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쟁점Ⅰ:진보, 금융, 발전국가

금융 위기와 민스키

MARX21

  1. 민스키는 러시아계 미국인으로 시카고대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대학교에서 산업연관분석의 창시자인 바실리 레온티에프에게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민스키는 밀턴 프리드먼으로 대표되는 통화주의*의 아성인 시카고대학교 출신이지만 통화주의와 상반된 견해를 견지한 것이 이채롭다. 민스키는 브라운대학교와 버클리대학교 등을 거쳐 죽기 직전에 바드대학교에 재직했는데, 이 때문에 바드대학교의 레비연구소(http://www.levyinstitute.org)는 민스키 아카이브를 운영하고 있다.
  2. Wolf 2008.
  3. Lahart 2007.
  4. Lahart 2007.
  5. 민스키의 용어로 설명하면, 헤지 단위에서 투기적 단위나 폰지 단위로 전환하는 상황, 또는 폰지 단위가 증가해 금융 구조가 취약해진 상태에서 자산 가격이 폭락할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을 가리킨다.
  6. 쿠퍼 2009, p11.
  7. 박종현 2000.
  8. 황재홍 2009.
  9. 조복현 2009.
  10. Minsky 2008, p194.
  11. Minsky 1992.
  12. Minsky 2008, p90.
  13. Minsky 2008, p226.
  14. 어찌보면 당연한 이런 주장조차 중앙은행이 적절히 개입하면 경기변동이 사라진다는 ‘대안정’ 가설을 받아들이는 주류 경제학자들에게 배척당했다. 2004년 벤 버냉키도 ‘대안정’ 가설을 신뢰한다고 말했다.
  15. Palley 2010.
  16. 1980~2007년 명목 GDP는 10조 달러에서 55조 달러로 5.5배 증가했지만, 금융자산은 12조에서 1백96조 달러로 16.3배 증가했다.
  17. 산업 기업들이 자율적인 금융 주체로 등장하면서 이전과 달리 자금 조달을 은행에 의존하지 않게 된 것이 여기에 영향을 미쳤다. 은행들은 낮아진 이윤을 높이고자 금융 혁신을 다양하게 추구했다. 주로 금융 투기로 이득을 얻는 투자은행들이 이윤을 극대화하려고 자기자본비율*을 낮춰(즉, 레버리지*를 높여) 투자를 늘렸고 상업은행도 이런 관행을 뒤따랐다. 이에 대한 좀더 자세한 논의는 캘리니코스 2010, pp48-52를 보시오.
  18. 온정주의적 자본주의는 대량 소비 경제(높은 임금이 수요를 창출한다), 정부의 재정적자, 중앙은행의 경제 개입, 낮은 금리, 비교적 규제가 심한 금융 영역 등이 특징이다. 이 시기를 두고 어떤 이들은 ‘황금기’라고도 부른다. 갤브레이스가 ‘새로운 산업국가’라고 표현한 것도 이 시기를 두고 한 말이다. Wray 2011b, p5.
  19. Wray 2011b, pp6-13.
  20. Minsky 2008, pp330-337.
  21. Tymoigne 2008, p3.
  22. 민스키는 실업급여 같은 방식의 복지 서비스는 총 산출량을 늘리지 않고 인플레를 일으킨다는 점에서 반대한다.
  23. Whalen 2007, Wray 2011a.
  24. Kregel 2008.
  25. Davidson 2008.
  26. 하먼 2010.
  27. 민스키가 살아 있었다면 양적완화 정책은 경기부양책과는 무관하고 인플레만 조장한다는 이유로 반대했을 것이다.
  28. 캘리니코스 2010, p67.
  29. Minsky 2008, p364.
  30. 조복현 2009.
  31. 박종현 2000.
  32. 1929년 대공황 이후 군부가 권력을 장악한 일본, 히틀러의 나치 독일, 스탈린 치하 러시아가 강력한 국가자본주의 정책을 펼치면서 가장 빨리 경제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케인스는 이런 정책들을 자신의 ‘자식’으로 여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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