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운동 내 이슈들
장하준과 그의 제도주의 비판
최근에 출간된 장하준의 저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가 화제가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딱딱하고 어려운 것으로 느껴지는 경제적 쟁점을 적절한 사례를 곁들여 쉽게 설명하는 그의 유려한 문체가 이 책의 ‘흥행’에 한몫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요인은 이 책에 담긴 내용이다. 주류 경제학계를 지배하고 있지만 현실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자유시장 이데올로기를 통렬하게 비판한다는 점이다. 영국의 보수적 신문 〈파이낸셜 타임스〉조차 “매력적인 사례들을 제시하며 세계화 시대를 공격하는데, 반박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평했고, 한국의 〈조선일보〉도 “경제를 경제로만 보지 말고 배후에 있는 정치적, 윤리적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책이라고 소개했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가 경제 관련 사회과학 서적인데도 30만 부나 팔린 덕분인지 여기저기서 장하준 비평글이 나왔다.
1 보면 그들이 장하준 주장의 핵심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의심스럽다. 송원근·강성원은 장하준이 “계획경제를 지지”할 뿐 아니라 “사적 소유를 기반으로 한 이윤 극대화가 생산의 무정부성과 그로 인한 경제 불안정성의 원인이라는 마르크스 주장”에도 동의한다고 평가한다. 2 즉, 장하준을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로 치부해 놓고 마구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그 비판이 설득력 있을 리 없다. 장하준 스스로 밝히듯이 그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 3 그는 시장을 부정하지 않고 기본적으로 시장과 자본주의를 신뢰하는 편이다.
먼저, 자유주의자인 송원근·강성원의 장하준 비판을 장하준이 “미국 경영자들은 보수를 너무 많이 받는다”고 지적한 것을 두고 송원근·강성원은 미국에서 CEO가 되는 데에 제도적 진입 장벽과 경쟁 제한이 없으므로 CEO들의 보수가 과도하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자기 계급을 변호한다. 송원근·강성원은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소득격차가 심화된 현실을 시장 논리에 따른 당연하고도 합리적 결과라며 옹호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폴 크루그먼은 자유로운 경쟁에서 나타나는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 아니라 이사회에서 자기들끼리 보수를 올리는 결정을 한 뒤 나누는 “보이지 않는 악수invisible handshake” 덕분에 미국 경영자의 보수가 높은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의 핵심 주장 중 하나는 자유시장이라는 메커니즘이 실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선진국은 자유시장과 자유무역을 기초로 해 발전하지 않았고, 정보 획득과 판단에서 시장 참여자들이 갖는 제한성(장하준은 허버트 사이먼의 제한적 합리성 개념을 받아들인다) 탓에 자유시장이라는 것은 이론적으로도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장하준은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도 될 정도로 우리 자신이 영리하지 못하다는 점을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의 사례, 즉 금융경제학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들조차 자신들이 하는 일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례를 들어 지적한다. 자유시장의 핵심적 토대를 허무는 이런 비판에 송원근·강성원은 단 한마디도 답변하지 못한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는 송원근·강성원 같은 자유주의자들을 곤혹스럽게 할 비판이 많다. 금융시장이 지금보다 덜 효율적이어야 한다는 지적이 한 예다. 장하준은 2008년 경제 위기에 직면해 워런 버핏이 ‘금융적 대량 살상 무기Weapons of Financial Mass Destruction’라고 지칭한 파생금융상품의 폐해를 지적하며 금융 규제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또, 금융 부문이 경제의 다른 부문에 해악을 끼칠 수 있으므로 “지나치게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국제 금융 시장의 수레바퀴에 모래를 뿌릴 필요가 있다”고 말한 제임스 토빈의 주장도 소개한다.
그 밖에도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거나 “우리는 탈산업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 “기업은 소유주 이익을 위해 경영하면 안 된다”는 주장은 지금도 유행하는 탈산업화, 정보기반사회, 신경제 신화, 주주자본주의 등에 대한 훌륭한 해독제다.
6 김창근은 장하준의 경제학이 박정희의 개발독재를 정당화하는 발전국가론이라고 비판했다. 7 김기원은 장하준이 주주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데서 반대 극단으로 나아가 한국의 재벌 문제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비판했고, 8 같은 제도주의에 속해 있지만 장하준보다 오른쪽에 있는 이병천은 장하준이 정부의 주도적 구실을 강조하면서 사기업의 적극적 구실을 무시한다고 비판했다. 9 장하준은 이런 비판을 무시하거나 관점 차이라며 회피한다. 10
한편, 장하준의 주장에 대한 다른 각도의 비판도 있다. 〈레프트21〉 김용욱 기자는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장하준의 논리를 비판했고,11 둘째, 재벌은 한국 자본주의 발전에 기여했고, 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셋째, 1997년 경제 위기의 요인은 한국의 독특한 제도의 붕괴와 국가 구실의 축소다. 넷째, 한국 자본(재벌)이 한국의 노동자·민중을 외국 금융자본한테서 보호해 주므로 한국의 노동자·민중은 싫든 좋든 한국 자본(재벌)과 타협해야 한다.
재벌이나 경제 위기의 원인 등 한국 경제에 대한 장하준의 주장에서 핵심은 다음의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외국 국적의 다국적 자본과 한국의 (다국적) 자본은 똑같지 않다.12 그의 주장은 너무나 공상적이다. 어떤 자본이 순순히 “복지국가와 정부의 규제를 받아들이겠다”고 하겠는가.
장하준은 분명 재벌 옹호론자가 아니다. 그러나 “재벌들을 외국 금융자본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것을 대가로 그들에게 복지국가와 적극적인 정부 규제를 받아들이게” 하자는13 장하준이 즐겨 인용하는 스웨덴 복지국가도 계급투쟁의 산물이고, 19세기 프로이센의 우파 정치인 비스마르크가 복지 제도를 처음 마련한 것도 단순한 시혜가 아니라 노동자들 치열하게 투쟁한 덕분이었다. 장하준은 용의주도하게도 이런 점들을 가끔씩은 인정하지만 계급투쟁보다는 노동자들의 타협 마인드를 강조한다.
김용욱의 지적처럼,제도주의 정치경제학
장하준은 정치경제학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정도로 맹목적 시장 논리에 비판적이지만 시장 메커니즘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는다.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를 비판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재벌과의 사회적 대타협을 주장한다. 그래서 장하준의 경제학을 이해하려면 그가 속한 제도주의, 특히 ‘신’구제도주의 학파의 기본 논리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14 제도주의학파는 신고전파의 경제 인식이 물리학의 기계론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경제를 진화 과정을 거치며 변화하고 발전하는 유기체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자유주의의 경제학적 기초인 신고전파 이론을 비판하는 이론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포함해 다양하다. 그 중 하나가 제도경제학인데, 이 학파는 “자본주의 경제는 단순히 가격기구만을 통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법률, 사회적 관습 등을 포함하는 각종 제도에 의해 규정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진정한 경제 분석은 제도 연구와 접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15 그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로는 빌헬름 로셔W Roscher, 칼 크니스K Knies, 구스타프 슈몰러G Schmoller, 베르너 좀바르트W Sombart, 막스 베버M Weber 등이 있다.
제도주의는 19세기 중반 독일의 역사학파Historical School에서 비롯했다. 독일 역사학파는 경제 제도가 역사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변화·발전하는가를 연구함으로써 경제 발전의 법칙을 추출해낼 수 있다고 봤다. 역사학파의 창시자로 알려진 리스트F List는 경제 발전 단계를 원시적 미개, 목축, 농업, 농공업, 농공상업의 5단계로 구분했고, 당시 농공업 단계로 이행하고 있던 후진적인 독일이 농공상업 단계에 있던 선진적인 영국의 수준에 도달하려면 자유방임주의 정책이 아니라 보호주의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일에서 부흥하던 역사학파의 이론을 배우고자 독일로 유학 간 미국의 경제학자들 중에는 미국 경제학회 창립자 중 한 명인 리처드 일리R Ely가 있다. 일리의 제자 존 코먼스J Commons와 《유한계급론》의 저자 소스타인 베블런T Veblen 등이 제도적 차원에서 기업을 연구하면서 제도 연구를 경제학의 중심으로 가져왔다. 지금의 신자유주의 풍토와는 사뭇 다르게 20세기 초반 미국 경제학계는 제도경제학파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그러나 1950년대 이후 제도경제학파는 이론 체계의 발전 부진과 심지어 이론을 부정하는 경험주의 때문에 쇠퇴했다.17 이들은 신고전파와 달리 제도를 경제의 외부에서 주어진 것으로 보지 않고 개인들의 합리적 선택에서 나타나는 불완전성을 극복하는 내생적 요소로 본다는 점에서 제도주의로 분류된다. 그러나 모든 제도를 개인의 선택의 결과로 보는 방법론적 개인주의를 채택한다는 점에서 신고전파와 맞닿아 있다.
197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제도주의 경제학이 다시 부흥하게 됐는데, 기업의 존재를 거래비용 이론transaction cost으로 설명한 로널드 코즈R Coase가 크게 기여했다. 로널드 코즈, 더글러스 노스, 올리버 윌리엄슨 같은 인물들은 신제도경제학자로 불렸는데, 과거 제도경제학의 문제의식을 받아들이면서도 “제도를 역사적·사회적으로 규정된 것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제도의 기원을 개인들의 의도적 선택 행위에서 찾아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신제도주의의 미시적 접근법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방법론적 개인주의에는 비판적인 흐름이 제도주의 내에서 형성됐는데, 이 흐름이 바로 새로운 구제도주의(또는 ‘신’구제도주의) 학파다. 이 흐름을 이끄는 주요한 인물이 영국의 경제학자 제프리 호지슨G Hodgson이고, 장하준도 여기에 속한다. 장하준은 ‘신’구제도학파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신’구제도학파적 접근을 따르는 학자들은 제도의 형성·발전의 미시적 기제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신제도학파의 주장에 동의한다. 그러나 이들은 모든 제도를 개인의 선택으로 환원하려는 신제도학파의 시도를 비판하면서, 제도는 개인으로 환원될 수 없는 것임을 강조한다.”19 이런 시도 덕분에 호지슨은 진화주의 경제학의 발전에도 기여했다.
장하준이 자신과 견해가 비슷한 인물이라고 언급한 호지슨은 역사적 맥락에 따른 제도의 변화를 설명할 때 다윈주의의 기본 원리들 ― 변종, 유전, 자연도태 ― 을 적용한다. 진화론의 원리가 자연현상뿐 아니라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데에도 유용하다고 보기 때문이다.자본주의와 제도
20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표준노동일을 둘러싼 투쟁과 공장법의 등장을 상세히 밝혀냈고, 19세기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주식회사 제도에도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코즈는 자본주의 경제가 위계적으로 조직되는 기업과 기업들 사이의 혼돈적anarchic 시장교환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는데, 사실 알고 보면 이것은 마르크스가 이미 지적했던 것이다.
장하준도 인정하듯이, 제도주의 학자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기업이론을 포함해 자본주의의 여러 제도에 관한 연구를 최초로 발전시킨 것은 마르크스였다.21 호지슨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독일이 영국보다 저발전 상태에 있었고 영국이 독일의 미래라는 점 때문에 마르크스는 영국에만 관심을 뒀는데, 이런 관점을 견지하면 세계경제 내에서 사회경제적 제도가 상이한 국가들 사이의 상호작용과 독일의 산업화 과정이 영국의 그것과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놓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호지슨은 마르크스가 제도주의에 큰 영향을 미쳤음에도 몇 가지 단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 중 하나로 마르크스는 순수 자본주의 체제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사회경제체제의 다양성을 (파악하고는 있었지만) 관심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호지슨의 이런 관점이 잘 녹아들어 있는 책이 장하준의 《사다리 걷어차기》다. 장하준은 이 책에서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이었을 때는 자유무역보다 보호무역과 유치산업 보호 같은 국가의 산업정책에 힘입어 경제를 발전시켰으면서도 선진국이 된 뒤에는 후진국들에 자유무역을 강요한다는 점을 훌륭하게 폭로한다. 장하준이 이 책에서 편 주장의 핵심은 그가 인용한 리스트에게서 나왔다. 곧, “보호 관세와 항해 규제를 통해 다른 국가들이 감히 경쟁에 나설 수 없을 정도로 산업과 운송업을 발전시킨 국가의 입장에서는 정작 자신이 딛고 올라온 사다리(정책, 제도)는 치워 버리고 다른 국가들에게는 자유무역의 장점을 강조”한다는 것이다.《사다리 걷어차기》에서 장하준은 리스트가 이름 붙인 ‘코스모폴리티컬 독트린’(오늘날의 용어로 글로벌 스탠더드)의 허구를 비판하면서 후진국들이 독자적인 사회경제적 제도 하에서 경제발전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3 한다며 그것이 경제학의 핵심적 내용이라고 주장하지만, 정작 그 역사적 패턴인 자본주의 자체의 본질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호지슨과 장하준의 논리를 기초로 추론하다 보면, 영국과 독일은 역사적 제도와 전통이 서로 다르므로 두 나라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 된다.
그런데 장하준은 “기술, 제도, 정치적 환경의 변화들을 고려하는 가운데 지속적인 역사적 패턴을 찾아야”왜 후진국들은 선진국 ‘따라잡기 전략’을 추구하고 선진국들은 ‘앞서가기 전략’을 추구하는가? 이것은 마르크스가 지적한 자본주의의 경쟁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서유럽의 일부 국가에 한정돼 있을 때조차 부르주아지는 “가는 곳마다 정착해야 하고, 가는 곳마다 뿌리를 내려야 하며, 가는 곳마다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본주의의 운동법칙인 자본의 경쟁과 축적은 기존의 생산수단과 생산관계를 혁명적으로 재편했고 이전부터 존재하던 제도들을 자본주의적 제도로 탈바꿈시켰다.
자본주의의 이런 핵심적 내용은 장하준은 물론이고 신제도주의나 ‘신’구제도주의 모두의 논의에서 빠져 있다. 호지슨은 마르크스가 생산관계나 생산력 또는 노동분업 같은 초역사적 개념을 끌어다 설명했다고 비판하지만 정작 자본주의 제도를 초역사적 제도로 바라본 것은 호지슨 자신이었다. 장하준이 받아들이는 ‘역사적 접근법’은 기껏해야 이런 자본주의와 저런 자본주의를 비교하면서 그 역사적 특징들을 지적할 뿐이고, 정작 자본주의 체제가 강요하는 경쟁이 역사와 제도가 서로 다른 여러 자본주의 국가들을 단일한 경쟁 게임에 몰아넣고 있는 현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시장과 기업
24 신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자유시장이 가능하려면 개인들이 관련 정보를 모두 알아야 하고 그 정보를 판단할 수 있는 합리적 능력이 있어야 한다. 거래가 이루어지려면 판매할 수 있는 권한(소유권이나 재산권)과 살 수 있는 수단(보통 화폐라고 하는 것)과 관계된 법적·제도적 장치가 먼저 마련돼 있어야 한다.
장하준은 신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자유시장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신화일 뿐이라고 지적한다.25 소유권과 재산권이 보장돼야 하므로 시장에는 다양한 규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유시장이라는 개념은 신화나 허구일 뿐이다. 달리 말하면 시장은 항상 국가에 의해 지탱돼 왔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런 관점은 칼 폴라니가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이 자유방임주의를 표방했지만 실상은 국가가 시장의 형성과 지속적 규제에 관여했다고 주장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26
그러나 개인들은 완전한 정보를 획득할 수 없고, 설사 완전한 정보를 확보하더라도 가장 합리적인 판단과 선택을 할 수 없다. 그런데 완전한 정보 획득과 개인들의 합리적 판단이라는 가정을 차치하더라도 정보 획득과 처리, 제도적 장치 마련 등에는 각종 비용이 들어간다. 이것을 코즈는 거래비용transaction cost이라 불렀고 장하준은 조정비용costs of achieving coordination이라 부른다.신자유주의 경제학의 논리를 따르면, 모든 개인이 필요한 재화를 구입할 수 있으므로 기업이 등장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신자유주의 경제학은 기업의 등장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코즈를 포함한 신제도학파는 앞서 말한 거래비용을 내부화하는 것이 기업이라고 설명한다. 즉, 어떤 재화를 시장에서 구입하는 것보다 생산 조직을 갖춰 만들어 내는 것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에 기업이 등장한다는 논리다. 장하준을 포함한 제도주의 학자들이 주장하는 거래비용 이론은 신고전파의 기본 전제, 즉 거래에는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전제를 허물고 주주가치나 기업이윤 극대화 같은 신자유주의의 견해를 반박하지만, 자본주의 기업의 역동적인 활동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기업은 자신들의 단기적·장기적 목표를 달성하고자 조직 내부에 위계적 구조를 갖추는데, 이는 기업 외부의 경쟁이라는 압력 때문이다. 제도주의학파는 자본주의가 기업에 가하는 압력과 축적을 위한 기업의 역동적인 활동을 설명하지 못하고 기껏해야 거래비용, 생산비용, 조직비용 등을 비교할 뿐이다.
장하준은 거래비용 이론으로 일본의 조립가공업체와 하청기업의 관계를 설명한다. 장하준은 조립가공업체가 자신에게 필요한 부품을 하청업체에서 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납품받고자 할 때 이 둘 사이에 특별한 관계(윌리엄슨은 이를 관계적 계약이라고 불렀다)가 형성된다고 지적한다. 원청기업과 하청기업 사이에 형성되는 관계는 거래되는 부품이 지닌 특별한 성격, 다른 하청업체에서 부품을 조달할 수 있는 대체성, 그 사회에서 형성된 관행이나 국가의 규제 등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 장하준은 이것을 기업과 노동자들 사이의 관계로 확장해 노조 조직률과 사회적 합의 제도의 작동 등 사회적·역사적 요소가 노동시장의 유연성보다 임금을 결정하는 데 더 중요한 요소라고 본다.
이런 관점은 노동시장의 유연성 여부가 실업률과 임금을 결정하므로 일자리를 얻고자 한다면 더 낮은 임금을 감수하라는 신고전파의 논리를 훌륭하게 비판한다. 그러나 제도주의학파가 말하는 사회적·역사적 요소도 경쟁과 자본 축적의 필요에 부합하는지 아닌지, 계급투쟁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에 달려 있다.
장하준이 예로 든 일본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서방 선진국한테는 하나의 모범사례였다. 일본의 성공 비결을 찾던 제도주의 학자들은 일본 ‘고유의’ 제도, 즉 종신고용제와 연공서열제가 ‘일본의 기적’을 일으켰다고 생각했다.(일본의 종신고용제와 연공서열제는 노동자들이 전투성을 포기하고 기업에 충성을 보이는 대가로 얻은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 일본 경제가 주저앉으면서 종신고용제와 연공서열제는 일본 자본주의의 효율성을 하락시킨 요인으로 낙인찍혔다.
신제도주의든 ‘신’구제도주의든 제도주의 이론은 자본주의의 제도적 다양성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자본주의 유형론과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된다. 예를 들어 1997년 동아시아 경제 위기에 관해서도 기업 지배 구조나, 정실자본주의가 경제 위기의 요인이라는 식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게 된다. 국민국가가 자본주의 경제로서 겪는 경제 위기에 대한 설명은 장하준에게서 찾기 힘들다.
자본주의와 국가
27 반대로 제도주의 경제학자들은 대체로 국가의 구실을 특별히 강조한다. “국가는 제도들 중의 하나이기도 하지만, 이 같은 제도들의 매트릭스를 운영하는 경영자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28 장하준은 다양한 자본주의적 형태와 현대 경제의 구조적 변화에 대응하려면 국가가 기업가적 구실과 갈등 관리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9 국가의 기업가적 구실이란 사적 경제 주체들의 경제 행위를 조율하는 기능(‘단순한 조절’)을 넘어서 국가가 산업 정책을 통해 새로운 제도를 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장하준은 이를 “미래를 위한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30
신고전파 경제학은 국가를 외생적 요소로 본다. 즉, 자기조절적 기능을 갖춘 시장경제가 문제를 스스로 치유할 수 있으므로 국가의 경제 개입은 최대한 축소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31 그는 이런 국가를 ‘산업 정책 국가’라 부르는데, 일본·한국·대만 등 동아시아의 신흥공업국을 그 예로 제시한다.
그는 경기 불황기에 국가가 나서서 유효 수요를 확대해 거시 경제를 조정하고 거대한 매몰 비용sunk cost을 안고 있는 산업들이 겪을지도 모르는 대규모 파산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 국가는 시장 제도가 낳은 결과에도 대처할 수 있는데, 이때 국가는 갈등 관리자로서 국내 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수입 제한, 파산 상태에 처한 기업의 국유화, 분배 갈등을 완화하기 위한 복지 제도 마련 등을 한다. 장하준은 이런 ‘갈등 관리 국가’의 사례로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사회적 조합주의 국가를 제시한다.장하준은 이런 두 가지 유형의 국가, 즉 산업 정책을 추진하는 기업가적 국가와 사회적 조합주의를 통해 갈등을 관리하는 국가가 앵글로색슨 국가들의 자유방임적 자본주의보다 우월한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33 이런 엘리트들이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산업 정책을 수립해 추진하고 역사적 타협(1935년 노르웨이의 기본협약이나 1938년 스웨덴의 살츠요바덴 협정)을 통해 계급 타협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장하준은 경제 엘리트의 존재를 강조한다. 그는 “산업 정책 국가와 사회적 조합주의 국가의 공통점 중 하나는 산업화, 구조 변동 등의 사회적 목표에 헌신적으로 봉사할 정치 엘리트 및 관료 엘리트의 존재”라고 말한다. 장하준이 제시하는 국가론과 국가 관료(엘리트)관은 특정한 시기에 그것도 제한적으로만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 박정희 치하의 국가는 경제발전을 위해 자원을 배분하고 조직하는 것은 물론 사적 자본을 통제하는 구실까지 했다. 이런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현대 자본주의에서도 국가는 전체 자본의 이해관계를 방어하고 옹호하며 노동자와 민중의 저항을 억누르고 탄압하는 구실을 한다. 이런 것을 보면 마르크스의 지적처럼, 자본주의 국가를 “부르주아지의 집행위원회”라고 부를 만하다. 그런데 국가와 국가 관료들이 사회와 거리를 두면서 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갈등을 조율하고 관리하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 관료와 기업체 사이에 형성돼 있는 탄탄한 유착관계를 보면 스티글러G Stigler가 말한 규제-포획 이론regulatory-capture theory이 더 현실적인 듯하다. 즉, 국가가 경제를 규제하려 해도 결국 기업의 이해관계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스티글러는 결국 정부가 산업을 규제하는 것이 소용 없으므로 국가의 규제 권한을 제거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적 결론을 내린다. 스티글러는 시장의 실패에 대한 대응으로 정부 개입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비판하고자 정부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지만 국가의 본질에 관한 주장은 장하준을 포함한 제도주의 학파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있다.장하준의 국가론과 산업 엘리트 이론에는 국가가 사회 구성원 전체의 복리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계급 중립적 제도라는 관점이 암묵적으로 전제돼 있다. 이런 전제는 국민국가-대기업-노동자 사이의 사회적 대타협론의 배경이 된다.
대안
35 말하는 사람으로서 마르크스주의를 심각하게 왜곡하는 것은 문제다. 장하준은 마르크스가 “공동 자본회사가 경영으로부터 소유를 분리해 낸다는 점, 그리고 이를 통해 자본주의가 성취한 물질적 진보를 해치지 않고도 자본가들을 제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전환점’으로 생각”했다면서 36 마르크스를 사회민주주의 주창자인 듯이 묘사하기도 한다.
장하준은 마르크스주의에서 유용한 통찰력을 얻는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의 마르크스주의 이해는 조야하다. 장하준은 마르크스주의자를 자처하지 않으므로 마르크스주의를 조야하게 이해하더라도 큰 흠이 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계급론은 훌륭한 이론이며, 필자[장하준]도 이를 공부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고, 그것으로부터 얻은 통찰력을 현실 분석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다고37 마르크스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호지슨이 지적하는 가족 제도를 예로 들어 보자. 호지슨은 가족 제도가 자본주의에서든 봉건제에서든 어느 시대에나 항상 존재했으며, 그래서 이런 가족 제도에 대한 일반 이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호지슨의 이런 관점이야말로 몰역사적이다. 봉건제에서 가족은 생산 단위였지만 자본주의에서 가족은 소비 단위다. 호지슨은 이런 차이를 무시하고 모든 역사에 적용되는 가족 제도 이론을 규명하려 하는데, 이런 관점으로는 자본주의 가족 제도의 독특한 성격을 파악하기 어렵다.
장하준의 이런 태도는 그가 ‘신’구제도주의의 선구자라고 지칭한 제프리 호지슨과 비슷하다. 호지슨은 마르크스가 생산력과 생산관계라는 개념과 자본주의를 몰역사적으로 이해해 결정론적 역사관을 제시했고, 따라서 마르크스주의에는 사회 변화의 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그의 논리인즉, 사회 변화를 통해 새로운 사회 구조가 형성되면 그 구조에서 인간의 행위는 제약 받기 때문에 모든 역사에 항상 적용되는 방법론과 상이한 사회적 구성에도 통용되는 이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마르크스주의에는 사회 변화의 주체가 없다는 호지슨의 비판도 황당하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에서 노동자 계급의 역사적 지위(‘자본주의의 무덤을 파는 사람들’)를 강조했고 ‘노동자 계급의 자기해방’을 옹호한 사상가이자 노동자 계급 투쟁에 깊숙이 참여한 실천가였다는 점은 그를 옹호하는 사람이든 비판하는 사람이든 모두 인정하는 사실 아닌가!
호지슨은 사회주의가 되더라도 사회주의 제도가 생겨날 것이고, 그 사회의 구성원들은 제도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제도의 우선성을 강조한다. 이런 주장도 사회 구조(제도)와 행위자 사이의 관계를 일면적이고 기계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노동자들은 생산과정에서 겪는 착취 때문에 계급투쟁에 참여하도록 추동되고, 자신과 사회를 동시에 변혁시킬 수 있는 ‘혁명적 계급’이라고 강조한다. 동시에 마르크스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는 인간이 역사를 만들지만 과거로부터 주어지고 전승된 상황의 제약을 받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즉, 사회 구조와 사회 변화의 주체는 서로 조응하는 관계일뿐 아니라 갈등하고 긴장하는 관계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장하준의 사고에서는 역사 발전의 주체와 사회 구조(그가 제도라고 말한 것) 사이의 복잡한 관계에 대한 이해는 찾아볼 수 없고 오로지 초역사적 제도만이 존재한다. 게다가, 장하준은 호지슨보다 더 후퇴해 국가 주도성만 강조한다. 그러다 보니 장하준은 자본주의에서 다양한 제도가 왜 독특한 모습과 기능을 갖는지, 제도가 어떤 이유로 또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변하는지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38 그는 자본주의가 아닌 대안 사회의 가능성을 부정하므로 자본주의적 대안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데, 이런 사고는 이런 자본주의가 아닌 저런 자본주의가 더 낫다는 식의 자본주의 유형론으로 귀결된다.
장하준의 논리에서 치명적인 약점은 사회 변화의 주체와 변화의 동학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계급투쟁이나 자본주의의 근본적 변혁 같은 의제는 가능하지 않다고 보고 관심도 없다.39 유치산업 보호를 위한 보호주의 논리는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고 이를 위해 노동자·민중이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논리로 나아갈 위험이 있다.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가 강요하는 틀 내에서만 대안을 택해야 한다는 장하준의 관점은 국제교역 문제를 다룰 때도 그대로 드러난다.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자유무역에 반대해 장하준은 국가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주의 정책을 주장한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보호주의 정책이 함축하고 있는 친자본적이고 반노동자적인 성격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 “독일에서 리스트 박사로 대표되는 보호주의자들의 의도는 수공업 노동을 보호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들은 기계제로 수공업 노동을 분쇄하고 현대의 메뉴팩쳐가 가부장적 메뉴팩쳐를 대체하도록 하기 위해 보호주의 관세를 요구한다. 이들은 항상 부자 계급(부르주아지)의 지배, 특히 거대 제조업 자본가들의 지배를 준비하고자 한다.”자본주의는 태동부터 경쟁과 축적의 체제였다. 그러나 장하준은 자본축적의 동학이 아닌 시장과 국가를 포함한 다양한 제도의 구실과 정치적 의미라는 관점에서 자본주의를 이해하려고 한다. 자본주의가 이윤 추구를 위한 경쟁이 만연한 체제이고 이런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기업들이 자본축적을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장하준의 자본주의 이해는 (그의 비판 대상이었던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만큼은 아닐지라도) 결점이 많다.
장하준이 주장하는. 신자유주의가 아닌 대안, 즉 사회적 타협에 바탕을 둔 복지국가가 매력적으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사회를 이룩하는 데서 누가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그는 모호하고 공상적인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필자 이정구는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
- 송원근·강성원 2011. ↩
- 송원근·강성원 2011, ⅲ. ↩
- 장하준 2007, p228. ↩
- Krugman 2002. ↩
- 장하준은 금융을 혁신하고 금융 부문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에 비판적이지만 금융 발전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금융 발전이 자본주의의 발전에 결정적 역할을 해 왔다는 것은 사실이다.” 장하준 2011, p312. ↩
- 김용욱 2008. ↩
- 김창근 2007. 김창근은 장하준의 핵심 주장을 발전국가론(또는 개발독재론)이라고 전제한 상태에서 비판해 장하준이 쉽게 빠져나갈 길을 만들어 줬다. 그래서 김창근의 장하준 비판(김창근 2007)과 이에 대한 장하준의 답변(장하준 2007)은 논점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논쟁으로 보인다. ↩
- 김기원 2011. ↩
- 이병천 2011. ↩
- 장하준을 우호적으로 비판한 이병천의 글에 대한 장하준의 답변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다. ↩
- 장하준은 “재벌을 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재벌보다 더 질이 나쁜) 국제 금융자본의 논리에 동조하는 분들은 도무지 수긍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장하준 2010, p134. 장하준은 론스타와 달리 삼성은 한국에서 이씨 가족이라는 실체가 있고 과거의 악행이 있으므로 맞서 싸우기가 상대적으로 쉽다고 말한다. ↩
- 장하준 2007. ↩
- 김용욱 2008. ↩
- 장하준 2005, p63. ↩
- 김종현 1994, p4. ↩
- Hodgson 1993, p63. ↩
- 장하준 2005, p64. ↩
- 장하준 2005, p65. ↩
- Chavance 2009, p72. ↩
- 장하준 2005, pp68-69. ↩
- Hodgson 2001, pp54-55. ↩
- 장하준 2002, pp24-25. ↩
- 장하준 2002, p26. ↩
- 장하준 2011, p20. ↩
- Chang 1994, p132. ↩
- 폴라니 2009. ↩
- 신고전파 경제학자들 중에는 시장의 실패를 인정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국가의 개입을 받아들이는 인물들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시장의 자기조절 기능을 강조하고 정부의 구실을 부차적으로 본다. 반대로 제도주의 경제학자들은 시장의 우선성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
- 장하준 2006, p72. ↩
- 장하준 2006, p105. ↩
- 장하준 2006, p87. ↩
- 국가가 유효 수요를 창출해 거시 경제를 관리하고 이를 통해 경제가 위기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을 보면, 장하준은 케인스주의 경제학의 주요 주장을 받아들이고 있다. ↩
- 장하준 2006, pp88-106. ↩
- 장하준 2006, p104. ↩
- 아쉽게도 장하준은 스티글러의 견해를 밀리반드Miliband나 고흐Gough 같은 마르크스주의자의 관점과 비슷한 것으로 소개한다. Chang 1994, p20. ↩
- 장하준 2007, p228. ↩
- 장하준 2011, p36. ↩
- Hodgson 2001, pp52-53. ↩
- 장하준은 자본주의가 아닌 사회의 성립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사회주의는 스탈린주의 러시아가 그러했듯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
- Marx 2001, p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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