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호를 내며
2008년 금융공황이 엄습한 지 3년이 넘은 지금, 세계경제 위기는 더욱 심각해지고 그로 말미암아 국가 간 갈등과 각국의 정치적 불안정이 증대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 호에서는 오늘의 위기와 저항을 〈쟁점〉으로 다루며 집중 조명했다. 여기에 수록된 글들을 읽어 보면, 우선 큰 시야에서 현재 경제 위기의 심각성과 그것이 낳은 효과들을 살펴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미국, 유럽연합, 중국, 그리고 혁명이 진행 중인 이집트에 이르기까지 각국의 위기 양상을 두루 살펴볼 수 있다.
국내 상황을 별도로 다루지 못한 것은 아쉽다. 한국 경제는 유로존 같은 심각한 위기로 아직 치닫지는 않았다. 그러나 모든 애널리스트들이 내년 경제 전망을 올해보다 더 어둡게 내놓고 있고, 2008년 이후 한국 경제 회복세의 견인차가 돼 준 중국 경제 전망도 더는 장밋빛이 아니다.(한국 경제 위기와 전망에 대한 분석은 다음 호에 실릴 예정이다.)
한국의 정치 위기는 그야말로 심각한 수준이다. 퇴임 후 거주할 사저 문제, 재보선 패배, 한미FTA 날치기 통과, 일부 검사들의 ‘항명’, 선관위 디도스 공격, ‘형님’과 친인척 비리, 재창당 논란 등에서 보듯이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은 말기적 위기를 겪고 있다. 절름발이 오리라는 뜻의 ‘레임덕’이라는 말로는 현 상황을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예 주저앉은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은 한마디로 찌질하다. 한미FTA 반대 장외 투쟁을 선언하고도 집회장에서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고(일부 지도자들은 야유받았다), 정권의 위기가 심각해지자 재빨리 등원을 선언하며 소방수 노릇으로 주가를 올리려고 했지만 전당대회 난투극으로 이조차 뜻대로 하지 못했다.
한미FTA 폐기 투쟁의 확대는 정치 위기를 부채질했다. 한미FTA는 미국의 지배계급이 경제 위기의 대가를 다른 나라에 전가하려는 데서 한국이 예외가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자(한국은 일본, 중국과 함께 미국 무역적자의 50퍼센트가 집중돼 있는 나라다), 동아시아 국가와의 연계를 더욱 확고히 함으로써 이 지역에서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전략과도 관계 있다. 이처럼 한미FTA 추진의 배경에는 세계경제 위기, 미국과 중국 간 상대적인 경제력 비중의 변화, 그것이 낳는 지정학적 불안정이 그 심원에 깔려 있다. 정말이지, 심각해지는 경제 위기 속에서 협력적 세계경제 운영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그런데 한국 지배계급의 일부는 여기에 참가하는 것이 국익이라고 확고히 믿는 반면, 다른 일부는 그것이 여러 문제와 피해를 낳는다고 믿는다. 이 문제를 둘러싸고 지배계급이 분열한 이유다.
이런 큰 맥락 속에서 보면, 세계경제 위기에 책임이 있으면서도 여전히 호의호식하는 1퍼센트를 겨냥한 미국의 ‘점거하라’ 운동이 한국에도 상륙해 한미FTA 반대 운동이 첫 발을 떼는 데 크게 일조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미FTA로 삶이 더 곤궁해질 평범한 사람들은 한나라당이 이를 날치기로 통과시킨 것에 분개했고, 한미FTA 폐기 투쟁은 적잖은 탄력을 받으며 하반기를 장식했다. 정권 말기적 징후의 사건들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감을 부채질하며 운동의 자양분이 됐고, 운동의 새 세대가 이 투쟁에 대거 합류했다.
그러나 이 운동은 크게 두 가지 점 때문에 전진하는 데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나는 인민전선의 효과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위기를 활용해 투쟁을 확대해야 하는데, 민주당에 의존하는 방식의 야권 공조 탓에 이것이 어려운 형국이다. 한미FTA 폐기 투쟁에서 민주당과 공조하더라도 그로부터 독립적으로, 비판을 삼가지 않으며 공조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보니 가령 민주당 등원이 투쟁을 삭이는 일이 벌어진다. 또, 이 투쟁을 선거 심판으로 ‘수렴’시키려는 시도도 적지 않다.
다른 하나는 아직 노동자 운동이 나서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가 한미FTA 날치기 직전 야간노동 문제 등에서 양보 체스처를 한 것은 조직 노동자들의 힘을 두려워하기 때문이었다. 안타깝게도 산별노조 지도자들은 한미FTA 날치기에 저항해 하루 파업이라도 하자는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의 호소를 거부했다. 그러다 보니 한미FTA 폐기 투쟁은 거리의 저항으로만 나타나고 작업장에 기반을 둔 노동자들의 집단 행동으로 연결돼 위력을 발휘하는 데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사실, 이것은 이번 한미FTA 폐기 투쟁에서 새로 드러난 현상은 아니다. 2008년 촛불항쟁 때도 그랬고, 어느 정도는 2000년대 내내 반전·반신자유주의 운동에서도 이런 패턴이 나타났다. 이 패턴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좌파 활동가들의 노력이 중요하다. 좌파 활동가들은 거리 저항의 활력을 작업장으로 가져가서 연결시키고 정치적 운동을 기층에서 조직하려 애써야 한다.
다시 〈쟁점〉에 수록된 글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돌아가야겠다.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우리 시대의 경제 위기’에서 오랜 침체에 빠졌던 영국 노동자들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주로 거리 저항으로 나타났던 투쟁 패턴이 변하고 있다며, 이런 중요한 상황 변화를 낳은 요인들을 설명한다. 앞에서 언급한 한국의 운동 패턴과 관련해서도 흥미를 끄는 경험이다. 비록 구체적 상황은 매우 다르지만 말이다. 이 글에서 캘리니코스는 세계 자본주의 상황이 지극히 심각하다며 이를 세 가지 차원으로 살펴본다. 첫째, 미국과 유럽연합 경제가 거의 정체하거나 더 나빠지고 있다는 점. 둘째, 서방의 주요 지배계급들이 심각한 정치적 마비 상태에 빠져 있다는 점. 셋째, 중국 등 ‘신흥시장’ 경제들이 서방 경제를 구제해 줄 것이라는 환상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 이런 상황에서 상층의 정치 충돌이 증대하고 있고, 기층의 저항도 확대되고 있다. 캘리니코스가 지적하듯이 문제는 급진적 좌파가 어떻게 우리 시대의 경제 위기에 대처하고 투쟁에 영향을 미칠 것이냐다.
는 짤막한 글 두 개로 이뤄져 있는데, 에릭 프레츠는 ‘점거하라’ 운동이 미국의 분위기를 어떻게 바꿔놓았는지를, 메건 트루델은 노동자 운동의 변화를 다룬다. ‘월스트리트를 점거하라’ 운동은 저항의 구심점으로 떠오르며 다른 지역과 대학들로 확산됐는데 이 과정은 미국 정치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99퍼센트 대 1퍼센트’라는 구호에서 잘 드러나듯이 계급 정치가 초점으로 떠올랐고, 노동자 운동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는 것이다. 메건 트루델은 올해 2월 위스콘신 투쟁으로 대중적 노동계급의 저항이 확실하게 의제로 떠올랐다며, 그 운동에서 나타난 힘이 ‘점거하라’ 운동에 반영되고, ‘점거하라’ 운동이 다시 노동자 운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 ‘점거하라’ 운동의 의의’‘오늘날 중국의 저항 운동’은 중국학 연구자들 사이에서 최근 유행하는, 중국 체제의 안정성을 강조하는 주장은 신화이고, 중국에도 혁명이 일어난 이집트와 비견할 만한 심각한 모순과 계급투쟁의 잠재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글이다. 김용욱은 중국의 국가 주도 시장화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고 지적한다. 중국의 시장 개혁은 성장률로 보자면 크게 성공했지만 노동자들의 처지가 악화되고 사회적 불평등이 크게 느는 등 사회적 모순이 증대했다는 것이다. 또, 중국 공산당 관료들이 추진하고자 하는 전반적 구조조정에도 여러 난관이 있다고 분석한다. 이 글에서 특히 흥미로운 점은 중국 안팎의 자료를 이용해 중국 반체제 세력과 최근 폭발적으로 성장한 저항을 자세히 분석한다는 점이다. 또, 김용욱은, 중국 노동계급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하고 비관적으로 보는 중국 지식인들과 일부 국제적 좌파의 잘못된 가정도 반박한다.
전 세계의 저항에서 현재 가장 앞서 나가고 있는 곳은 이집트일 것이다. 사메 나기브의 ‘계속되는 혁명 — 무바라크 몰락 이후의 이집트’는 지난 몇 달간의 격변을 깊이 있게 다룬, 매우 감동적인 글이다. 사메 나기브는 이집트 혁명의 한복판에서 핵심 구실을 하고 있는 혁명적 사회주의자단체RS의 지도적 활동가다. 이 글의 단락 단락은 아주 쉽고 차분하게 쓰였는데도 그것을 따라가다 보면 역사적 시야와 세계적 연관 속에서 이집트 혁명의 배경과 파장을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 정치적 요구와 경제적 요구가, 민주주의 혁명 국면과 사회 혁명 국면이 복잡하게 상호 작용하는 이집트 혁명의 동역학도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보면, 최근 총선 결과를 다루며 마치 이집트 혁명의 궁극적 목표가 자유 선거였던 양 다루는 기성 언론 보도의 피상성과 천박함을 잘 알 수 있다. 총선을 앞둔 2주 동안에만 반군부 시위로 40여 명이 죽고 수천 명이 다치는 격렬한 충돌이 벌어졌는데 군부는 총선 이후에도 여전히 통치권을 놓으려 하지 않는다. 또, 이번 선거에서 승리한 무슬림형제단은 긴축 정책을 펴려 하는데, 이는 지난 수개월 동안 경제적 요구를 내걸고 투쟁하며 혁명을 심화시켜 온 노동자 계급의 바람과 충돌한다. 이런 사실들은 이집트가 여전히 심각한 모순 속에 있고 혁명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 준다.
‘카다피 몰락과 리비아의 앞날’에서 차승일은 튀니지·이집트 혁명으로 영감을 받아 시작된 리비아 혁명이 카다피의 광포한 탄압, 카다피 정권 이탈파의 부상, 서방 제국주의의 개입으로 굴절을 겪으며 중도에 멈췄다고 지적한다. 특히 카다피를 무너뜨리는 데서 서방이 꽤 큰 구실을 했으므로 서방은 이를 바탕으로 리비아를 친서방 종속국으로 만들려 애쓸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러나 내전 과정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이슬람주의자들이 있고, 특히 전쟁의 마지막 순간에 대중의 행동이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한 것을 보면, 리비아 혁명에 아직 숨이 붙어 있으므로 서방의 의도가 관철되기는 그리 녹록치 않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또, 리비아 혁명은 전체 아랍 혁명과 연결된 한 고리이므로 다른 나라, 특히 이집트 혁명 진전 상황의 영향을 크게 받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지난 호에 이어 이번 호에서도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2011년 방한 강연과 대담을 〈특집〉으로 묶었다. 지난 호에 실린 알렉스 캘리니코스 방한 강연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좋아 일종의 연속 특집으로 꾸민 셈이다. 이번 호에 묶은 강연과 대담은 모두 비공개로 이뤄진 것으로, 캘리니코스가 올해 7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 본지 편집팀과 주요 기고가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런던 킹스칼리지 유럽학 교수이고,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중앙위원장이자 본지 편집 자문이기도 하다.
먼저, ‘금융화와 오늘의 세계경제’는 오늘날 금융시장이 하는 기능을 어떻게 이론화할 것인지를 다룬 강연이다. 캘리니코스는 뒤메닐과 레비처럼 신자유주의를 금융의 헤게모니로 규정하는 관점을 비판적으로 살펴본다. 또, 힐퍼딩의 금융자본론은 오직 역사적으로 특정한 시기에만, 그것도 부분적으로만 현실에 부합했다고 지적한다. 결국 캘리니코스는 힐퍼딩이 묘사한 것과는 다른 양상인 오늘날 금융화의 특징을 제시하며, 그것이 더 큰 틀의 축적 과정에 끼치는 영향을 살펴본다.
둘째 글인 ‘사회민주주의 — 제대로 이해하고 대처하기’에서 캘리니코스는 사회민주주의 정당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소개하고 사회민주주의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화했는지도 살펴본다. 이것을 살펴보는 것은 실천적 함의가 있다. 오늘날 세계 여러 나라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1950~60년대와 비교해 대중적 노동자 정당으로서의 성격이 약화하고 신자유주의도 받아들이다 보니 일부 극좌파들은 이 정당들이 더는 단순한 부르주아 정당들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도 이런 극좌파들이 적잖이 있다. 캘리니코스는 현 상황에서 사회민주주의의 영향력을 무시하는 것은 크나큰 오류이며, 개혁주의자들의 지지 세력을 우리 편으로 끌어오는 전략과 전술을 끊임없이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셋째 글인 ‘인민전선이 진보운동의 패배를 부르는 이유’는 인민전선 정책의 문제점을 다룬 강연이다. 인민전선은 노동자, 농민, 그리고 가장 두드러지게는 ‘진보적 부르주아지’를 포괄하는 계급 동맹이다. 캘리니코스는 1934~35년 코민테른이 이 정책을 채택한 이래 인민전선이 각국 계급투쟁에서 어떤 효과를 냈는지를 1936년 프랑스와 스페인, 제2차세계대전 중 레지스탕스 운동, 1958~63년 이라크, 1970년대 이탈리아 등의 다양한 역사적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이 경험들의 교훈은 인민전선이 노동계급의 이해관계를 자본가의 이해관계에 종속시키는 결과를 낳고, 그 결과 인민전선은 승리가 아니라 패배로 끝난다는 것이다. 이 강연은 NL 경향의 합법 정당 정책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특집의 마지막 글인 ‘오늘의 세계와 혁명적 좌파’는 한국의 혁명적 좌파 활동가와 나눈 대담을 녹취한 것이다. 이 대담에서 캘리니코스는 마르크스주의 경제위기론, 네그리의 제국론, 반전 운동과 대안세계화 운동 평가, 자율주의, 혁명정당 건설 방법 등에 대해 답하고 있다.
이번 호부터 〈기획 연재: 왜 자본주의는 위기에 빠지는가〉를 새로 시작했다. 앞으로 세 차례에 걸쳐 수록할 예정인데, 이번 호는 그 첫 순서로 ‘마르크스의 경제위기론과 그에 대한 비판’을 실었다.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 경향 이론은 자본주의 경제의 단기적이고 단순히 경기순환적인 위기를 설명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자본주의의 장기적인 추세가 위기로 나아가는 경향성이 있음을 설명하기 위해서 제시된 것이다. 단순한 순환적 위기의 원인은 다양할 수 있다. 신용 경색일 수도 있고, 소비 부진일 수도 있고, 다른 무엇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의 체질 자체가 장기적으로 부실해지고, 활력이 떨어지고, 구조와 기능이 쇠퇴하고, 조직들이 경화돼, 큰 위기에 처하게 될 가능성이 갈수록 높아진다면 이 추세는 예사로운 게 결코 아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원인이 근저에 놓여 있음에 틀림없다. 마르크스는 이윤율 저하가 바로 그런 근본적 원인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이윤율 저하의 법칙’ 대신에 ‘이윤율 저하와 그 상쇄 요인들의 법칙’이라는 식으로 공식화해, 이윤율 저하의 결정적 중요성을 희석시켜서는 안 된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한계는 바로 자본 자체에 있다는 마르크스의 말을 재치 있는 농담 정도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또한, 생산력 증대와 기성 생산관계의 변증법적 모순과 충돌로 위기의 ‘시대’, 혁명의 ‘시대’가 열린다는 마르크스의 말도 장엄한 묵시록적 예언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크리스 하먼은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가 마르크스 경제위기론의 정수임을 논증한다. ‘마르크스의 경제위기론과 그에 대한 비판’은 원래 하먼이 1984년 펴낸(그리고 1999년에 재판을 찍은) 《경제 위기를 설명하기: 마르크스주의적 재평가Explaining the Crisis : A Marxist Re-Appraisal》의 1장을 번역한 것이다. 다음 호와 다다음 호에 각각 2장과 3장을 번역해 싣겠다.
이번 호가 조금 두껍다는 점에 대해 독자들에게 사과해야겠다. 좀더 얇게 내겠다고 했으면서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그러나 유용한 글들이 매우 많으니 이 잡지가 긴 겨울밤 독자들의 벗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