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집중제에 관한 메모
이 글은 IS Internal Document 1968년 6월호에 실린 토니 클리프의 “Notes on democratic centralism”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1966년 후반부터 시작된 학생 운동과 반전 운동 덕분에 당시 영국 IS의 전체 회원 수는 약 8백 명으로 늘었다고 한다.
● 우리 단체[영국 IS]는 오랫동안 순전히 선전 조직이었다. 책·이론지 발행과 정치 학교 개설 등의 사업이 주된 활동이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느슨한 연방제 구조가 적합했다. 모든 지회는 하나의 줄에 꿴 염주알 같았다.
지난 2년 동안 우리는 점점 선동을 강조했다. 그래서 다른 종류의 조직 구조가 필요하다. 혁명적 전투 조직은, 특히 당이 되고자 하는 조직은 민주집중제적 구조가 필요하다.
● 제1인터내셔널의 프루동주의자들과 바쿠닌주의자들(이들은 모두 아나키스트였다)은 연방제 구조를 원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의 논리를 따라, 인터내셔널은 노동자들의 조직이어야 하고 조직의 성원과 대표자는 오직 노동자여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에서 지배적 사상은 지배계급의 사상이므로 혁명적 정치는 계급의 현재 의식을 반영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혁명적 이론 없이 혁명적 운동이 있을 수 없으므로 인터내셔널 지도부가 반드시 노동자들이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었고, 또 연방제 원리를 따라 선출된 대의원들로 지도부를 구성할 수도 없었다.(그래서 마르크스는 러시아인도 아니었고 러시아에 가 본 적도 없었지만 인터내셔널 총평의회에서 ‘러시아 책임자’로 활동했다. 그리고 볼셰비키당 중앙위원회에도 노동자는 한 명뿐이었고, 중앙위원들은 모두 한 도시에서 선출된 사람들이었다. 멘셰비키나 로자 룩셈부르크의 스파르타쿠스단도 마찬가지였다.)
● 연방제 원리(혁명 조직의 집행위원회를 지회당 1인씩 선출한 대의원들로 구성해야 한다는 사상)는 지지할 수 없다.
(가) 이 원리는 비민주적이다.
어떤 지회의 회원 50명이 중대한 쟁점을 놓고 26대 24로 갈린 상황에서 대의원 한 명이 50표를 던지는 것이 어떻게 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소수파(예컨대, 회원 수의 20퍼센트를 차지하는)가 다수파와는 다른 정책들을 내놓더라도 그 정책들은 집행위원회에 전혀 반영되지 못하거나 반영되더라도 극소수만 반영될 뿐이다.
(나) 조직 내부에서 매우 중요한 사상 투쟁이 벌어지더라도 정치 쟁점이 되지 않고 조직적 결정을 거부하는 태도나 절충주의[이것도 저것도 다 필요하다는 식]로 귀결될 것이다.
(다) 조직이 일정 규모 이상으로 성장할 수도 없다. 예컨대 회원이 1천 명이고 지회가 1백 개라면 어떤 집행위원회도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라) 연방제는 세포 구조와 양립할 수 없다. 세포 구조는 작고 긴밀해야 한다(십중팔구 세포 구조가 활동과 교육의 단위로서 지회를 대체할 것이다).
(마) 연방제는 전문화나 분업과 양립할 수도 없다. 몹시 바빠서 지역 지회 활동에 참여할 수 없었던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트로츠키, 룩셈부르크, 리프크네히트 같은 사람들이 연방제 원리를 따르는 혁명 조직에 있었다면 어떤 집행위원회에도 선출되지 못했을 것이다.
(바) 결론적으로, 연방제 구조는 불안정하고 비효율적이다.
우리의 상황에서 단체가 성장하고 세포 구조로 전환하면 정치위원회 구성원의 절반(우리의 선전·선동 주간지[〈소셜리스트 워커〉를 가리킴] 편집자를 포함해)은 지역 지회에서 활동하지 못할 수 있고, 따라서 집행위원회에 선출될 수도 없을 것이다. 혁명 조직의 양대 위원회, 즉 집행위원회와 정치위원회가 상반된 원리를 따라 선출된다면 조직은 효과적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 민주집중제 구조는 다음과 같은 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대의원 협의회(1년에 한 번이나 두 번 모이는)는 정책, 즉 조직의 원칙과 전략·전술을 결정한다.
집행위원회, 정치위원회 등은 협의회에서 개인별로 선출되거나, 분파가 있을 때는 세트로 선출된다. 대의원들은 그룹을 결성해 협의회에서 그들이 차지하는 비율에 따라 위원들을 선출할 권리가 있다.
협의회의 모든 결정과 한 협의회와 다음 협의회 사이에 내려지는 집행위원회의 결정은 모든 회원들에게 구속력이 있다.
혁명적 전투 조직은 날마다, 시시각각 전술적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그래서 강력한 중앙집중주의가 필요하다.
혁명 정당의 가장 중요한 결정, 즉 국가 권력 장악 결정은 볼셰비키당 중앙위원회가 내렸다. 혁명적 상황에서는 단 하루도 허비할 수 없다(협의회를 준비하는 데 걸리는 한 달은 말할 것도 없다). 전쟁이냐 강화냐(브레스트리토프스크 강화 조약 체결 여부)에 대한 결정도 볼셰비키당 중앙위원회가 내렸다. 파리 코뮌에 대한 제1인터내셔널의 역사적 성명서(마르크스가 작성한)도 총평의회 회의에 참석한 소수의 동의를 거쳐 발표됐다(각국 지부의 기층 회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 각국 지부대표자들의 동의도 구하지 않았다).
지회의 소수파(예컨대 20퍼센트를 차지하는)가 비상협의회 소집을 요구하면, 집행위원회는 이를 집행해야 한다. 새로운 결정이 내려질 수 있고, 대표들도 새로 선출될 수 있다.
● 현재로서는 [영국] IS의 규모와 불균등성 때문에 과도적 구조(연방제에서 민주집중제로 나아가는)가 불가피하다.
현재, 회원 수가 10명 이상인 지회에는 모두 집행위원이 한 명씩 있는데, 이스트 런던, 크로이던, 리치몬드 지회는 그렇지 못하다. 이 지회들에도 집행위원이 있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런던 지역위원회(IS 회원 절반 가량이 속한)를 강화해야 한다. 이 위원회는 시위, 정치 학교 등을 조직할 수 있다. 지회당 대의원 1인이라는 원리를 고수해서는 런던 지역위원회가 제 구실을 할 수 없다.
특정 부문에 속한 동지들의 모임이 소집돼야 한다(교사들이 꼬박꼬박 모임을 열듯이 말이다).
쌍방 의사소통이 매우 중요하다. 지금까지는 집행위원회와 행정위원회가 지회에 보내는 정보가 반대 방향의 정보보다 훨씬 많았다. 비판과 자기비판이 대단히 중요하다. 무엇보다 정치와 이론이 더 강화돼야 하고, 따라서 집중주의가 더 강화돼야 한다(여러 지역 활동에서 온통 자율주의적인 최악의 “경제주의”와 조직적 결정 거부 태도가 나타났다).
MARX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