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 Ⅱ:인종차별과 다문화주의
변모하는 인종차별 *
1 데넘의 이런 주장은 매우 뜻밖이다. 공식 기록을 봐도 영국에서 인종차별 행위 건수가 늘었고, 극우 정당인 영국국민당BNP 지지율도 올랐기 때문이다. 또, 영국수호동맹EDL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활개치는 거리 폭력배들이 등장했고(존 데넘 자신이 이들을 오스월드 모슬리가 [1932년에 ― M21] 창립한 영국파시스트연합BUF에 빗댄 바 있다), 린지 정유 공장 등의 노동쟁의에서 반反이주 정치가 다시 나타났고, 언론의 부추김 속에 무슬림에 대한 반감이 이례적으로 증대했다.
신노동당 정부에서 지역사회부 장관을 지낸 존 데넘은 인종차별이 쇠퇴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은 상당 부분 지난 10년 동안 노동당 정부가 인종차별을 없애려고 노력한 덕분이라고 주장한다.2 게리 영의 분석이 존 데넘의 분석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다. 비록 강조점이 종교적 신념과 문화로 이동한 것은 인종 문제가 신우익의 의제로 등장했을 때, 즉 [1968년에 — M21] 보수당 정치인 이녹 파월이 인종 문제를 정치적 경력 쌓기에 이용했을 때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사실, 인종차별 이데올로기는 늘 종교적 신념이나 문화와 관련이 있었다.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존 데넘만큼 낙관적이지 않다. 〈가디언〉 기자 게리 영은 지난 10년 동안 “강조점이 인종에서 종교로, 또 피부색에서 종교적 신념과 문화로 바뀌면서 … 옛 관점과 새로운 속죄양이” 융합된 결과로 심각한 퇴보가 있었다고 지적한다.오늘날 영국에서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효과적으로 싸우려면, 이런 강조점 이동이 가속화하고 인종차별의 형태가 달라지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인종차별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에 중요한 변화가 많이 일어나고 있다. 종교적 신념과 문화가 인종차별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게 됐는가 하면, 생물학적 차이나 피부색 등과 연관된 옛 인종 개념에는 잘 맞지 않는 민족과 시민권 같은 개념들도 중요해졌다. 이민자에 대한 적대감이 언제나 흑인을 향하는 것도 아니고, 무슬림에 대해 인종차별적 태도를 취하는 사람이 항상 모든 흑인을 적대시하는 것도 아니다. 이 사실만으로도 인종차별과 관련한 토론은 혼란스러워지고, 인종차별주의자들은 중요한 알리바이를 얻게 된다. 무슬림을 비난하는 사람들 중 다수는 진심으로 자신은 인종차별주의자들을 지지하지 않으며 그저 인권과 ‘영국적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 문화에 맞서 그것을 옹호하고 싶을 뿐이라고 말할 것이다. 또, 무슬림은 ‘인종’이 아니므로 인종차별은 더는 쟁점이 아니라는 듯 말할 것이다.
‘테러와의 전쟁’은 변모된 인종차별의 많은 부분을 설명해 주는 유력한 원인이다. 그러나 이슬람 혐오 문제를 ‘테러와의 전쟁’의 하위 담론으로 환원하는 태도는 경계해야 한다. 무슬림을 겨냥한 인종차별은 9·11 테러와 그 뒤의 전쟁몰이가 있기 전부터 존재했고 전쟁 지지 여론과도 필연적 관련이 없다. ‘테러와의 전쟁’보다는 오히려 국내의 사회 변화와 더 깊은 연관이 있다. 사실, 사회주의자들이 극우파에 맞서려면 전통적인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와 상반되는 듯한 우익의 반전 정서를 설명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이것은 탈脫식민지주의 시대에 인종차별주의 내부에서 나타난 변화, 즉 공세적인 백인 우월주의가 수세적인 백인 민족주의로 바뀐 것과 관련이 있다.
3 자유주의자들의 일부도 인종 문제에 관한 신우익의 의제를 수용해, 이민과 시민권에 관한 문화주의적 주장을 통째로 받아들였는데, 그런 주장들은 다문화주의에 반대해서 제기된 것들이었다. 중도좌파도 진보적 민족주의라는 관념을 점점 더 많이 받아들여 왔다. 이들은 마치 신우익처럼, 사회적 연대와 문화적 다양성은 공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4 이들은 고든 브라운의 선례를 따라, “영국다움”이 사회적 연대를 뒷받침할 수 있다는 자유주의적 주장을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이런 주장은 너무도 자주 무슬림을 범죄자 취급하는 태도로 이어졌다. 그들의 주장인즉슨, “영국적 가치”는 페미니즘과 인권, ‘계몽주의적 가치’를 존중하는 것이고, 이 모든 것은 이슬람이나 적어도 이슬람의 극단적 표현과는 상충한다는 것이다. 자유주의자들이 이런 문화적 국수주의에 연루되는 것은 겉보기만큼 이상한 일은 아니다.
무슬림을 겨냥한 문화적 국수주의는 이슬람의 경계에서 멈추지 않는다. 아닌디야 바타차리야는 이슬람 혐오로 주류 문화에 예전의 인종차별 형태가 다시 등장하게 됐다는 점에서 이슬람 혐오야말로 오늘날 인종차별의 ‘첨단’이라고 유용하게 규정했다.이슬람 혐오적 문화 본질주의를 바탕으로 인종차별의 전통적 형태들이 되살아나면서 낡은 인종차별적 욕설들을 되살리려는 시도가 두드러졌다. “스트릭틀리 컴 댄싱”[TV쇼 “댄싱 위드 더 스타”의 영국 버전 ― M21]의 사회자 브루스 포시스는 경연 참가자 안톤 두 베케가 “파키”[파키스탄인을 경멸적으로 가리키는 표현 ― M21]라고 말한 것을 두둔했다. “한때 미국인들도 우리를 ‘라이미[영국인들을 경멸적으로 가리키는 표현]’라고 부르지 않았습니까. 물론 듣기 좋은 말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웃어넘겼죠. 누구나 별명은 있는 법이니까요.” 또, 축구 전문가 론 앳킨슨이 첼시의 흑인 선수 마르셀 드사이를 가리켜 “게으른 뚱보 검둥이”라고 했을 때 스포츠 평론가 지미 힐은 그 말이 그저 “농담”일 뿐이라고 옹호했다. 인종차별적 괴롭힘과 폭력 사건이 증가할 때 이런 용어들(인종차별 행위들을 당연한 것으로 만드는 구실을 하는)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옹호되는 것이 우연은 아닐 것이다. 통계 수치는 충격적이다. 2005년 자료를 보면 1996~97년에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1만 3천1백51건이었던 인종차별적 사건이 2003~04년에는 5만 2천6백94건으로 네 곱절 이상으로 급증한다. 특히 2003~04년 기록 중 3만 5천 건 이상은 부상·공격·괴롭힘을 포함한 ‘심각한 사건’으로 분류된다.
6 스코틀랜드의 인종차별적 사건은 2004~05년 4천5백19건에서 2007~08년 5천2백43건으로 증가했다. 7 검찰은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인종차별적 행위로 기소된 피고인 수가 1999~2000년 이래 계속 증가했다고 말한다. 2006~07년 그런 피고인 수는 1999~2000년의 거의 네 곱절이다. 8
이런 증가세는 계속된다. 2003~05년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인종차별적 사건은 12퍼센트 증가했다. 2005~07년 이 수치는 다시 28퍼센트 증가했다.이런 행위를 낳은 인종차별 분위기를 부추긴 장본인은 대개 정부였고, 그 결과 오늘날 극우파들은 1970년대 이후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또, 인종차별적 폭력배, 인종차별적 훌리건, 영국수호동맹의 극우파 활동가들이 활개를 치게 됐다. 영국수호동맹은 안젬 초드리[영국 거주 이슬람주의자로 영국 정부의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비판했고 영국에서 발생한 테러를 옹호했다 ― M21] 같은 이슬람주의자들을 반대할 뿐 인종차별을 지지하지는 않는다며 무슨 ‘인종’이든 무슬림만 아니라면 환영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영국수호동맹의 시위는 흔히 인종차별적 구호, 나치식 경례, 남아시아계 보행자와 가계 공격으로 점철됐다.
9 생물학적 결정론을 공개적으로 옹호하거나 노골적인 ‘백인’ 우월주의를 내세우지 않는 ‘새로운 인종차별’은 소수인종 문화와 ‘주류’ 문화의 양립 불가능성을 핵심 가치로 삼는다. 원래는 이녹 파월의 골수 지지자들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중도좌파의 일부도 포함된 ‘새로운 인종차별’ 지지자들은 인종차별의 본질에 대한 흔한 오해에 기대어, 자신들의 문화주의적 담론은 엄밀한 의미의 인종차별과 완전히 다른 문제라고 선을 긋는다.
이 모든 것들은 1981년에 철학자 마틴 바커가 ‘새로운 인종차별’로 묘사한 경향이 절정에 달했음을 보여 준다.인종, 문화, 민족, 종교
10 또 다른 주장은 인종이란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우월한 인종도 말이 안 되는 생각이지만 문화(또는 문명)의 불평등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다문화주의”에 대한 자유주의자들의 공격에서 확실히 드러난다. 예를 들면, 마틴 에이미스는 흔히 무슬림을 겨냥해 무분별한 폭언을 일삼는데, 이를 두고 인종차별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에 맞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다인종 공존주의를 아주 좋아한다. 이 나라에는 내 취향에 맞을 만큼 이민자가 많지 않다. 화성이나 목성에서도 이민자들이 오면 좋겠다. 그러나 다문화주의는 내 생각에 사기다. 이런 것들이 단지 전통이라는 이유로 정당화될 수는 없다. 그런 전통은 사라져야 한다.” 11
오늘날 차별받는 인종을 천대하고 배척하는 행위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인종차별이라는 비난을 피하려고 여러 가지 주장을 편다. 그 중 하나는 어떤 인종도 다른 인종보다 선천적으로 우월하지는 않지만 인종 간 차이가 존재하고 또 그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이다.12 ‘다문화주의’가 전통에 호소해서든 문화적 감수성에 호소해서든 여성 살해를 용인한다는 주장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 그럼에도 에이미스의 주장이 분명히 보여 주는 것은 그가 이런 행위를 비판해서 이슬람이라는 문화를 도매금으로 싸잡아 매도하려 한다는 점이다.
에이미스가 말하는 “전통”이란 “명예 살인” 같은 행위를 말하는데, 그는 이것을 간단히 “이슬람적” 행위로 치부한다. 그러나 그가 전제로 삼은 가설 자체가 틀렸다. “명예 살인”이란 가부장적 폭력의 한 형태로 문화적 경계와 관계 없이 나타난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이런 폭력이 “여러 문화권, 여러 종교에서 나타난다”고 말한다. 이런 폭력은 지참금 살인, 치정 범죄 등 여러 이름으로 라틴아메리카·인도·이탈리아·스웨덴·브라질·영국 등지에서 발생한다.13 로드 리들의 이 주장은 2007년에 토니 블레어가 품고 있던 똑같은 생각을 조금 덜 조심스럽게 말한 것뿐이다. 당시 토니 블레어는 흉기·총기 범죄가 빈발하자 독특한 흑인 문화, 특히 결함 있는 흑인 가정 탓으로 돌렸다. 14 그러나 로드 리들이 통계 수치를 바탕으로 내놓은 주장은 사기에 가깝다. 15 그리고 결론에서 그는 1950년대에 처음으로 영연방 출신의 상당수 이민자들이 영국에 도착한 이래 계속 제기된 진부한 인종차별 이데올로기를 재탕했을 뿐이다. 16
다문화주의를 겨냥한 또 다른 공격은 〈라디오4〉의 ‘투데이’ 프로그램 전 편집자 로드 리들이 감행한 것인데, 그의 도발은 광범한 비판에 직면했다. ‘투데이’에서 그는 “런던에서 일어나는 길거리 범죄, 흉기 범죄와 총기 범죄, 강도, 성폭행의 압도 다수”는 “아프리카계 카리브해인 공동체 소속 청년들”이 저지른다고 말했다.17 이 주장이 “다문화주의 사상”에 대해 부정확하게 말하고 있다고 반박한다면 지나치게 예의를 차린 것이다. 리들의 말은 그저 터무니없는 왜곡일 뿐이기 때문이다. 사실, 다문화주의는 1980년대에 반정부 성향이 강했던 아프리카계·아시아계 소수인종들을 길들이려고 국가가 주도한 정책에서 비롯했다. 그러나 그 기본 취지는 1966년에 당시 내무장관 로이 젠킨스가 선언한 목표에 잘 드러나 있다. 그는 다문화주의의 목표가 “상대방에 대한 관용을 바탕으로 문화적 다양성과 평등한 기회”를 성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8 그러나 비록 다문화주의가 인종적으로 ‘순수한’ 국민이라는 터무니없는 개념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인종차별에 대한 대응으로서는 약점이 있다. 다문화주의는 인종차별이 근본적으로 체제에서 비롯했다는 점을 심각하게 다루지 않는다. 다문화주의는 탈정치화한 방식으로 다양한 문화를 ‘찬양’해서, 문화를 사람들이 동참하는 과정이 아닌 수동적으로 관찰하고 수용하는 정태적인 대상으로 바꿔 버린다. 19
그러나 로드 리들은 자신이 문화를 언급했지 인종을 언급한 것이 아니라며 비판을 비켜갔다. “다문화주의 사상이 주로 비판받는 이유는, 아무리 상식에 어긋나고 반사회적인 문화라도 비판받거나 방해받지 않고 발전할 수 있게 허용해야 한다는 태도 때문이다.”로드 리들의 주장은 오늘날 이슬람 혐오의 주요 특징 몇 가지를 보여 준다. 그 특징 중 하나는 완전히 분리되고 대개는 소통되지 않는 문화들이 존재하고, 따라서 문제가 있는 소수인종들이 자신만의 독특한 문화적 원칙을 지키려고 받아들이지 않는 문화적 ‘표준’이라는 것이 있다는 주장이다. 오늘날 무슬림에 대한 적대감은 또한, 히잡이나 심지어 부르카처럼 눈에 띄는 무슬림의 상징들이 ‘주류 문화’에 대한 적대감과 ‘주류 문화’에 섞이지 않으려는 욕구를 표현한 것이라는 주장에서도 거듭거듭 드러난다. 이런 주장들이 그동안 더 오래된 속죄양 ― 즉, 흑인 청년들 ― 에 대한 공격의 기초였다는 점을 보면, 이슬람에 대한 적대는 인종 문제와 관련해서 겉으로 표방된 것 이상의 함의가 없다는 견해가 안이하고 틀렸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수세적인 자기 방어의 셋째 예는, 사람들이 인종차별 행위를 옹호하는 것은 단지 문화의 상호 침투로 위협받는 소중한 사회적·문화적 질서를 보존하려는 것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혼동이 가능한 이유 하나는 ‘과학적’ 인종차별주의의 중요성이 과장됐기 때문이다. 여기서 인종차별주의는 인간의 외모 차이가 인종 간 우열에 따라 결정된 것이라는 관점을 포함한다. 그러나 인류학자 C 로링 브레이스가 말했듯, ‘인종’은 “생물학적 일관성과 타당성이 없는 개념”이다. 피부색, 치아 길이, 혈액형, 코 길이, 헤모글로빈S의 유무 같은 신체 형질의 다양성은 인종 개념과 일치하는 방식으로 분포하지 않는다. 생물학적 인종차별주의가 학계에서 인정받는 공간은 계속 축소됐다.(흑인의 지능이 백인보다 낮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책 《벨 커브》의 추종자들 중 일부가 여전히 생물학적 인종주의를 옹호하고는 있다.)
20 바로 이 본질주의적 표현이 ‘문화적 인종차별주의’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인종차별이 존재하지도 않는 실체에 대한 불신받은 믿음이라는 말이 참말이라면, 더 이상의 논의는 필요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거의 하지 않을 실수를 교정하는 것을 목표로 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인종차별이 신뢰성을 잃은 환상일 뿐이라는 견해는 사람들에게 그릇된 인상을 주는 것이다.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주장은 몸에서 시작해 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문화적 차이를 강조하는 주장은 언뜻 보았을 때처럼 이례적이지 않다. ‘인종’은 엄밀히 말해 생물학적 다양성과 관계가 없는 다양한 민족 담론들과 중첩된다. 인종에 관한 일상 언어는 여러 인간 집단(국민이든 신도든 민족이든)에 대한 ‘상식’인 각종 고정관념과 일반화에 기댄다. 이런 고정관념들은 언제나 표면적인 문화적 특징에 초점을 맞춘다. 알리 라탄시는 이른바 문화적 특징들이 고정관념이 될 때 그 고정관념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그렇게 특징지워진 집단에게 고유한 것처럼 여겨지게 된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이른바 유대인의 탐욕, 이른바 아프리카인과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공격성, 이른바 아프리카계 카리브해인의 범죄 성향, ‘동양인’의 이른바 음험함 등이 아주 오랜 세월에 걸쳐 이 집단들의 고유한 특징인 것처럼 되는 것이다.”21 영국의 가장 중요한 자유주의 철학자이자 식민지 관리였던 존 스튜어트 밀도 생물학적 인종차별이 아니라 문화 국수주의를 바탕으로 비유럽인을 경멸했다. 그는 생물학적 인종차별에는 오히려 반대했다. 그는 분명 식민지보다 본국이 우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그 우월성의 기초가 “사회학적 법칙의 가장 중요한 층위”인 “국민성의 법칙”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22
문화적 인종차별의 이른바 새로움으로 말하자면, 사실 근대의 인종차별이 시작될 때부터 문화적 인종차별은 존재했다. 노예무역, 식민주의의 현실과 마주한(때로는 이와 공모한)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유럽의 백인들이 우월하다는 것을 문화적 우월성이라는 것으로 설명하려 애썼다. 흄은 “검둥이들은 선천적으로 백인들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악명 높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인종 간 차이에 관한 생물학적 설명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검둥이들’의 풍속과 습관, 그들의 후천적인 행동방식, 즉 문화에 관한 설명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인종차별을 몸 담론에 국한된 것으로 해석하는 관점의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인종’ 개념이 현실에서 어떤 효과를 내는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시어도어 앨런, 데이비드 뢰디거, 노엘 이그나티에프 등 인종차별을 연구한 역사가들은 인종이 사회적인 현상을 차별받는 집단의 고유한 특징으로 표현하는 사회적 구성물임을 보여 준다. 생물학적 ‘인종’ 개념은 인종 간 위계를 실제로 구축하는 것과는 거의 관련이 없었다. 이것은 늘 정치적 행위였다. 역사적으로 ‘인종’ 개념의 목적은 노동시장을 피부색에 따라 계층화해 계급 구조를 관리하는 데 있었다. 시어도어 앨런은 개신교 세력이 아일랜드를 통치하던 시절에 이런 노력이 시작됐다고 본다. 당시 아일랜드인의 다수파인 노동계급 가운데 일부가 억압자 집단으로 통합되는 독특한 계급 지배 형태가 구축됐다는 것이다. 식민지 아일랜드에서는 아무리 가난한 개신교계 노동자라도 가톨릭계 노동자들보다 특권을 누렸다는 것이다.
23 노예제 폐지 이후에도 미국에서 ‘인종 형성’ 과정이 자본축적에 계속 중요했던 이유는 새로운 이민자 집단들이 인종적으로 ‘타자화됐기’ 때문이다. 오늘날 ‘백인’으로 여겨지는 헝가리계, 폴란드계, 이탈리아계, 유대계 노동자들은 당시엔 ‘백인’이 누리는 특권에서 배제되는 방식으로 ‘인종화’됐다. 그와 동시에 이들은 각자 출신 지역별로 서로 경쟁했고, 중국계·아프리카계 이주민들과도 마찬가지로 경쟁했다. 미국 자본의 ‘인종 관리’ 전략 속에서 인종의 범주와 인종적 고정관념은 계속 수정됐고, 따라서 ‘과학적’ 인종차별 담론의 구분들이 절대적으로 유의미하지는 않았다. 24
1676년 베이컨 반란이 상징적으로 보여 주듯 17세기 앵글로아메리카의 연한年限계약이민노동자[유럽인이 아메리카로 이주할 때, 보통 7년간의 노동계약을 맺고 선박 운임 등 여행 경비를 미리 지급받은 노동자 ― M21] 제도에 맞서 여러 인종이 하나의 계급으로 뭉쳐 저항에 나서자 식민지 지배자들은 인종차별적 노예제도로 눈을 돌렸고, 이를 통해 아프리카계 노동자들과 유럽 노동자들이 차별받는 정도의 차이를 크게 부각시키고 과장했다. 아일랜드에서 정교하게 발전한 것과 아주 유사한 법적·정치적 혁신이 잇따른 뒤, 더 차별받는 아프리카인들이나 아메리카 원주민들과는 다른 ‘백인’ 개념이 형성됐다. 인종차별적 억압은 이른바 신체적 차이에 의존하지 않았던 것이다.인종차별 행위를 규정하려고 ‘인종’이라는 정태적 실체를 규명하려 하기보다는 ‘인종화’라는 지속적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더 현명할 것이다. 파시즘이 다른 세계관과 전통의 이데올로기적 잡동사니들을 기회주의적으로 도용해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이데올로기로 악명이 높듯, 인종차별 이데올로기도 민족적·지역적·종교적·부문적·계급적인 다양한 고정관념들로 끊임없이 구성되고 재구성된다. 그런 고정관념들의 공통점은 소수인종들이 평범한 시민이 얻는 기회와 자격에서 구조적으로 배제되는 인종차별 관행과 관계가 있다는 점이다. 그런 고정관념들은 또한 결코 직접적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인종차별은 주로 암시와 개념 뒤섞기에 의해 작용한다. 2001년 이후 인종차별주의자들의 표적이 얼마나 빨리 “아시아인”에서 “무슬림”으로 바뀌었는지 떠올려 보라. 사실 그렇게 신속한 변화가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은 최근 무슬림을 겨냥한 문화적 인종차별의 뿌리가 여러 세대에 걸친 반이민 인종차별, 또 그 전의 제국주의적 인종차별에 닿아 있다는 것이다.
신우익과 이민 영국이 아직 세계적 권위가 있는 제국이었을 때 영국 지배계급은 ‘자유’ 이민을 선호했다. 영국의 노동력 수요가 무한한 듯했기 때문이다. 제국주의적 인종차별은 비유럽계 노동력을 배제하기보다 지배하기를 정당화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노동력 이동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일부 있었다. 의회와 저속한 언론에서 유대인 비방과 중상이 난무하고, 러시아와 동유럽 거주 유대인들의 영국 이주 문제를 둘러싸고 시위와 소요가 한창이었을 때 1905년 외국인법이 제정됐다. 정치적 반유대주의는 제2차세계대전 때까지 영국 등 유럽의 조직된 인종차별주의자들과 파시스트들의 이데올로기적 뼈대였다. 그러나 나치의 제3제국이 패배하고 그 야만성이 폭로되면서 반유대주의는 더는 인종차별주의자들과 파시스트들의 효과적인 성장 도구 구실을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심각한 노동력 부족을 겪고 있던 유럽 나라들이 식민지에서 노동력을 수입하기 시작하면서(프랑스는 북아프리카에서, 영국은 카리브해에서) 이들의 초점은 필연적으로 반이민 인종차별로 이동했다. 1962년까지 영연방 내 식민지와 본국 사이의 노동력 이동은 상당히 자유로웠다. 영연방 국민은 영국 왕국의 신민으로 간주됐고, 1948년에 통과된 법에 따라 “영국과 식민지”의 시민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전후 노동당 정부는 1백25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일랜드와 폴란드의 유럽계 백인 노동자들을 받아들였다. 보수당과 노동당은 모두 대규모 이민을 관리하려면 이민자들이 ‘좋은 혈통’이어야 하고 다른 영국인들과 융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관점의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은 백인과 흑인이 평등한 주체로 행복하게 공존할 수 없다는 인종차별적 관념이다. 그럼에도 서인도제도에서 영국으로 이주하는 이민자들이 얼마 안 되나마 늘어나기 시작했다.
27 법을 제정할 때의 결정적 고려 사항은, 정치적·경제적 요인에 따라 유연할 수 있고 구 영연방[1945년 이전의 영연방으로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이 해당된다 ― M21] 이민자들에게 유리하도록 사실상 차별을 허용하면서도 공식적으로는 피부색에 따라 차별하지 않는 규제 장치들을 정부가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1962년 법에 따라 만들어진 규제 장치들은 신 영연방[1945년 이후의 영연방으로 인도, 파키스탄, 서인도제도 등이 해당된다 ― M21] 출신 이민자들이 1950년대보다 더 많이 유입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1982년까지 영국에 거주하는 아프리카계·아시아계 이민자의 적어도 80퍼센트는 이 법이 통과된 뒤 이주한 사람들이었다. 새로운 규제 장치들이 이룩한 성과는 이민의 감소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새로운 방식으로 제도적 인종차별이 뿌리내리게 했는데, 그때까지 영국과 식민지 시민들에게 확대돼 있던 시민권을 축소시키고, 영국에서 거주하고 일할 수 있는 자격을 고용주의 노동력 수요에 종속되게 만든 것이다. 28
이런 이민을 규제하기 시작한 것은 1962년 영연방 이민법이 제정되면서부터였고, 1965년 백서에 이어 1968년과 1971년에 잇따라 법이 제정되면서 더 강력한 규제들이 추가됐다. 비록 이민 규제가 처음 시작됐을 때는 노동력 수요가 줄어들던 시기는 아니었지만, 국가가 이주 노동자 유입을 규제하는 조처는 경제 상황에 따른 노동력 수요 변동을 반영하는 경향이 있다. 노동당은 야당일 때는 이 법이 인종차별적이라며 입법에 반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일단 정권을 잡고 나서는 태도를 180도 바꿔 그 법을 적극 옹호하고 법률의 규제 조항들을 더 강화했다. 바로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인종 문제를 생각해 낸 신우익들이 결집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변화는 이녹 파월의 경력이 아주 잘 보여 준다. 이녹 파월이 보수당 정부의 보건부 장관으로 있을 때 서인도제도의 노동자 수천 명이 영국으로 이주했는데 파월은 그런 이주에 반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1956년에는 이민 규제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였고, 1964년에도 “출신지를 이유로 이 나라 시민들 사이에 차이를 두는 것”을 지지할 수 없다고 말했다.31 그 연설에서 파월은 자신의 지역구 유권자들에게서 들었을 법한 일화들을 활용해 교묘하게 인종차별적 히스테리를 조장했다. 무엇보다 그의 목적에 비춰볼 때 가장 의미심장한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말하고 생각하고 있는” 것을 자신이 표현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32
1965년 보수당 지도부 선거에서 테드 히스에게 패배한 이녹 파월은 섀도 캐비닛[야당이 집권할 때를 예상해서 조직한 내각 ― M21]에서 활동하다 새로운 대의명분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 대의명분은 1968년 4월 파월이 버밍엄에서 한 “피의 강물” 연설로 악명을 떨쳤다. 침묵하는 대중을 대변한다는 그의 주장은 “새로운 인종차별주의”를 분명히 표현한 중요한 일보였다. 마틴 바커와 폴 길로이 같은 “새로운 인종차별” 이론가들이 주장했듯, 신우익의 인종차별은 더는 백인 우월주의나 인종 간 생물학적 차이에 기대지 않았다. 오히려 사회적 연대는 ‘내집단in-group’이나 ‘종족’ 내에서만 가능하다는 인간 본성론에 근거를 뒀다. 이런 이데올로기적 가정은 사회생물학과 동물행동학의 연구 결과에서 이론적 뒷받침을 받았다. 즉, 흑인이나 아시아인들이 열등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영국의 백인인 국민과 동화할 수 없다는 것이 새로운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주장이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 M21] 전통적 생활 방식, 즉 ‘문화’를 유지하고 싶어하는 이들의 본능적 열정은 이성이나 협상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백인이 아닌 이민자들이 지나치게 많아지면(파월 같은 인종차별주의자들은 이민자의 숫자가 재앙을 부른다고 주장했다) 불가피하게 유혈낭자한 충돌이 일어날 것이다. 따라서 수세적인 백인 국가주의는 이민에 대한 상식적 대응이라 할 수 있고, ‘자발적’ 본국 송환과 권위주의적 국경 통제가 적절한 해결책이다. 파월의 선동에서 즉시 득을 본 것은 오늘날 영국국민당의 전신인 파시스트 단체 국민전선NF이었다. 국민전선은 이후 10년 동안 성장을 거듭해 1976년에는 당원이 1만 7천 명이나 됐다. 국민전선은 선거에서 표를 얻었고, ‘의장대’라는 가두 전투 조직을 양성했다. ‘의장대’는 흑인, 노동조합 활동가, 좌파들을 상대로 테러를 자행했다. 보수당과 노동당 정부는 모두 이민과 인종 문제에 관한 국민전선의 주장을 자연스럽게 도둑질했다. 히스 보수당 정부는 1971년 이민법에 새로운 규제들을 추가했고, 이후 집권한 노동당 정부는 이민자들을 더 많이 강제 추방하고 아시아 여성을 대상으로 처녀성 검사를 실시했다. 파시스트들의 위협은 그들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동참한 운동에 의해 저지됐지만(반나치동맹은 2백50개 지부와 회원 5만 명을 거느리고 있었고 최대 50만 명을 거리로 동원할 수 있었다), 국민전선의 성공을 뒷받침한 담론들은 신우익이 영국의 다인종 공존주의를 공격하는 데도 활용됐다.마거릿 대처는 1978년 한 인터뷰에서 단호한 파월식 어조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사람들은 실제로 다른 문화권 사람들이 이 나라에 넘쳐날까 봐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영국인의 국민성은 전 세계에서 민주주의와 법 등에 엄청나게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문화권 사람들이 넘쳐날 거라는 두려움이 있다면 사람들은 이에 반발해 이민자들을 적대할 것입니다.
35 그 뒤로 바람직한 인종 관계의 관건은 영국 내 흑인과 아시아인 수를 최소화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신우익만의 견해는 아니었고, 이후 정부들이 인종 문제를 다루는 데서 핵심이 된 가정이었다. 대처 정부는 1981년 영국국적법에 이런 내용을 반영했다. 즉, “영국과 식민지의 시민권” 항목을 수정해서 대부분의 영연방 거주민들이 더는 영국에 거주할 권리가 없게 만드는 등 기존의 인종차별적 행위들에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다. 이때쯤 1차 이민[돈을 벌기 위해 가족을 모국에 둔 채 혼자 오는 이민 ― 옮긴이]은 사실상 중단됐다.
“넘쳐난다”는 강한 표현이 먼저 눈에 띄겠지만, 대처의 말이 가리키는 핵심 대상은 갈등의 원천이 될 수 있다며 문화를 강조한 것, 즉 ‘문화’에 대한 ‘상식적’이고 각별한 강조다. 흑인과 아시아인의 이주를 막는 정부의 공식 조처들은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여러 ‘인종 관계’ 법률과 공존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패턴이 확립됐다. 1960년대 이후 역대 정부는 한편으로는 인종 문제를 이민과 분리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민 규제 강화를 정당화하려고 인종 문제를 활용하는 모순된 정책을 추진해 왔다. 이민 규제를 정당화하는 주요 논거는, 이민을 규제해야 바람직한 인종 관계가 가능해진다는 것이었다. 즉, 백인들의 두려움을 제어해서 백인이 아닌 소수자들이 영국에 융합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정책이 주는 메시지는 영국이 어떤 의미에서 이민자들, 특히 백인이 아닌 이민자들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한때 강력한 이민 규제를 주창했던 로이 해터슬리는 10여 년 전인 1996년에 보수당의 망명·이민법과 관련해 이 점을 인정했다. “망명·이민법 같은 조처들, 또 이와 관련한 연설들이 주는 인상은 ‘우리는 그들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들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이미 영국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분명 우리에게 해로운 존재일 것이다.”37 2000년 (개정된) 신노동당의 인종관계법은 애초 1976년에 제정된 법의 적용 범위를 확대해 경찰이나 이민국 같은 공공기관이 인종이나 국적을 근거로 차별하는 것을 금지했다. 그러나 [이 기관들의] 이민과 국적 기능에서는 여전히 예외를 허용했다. 즉, 법률의 규정이나 장관의 요청이 있으면 인종과 국적을 근거로 한 차별이 허용되는 것이다. 38 따라서 국가기관들은 다른 정책 분야에서는 공식적으로 인종차별 반대 태도를 취하면서도 인종차별적 이민 정책을 추진하고 또 도입할 수 있다.
정부는 그동안 이민 규제 조처와 인종 간 관계의 이런 모순을 인종차별 반대 법률 조항에서 이민 정책 관련 내용을 빼는 방식으로 극복해 왔다.애초 공식적 인종차별의 초점은 영연방 내 새로운 이민을 규제하려는 것이었지만 노동인구 이동의 패턴이 변하고 정치적 태도가 바뀌면서 새로운 표적이 생겨났다. 1990년대 들어 계속해서 새로운 정부 규제를 활성화시킨 것은 망명 문제였다. 소련이 몰락하며 유럽이 격변에 휩싸이고 유럽공동체가 역내 국가 간 국경 통제를 없애려 한 바로 그때, 영국으로 이민오는 사람들 중 최대 집단은 망명 신청자들이었다. 망명 신청자들은 법적 권리를 보장받고 있었는데, 영국 국가는 이전의 인종차별적 법률에 따라 이민자 일반에게 그런 권리를 확대하지 않았다. 메이저 정부는 1993년 망명·이민 항소법을 제정해, 망명 신청 거부 요건을 완화하고, 망명 신청자가 받을 수 있는 사회보장 혜택과 법적 지원을 줄여서 이런 상황을 타개하려 했다. 1996년에는 망명 신청자가 받을 수 있는 고용과 공공 서비스 혜택을 더한층 제한하는 법률이 통과됐다.
39 신노동당은 야당 시절 이 법을 반대했지만, [집권 중이던 ― 옮긴이] 1999년에는 더 강화한 조처를 제안해 도입했다.
이런 시도의 목표는 1951년 UN에서 채택된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에 따라 영국 국가가 져야 할 법적 책임을 다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망명을 제한하려는 것이었다. 정부의 전략은 망명 신청자들을 보통의 이민 희망자 또는 ‘경제적 이민자’로 바꾸는 것이었다. 엄청나게 많은 망명 신청이 ‘가짜’라면(1992년 망명법 관련 논쟁에서 당시 내무부 장관 마이클 하워드는 대다수가 가짜라고 주장했다) 그들을 이민 희망자로 취급하거나 강제 추방할 수 있을 터였다.40 이것이 여론에 미칠 효과는 뻔했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67퍼센트가 망명 신청자 중 진짜 난민은 4분의 1도 안 된다고 믿고 있었다. 스완지대학교의 연구 결과를 보면 망명 신청자들은 대부분 전쟁을 피해 본국을 떠나오고 특별히 영국을 찾아오는 것도 아니며 영국에 오기 전에는 복지 제도를 알지도 못했다. 난민위원회는 여론조사를 해 보면 사람들이 망명 신청자를 동정하지만 영국에 거주하는 난민 수를 열 곱절이나 과대평가한다고 지적했다.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사람들은 전 세계 난민의 23퍼센트가 영국에 거주한다고 믿었지만, 실제는 2퍼센트에 불과했다. 또, 대중의 과반인 거의 3분의 2는 1951년 UN협약에서 탈퇴하자는 보수당의 2005년 제안을 지지했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영국인의 3분의 2가 영국이 “이주 문제”를 겪고 있다고 믿고 있고, 47퍼센트가(유럽 평균의 갑절이다) 복지 혜택에서 합법적 이민자에게 차별을 두는 것에 찬성했다. 41
전에 영국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영국인의 정체성을 위협하고 복지 체제를 훼손할 기생충으로 여겨지던 것과 마찬가지로, 망명 신청자들도 주택과 복지 서비스가 낭비되는 구멍으로 묘사됐다. 망명 신청자들은 도움이 필요하고 아마 기여할 것도 많은 사람이 아니라 모자란 자원을 두고 경쟁해야 할 대상, 또 반사회적 행위의 근원으로 여겨졌다. 정부는 이런 식으로 홍보했고 언론은 이것을 열렬히 유포했다.동유럽인, 특히 로마(집시)를 겨냥해 망명을 비난한 반이민 인종차별은 폴란드계 노동자들을 향한 적대감에도 불을 지폈다. 이런 인종차별은 2009년 초 린지 석유·건설 노동자들의 쟁의에서 조직 노동자 운동 내에 작지만 위험한 발판을 마련했다. 당시 유명한 구호는 “영국의 일자리는 영국인에게”였다. 그러나 중도좌파 일부가 이민과 통합에 관한 신우익의 주장을 수용했던 배경에는 분명히 이슬람 혐오가 있었다.
이슬람 혐오의 등장과 ‘인종 통합’론의 부활
이슬람 혐오, 즉 반무슬림 인종차별은 1990년대 내내 발전한 경향의 정점을 보여 준다. 당시 반무슬림 정서는 더 널리 퍼진 반아시아인 인종차별과 섞여 있었다. 올덤, 번리, 브래드퍼드, 리즈 같은 북부 도시에서 제도적 인종차별은 신자유주의의 결과인 지역 경제 붕괴와 맞물려 심각한 인종 간 긴장을 일으켰다. 지방정부는 주택 배분에서 사실상 분리주의 정책을 추진했고, 그 결과 아시아계 가정은 백인 거주지에서 떨어진 열악한 주택에서 살게 됐다.
학교에서 동질적인 백인 기독교 문화를 조성할 목적으로 1998년에 교육개혁법이 제정된 뒤로 많은 백인 부모가 자녀들을 아시아계 학생들이 너무 많은 학교에서 전학시키기 시작했다. 몇몇 지역의 학군은 거의 한 인종으로만 이뤄지다시피 했다. 노동집약적 제조업이 붕괴하면서 실업률이 치솟았다. 이 효과는 모든 노동자들에게 미쳤지만 모든 노동자들이 똑같은 정도로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파키스탄·방글라데시 출신 가정의 약 54퍼센트는 소득 보조금으로 연명했다. 인종차별주의 깡패들과 지역의 아시아계 청년들 간에 언쟁이 있었는데, 경찰과 지역 언론은 이후 일어난 폭력의 책임을 아시아인들에게 씌웠다. 2001년 2월 올덤 지역 경찰서장 에릭 휴이트는 인종차별적 폭력을 대부분 아시아계 청년들 탓으로 돌렸다.
2001년 봄 백인 인종차별주의 폭력배 2백 명이 올덤 글로드윅 지구의 아시아인 거주지를 공격한 뒤 북부 도시에서 소요가 발생했다. 시위 진압 장비로 무장하고 제복을 입은 경찰이 오히려 이런 공격에 저항하는 아시아인들을 표적으로 삼자 청년 수백 명과 경찰관 1백 명이 대치하는 상황이 계속됐다. 인종차별주의 폭력배, 훌리건, 국민전선 회원, 신나치 단체 컴뱃-18의 전투 부대, 영국국민당 지지자들(비록 참가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이 번리의 아시아인 지구에서 행진을 시도하자 이와 유사한 대치 구도가 형성됐다. 아시아인 거주자들이 행진을 막으려고 모이자, 진압 경찰들이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고 그날 밤 다시 소요가 발생했다. 비슷한 일들이 이후 브래드퍼드에서도 일어났다. 이 사건을 다룬 공식 문건인 캔틀 보고서는 여러 지역사회의 “자체 분리주의”를 문제 삼고 올덤 의회가 “지역사회 화합”을 위해 노력했다며 치켜세웠다. 이 보고서는 인종차별 문제를 일절 고려하지 않은 채, “지역사회”가 균형 잡혀 있으며 단지 구성원들이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 문제인 양 시사했다. 보고서의 처방은 인종차별에 맞서 싸우자는 것이 아니라 영국 시민권의 의미 등 공통의 ‘가치들’을 자세히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의미심장하게도 정부는 이 말을 특히 소수자 지역사회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내무부 장관 데이비드 블렁킷은 곧바로 이민 희망자에게 ‘영국 귀화 시험’을 치르게 하자고 제안했고, 나중에는 아시아계 영국인들에게 영국 사회에 제대로 동화되려면 집에서도 영어를 써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것은 이후 무슬림을 공격하는 자들이 이용할 주제를 예고한 것이었다.
43 ‘영국 무슬림과 이슬람 혐오 위원회’는 다양한 형태의 차별을 밝혀냈다. 그 중에는 기독교를 제외한 종교단체들은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한다는 점, 고용 차별, 무슬림에 대한 언론의 적대적 태도, 무슬림에 대한 욕설과 폭력 등이 있었다. 최근 ‘영국인의 사회적 태도’ 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45퍼센트가 ‘종교적 다양성’이 영국에 해롭다고 믿고 있었다. 55퍼센트는 자기가 사는 지역에 대형 모스크를 짓는다면 반대할 것이라고 답했는데, 이는 대형 교회에 반대한다는 답변은 15퍼센트밖에 안 되는 것과 대조된다. 응답자의 오직 4분의 1만이 무슬림에게 ‘긍정적’ 감정을 갖고 있다고 답한 것과 반대로, 3분의 1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44 이런 조사 결과가 나온 데는 언론의 책임이 크다. 전국적으로 발행되는 신문의 1주일치 머리기사를 분석한 2007년 연구 결과를 보면 무슬림을 다룬 기사의 91퍼센트가 부정적인 것이었다. 45
반무슬림 인종차별이 부상한 것을 기록한 연구들은 많다.46 이것은 무슬림에 대한 적대감을 ‘테러와의 전쟁’의 결과로 환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보여 준다.
이런 경향은 이라크 전쟁 이후 특히 더 분명해졌다. 영국의 인쇄 매체를 대상으로 한 구체적인 조사(이 조사는 주로 보통 판형의 신문을 대상으로 해, 더 자극적인 내용이 담긴 〈더 익스프레스〉나 〈더 스타〉 같은 타블로이드판 신문은 빠졌다) 결과를 보면, 2003년에 이슬람 관련 기사에서 가장 큰 주제는 테러, 대對테러 활동, ‘극단주의’에 관한 것이었다. 이런 보도의 주제는 영국에 거주하는 무슬림들이 영국의 안보를 위협하고, 주류 ‘영국적 가치들’을 침해하고, 무슬림 고유의 문화적 차이 때문에 다른 영국인들과 긴장을 빚는다는 것이었다. 이 조사 결과를 보면, 9·11 테러 전에는 무슬림들이 뉴스거리가 아니어서 대중매체에서 다뤄질 가능성이 작았지만, 무슬림이 다뤄지는 틀(‘원리주의’, 범죄 성향, 무슬림 정치, 무슬림 학교의 영향, 중매 결혼, 최근 갈수록 보도가 잦아지는 ‘명예 살인’ 등) 자체는 주류 문화와의 차이를 부각시키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 뉴스들에 대한 해석은 압도적으로 무슬림들을 근본적으로 바람직한 규범과 맞지 않는 존재로 묘사하는 경향이 있었다. 최근의 이슬람 혐오 물결은 유럽 각국 정부가 세간의 주목을 받는 소수자들, 특히 무슬림을 ‘통합’시킨다는 명목으로 추진한 정책들 덕분에 공식적 권위를 인정받았다. 언어 테스트, 충성도 테스트, 심지어 독일의 어떤 주州의 경우 성 정체성 같은 개인적 신념 조사 등의 조처들은 어떤 패턴을 보이고 있는데, 국가가 정치적 골칫거리인 이민자들을 단속하는 정책의 일부라는 점이 그것이다. 신노동당은 무슬림 사회의 통합을 촉진하려는 정책들을 잇달아 발표했다. 예전에 특별히 아시아인들이 어떤 언어를 사용해야 할지, 누구와 결혼해야 할지, 어떤 가치관을 가져야 할지 등에 관한 강연을 들어야 한다고 지적받은 것처럼, 정부는 특히 [2005년] 런던에서 일어난 7·7 테러 이후 점점 이른바 무슬림의 분리 경향을 특별히 부각시켰다. 맥퍼슨 보고서[1993년에 일어난 흑인 청년 스티븐 로런스 살해 사건의 동기가 인종차별주의로 밝혀지자 피의자 대처에 미온적이었던 경찰의 문제점을 규명하고자 1999년에 윌리엄 맥퍼슨을 수장으로 한 조사팀이 꾸려져 경찰의 사건 대처를 조사했다 ― M21]에 대한 정부의 반응이 선례가 됐다. 내무부 장관 데이비드 블렁킷은 영국 내의 ‘제도적 인종차별’이 문제라는 생각을 거부했고, 맥퍼슨 보고서가 제안한 반인종차별 교육에도 반대했다. 그는 되레 영국인들이 너무 오랫동안 자신의 문화를 경시했고, 따라서 “우리 것에 대한 자존감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관점은 2002년 백서에 담겼다. 백서는 문화적 다양성이라는 오래된 원칙에 반대하며 이민자 유입이 “긴장”을 유발했고 이 “긴장”은 “공통의 소속감과 정체성”으로 극복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공통의 소속감과 정체성”은 시민권 테스트, 언어 테스트, 여왕에 대한 충성 의식을 통해 형성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49 이것이 많은 영국인들이 역겹게 생각하는 ‘영국다움’의 비전이다. 이것이 아프리카계 카리브해인, 파키스탄·벵골·인도 출신 이민자의 후손들에게 적극 받아들여지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 뒤로 정부는 떨어진 인기를 만회하려고 어설프게 애국심에 호소하곤 했다. 2005년 1월 고든 브라운은 이제 더는 영국 제국의 역사를 사죄해선 안 된다고 선언했다. “우리는 우리 역사의 많은 부분을 사죄할 게 아니라 찬양해야 합니다. … 그리고 우리는 마땅히 영속적인 영국적 가치들에 대해 말해야 합니다. 그 가치들이 인류 역사의 위대한 사상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영국에서 생겨난 관용, 자유, 시민의 의무 같은 가치들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7·7 테러 이후, 늘 모호하게 정의되는 ‘영국적 가치’를 홍보하는 것이 정부의 최우선 과제가 됐다. 토니 블레어는 정보기관 보고와 대중 여론을 무시한 채, 7·7 테러가 이라크 전쟁과 아무 관계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악한 이데올로기”, 즉 “터무니없는” 불만을 부추기는 왜곡된 이슬람 사상이 7·7 테러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무슬림들은 “무슬림 사회에서 이 악”을 제거해야 할 임무가 있다. 블레어는 “온건한” 무슬림들을 동원해 이 임무를 맡기려 했다. 블레어의 주장은 정부가 볼 때 “온건하고” 용인할 수 있는 무슬림은 정부 정책을 비판하지 않는 무슬림이라는 메시지를 강력히 전했다. 이 점은 정부의 대외 정책을 비판하는 무슬림 국회의원 세 명이 쓴 편지를 대하는 정부의 태도에서 다시 분명해졌다. 정부는 이 편지가 “극단주의자들에게 총탄을” 쥐어준 꼴이라고 논평했고, 친노동당 성향의 〈데일리 미러〉는 “무슬림의 협박”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51 이런 충성심 표출은 부분적으로 공식적인 맹비난에 대한 수세적 대응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무슬림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마녀재판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 국민의 절반이 애국심이나 국가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곤란을 겪지 않는다면 왜 유독 무슬림만 달라야 하는가? ‘통합’ 요구는 무슬림에게 이중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고 더 나아가 정치적 침묵을 요구하는 것이다.
무슬림들이 영국 사회에 제대로 융합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난의 초점이 되자 영국 무슬림들은 여론조사에서 자신들이 다른 영국인들보다 ‘애국심’이 더 강하다는 점을 드러냈다. 예를 들면, 2009년 5월 실시된 갤럽 여론조사에서 77퍼센트의 무슬림이 “영국과 일체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보통 영국인의 절반만이 같은 답변을 한 것에 견주면 상당히 높은 수치다. 사실, 똑같은 패턴이 유럽 전역에서 반복됐다. 자유주의자들은 흔히 이런 특정한 종류의 인종차별의 방패막이 노릇을 했다. 2001년 이후에는 중도좌파도 신우익을 흉내내 국가 정체성과 이민 관련 주장을 펴기 시작했다. 신노동당에 친화적인 평론가이자 월간 〈프로스펙트〉의 편집자인 데이비드 굿하트는 복지국가가 지나친 다양성 때문에 위협받고 있다는 이녹 파월식 주장을 했다. 굿하트는 사람들이 자기와 생김새가 다르고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을 도우려고 재원을 모으는 데는 소극적일 것이라며 복지에 우호적인 국민적 합의가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결론은 정부가 국경 통제뿐 아니라 소수자 ‘통합’을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아시아계 가족에게 집에서도 영어로 대화하라고 요구하는 데이비드 블렁킷을 적극 지지했다. 굿하트는 “우리는 20년 뒤 인종 갈등이 첨예하고 복지가 취약한 미국식 사회에 살고 있을 것”이라며 두려움을 부추겼다. 인종평등위원회(현 평등인권위원회)의 트레버 필립스는 처음에는 굿하트 같은 자유주의자들이 “자유주의적 파월주의자”라며 비난했다. 그러나 그 뒤 태도를 바꿔 “다문화주의는 분리를 초래”하므로 이제는 그 가치를 내던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회를 하나로 묶는 “영국다움의 핵심”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한다고 말했고, 자유주의 칼럼니스트 폴리 토인비가 이 견해를 옹호했다. 폴리 토인비는 “진정한 빈민가”가 발달하면서 영국이 “분리를 향해 몽유병 환자처럼 걷고 있다”고 경고했다. 맨체스터 대학의 두 전문가는 이런 종류의 경고들을 구체적으로 반박하는 연구를 실시했는데, 실제 증거들은 인종을 경계로 분리가 이뤄지고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소수인종 청년들은 대부분 친구의 절반 이상이 백인이었고, 영국에서 태어난 소수인종 중 친구들이 모두 같은 인종인 비율은 5분의 1이 채 안 됐다.(이것은 백인들보다 훨씬 낮은 수치다.) 또, 아시아계 무슬림, 시크교도, 힌두교도들이 같은 인종끼리 결혼하는 비율은 백인 기독교도와 비슷했다. 자유주의자들이 인종차별 담론을 적극 수용하자 우익들은 더 자신 있게 이 주제에 천착했고, 급기야 대주교 캐리는 이민이 “영국의 DNA”를 위협한다고 선언했다. 영국의 ‘DNA’란 “왕실, 의회, 사법부, 영국 국교인 성공회, 자유 언론, BBC 등과 같은 민주적 기구들”이 옹호하는 “자유민주적 가치들”이다. 그는 “일부 이민자 집단들은 이런 기구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하거나 심지어 적대적이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또, 향후 20년 내 영국 인구가 15퍼센트 이상 증가하지 못하도록 막는 캠페인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데이비드 캐머런은 이 주장을 지지하면서 현 수준의 이민은 공공 서비스에 부담을 지울 것이라고 말했다. 다가오는 선거에서 그의 핵심 정책이 공공 지출 대폭 삭감인데도 말이다! 이민자들이 공공 서비스를 이용만 하는 게 아니라 일을 하고 세금도 낸다는 사실은 제쳐두고라도 미래의 인구 증가는 대부분 이민이 아니라 출생 때문일 것이다. 이민자들은 대개 기술이 뛰어나고 자격을 갖춘 전문가들이어서 공공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보다 세금을 더 많이 낸다.게다가 자유주의자들이 이슬람을 적대하는 구조적 논리는 우익들의 논리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요컨대 이렇다. ‘우리는 극단주의에 반대하지 이슬람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슬람 자체가 극단적이므로 무슬림들을 통제해야 하고, 출생 때문이든 이주 때문이든 너무 많은 무슬림이 유럽에 거주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무슬림에 대한 자유주의자들의 우려는 때때로 인도주의처럼 보이기도 한다. 특히, 자유주의자들이 무슬림 여성이 받는 차별에 반대할 때 그런다. 그러나 이슬람을 혐오하는 자유주의자들은 이슬람의 가부장적 측면에만 초점을 맞춰 그동안 무슬림 여성의 삶을 더 어렵게 만드는 담론에 사실상 결탁했다. 일부 자유주의자들은 심지어 고용 차별 관행을 적극 옹호하기까지 했다. 부시라 노아는 히잡을 착용했다는 이유로 미용실에 취직하지 못했다. 그녀는 법정에서 자신이 인종차별의 피해자임을 입증했는데, 일부 자유주의자들은 이 판결에 불평을 늘어놓았다. 히잡이나 니캅을 착용하는 여성의 상태를 걱정하는 자유주의자들의 이른바 인도주의는 무슬림의 ‘부적응’에 대한 도덕적 공포와 뒤섞여 있다. 반동주의자들뿐 아니라 자유주의자들에게도 ‘베일’은 문화 분리주의, 이슬람주의적 선동, 더 나아가 테러 의지를 표현하는 상징이다. 예를 들면, 조운 스미스는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니캅과 부르카를 반대하는 데서 더 나아가 이른바 분리주의도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래서 “그[니캅]보다 더 정치적인 의복, 주류 문화에 반기를 드는 의복이 또 있을지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56 이것은 유럽 대륙에서도 발견되는 경향이다. 페미니스트 작가 조운 월럭 스콧은 프랑스에서는 ‘베일’이 공화국 내의 “적의 깃발”로 묘사된다고 서술했다. 57 사르코지 정부의 부르카 금지 시도가 이 말이 사실임을 입증한다.
그러나 “주류 문화에 반기를 든다”는 말의 의미는 스미스가 이슬람주의자들이 테러를 기획하고, “니캅과 질밥을 착용하도록 무슬림 여성을 설득하는 것”에 성공한다고 말할 때 분명해진다. 스미스는 편집증적 망상에 사로잡혀, 이슬람 여성의 복장이 마치 자유민주주의를 전복할 ‘이슬람주의’ 의제의 확대인 양 바라본다.58 나이얼 퍼거슨은 “무슬림이 유럽 도시들을 교묘히 식민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59
이슬람을 내부의 ‘적’으로 이해하는 태도는 무슬림들이 순전히 인구 수로 유럽을 ‘식민지화’하고 있다는 위험한 주장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영국독립당UKIP 대표 피어슨 경은 현재 무슬림의 출생률을 감안하면 영국이 앞으로 10~20년 안에 ‘독자적’ 정부 제도를 결정할 능력을 잃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60 식민화 비유를 극적으로 보여 준 사례는 스위스에서 일어난 이슬람 사원의 첨탑 건축에 반대하는 운동이었다. 그 운동의 포스터는 불길한 검은 첨탑이 스위스 국기를 모서리에서부터 뒤덮는 장면을 묘사했다. 국기의 정중앙에는 ‘베일을 쓴’ 무슬림 여성이 마찬가지로 검게 그려져 있었다.
이런 주장은 전 유럽에서 무슬림을 향한 우익의 적개심에 거듭거듭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면, 이탈리아 정당 북부동맹은 ‘이민’이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끼친 영향을 묘사하는 광고 선전을 했다. 그들의 포스터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지금 그들[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보호구역에 산다.”61 식민지화라는 말에 담긴 속뜻은 식민지화에 맞서 “민족 해방” 투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슬람을 혐오하는 자유주의자들은 그 말의 투쟁적 함의를 받아들이지 않겠지만, 극우 테러리스트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 말을 가슴 깊이 새길 것이다. 이 투쟁을 위해 사제 폭탄을 만든 마틴 질러드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착각도 하지 마라. 우리는 전쟁 중이다. 게다가 우리는 이 전쟁에서 확실히 밀리고 있다. … 무슬림을 죽이고 이슬람 사원을 폭파하고 반격을 가하자는 애국자들의 말을 듣는 것도 지겹다. … 이제 말이 아니라 행동을 시작할 때다.” 62
영국국민당은 이런 말들을 극단적인 데마고기[감정적 대중 선동 목적의 정치적 허위 주장 ― M21]로 밀고나가, 영국이 “이슬람 식민지화”하면 “무혈 학살”이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영국수호동맹EDL의 창립자도 똑같은 감정을 느낀다. 그는 인도 음식점에 선동적인 낙서를 그린 것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가 단지 낙서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무슬림 사회에 맞서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뉴스를 내보낼 날을 고대한다.”유럽 국가들의 권위주의적 정책, 언론의 선전, 극우파들의 인종차별적 우선순위가 서로 맞물려 유럽 전역에서 외국인을 혐오하는 노골적인 파시스트 정당들의 지명도가 상승했다. 이탈리아의 북부동맹은 극우 연정에 참여하고 있고, 벨기에의 극우 정당 플람스빌렝은 벨기에 최대 정당이다. 덴마크 국민당은 덴마크에서 세 번째로 큰 정당이고 중도우파인 ‘보수국민당’과 연정을 하고 있다. 네덜란드에서 헤이르트 빌더르스의 자유당은 두 번째로 큰 정당이다. 영국의 우리는 쌍둥이 같은 두 가지 위협에 직면해 있는데, 첫째는 영국국민당의 득표율이 급등한 것이고, 둘째는 영국수호동맹이라는 이름 아래 다양한 극우 활동가, 인종차별주의적 훌리건들이 거리에서 끔찍한 폭력을 휘두른다는 것이다.
극우파
64 원래 극우 정치가 분파 분리적 속성이 강하고 실제로 영국국민당이 최근 몇 년 동안 분열로 말미암아 골머리를 썩였던 것을 감안하면 이런 결과는 더욱 충격적이다.
최근 영국의 극우파는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 최고의 선거 결과에 기뻐하고 있다. 영국국민당은 1970년대 중반 국민전선이 전성기 때 얻은 최고의 선거 결과를 넘어섰다. 영국국민당은 2001년 총선에서 인종 폭동이 휩쓴 북동부 지역에서 주로 강세를 보이며 총 4만 7천1백29표를 얻었다. 2005년 총선에서는 득표수가 19만 2천7백46표까지 늘었다. 2008년 런던시의회 선거에서는 13만 7백14표를 얻으며 최초로 의석을 획득했다. 200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전국적으로 94만 3천5백98표를 얻으며 의원 두 명을 배출했다. 즉, 영국국민당은 지난 10년 동안 득표수에서 2천 퍼센트가 넘는 성장률을 보이며 거의 1백만 명 가까운 지지자를 확보했다. 2008년 영국국민당의 당원수는 1만 명이 넘는다.65 여러 여론조사를 종합한 연구 결과 하나가 이런 결론에 힘을 실어주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 연구는 전형적인 영국국민당 지지자를 제조업에 종사하는 중년의 백인 남성 숙련노동자로 파악한다. 이들이 늘 가장 가난한 노동자인 것은 아니고 대체로 가장 피해의식이 많은 노동자들이다. 1970년대 국민전선 지지자들과 달리 오늘날 영국국민당 지지자들은 나이가 더 많고 보수당에 덜 동조적이며 사회 상황에 훨씬 불만이 많다. 이들은 노동당 지지자들과 인구 구성이 아주 비슷하며 “2005년 이후 영국국민당이 획득한 의석 58개 중 52개가 노동당한테서 빼앗은 것이었다.” 66
노동당이 이민 문제에서 이른바 ‘관대한’ 태도를 취하자 옛 노동당 지지자들, 특히 불만에 찬 ‘백인 노동계급’이 등을 돌린 탓에 영국국민당이 성장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견해다. 오히려 노동당의 일부 장관들이 내린 결론은 당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평등권 입법화를 포기하고 반이민 정서에 영합해 백인 노동자들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것이었다.67 지난해 유고브가 실시한 여론조사는 영국국민당 지지자들을 대표하는 표본을 뽑아낼 수 있을 만큼 참여 대상이 많았다. 이 조사는 영국국민당이 노동계급에게 적잖은 영향을 끼치고 있지만 그 지지자들은 과거에 노동당보다 보수당에 투표하는 성향이 강했음을 보여 줬다. 68 사실 노동당의 전통적 지지 기반인 조직 노동계급 운동은 영국국민당의 사상에 다른 어느 사회 집단보다 강하게 반대했다. 69
그러나 또 다른 연구는 이 문제를 다른 시각에서 보게 해준다. 우선 2004년 데머크래틱오딧의 연구 결과를 보면 영국국민당에 투표한 사람 중 과반이 전에 노동당이 아니라 보수당을 지지했던 사람이었다. “사실 영국국민당은 보수당에게서 가장 많은 표를 빼앗았고 노동당에게서는 가장 적은 표를 빼앗았다.” 이 연구는 또 영국국민당 지지자들의 계급 배경에 대해 좀더 복잡한 분석을 내놓는다. 즉, 그들 중 상당수가 “하층 중간계급”이라는 것이다.70 그러나 유고브의 여론조사를 보면 영국국민당 지지자의 다수인 약 72퍼센트가 그 당이 내놓은 [이민자의 ― 옮긴이] ‘자발적’ 본국 송환 공약을 지지했는데, 자발적 본국 송환은 ‘유색인종 없는 영국’ 정책의 핵심 단계다. 94퍼센트는 모든 이민을 금지하길 원했고, 58퍼센트는 대부분의 범죄를 이민자들 탓으로 돌렸다. 오직 35퍼센트만이 영국에서 태어난 유색인종 영국 시민이 백인 영국 시민과 같은 ‘영국인’이라고 답했다. 영국국민당 지지자들은 흑인이나 아시아인과 함께 살고 싶어하지 않는 집단이다. 그들 중 49퍼센트가 사용자의 인종차별을 지지하는가 하면, 상당수는 유색인종 영국인을 대상으로 한 노골적인 징벌 조처를 적극 수용할 태세가 돼 있다.
또 다른 진부한 주장은 영국국민당 지지자들이 인종차별보다는 이민 수용 수준에 대한 불만이나 자신들의 우울한 경제적 전망에 대한 즉각적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십리shipley 지역 보수당 의원 필립 데이비스는 영국국민당 지지자들이 “대부분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영국국민당 지지자의 9퍼센트가 유대인과 공산주의자들이 서구 나라들에서 기독교 가치를 훼손하려는 국제적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믿는 것을 보면, 이들은 반유대주의적 음모론에도 상당히 경도돼 있다. 24퍼센트는 그런 음모가 실제로 존재하지만 좀 “과장돼 있다”고 본다. 이것은 단지 골수들만의 인종차별 사상이 아니다. 영국국민당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훨씬 극단적이다. 영국국민당 지지자들은 또 ‘백인 노동계급’의 불만을 대변하는 척하는 위선적인 언론이나 정치인들과 결탁해, 백인들이야말로 인종차별의 ‘진정한’ 피해자라는 식의 그럴싸한 피해자 논리를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 유고브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영국국민당 지지자의 77퍼센트는 백인이 부당하게 차별받는다고 믿는다. 70퍼센트는 무슬림이 부당하게 득을 본다고 믿고, 62퍼센트는 대체로 유색인종이 과도한 혜택을 누린다고 믿는다. 그러나 여기서도 영국국민당은 다른 면에서와 마찬가지로 훨씬 더 인종차별적이다. 일반 대중 가운데, 백인이 차별의 피해자라고 믿는 사람은 40퍼센트, 무슬림이 부당하게 득을 본다고 믿는 사람은 39퍼센트, 대체로 유색인종이 과도한 혜택을 누린다고 믿는 사람은 36퍼센트다. 이슬람이(심지어 온건한 형태까지 포함해) ‘서구 문명’에 ‘심각한 위협’이라고 믿는 사람이 44퍼센트, 영국으로 오는 모든 이민이 중단돼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 61퍼센트, ‘이민자와 그 가족들’이 설사 영국에서 출생했더라도 영국을 떠나도록 정부가 ‘장려’하는 것을 찬성하는 사람이 4분의 1 이상이다. 당연히 가장 우파적인 유권자들이 이런 태도를 보이겠지만 노동당 지지자의 상당수도 이런 태도를 공유한다. 무슬림을 향한 인종차별적 분노와 다른 소수인종을 향한 인종차별적 분노가 서로 겹친다는 사실을 주목하라. 이것들은 서로 동떨어진 현상이 아니라 서로 병행하는 현상인 것이다.잠재적 지지자들을 대하는 영국국민당의 태도는 결정적으로 ‘테러와의 전쟁’이 만들어 낸 새로운 국제정치 상황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그래서 영국국민당은 외국인을 혐오하는 유럽 파시스트 정당들을 흉내내 무슬림을 표적 삼고, 기존 메시지를 수정해 공식적인 반유대주의 표현을 삼가고, 심지어 이스라엘 국가를 지지한다고 최초로 밝히기도 했다. 반유대주의를 대하는 태도 변화가 처음 감지된 것은 2006년이었다. 당시 영국국민당의 법무 책임자였던 리 반스는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에 대한 입장을 이렇게 정리했다. “나는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의 갈등에서 이스라엘을 1백 퍼센트 지지한다. 나는 이스라엘이 레바논 지도에서 헤즈볼라를 없애길 바란다. 또, 폭격을 계속해 한때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 근거지였던 도시들에 커다란 포탄 자국들을 남기기 바란다.” 영국국민당은 ‘국익’을 이유로 ‘사려 깊게’ 이스라엘 편을 들었다. 이스라엘이 “비록 유럽은 아니더라도 서구” 문명의 일부이고, 서구 문명을 반대하는 자들이 “세계를 지배하고 세계가 자신들의 종교에 굴복하도록 만들려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영국국민당 웹사이트의 한 기사는 당이 “지난 20년 동안 당의 발전을 방해한, 애써 숨기려 하지 않았던 반유대주의와 음모론의 족쇄”를 벗어던졌다고 설명했다. 영국국민당 당수 닉 그리핀은 계속 유대인에 초점을 맞추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질책하면서 새로운 전략을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최근 대중매체의 부추김 덕분에 고조되고 있는 대중의 반反이슬람 정서를 이용할 수 있도록 우리의 태도를 조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태도가 곧 ‘테러와의 전쟁’의 주요 전쟁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아가지는 않았다. 이스라엘의 공격을 노골적으로 응원하지도 않았다. 영국국민당은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 반대했으며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즉각 철수를 진지하게 요구한 유일한 정당”이라고 자임했다. 그러나 영국국민당은 사병들이 사망한 병실을 방문해 군대 지지 정서를 이용했고, 당수 닉 그리핀은 심지어 사망한 병사들의 관을 들고 일상적으로 퍼레이드를 벌이는 소도시 우튼 배싯에 가기도 했다. 그는 지지자들에게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에 대해 설명하기를, 비록 이스라엘이 승리하는 것이 영국의 대체적인 이익에 부합하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이 서로를 어떻게 대하는지는 영국이 상관할 바가 아니므로, 영국국민당은 이 문제에서 특정한 태도를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국민당은 파병 영국군을 철수시켜서 영국 국경을 단속해야 한다고 주장해, 우파적 반전 정서를 활용했다. 이 주장의 핵심은 영국은 국내에 거주하는 집단이든 국외에 거주하는 집단이든 무슬림과 상관할 바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태도는 반제국주의로의 전향을 뜻하지 않는다. 영국국민당은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 설립된 제국충성파동맹이라는 [친제국주의] 단체에서 비롯했고, 영국국민당의 웹사이트 ‘영국인의 자존심’은 ‘대영제국’을 “고귀하고 자애로운” 모험사업으로 칭송한다. 이것이 보여 주는 바는 첫째, 미국에 대한 영국국민당의 반감, 둘째, 노골적으로 친식민주의적인 인종차별주의에서 좀더 보수적인 백인 애국주의로의 전환이다. 무슬림 “식민주의자들”이 영국에서 “무혈 학살”을 하고 있다는 주장은 정부가 의도하는 것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영국 사회를 군사화하겠다는 어젠다를 반영한다.
“대중매체가 부추기는 대중의 반이슬람 정서”를 “이용하기” 위해 극우파 내부에서 분업이 생겨났다. 리 반스는 이렇게 말했다. “영국국민당은 거리의 운동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따라서 대신에 국민전선이 정치적 선거운동에는 관심 없고 거리 운동에 관심 있는 영국 애국주의자들을 조직하고 활용하는 핵심 단체가 될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렸다.” 국민전선 조직자 톰 린든도 아주 유사한 언어로 똑같은 주장을 했다. “이슬람 극단주의”에 대항하는 것을 공공연히 표방하며 조직된 영국수호동맹은 이런 노선에 맞는 기회를 제공한다. 영국수호동맹과 영국국민당은 형식적으로는 서로 조직상의 거리를 두고 있다. 사실, 이들은 사람들이 두 단체 사이에 뭔가 연관이 있을 거라고 생각할까 봐 호들갑을 떨며 아닌 척한다. 영국수호동맹은 자신이 영국국민당 같은 인종차별주의 단체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고, 영국국민당은 영국수호동맹이 “시온주의자들의 자작극”이라고 비난하기까지 한다. 진실은 두 단체가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연계돼 있다는 것이다. 영국수호동맹의 핵심 조직자 크리스 렌턴은 잘 알려진 영국국민당 활동가다. 영국국민당 당원 데이브 쿨링도 폭력 단체 “맨인기어”에서 활동하고 있고 영국수호동맹 루턴 ‘지부’[2009년 영국수호동맹이 처음 결성된 곳이 루턴으로 그들의 본거지라 할 수 있다 ― M21]의 핵심 활동가다. 영국수호동맹의 온라인 포럼을 운영하는 션 코리건은 세인트올번스 출신 영국국민당 활동가다. 많은 영국국민당 당원들이 영국수호동맹의 집회 때 모습을 드러낸다. 영국수호동맹도 영국자유운동 같은 다른 배경의 나치들을 받아들이고 폭력적인 컴뱃-18 회원들이 자신들이 주최한 집회에 참가하는 것을 공공연히 인정한다. 영국수호동맹의 핵심 재력가이자 전략가 중 앨런 레이크라는 극우 기업인이 있는데, 그는 전에 파시스트 정당인 스웨덴민주당과 협력한 바 있다.
76 그래서 영국수호동맹을 경찰이 치안 유지용으로 활용할 수 있는 폭력 집단쯤으로 일축해선 결코 안 되는 것이다.
실제로 영국수호동맹의 조직적·‘지적’ 핵심은 조직된 나치들에서 수혈되고 행동대원은 훌리건에서, 또 나치는 아닌 폭력적 우익 단체들에서 충원되는 듯하다. 그들이 이런 전술을 추진하는 것이 처음은 아니다. 국민전선은 1970년대에 좌파와 소수인종을 공격하려고 스킨헤드와 훌리건을 잠입시키고 동원했다. 이 전술은 또, 파시스트 단체의 일반적 경향, 즉 이데올로기가 탄탄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로 이뤄진 무장 조직을 반대파에 맞선 무기로뿐 아니라, 잘 훈련된 파시스트 간부 육성에 도움이 되는 사교 도모 기구로도 활용하는 일반적 경향과 유사하다.결론
스티븐 로런스 사건[1993년 19살 흑인 청소년이 인종차별주의 폭력배들에게 살해당한 사건 ― M21] 조사단 결성[1999년 ― M21] 직후의 낙관주의에서 오늘날 최악의 상황까지 지난 10년간 변화는 불가피한 것이 아니었다. 인종차별을 상당 부분 촉진한 것은 정부 정책이고 고무한 것은 언론의 반응이다. 인종차별이 별 생각 없이 직감에 따라 ‘타자’에 반응하는 방식이라고 보는 몰역사적 분석은 인종차별을 당연시해서 인종차별에 대한 비판이 힘을 잃게 만든다. ‘인종화’는 정치적 행위이고, 인종차별은 정치적 억압 구조다. 이 점에서 이녹 파월식 인종차별의 부활, 즉 새로운 인종차별은 신자유주의 환경에 맞춰 골치아픈 소수인종을 관리하고 이민 문제를 자본축적의 이해관계에 종속시키고 인종차별 반대를 탈정치화하려는 다양한 정부 전략의 결과다.
그러나 이것을 순전히 하향식 과정으로만 보는 것은 잘못이다. 인종차별 사상이 유행하는 것은 그것이 어떤 점에서는 세계에 대한 사람들의 경험을 설명해 주기 때문이다. 이 설명은 세계가 부족한 자원을 둘러싼 경쟁으로 구조화돼 있다고 보는 사람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 영국독립당과 영국국민당에 이끌리는 유권자들은 당연히 이런 관점을 가진 우익 성향의 집단이다. ‘테러와의 전쟁’은 이런 사상을 더 과격하게 만들고 그 해악을 강화하는 데 일조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테러와의 전쟁’이 인종차별을 낳은 것도, 또 인종차별의 주된 원인인 것도 아니다. 인종차별에 맞서려면 전쟁과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세력을 동원하고 우파 언론의 잔뜩 흥분한 선전에 맞서 싸우는 것뿐 아니라 사회의 기본적 계급 적대와 이에 맞선 노동계급 단결의 필요성을 다시 강조하는 것이 필요하다. 1920년대 이후 가장 심각한 경기 후퇴로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소득이 감소하고 공공 서비스와 복지의 약화가 예상되는 이때, 이것은 더 시급한 과제가 됐다.
주
-
출처: Richard Seymour, ‘The changing face of racism’, International Socialism 126(Spring 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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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ardian, 12 April 2007. ↩
- 몇몇 신문의 설명은 놀랍게도 로드 리들의 주장에 완전히 반하는 통계를 실으면서도 이 수치들이 그를 뒷받침하고 있다고 암시한다. Bentham, 2009를 보시오. 사실 벤담이 인용한 법무부 통계에는 로드 리들이 언급한 런던의 사례가 없고, 런던이나 그 밖의 지역에서 벌어지는 “길거리 범죄, 총기 범죄와 흉기 범죄, 강도, 성폭행의 압도 다수”를 “아프리카계 카리브해인 공동체 소속 청년들이 저지르 것”임을 입증해 주는 내용도 없다. 통계 수치가 시사하는 것은 몇 가지 범죄 유형에서 흑인의 구속·기소 비율이 백인보다 지나치게 높다는 완전히 다른 주장이다. 통계의 성격에 관해서 내무부 특별위원회는 상당히 많은 경고를 자세히 나열한다. 그 중 하나는 범죄 조사 결과가 “지난해 10~25세 백인 남성들이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다른 인종 남성보다 ‘훨씬 높았다’(28퍼센트 대 12~19퍼센트)”는 점과 “흑인 청년이 일단 범죄를 저지르면, 경찰의 주목을 받을 가능성이 훨씬 컸다”는 점을 시사한다는 것이다. Home Office, 2007을 보시오. 게다가 이런 통계를 해석하는 데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이런 문제에 관한 구체적 설명으로는 Drew, 1982와 Walker, 1984를 보시오. ↩
- Gilroy, 1987, pp95-104. ↩
- Liddle, 2009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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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ch and Roediger, 2009, pp3-43; Jacobson, 2001; 인종화와 아일랜드계 미국인들이 추구한 ‘백인 됨’에 관해서는 Ignatiev, 1995를 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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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cmaster, 2001, p177; Joshi and Carter, 19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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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well, 1967; Powell, 1968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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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무슬림 인종차별을 추적하는 데 엄청나게 유용한 자료는 정기적으로 업데이트되는 Islamophobia Watch 웹사이트를 보라: www.islamophobia-watch.com ↩
- Daily Telegraph, 9 January 2010. ↩
- Press Association, 2007. ↩
- Poole, 2006, pp89-102. ↩
- Fekete, 2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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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undnani, 2007, pp128-132; Brown, 2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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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oodhart, 2004; Casciani, 2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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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ithens-Mazer and Lambert, 2010. ↩
- Ray, 2007. ‘Moslem’은 오늘날 대체로 경멸적인 투의 철자법으로 여겨져, 그 대신 ‘Muslim’이 선호된다. ↩
- Guardian, 18 November 2008. ↩
- 앤디 버넘과 마거릿 호지는 모두 이런 식으로 주장했다. 버넘은 2009년 영국국민당의 득표를 두고 “분명히 이민에 관한 우려가 있다. 정부는 이 우려를 해소해야 한다. … 우리는 사람들이 왜 영국국민당에 투표했는지 이해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결코 그 이유를 무시해선 안 된다” 고 주장했다(Bhattacharyya, 2009c에서 인용). 마거릿 호지가 이민자들에게 유리하게 돼 있는 공공 임대주택 할당법을 고쳐 “근본적 불평등”을 극복해야 한다고, 그러지 않으면 영국국민당의 득표가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하자 영국국민당의 지명도가 급격히 올라갔다(BBC News, 21 May 2007). 마찬가지로 한 장관은 2008년 헨리 지역 보궐선거에서 노동당의 패배를 논평하며 노동당 국회의원 해리엇 하먼이 제안한 평등법에 불만을 표출했다. “크루 지역이 잘 보여 주듯, 우리는 백인 노동계급에게서 표를 얻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선거일에 해리엇은 무엇을 합니까? 백인 노동자들을 차별하는 법을 제정하겠다고 발표하겠지요. 이건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Daily Telegraph, 27 June 2008). ↩
- Ford & Goodman, 2010. ↩
- 이 연구 결과에서 주의해야 할 점 하나는 연구자들이 활용한 “사회 계급” 분류에 따르면 C1과 C2 유권자가 “하층 중간계급”으로 분류된다는 것이다. 이 범주에는 감독관과 하급 관리자, 중소기업인, 전문직 외에도 숙련 육체 노동자와 사무직 노동자가 포함된다. John, Margetts, Rowland and Weir, 2004. ↩
- YouGov, 2009. ↩
- John, Margetts, Rowland and Weir, 2004. ↩
- Daily Mail, 6 February 2007. ↩
- YouGov, 2009; 영국국민당 당수 닉 그리핀은 공개적으로는 당의 뿌리깊은 반유대주의적 음모론과 당 자체를 분리시키려고 애썼다. 비록 전에는 그 자신이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열변을 토했지만 말이다(Guardian, 10 April 2008). ↩
- YouGov, 2009. ↩
- Morning Star, 20 September 2006. ↩
- Griffin, 2009; Channel 4 News, 16 November 2009; Independent, 29 March 2003; Times, 10 November 2009; British Pride, 2008. ↩
- Barnes, 2009; Linden, National Front website; Lowles, Searchlight, 2009; Cressy, Hope Not Hate website; This Is Lancashire, 30 January 2010; Tweedie, 2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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