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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진보사상 조류

니코스 풀란차스의 정치 이론 비판 *


MARX21

주

  • 출처: Barker, Colin 1979, ‘A “New” Reformism? — A Critique of the Political Theory of Nicos Poulantzas’, International Socialism 4(Spring 1979).

    ↩
  1. K. Marx, ‘The Constitution of the French Republic Adopted November 4 1848’, Notes to the People, London, no 7, (June 1851); Hal Draper, Karl Marx’s Theory of Revolution, Vol I (1977), Monthly Review Press, p. 316에서 재인용. ↩
  2. Ralph Miliband, The State in Capitalist Society, Weidenfeld & Nicolson, (1969), (현재는 4부작 페이퍼백); Nicos Poulantzas, Political Power and Social Classes, NLB, (1973); Fascism and Dictatorship, (1974); Classes in Contemporary Capitalism, (1975); Crisis of the Dictatorships, (1976). 밀리반드와 풀란차스는 《뉴 레프트 리뷰New Left Review》의 여러 호에서 논쟁을 벌였다. ↩
  3. John Lea, ‘The State of Society’, International Socialism, old series no. 41, Dec~Jan 1969; Simon Clarke, ‘Marxism, Sociology and Poulantzas’s Theory of the State’, Capital and Class, 2, summer 1977. ↩
  4. Isaac Balbus, ‘Modern capitalism and the state’, Monthly Review, May 1971. ↩
  5. John Lea, 앞의 글. ↩
  6. 예컨대, Simon Clarke, ‘Althusser’s Marxism’(아직 출간되지 않았지만 워릭대학교University of Warwick 사회학과로 찾아가면 그에게서 등사판을 구할 수 있다); E.P. Thompson, The Poverty of Theory and other essays, Merlin, 1978. ↩
  7. Lucio Coletti, From Rousseau to Lenin, NLB, (1972). ↩
  8. Colin Barker, ‘Muscular Reformism’ (review of Marxism and Politics) International Socialism, old series 102, (October 1977)을 보라. ↩
  9. Nicos Poulantzas, State, Power, Socialism (이하에서 SPS로 표기함), New Left Books, (1978), £7.50. 풀란차스는 제4인터내셔널 프랑스 지부의 앙리 베버와 흥미로운 대담도 했다. 이 대담은 Critique Communiste 16, (June 1977)에 처음 실렸고, International에 영어로 번역됐으며, 미국 잡지 Socialist Review no 38 (March~April 1978)에 재수록됐다. 내 인용의 출전은 이것으로, 이하에서 Interview로 표기하겠다. ↩
  10. SPS, p. 256. ↩
  11. 같은 책. ↩
  12. 같은 책, p. 257. ↩
  13. Interview, p. 20. ↩
  14. 거의 그런 것 같다. 풀란차스와 베버의 다음 대화를 보면, 둘 중 누구도 분명하게 말하지 않지만 말이다.
    풀란차스: 다원주의를 신봉하는가?
    베버: 물론이다. 우리는 다원주의를 신봉하고, 실천한다.
    풀란차스: 적들에게도 다원주의를 인정하는가?
    베버: 그렇다. 부르주아 정당들한테도 인정한다는 글을 쓰기도 했다.
    풀란차스: 아하, 부르주아 정당들도! 그런데, 순진하다는 얘기를 듣지 않으려면 여러 가지를 해명해야 할 듯하다. 우리 내부의 비판도 두렵기 때문이다.
    베버: 물론이다.
    풀란차스: 아주 좋은 말이다. 그러나 어떤 형태의 제도로 다원주의를 보장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물론 그것은 항상 부차적인, 그러나 중요한 문제다. … (Interview, p. 23).
    제4인터내셔널이 부르주아 정당들에게도 다원주의를 보장하는 문제는 다음 기회에 살펴보겠다! ↩
  15. SPS, p. 264~5. ↩
  16. 같은 책, p. 260. ↩
  17. 같은 책, p. 256. 칼 마르크스의 불안정한 정신 상태가 사상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데 열심인 풀란차스가 정작 그 옛 혁명가에게 무관심하다는 사실에 주목하라. 엥겔스를 대하는 풀란차스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이해하고 싶다면 파리코뮌을 보라고 얘기한 사람이 엥겔스였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 “이정표”가 있었다면 그 이정표는 풀란차스가 가리키는 방향과 정반대를 가리켰을 것이다. ↩
  18. SPS, p. 124. ↩
  19. 같은 책, p. 125. ↩
  20. 예컨대, Norman Geras, The Legacy of Rosa Luxemburg, NLB, 1976, p. 187. 룩셈부르크가 쓴 팸플릿들에는 다른 문제들로 볼셰비키를 비판하는 내용들이 있는데 역시 부적절한 게 꽤나 많다. Tony Cliff, Rosa Luxemburg, IS, 1969, ch. 7 참조. ↩
  21. Tony Cliff, 앞의 책, p. 70 참조. ↩
  22. Norman Geras, 앞의 책, p. 144. ↩
  23. 같은 책, p. 126. ↩
  24. Tony Cliff, Lenin, Vol. 3, Pluto, (1978)을 참조했다. ↩
  25. SPS, p. 253; Interview, p. 21. ↩
  26. 앙리 베버가 Interview에서 이런 주장을 하지만 풀란차스는 자기 하고 싶은 말로만 대꾸한다. 풀란차스는 러시아 혁명이 내적으로 패배했다는 이런 역사적 설명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그 근거로 중국, 쿠바, 캄보디아 혁명에서도 민주주의가 없었다는 사실을 거론한다. 베버는 이 혁명들에서 노동계급이 독자적 구실을 전혀 하지 않았고, 그것들은 모종의 사회주의 혁명도 아니었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는다. [그런 나라들을 변질된 노동자 국가나 기형적 노동자 국가로 보는 제4인터내셔널 지지자인] 베버가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어쩌다가 제4인터내셔널은 개혁주의에 맞서 소비에트 사상을 옹호할 수 없는 지경으로까지 전락했단 말인가? ↩
  27. Interview, p. 22. ↩
  28. 풀란차스는 비밀 투표를 옹호하는데, 앙리 베버도 그러다니 정말 놀랍다(Interview, p. 25). ↩
  29. 예컨대, SPS, p. 104를 보면, “국가에서 분리된 동일한 단자單子, monad들의 총체인 정치적 통일체body-politic[조직된 정치 집단으로 여겨지는 한 국가의 전 국민]의 개별화”라는 말이 나온다. ↩
  30. 예컨대, Franz Neumann, ‘The change in the function of law in modern society’, The Democratic and the Authoritarian State, Free Press, (1957); 풀란차스 자신도 이 점을 언급했다. 예컨대, SPS, p. 172 참조. ↩
  31. Interview, p. 20. ↩
  32. SPS, p. 262. ↩
  33. 풀란차스는 파리코뮌 이후의 마르크스 견해를 폐기한다. 마르크스는 노동계급이 기존 국가 기구를 그냥 손에 넣어, 자기 목적에 맞게 사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풀란차스는 “대의민주주의”를 계급 중립적인 영속적 형태로 취급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딴소리를 한다. 예컨대, “… 국가의 구체적 제도에 정치적 지배가 아로새겨져 있다. … (자본주의 국가에서 부르주아지의 것인) 국가 권력은 이렇게 구체적이다.”(SPS, p. 14) 풀란차스는 자본주의 국가가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을 분리한다고 말하지만 의회와의 관계 속에서 “어떤” 제도들은 다를 수 있다고 눙친다. 예컨대, “국가와 대중의 관계가 표출되는, 다수의 이른바 간접민주주의 제도(정당, 의회 등등)가 동일한 메커니즘에 의존한다는 것도 분명하다.”(SPS, p. 56) 그러나 풀란차스는 무엇과 어떻게의 문제를 명시하지 않는다. ↩
  34. Interview, p. 31. ↩
  35. 예컨대, ‘The Weakening of the State’, SPS, p. 241ff. ↩
  36. 같은 책, pp. 206~7. ↩
  37. Interview, p. 20. ↩
  38. SPS, p. 255. 같은 책, p. 261도 참조. ↩
  39. 같은 책, p. 264. ↩
  40. 같은 책, p. 255. ↩
  41. 같은 책, p. 260. ↩
  42. Interview, p. 13~4. ↩
  43. SPS, p. 198. ↩
  44. 같은 책, p. 197. ↩
  45. 같은 책, p. 197. ↩
  46. 그 중에서도 Nicolai Bukharin, The Economics of the Transformation Period, Bergman, (1971) 참조. ↩
  47. SPS, p. 197. ↩
  48. 같은 책, p. 2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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