤 강력하지만, 누구나 그 지도력을 인정할 만큼 공산당이 강하지는 않은 상황인가?
프랑스 공산당이 확실히 마지막 경우에 해당한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11) 정당 분야에서 공산당은 개혁주의 정당보다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공산당의 조직과 신문은 그 발행 부수, 내용의 풍부함, 활력 면에서 이른바 사회당의 조직이나 신문보다 훨씬 뛰어나다.
그러나 이렇게 압도적으로 우세한데도 프랑스 공산당은 프랑스 프롤레타리아에게 완전하고 확실한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프랑스 프롤레타리아가 여전히 정치와 정당에 반대하는 경향과 편견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고, 활동 무대가 주로 노동조합이기 때문이다.
12) 프랑스 노동운동의 두드러진 특성은 노동조합이 오랫동안 생디칼리즘이라는 독특한 반反의회주의 정당을 가리는 외피나 덮개 구실을 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혁명적 생디칼리스트들이 자신들과 정치·정당을 아무리 구별하려 해도, 그들 자신도 노동계급의 노동조합 조직에 기반을 두려는 하나의 정당이라는 사실을 결코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당에는 나름으로 적극적이고 혁명적이며 프롤레타리아적인 경향이 있지만, 또 매우 부정적인 특성도 있다. 다시 말해 생디칼리스트들에게는 제대로 된 강령과 포괄적인 조직이 없다는 것이다. 노동조합 조직과 생디칼리스트 조직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조직상의 의미에서 생디칼리스트들은 노동조합에 이식된 무정형의 정치적 중핵이다.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생디칼리스트들이 노동계급의 여느 정치 단체들과 마찬가지로 제1차세계대전 후에 두 분파로 나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부르주아 사회를 지지하므로 의회주의적 개혁주의자들과 손잡을 수밖에 없는 개혁주의자들과, 부르주아 사회를 전복할 방법을 찾고 있는 혁명적 분파로 나뉜 것이다. 이 혁명적 분파 가운데 최상의 인물들은 공산주의 쪽으로 기울고 있다.
이렇게 계급 전선의 단결을 유지하려는 염원은 공산당뿐 아니라 혁명적 생디칼리스트들도 고무해서 그들이 프랑스 프롤레타리아의 노동조합 조직의 단결이라는 완전히 올바른 전술을 기꺼이 채택하게 했다. 반대로주오와 메렝[둘 다 개혁주의 생디칼리스트 지도자] 일당은 노동계급이 보는 앞에서는 행동이나 투쟁에서 혁명적 분파와 겨룰 수 없음을 감지한 파산자답게 본능적으로 분열의 길을 택했다. 지금 프랑스 노동조합 운동 전체에서 벌어지고 있는 엄청나게 중요한 투쟁, 즉 개혁주의자들과 혁명가들 사이의 투쟁은 우리에게는 노동조합 조직과 노동조합 전선의 단결을 위한 투쟁이기도 하다.
3. 노동조합 운동과 공동전선
13) 프랑스 공산당은 바로 그런 공동전선 발상을 주장하는 데 매우 유리한 처지에 있다. 정치 조직으로서 프랑스 공산당은 옛 사회당 다수파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자 기회주의자들은 자신들에게 붙은 다른 온갖 정치적 딱지에다 “디시당Dissidents”, 즉 분열주의자라는 딱지를 덧붙이게 됐다. 우리 프랑스 공산당은 이 사실을 이용해 사회주의적 개혁주의 조직을 디시당 파(분열주의자)로 낙인찍고, 개혁주의자들이 행동 통일과 조직상의 단결을 모두 방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14) 노동조합 운동 분야에서 혁명적 진영, 특히 공산당은 모스크바[혁명적인 제3인터내셔널]와 암스테르담[1919년 설립된 기회주의적이고 개혁주의적인 노동조합 국제 조직] 사이의 차이가 얼마나 엄청난지를 자신이나 적들에게 숨길 수 없다. 이런 차이는 결코 노동운동 대열 안의 사소한 차이가 아니라 현대 사회를 완전히 분열시킨 가장 심각한 모순, 다시 말해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 사이의 모순을 반영한다. 그러나 동시에 혁명적 진영, 다시 말해 가장 의식적인 공산주의자들은, 앞서 말했듯이 어떠한 경우에도 노동조합에서 뛰쳐나오거나 노동조합 조직을 분열시키는 전술을 제안하지 않았다. 그러한 구호는 종파주의 단체인 “지역주의자들localists”, 독일의 공산주의노동자당KAPD, 프랑스의 일부 “자유지상주의” 아나키스트 소그룹의 특징일 뿐이다. 그들은 광범한 노동자 대중에게 전혀 영향력도 없고, 이런 영향력을 얻으려는 생각도 없고 노력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저마다 엄격히 제한된 신도들을 거느린, 자신만의 조그만 교회에 만족한다. 프랑스 생디칼리스트 가운데 진정으로 혁명적인 사람들은, 노동조합 운동 분야에서 프랑스 노동계급을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은 대중 행동 무대에서 개혁주의적 관점과 방법에 맞서 혁명적 관점과 방법을 제기하면서도 되도록 최고 수준의 행동 통일을 유지하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15) 혁명적 진영이 노동조합 조직들에서 세포 시스템을 채택한 것은 조직의 단결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도 전선의 단결과 사상적 영향력을 획득하는 투쟁의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이기 때문이지 그 밖의 다른 뜻은 없다.
16) 사회당의 개혁주의자들처럼 노동조합 운동의 개혁주의자들도 분열에 앞장서고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사회당의 경험을 보면서 노동조합 개혁주의자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즉, 시간이 갈수록 공산당이 유리해질 테니 경험과 시간의 영향을 상쇄하려면 분열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프랑스 노동총동맹CGT의 지배 분파가 좌파를 무너뜨리고, 좌파한테서 노동조합 규약으로 보장된 권리들을 빼앗고, 마침내 공공연한 제명 조처로 좌파를 노동조합에서 추방하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한 것(모든 규약과 규칙을 어기고)을 보았다.
반대로 혁명적 진영은 노동자 조직의 민주적 규범을 근거로 자신의 권리를 지키려고 싸우면서, 위에서 강요하는 분열에 맞서서 현장조합원들에게 노동조합 조직의 단결을 호소하며 온 힘을 다해 저항하고 있다.
17) 지각 있는 프랑스 노동자라면 분명히 다음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이 사회당의 6분의 1이나 3분의 1을 차지할 때 그들은 조직 분리를 시도하지 않았다. 가까운 시일 내에 틀림없이 당의 다수가 자신들을 지지할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개혁주의자들은 세력이 3분의 1로 쪼그라들자 즉시 분리해 나갔다. 선진 노동자의 다수를 다시 설득할 것이라는 희망을 전혀 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지각 있는 프랑스 노동자라면 다음 사실도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혁명가들은 노동조합 운동 문제에 부딪혔을 때 자신들이 여전히 보잘것없는 소수파였으므로 공통의 조직에서 활동하면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로 결정했다. 혁명적 상황에서 투쟁을 경험하면 대다수 조직 노동자는 재빨리 혁명적 강령으로 끌릴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혁주의자들은 노동조합 안에서 혁명적 진영이 성장하는 것을 감지하고 혁명가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가망이 전혀 없게 되자 즉시 제명과 분열이라는 수단에 의지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매우 중요한 결론을 얻는다.
첫째, 앞서 말했듯이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 사이의 모순을 반영하는 불화의 골이 매우 깊다는 사실이 명확히 드러났다.
둘째,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민주주의”가 위선적이라는 사실이 철저히 폭로됐는데, 이 신사 양반들은 국가라는 틀뿐 아니라 노동자 조직의 틀에서도 민주적 방법을 용납하지 못한다. 그들은 노동자 조직과 사이가 틀어질 때마다 사회당의 디시당 파처럼 분열해 나가거나 주오·뒤물랭 파벌처럼 다른 사람들을 쫓아낸다. 노동조합과 정치 조직 안에 있는 부르주아지의 졸개들마저 스스로 선택한 노동자 민주주의 규범에 따라 노동운동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반대하는 마당에, 부르주아지가 프롤레타리아와의 투쟁을 민주주의라는 틀 안에서 해결하는 데 동의할 것이라는 생각은 정말로 말도 안 된다.
18) 노동조합 조직과 노동조합 활동을 단결시키려는 투쟁은 앞으로도 공산당의 가장 중요한 과제의 하나일 것이다. 이 투쟁은 훨씬 더 많은 노동자를 공산당의 강령과 전술에 맞춰 단결시키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기도 하고, 이런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서 공산당이 직접적으로든 노동조합 안의 공산당원을 매개로 해서든, 조직 분열로 말미암아 노동자 운동이 부딪힌 장애물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하는 것이기도 하다.
2 조직 노동자의 절반이나 그 이상이 가입하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CGTU가 개혁주의적 CGT의 존재를 그저 무시하며 활동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랬다가는 프롤레타리아가 전투적 행동을 함께할 가능성이 (완전히 차단되지는 않더라도) 몹시 낮아질 것이고, 동시에 개혁주의적 CGT가 파업·시위 등에서 시민연맹La Ligue Civique과 3 비슷한 구실을 하면서 부르주아지에게 이로운 짓을 하기가 매우 쉬워질 것이다. 그랬다가는 또, 혁명적 CGTU가 부적절한 행동을 공공연히 선동했으며 그것에 완전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개혁주의적 CGT의 주장이 정당한 것처럼 보일 것이다. 가능하다면 모든 경우에 혁명적 CGTU는 어떤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는 항상 공동 행동의 구체적 계획을 다룬 특정한 제안과 요구를 개혁주의적 CGT에 공개적으로 제시해야 하고, 노동자들의 여론으로 압력을 가하고, 개혁주의자들이 망설이고 회피할 때마다 그 사실을 노동자 대중에게 폭로해야 한다.
단결을 회복하려는 우리의 모든 노력에도 CGT의 분열이 가까운 장래에 확정되더라도, 앞으로 통일노동총동맹CGTU에이렇게 해야, 노동조합 조직의 분열이 고착화하더라도 공동전선을 위한 투쟁 방법이 그 의미를 잃지 않을 것이다.
19) 그러므로 노동운동의 가장 중요한 분야, 즉 노동조합과 관련한 공동전선 전술에 필요한 것은 주오 일당에 맞서 우리가 이미 시작한 투쟁과 함께 앞에서 말한 구체적 투쟁 방법들을 전보다 더 일관되고, 더 끈덕지고 단호하게 적용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4. 정치투쟁과 공동전선
20) 정당 분야에서는, 우선 조직과 신문 모두 공산당이 사회당보다 압도적으로 우세하다는 점이 노동조합과의 큰 차이다. 그래서 우리는 공산당이 정치 전선을 확실히 단결시킬 수 있고 따라서 디시당 파 조직에 모종의 구체적 행동을 제안할 절박한 이유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말뿐인 급진주의를 바탕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세력 관계 평가를 바탕으로 제기하는 방식이 아주 효율적이고 타당할 뿐 아니라 상당한 장점이 있다.
21) 공산당 당원은 13만 명에 이르지만 사회당 당원은 3만 명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프랑스에서 공산주의 사상이 크게 성공했음을 뚜렷이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숫자와 전체 노동계급 규모의 관계를 고려하고, 혁명적 노동조합 안의 반공산당 경향과 개혁주의적 노동조합의 존재도 고려하면, 노동운동 안에서 공산당의 주도권 문제는 디시당 파보다 우리가 수가 많다고 해서 저절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디시당 파는 특정 상황에서는 그들의 빈약한 조직력과 신문 〈르포퓔레르〉의 보잘것없는 발행 부수와 사상적 내용으로만 판단할 때보다 훨씬 더 심각한 노동계급 내 반혁명적 세력이 될 수도 있다.
22) 정세를 평가하려면, 이런 정세가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옛 사회당 다수파가 공산당으로 변신한 것은 전쟁으로 유럽 모든 나라에서 불만과 반란의 물결이 인 결과였다. 러시아 혁명의 본보기와 제3인터내셔널의 구호들은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부르주아지는 1919~20년에 무너지지 않고 그럭저럭 버텨냈고 다양한 수단을 써서 전후 토대 위에서 어느 정도 균형을 확립할 수 있었다. 이 균형은 매우 끔찍한 모순 때문에 무너지고 있고 어마어마한 파국으로 치닫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현재와 가까운 장래에 상대적 안정을 제공하기도 한다. 러시아 혁명은 세계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엄청난 어려움과 장애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모든 혁명 세력이 받은 엄청난 압박을 간신히 견뎌내고서야 사회주의적 과제를 점진적으로라도 이룰 수 있었다. 그 결과, 초기의 막연하고 무비판적이며 혁명적인 분위기의 밀물은 불가피하게 썰물로 바뀌었다. 세계 노동계급 내에서 가장 단호하고 대담하며 젊은 부분만이 공산주의의 깃발 아래 남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광범한 프롤레타리아가 당면 혁명이나 신속한 급진 변혁 등에 관한 희망을 잃고 전쟁 전의 옛 견해로 완전히 되돌아갔다는 말은 아니다. 그렇지 않다. 그들의 불만은 전에 없이 깊고, 착취자들을 증오하는 심정도 강렬하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들은 정치적으로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투쟁의 진로를 찾지 못하고, 그 때문에 수동적으로 방관하고 있다. 그들은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이쪽저쪽으로 급히 방향을 틀 수 있다.
이처럼 수동적인 사람과 방향감각을 상실한 사람으로 가득 찬 저수지는 일정한 상황들이 맞물리면 디시당 파가 우리에게 대항하는 데 널리 이용될 수 있다.
23) 공산당을 지지하려면, 혁명적 대의명분에 대한 신념, 행동하려는 의지, 헌신성이 필요하다. 디시당 파를 지지하는 데는 방향감각 상실과 수동성이면 충분하다. 노동계급 가운데 수동적이고 방향감각을 잃은 사람들이 디시당 파의 당원이 되는 비율보다 혁명적이고 역동적인 노동자들이 공산당원이 될 비율이 훨씬 크다는 것은 완전히 당연하다.
신문도 마찬가지다. 정치적으로 무관심한 사람들은 신문을 거의 읽지 않는다. 〈르포퓔레르〉의 보잘것없는 발행 부수와 내용은 노동계급 가운데 특정 부분의 정서를 반영한다. 디시당 파의 당 내에서 전문적 지식인들이 노동자들을 완전히 지배한다는 사실이 우리의 진단, 예상과 어긋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수동적이고 얼마간 환멸을 느끼고 어느 정도 방향감각을 잃은 노동자 대중은 변호사, 언론인, 개혁주의 전도사, 의회 사기꾼 들로 이뤄진 정치 파벌의 이상적 배양처이기 때문이다. 특히 프랑스에서 그렇다.
24) 당 조직이 작전 중인 군대, 미조직 노동자 대중이 예비군이라면, 그리고 우리의 작전 중인 군대가 디시당 파의 현역군보다 서너 곱 더 많다면, 일정한 상황들이 맞물릴 경우 예비군은 우리에게 훨씬 불리한 비율로 우리와 사회개혁주의자들로 분열할 수 있다.
25) 프랑스 정치권에서 ‘좌파 연합’이라는 발상이 널리 퍼지고 있다. 승리의 환상을 재탕하려는 부르주아지의 노력인 푸앵카레주의가 득세한 뒤에, 이제 평화주의적 반발이 광범한 부르주아 사회에서, 무엇보다 프티부르주아 사이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꽤 높다. 세계 평화를 바라고, 소비에트 러시아와 협정을 체결해 유리한 조건으로 원료와 지불금을 얻고, 군국주의의 부담을 덜자는 따위의 희망, 간단히 말해 민주적 평화주의라는 환상적 강령이 한동안 ‘국민 연합’을 대체할 ‘좌파 연합’의 강령이 될 수 있다.
프랑스에서 혁명의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러한 정권 교체는 프롤레타리아가 프티부르주아 평화주의라는 환상에 전혀 속지 않을 때만 일보 전진이 될 것이다.
26) 개혁주의적인 디시당 파는 노동계급 안에서 ‘좌파 연합’의 하수인 노릇을 하고 있다. 그들이 성공할 가능성은 부르주아지에 맞서는 공동전선이라는 사상과 실천을 전체 노동계급이 이해하지 못하는 정도와 비례할 것이다. 전쟁과 혁명의 지연으로 방향감각을 잃은 노동자들은 ‘좌파 연합’을 차악次惡으로 여겨 지지할 수 있다. 그러면 잃을 게 전혀 없다고 생각하거나, 지금 다른 길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르주아지 전체에 맞서 모든 노동계급이 단결하자는 사상을 끈질기고 단호하게 확산시키는 것이다.
27) 노동계급 안에서 ‘좌파 연합’, 즉 노동자들과 일부 부르주아지가 손잡고 다른 부르주아지에 맞서 연합하자는 발상과 정서를 없앨 가장 확실한 방법 하나는28) 디시당 파와 관련해서 이것이 뜻하는 바는, 그들이 노동운동과 관련한 문제들을 얼버무리고 회피하는데도 비판받지 않고 그냥 넘어가게 해서는 안 되고, 부르주아 억압자들의 후원을 받으면서도 이를 숨기려고 노동계급을 지지한다는 관념적 성명서를 활용하도록 허용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적절한 모든 경우에, 디시당 파에게 파업 노동자, 직장 폐쇄를 당한 노동자, 실업자, 상이군인 등등을 함께 지원하는 구체적 방법을 제안할 수 있고 또 제안해야 한다. 우리의 제안에 그들이 어떻게 대답하는지를 노동 대중의 눈앞에 공개해서, 정치적으로 무관심하거나 반쯤 무관심한 대중(개혁주의자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특정 상황에서 이런 대중의 지지를 얻으려 한다)과 디시당 파 사이를 갈라놓아야 한다.
29) 이런 전술은 디시당 파가 개혁주의적 CGT와 의심할 나위 없이 밀접한 관련이 있고 그 둘이 함께 노동운동 안에서 부르주아지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양 날개라는 사실 때문에 더욱 중요하다. 우리는 노동조합과 정치 분야에서 모두 이런 전술적 방법을 이용해 이 양 날개에 동시에 대항하는 공세를 취해야 한다.
30) 우리가 다음과 같이 선동하면 흠잡을 데 없고 매우 설득력 있는 논리가 될 것이다. 우리는 대중의 눈앞에서 노동조합과 사회주의 운동의 개혁주의자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신들은 우리가 보기에 옳지 않고 범죄나 다름없는 발상과 방법을 고수하려고 노동조합과 당을 분열시켰다. 우리는 당신들에게 최소한 노동계급 투쟁의 부분적이고 급박한 구체적 과제들을 방해하지 말 것과 최대한 행동을 통일할 것을 요구한다. 특정한 구체적 상황에서 우리는 이러이러한 투쟁 강령을 제안한다.”
31) 앞서 말한 방법은 의회나 지자체 활동에서도 마찬가지로 성공적으로 쓰일 수 있다. 우리는 대중에게 이렇게 말해 왔다. “디시당 파는 혁명을 바라지 않기 때문에 노동자 대중을 분열시켰다. 그들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도울 것이라고 믿는다면 미친 짓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 개혁주의자들과 의회 안팎에서 특정한 실천적 협약을 맺을 태세가 돼 있다. 부르주아지의 공인된 이익과 프롤레타리아의 분명한 요구 중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개혁주의자들이 행동으로 프롤레타리아의 요구를 지지하는 데 동의한다면 말이다. 디시당 파가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으려면 부르주아 정당들과의 유대를 끊어야만, 다시 말해 ‘좌파 연합’과 좌파 연합의 부르주아적 규율을 거부해야만 한다.”
디시당 파가 이런 조건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면, 그들을 지지하는 노동자들은 빠르게 공산당에 흡수됐을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디시당 파는 이런 조건들에 동의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구체적이고 특정한 대중투쟁 상황에서 부르주아지와 연합할지 아니면 프롤레타리아와 연합할지 선택하는 문제가 분명하고 정확하게 제기될 때 디시당 파는 부르주아지와의 연합을 택한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디시당 파가 의지하는 프롤레타리아 예비군이 그런 대답을 순순히 용납할 리가 없다.
5. 공산당의 당내 과제
32) 앞서 말한 정책은 당연히 공산당 자체의 완전한 조직적 독립, 사상적 명확함, 혁명적 단호함을 전제로 한다.
예를 들어 우리 자신의 당 대열 안에 이 ‘좌파 연합’ 지지자들이 있어서 대담하게도 부르주아지가 기획한 이 강령을 공공연히 옹호한다면, 노동계급이 ‘좌파 연합’ 발상을 증오하고 경멸하게 만들려는 정책이 완전히 성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좌파 연합’ 사상을 옹호하고 나서는 사람들을 무조건 무자비하게 제명해서 불명예를 안겨 주는 것은 공산당의 자명한 의무다. 이것은 우리 정책에서 모호함이나 불명확함을 자아내는 요소들을 모두 일소할 것이다. 그러면 선진 노동자들은 ‘좌파 연합’ 문제의 첨예한 성격에 주의를 기울일 것이고, 부르주아지에 맞선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 행동 통일을 위태롭게 하는 문제를 공산당이 하찮게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33) 개혁주의자들이나 디시당 파와의 통합을 선동하려고 공동전선 사상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우리 당에서 사정없이 제명해야 한다. 그들이 우리 대열 안에서 디시당 파의 하수인 노릇을 하고 노동자들에게 분열의 원인과 그 분열이 진정 누구 책임인지를 속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디시당 파가 프티부르주아적이고 근본적으로 반혁명적임에도 우리와 디시당 파가 이런저런 공동의 실천 활동을 할 가능성 문제를 올바로 제기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 당에게 공산주의 강령과 혁명적 방법을 버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런 자들을 사정없이 제명해서 불명예를 안겨 준다면, 노동자 공동전선 전술이 개혁주의자들에게 항복하거나 그들과 화해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이 더할 나위 없이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공동전선 전술은 공산당에게 완전한 행동의 자유, 유연함, 단호함을 요구한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당은 매순간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위해 애쓰는지를 명확하게 구체적으로 선언해야 하고, 대중의 눈앞에서 자신의 조처와 제안을 권위있게 밝혀야 한다.
34) 따라서 당원 개개인이 독단으로 정치 출판물을 내서 당의 구호·행동방법·제안과 대립하는 구호·행동방법·제안을 내놓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그들은 공산당 밑에 숨어서, 공산당의 영향을 받는 환경, 다시 말해 노동자들 사이에서 날마다 우리를 적대시하는 사상을 퍼뜨리거나, 공공연한 적대적 사상보다 훨씬 더 치명적인 혼란과 의심을 퍼뜨리고 있다. 이런 종류의 정기간행물은 그 편집자와 함께 당에서 완전히 추방해야 하고, 공산당의 기치 아래서 활동하는 프티부르주아 밀수꾼들을 사정없이 폭로하는 글을 써서 이 사실을 프랑스의 전체 노동계급에게 알려야 한다.
35) 이상에서 말한 이유 때문에, 당의 주요 출판물들이 공산주의의 기본 개념들을 옹호하는 글과 이런 개념들을 반박하고 부정하는 글을 함께 싣는 것도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지금의 기관지 체제에서는, 우리가 눈물 섞인 평화주의 견해로 되돌아가도록 선동하는 글이나 부르주아지가 기고만장한 폭력을 휘두르는데도 노동자들이 혁명적 폭력에 반감을 갖도록 선동하는 글이 주요 공산당 기관지의 사설 형태로 노동자 독자들에게 읽히고 있다. 이런 체제가 이대로 계속되도록 놔 둬서는 안 된다. 이런 글들은 군국주의에 맞서는 투쟁을 가장한 채, 혁명적 사상에 반대하는 투쟁을 벌이고 있다.
전쟁 경험과 그 후의 모든 사건들, 특히 러시아와 독일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목도하고도 인도주의적 평화주의라는 편견이 아직도 공산당 안에 남아 있다. 이런 편견을 완전히 없애려면 이 문제와 관련한 토론을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당이 판단하더라도, 그런 편견을 고스란히 지닌 평화주의자들은 대등한 세력으로 토론에 나서서는 안 되고 당의 권위 있는 목소리로, 예컨대 당 중앙위원회의 이름으로 엄격히 비난받아야 한다. 중앙위원회가 토론이 철저히 이루어졌다고 판단한 다음에는, 당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톨스토이주의와 그 밖의 여러 평화주의 사상을 퍼뜨리려는 시도는 모두 분명히 당에서 추방해야 한다.
36) 하지만 당에서 낡은 편견을 일소하고 당내 응집력을 높이는 일이 마무리되지 않는 한, 당이 개혁주의자나 민족주의자와 너무 가까워지는 상황에 처하게 두는 것은 위험하지 않을까라는 반대 의견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견해는 틀렸다. 당연히, 공산당이 광범한 선전 활동에서 대중운동에 직접 참여하는 것으로 전환하는 데는 새로운 어려움과 위험이 뒤따른다. 그러나 당이 직접 투쟁에 참여하지 않고도, 적들과 직접 대면하지 않고도 모든 시련에 대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완전히 틀렸다. 반대로, 그런 투쟁에 뛰어들어야 진실하고 거짓 없는 형태로 당내의 악습을 일소하고 당의 결속을 이룰 수 있다. 당과 노동조합의 일부 관료들이 우리보다 개혁주의자들(그 둘은 우연히 갈라섰을 뿐이다)에게 더 매력을 느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한 동조자들을 잃는 것은 부채가 아니라 자산이 될 것이고, 그런 손실은 아직까지 개혁주의자들을 지지하는 남녀 노동자들이 당에 쇄도하는 것으로 백배 보상받을 것이다. 그 결과 공산당은 더 동질화하고, 더 단호해지고, 더 프롤레타리아 정당답게 될 것이다.
6. 노동조합 운동에서 당의 과제
37) 노동조합 문제에 완전히 명확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프랑스 공산당의 다른 모든 과제들을 단연코 능가하는 가장 중요한 과제다.
개혁주의자들이 퍼뜨리는 헛소문, 즉 노동조합을 당에 종속시킬 계획이 추진 중이라는 헛소문은 당연히 무조건 규탄하고 폭로해야 한다. 노동조합은 정치색이 다른 노동자, 무당파 노동자, 무신론자, 종교 신자를 모두 아우르지만, 당은 명확한 강령을 바탕으로 정치적 의견이 같은 사람들을 결속한다. 당은 외부에서 노동조합을 종속시킬 수단과 방법이 전혀 없고 또 그럴 수도 없다.
당이 노동조합 활동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당원이 노동조합 안에서 활동하고 거기에서 당의 견해를 실행에 옮긴 결과일 뿐이다. 노동조합에서 당원의 영향력은 당연히 그들의 수에 달렸고, 특히 그들이 당의 원칙을 노동조합 운동의 요구에 올바르고 일관되고 유리하게 적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렸다.
결정적 영향력을 획득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노동조합 안에서 공산주의자의 활동이 당의 원칙에 완전히 일치하고 언제나 당의 통제 아래 실행될 때만 당은 이런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당은 위에서 말한 방침에 따라 노동조합 조직 안에서38) 그러므로 모든 공산주의자의 의식에서 당을 한갓 프롤레타리아의 의회주의 정치 조직으로 여기는 개혁주의적 편견을 완전히 몰아내야 한다. 공산당은 노동운동의 사상적 정수가 되고자 하고 모든 분야에서, 무엇보다 노동조합에서 지도권을 쥐려 하는 프롤레타리아 전위의 조직이다. 노동조합은 당에 종속되지 않으며 완전히 자율적인 조직이지만, 노동조합 안의 공산당원은 자신의 노동조합 활동에서 [당으로부터의] 자율성을 일절 주장할 수 없고 당 강령과 전술의 실행자 구실을 해야 한다. 가장 심각하게 비난받아야 하는 것은 노동조합 안에서 당 사상의 영향력을 넓히려고 싸우지도 않을뿐더러 실제로는 완전히 잘못 적용한 ‘자율성’ 원칙의 이름으로 그런 투쟁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하면서 사실상 노동조합 안에서 일부 개인, 그룹, 파벌의 영향력을 결정적인 것으로 만들고 있다. 이들은 명확한 강령이나 당 조직으로 결속돼 있지 않지만, 조합 기구를 손아귀에 틀어쥐고 선진 노동자들의 실질적 통제에서 완전히 벗어나 독립성을 누리려고 이렇다 할 형체가 없는 사상 그룹과 관계 들을 이용한다.
한편으로 당은 노동조합 안에서 활동하면서, 무당파 대중과 그들의 성실하고 정직한 대표들을 예의 주시하면서 아주 신중하게 대해야 하고, 공동 활동의 토대 위에서 체계적·전술적으로 노동조합 운동의 최상의 활동가들(배울 태세가 돼 있는 혁명적 아나키스트들을 포함해서)에게 다가가야 하지만, 또 한편으로 당원 자격을 이용해 노동조합 안에서 당의 영향력을 오히려 약화시키는 가짜 공산주의자들을 당 내에 방치해서는 안 된다.
39) 당은 자신의 신문, 선전기구, 노동조합 안의 당원을 통해 혁명적 생디칼리즘이 프롤레타리아의 기본 과제들을 해결하는 데서 결함이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그리고 체계적으로 비판해야 한다. 당은 끊임없이 그리고 끈덕지게 생디칼리즘의 이론적·실천적 약점을 비판하는 동시에, 최상의 생디칼리스트 활동가들에게 노동조합과 전체 노동운동에서 혁명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올바른 길은 혁명적 생디칼리스트들이 공산당에 가입하는 것뿐이라고 설명해야 한다. 공산당에서 그들은 운동의 기본 문제들을 모두 검토하고, 경험을 일반화하고, 새로운 과제를 정하고, 공산당 자체의 악습을 일소하고, 노동 대중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활동에 참가할 것이다.
40) 프랑스 공산당의 모든 당원을 대상으로 반드시 다음 사항들을 조사해서 확인해야 한다. 당원의 사회적 지위(노동자, 공무원, 농민, 지식인, 등등), 노동조합 운동과의 관계(노동조합에 속해 있는지, 공산당 모임과 혁명적 생디칼리스트의 모임에 참석하고 있는지, 이런 모임에서 노동조합과 관련한 당의 결정을 실행하고 있는지 등등), 당 기관지를 대하는 태도(어떠한 당 출판물을 읽고 있는지), 기타 등등.
이 조사는 제4차 세계대회 전에 주요 내용을 살펴볼 수 있도록 적절한 때에 실시돼야 한다.
1922년 3월 2일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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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Trotsky, Leon 1974, ‘On the United Front’, The First Five Years of the Communist International Volume2, New Park Publications.
↩
- 레옹 블룸이 창간한 프랑스 사회당의 핵심 간행물이다. ↩
- CGT는 프랑스의 핵심적 노동조합 조직이었다. 1903년에 만들어진 뒤 기존 노동조합을 모두 포괄했다. 제1차세계대전 전까지 CGT는 프랑스에서 가장 혁명적인 조직이었다. 그러나 1914년에 전쟁이 발발하자, 주오를 우두머리로 한 지도부 대다수는 광적인 주전론主戰論자가 됐다. CGT 지도부는 전후에 좌파 운동이 빠르게 성장하고 공산당의 영향을 받자 격렬하게 반발했다. 그들이 분열을 획책해서 1922년 초에 CGTU가 만들어졌다. 이 분열로 말미암아 전체 노동조합원 수가 급감했다. 1920년에 CGT 조합원은 약 2백50만 명이었는데, 1923년에는 CGT와 CGTU의 조합원을 모두 합쳐도 10만 명이 채 안 됐다. ↩
- 시민연맹은 프랑스에서 노동운동에 반대하고 파업을 파괴하는 자본가 단체였다. 시민연맹과 비슷한 미국의 단체는 아마도 미국제조업협회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