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오늘의 위기와 저항
미국 ‘점거하라’ 운동의 의의 *
99퍼센트의 반란
에릭 프레츠
“우리는 99퍼센트다. 우리는 우리 집에서 쫓겨나고 있다. 우리는 식료품을 살 것인가 아니면 집세를 낼 것인가 하는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우리는 양질의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환경오염으로 고통받고 있다. 운 좋게 일자리가 있더라도 우리는 장시간 노동에 보수는 적고 권리는 누리지 못한다. 우리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지만 저들 1퍼센트는 모든 것을 갖고 있다. 우리는 99퍼센트다.” 이것은 인터넷 웹사이트 ‘우리는 99퍼센트다’에 올라와 있는 성명서다.
‘월스트리트를 점거하라OWS’ 운동은 미국의 뒤죽박죽 정치 담론에 한 줄기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었다. 그 운동은 다른 많은 저항의 구심점이 됐고, 심지어 장기 투쟁 중인 노동자들에게도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월스트리트를 표적으로 삼고 ‘99퍼센트’ 대 ‘1퍼센트’라는 구호를 제기하면서 계급 정치가 다시 정치적 논쟁의 초점으로 떠올랐다.
“우리는 99퍼센트다”라는 구호는 이제 노동조합 집회에서도 들을 수 있다. 또, 그 구호가 인기를 끌면서, 우파들이 퍼뜨린 사상도 흔들리고 있다. 즉, 미국 노동자들과 이주노동자들을 분열시키거나 이른바 ‘캐딜락 의료보험’[보장 금액이 많고 범위가 넓은 고액 의료보험 — 옮긴이]과 ‘과도한 혜택’을 누린다는 노동조합원들과 다수의 미조직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는 사상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극소수의 엄청난 부자들만이 혜택을 누리는 상황에서 오히려 우리는 그 구호로 단결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인종차별과 그 밖의 우파 사상이 노동계급 사이에서 사라졌다거나 대다수 사람들이 자본주의를 핵심 문제로 여기게 됐다는 말은 아니다. 정치적 논쟁이 달라졌고, 이제는 ‘점거하라’ 운동이 티파티를 거의 완전히 압도하게 됐다는 말이다.
그리고 단지 경제적 불평등만이 아니라 부자들과 기업들이 정치과정에 미치는 엄청난 영향력도 초점이 됐다. 99퍼센트보다 1퍼센트를 더 우대하는 체제가 어떻게 ‘민주적’일 수 있겠는가!
월스트리트에서 시위대가 쫓겨나고 인근 주코티 공원(이제 원래 이름인 리버티 플라자를 되찾았다)에서 1백50명이 텐트를 치고 살기 시작한 지 겨우 몇 달 만에 그 공원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중심지로 바뀌었다. 낮에는 흔히 1천여 명이 공원을 꽉 채운다. 많은 실무분과working group 회의와 포럼이 열리고, 도서관이 운영되고, 시위대와 노숙자에게 똑같이 무료로 음식을 제공하는 주방도 있다. 밤에는 수백 명이 다가오는 겨울에 대비해 방한 준비를 갖춘 텐트에서 잠을 잔다.
주류 언론의 보도는 2주가 채 안 돼 (풍자 작가 존 스튜어트의 표현을 빌리면) “완전 무시”에서 “호들갑스런 입방아”로 바뀌었다. 여기에는 경찰의 폭력적인 시위 진압이 한몫했다. 운동은 미국 전역의 다양한 도시에서 크고 작은 점거 수백 건이 벌어지면서 널리 확산됐다.
OWS는 일부러 요구들을 정식화하지 않았지만, 여기 뉴욕과 그 밖의 도시들에서 토론은 계속됐다. 그러나 운동의 비공식적 요구들은 이런저런 구호와 각종 팻말, 더 중요하게는 OWS의 동맹들을 보면 알 수 있다.
OWS는 다른 집단들과 함께 홍보하고 협력했다. 그들은 함께 리버티 플라자를 출발해서 행진할 때 보편적 의료보험이나 뉴욕 주州의 ‘부유세’(상위 소득 계층 2퍼센트에게 매기는 세금인데, 뉴욕 주지사는 올해 말에 이 세금을 폐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를 확대하라고 요구했다. 마찬가지로, 할렘과 베드퍼드-스타이버선트 지역에서 경찰의 ‘불심검문’에 반대하는 시위대와 함께하거나 소더비의 직장 폐쇄에 맞서 투쟁하는 팀스터스 조합원들의 피켓라인에도 동참했다. 사실상 그들의 요구에 동의하면서도 OWS 자체의 염원이 그런 요구에 국한되지 않게 한 것이다.
지금 운동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달[11월 — M21] 오하이오 주의 공화당 주지사가 공무원노조의 단체교섭권을 박탈하는 법안을 주민투표에 부쳤다가 패배한 것은 중요한 사례다. 노동조합들은 ‘신시내티[오하이오 주에 있는 상공업 도시 — 옮긴이]를 점거하라’ 같은 다른 운동과 협력하는 데 상당한 자원을 쏟아부으며 함께 법안 반대 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쳤다. ‘점거하라’ 운동을 중심으로 정서가 바뀐 것이 유권자들을 투표소에 끌어내는 데 일조했고, 노동조합을 파괴하려던 그 법안은 주민투표에서 거의 2 대 1로 부결됐다.
마찬가지로, 워싱턴에서 키스톤XL 타르샌드 송유관 사업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진 후 오바마 정부가 그 사업 승인을 2013년까지 연기한다는 놀라운 결정을 내리자 저술가 나오미 클라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반이 이동했습니다. … OWS가 없었다면 우리는 이기지 못했을 것입니다. … 우리는 이미 승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복잡하고 잠재적으로 극히 중대한 영향은 OWS 운동이 노동조합에 미친 영향이다. 처음 시위를 호소했을 때나 주코티 공원에 텐트촌이 들어섰을 때 노동조합들은 아무런 구실도 하지 않았지만 곧 그 운동이 대중의 공감을 얻고 있음을 알아챘다. 대중교통노조TWU가 물꼬를 텄다. TWU는 시위대를 대거 체포한 경찰이 TWU 조합원인 버스기사들을 징발해서 연행자들을 감옥으로 운송하는 것을 막으려고 뉴욕 시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OWS를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1이고, 여기가 바로 카이로이고, 여기가 바로 튀니지입니다.”
10월 5일 OWS를 지지하는 지역사회와 노동자들의 연대 행진은 수많은 지방자치단체 노조들과 민간 부문 노조들, 그리고 각급 노조 뉴욕 지부들의 지지를 받았다. 평상시와 달리 노동조합원들은 행진 내내 소속 단체별로 또는 소규모 그룹을 이뤄서 움직였고, 창조적 전투성에 환희와 깊은 감동을 느낀 듯했다. 연단에 오른 노조 지도자들은 조합원들에게 실제로 행동을 호소하지는 않았지만 서로 경쟁적으로 더 전투적인 발언들을 쏟아냈다. 미국 통신노조의 밥 매스터스는 현장의 분위기를 감지하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OWS는 우리 시대의 정신을 정확히 포착했습니다. 여기가 바로 매디슨1년 전에[2010년 10월 2일 — 옮긴이] 미국 노총AFL-CIO은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티파티에 대항하려고 워싱턴에서 10만 명이 모이는 ‘하나된 국가One Nation’ 집회를 열려고 모든 수단을 총동원했다(‘하나된 국가’와 ‘99퍼센트’의 차이를 주목하라). 1년 전의 그날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지만, OWS는 달랐다.
이 점을 입증하는 또 다른 증거는 캘리포니아 주의 오클랜드에서 찾아볼 수 있다. 10월 25일 아침 일찍 경찰은 ‘오클랜드를 점거하라’ 텐트촌을 공격했다. 이라크 전쟁 참전 군인인 스콧 올슨이 경찰이 지척에서 쏜 최루탄을 맞아 두개골 골절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했다. 이튿날 2천 명 이상이 총회에 참석해 1주일 뒤 시 전체의 총파업을 벌이자고 호소했다. 총파업이 완전히 성공하지는 못했을 수 있지만, 그날 노동조합들이 조합원들의 집회 참가를 독려한 덕분에 시위 행진에 참가한 사람들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노동자들의 참가는 점심 시간과 퇴근 후로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교사 약 3백60명은 (단체협약상으로는 파업을 벌일 이유가 없었지만) 근무를 건너뛰었고, 시내의 많은 가게와 기업도 문을 닫았다. 그리고 행진 대열 수천 명이 거대한 오클랜드 항구를 봉쇄하고 노동자들과 친교를 나누자, 보건안전 중재재판관은 국제항만창고노조ILWU 조합원들에게 피켓라인을 넘어가도록 강요하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고 판결을 내렸다. 오후 근무조는 출근하지 않았고, 결국 미국에서 넷째로 큰 항구는 봉쇄됐다. 오클랜드의 항만 노동자들이 정치 쟁점으로 파업을 벌이는 것이 드문 일일 수는 있겠지만, 오클랜드는 ‘점거하라’ 운동과 노동자들의 관계가 어떻게 발전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줬다.
‘점거하라’ 운동 참가자 중에 많은 사람들은 노동조합 경험이 전혀 없는, 새롭게 급진화한 청년들이다. 그들은 현장 조합원들과 관계를 구축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단지 노조 지도자들의 행동을 지지하며 박수만 치거나 자기 도시의 상황과 무관하게 기계적으로 오클랜드처럼 총파업을 벌이자고 호소하는 일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대단히 중요한 것이 극소수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조합 투사들의 구실이다. 1백 명으로 구성된 OWS 노동자 지원 분과Labour Outreach Working Group 같은 곳에서 바로 그런 참을성 있는 준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점거하라’ 운동은 대학 캠퍼스에서도 성장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여러 캠퍼스가 최근 점거되거나 시위 현장이 됐다.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1960년대 자유언론운동의 발상지였던 역사적 장소, 즉 버클리 캠퍼스의 스프라울 광장에 텐트를 치려다가 연행되기도 했다.
최근 ‘보스톤을 점거하라’ 운동에는 ‘하버드를 점거하라’ 운동과 노스이스턴 대학교의 소규모 점거단이 합세했다. 미국 학생들의 저항 운동에는 건물을 점거하는 전통이 있다. 도서관 등의 시설을 점거해서 개방하고 토론 집회를 여는 것이 캠퍼스에서 가능한 다음 단계의 과제일 것이다. 기계적으로 도심지에 계속 야외 텐트를 치는 것보다는 그게 더 낫다.
‘점거하라’ 운동 활동가들은 은행들이 압류해서 경매 처분하려는 주택들을 점거하는 데 몇 차례 성공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집 앞에 텐트를 치고 세입자들을 보호하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은 은행 앞에서 연좌 시위를 벌였다. 압류 경매 절차를 방해하거나 노숙자 가족들이 이미 은행 소유가 된 빈집으로 이사할 수 있게 해 준 사람들도 있었다.
이와 비슷한 행동들은 1930년대 대공황 때 미국 공산당의 인기 있는 전술이었다. ‘점거하라’ 운동은 이런 활동을 도와 줄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을 결속시켰다. 그리고 이런 급진적 주택 운동 집단들과 연계를 강화하는 것이 운동을 확대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내년 초에 언론들은 다시 정치적 관심을 온통 선거로 집중시키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면 다른 정치 활동들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가장 덜 나쁜 후보를 다시 지지하게 하는 압력은 운동에는 도전이 될 것이므로 운동은 지금부터 그 도전에 대비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점거하라’ 운동이 양당 체제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건강함을 잃지 않았다. OWS는 민주당과 공화당이 널리 퍼뜨린 합의, 즉 긴축 말고는 대안이 없다는 합의에 파열구를 냈다. 물리적 점거가 어떻게 되든지 간에 OWS는 계급 정치를 다시 무대의 중앙에 올려 놓았고 미국 전역의 사람들에게 창조적 행동과 기초적 연대의 사례들을 보여 주며 사람들을 흥분시켰다. 이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폭풍이 커지고 있다
메건 트루델
참 오래 걸린 듯하다. 30년 동안 이윤율 하락에 대응한 미국 자본주의의 해결책은 구조조정이었다. 즉, 제조업 일자리를 삭감하고, 옛 공업 중심지에 있던 공장을 노조가 훨씬 더 취약한 남부와 서부로 이전하고, 노동강도를 강화하고, 규제를 완화하고, 서비스를 사유화하고, 노동시간은 늘리면서도 임금·휴가·질병수당은 조금씩 깎았다.
노동조합은 너무 자주 수익성 회복에 협력했고, 그에 따른 양보, 기득권 일시 유보[나중에 더 많은 급여나 수당을 받기로 하고 당분간 급여나 수당 삭감에 동의하는 것 — 옮긴이], ‘고통분담’ 패턴 덕분에 미국 기업들은 생산 활동을 노동계급에게 해롭게 변모시키고 노동계급 지도자들이 방향감각을 상실하게 만들 수 있었다. 착취율은 가차없이 치솟았다. 이런 방법들, 그리고 협상에서 노동조합을 편들었던 저항을 진압한 것은 미국의 불평등이 극적으로 증가하는 과정의 일부였다.
가난한 사람들한테서 부자에게로 부의 대규모 재분배가 이루어졌다. 1979년부터 2007년까지 상위 1퍼센트의 소득은 평균 2백75퍼센트 증가했지만, 압도 다수 사람들의 소득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2010년 미국의 일반적인 가계소득은 1989년과 거의 똑같았다.
그런 추세는 불황으로 더욱 가속화했다. 점점 더 많은 미국인들이 빈곤, 고용 불안, 노숙자 신세, 빚더미로 내몰리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빈곤층은 아니지만 간신히 입에 풀칠하거나, 소득을 모두 지출해야 해서 저축은 꿈도 못 꾸거나, 보육비, 대출금, 주택 융자, 자동차 할부금을 내려고 악전고투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하위 20퍼센트의 가계소득은 11.3퍼센트 감소했고, 지난 10년 사이에 중위中位 가계의 소득은 연간 6천 달러가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2008년 이후 3년 내내 생산성은 계속 상승했다. 즉, 부자들은 노동자들을 훨씬 더 쥐어짜서 이윤율을 회복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노동통계국 자료를 보면, 2011년 3사분기의 생산성 증가율은 연평균 3.1퍼센트에 달했다.
미국인 여섯 명 중 한 명꼴로(즉, 4천9백만 명이) 공식 빈곤층이다. 여기에는 18세 이하 아동의 22퍼센트, 여성이 가장인 한 부모 가정의 3분의 1이 포함된다. 미국은 사회복지망이 빈약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건강보험도 없고, 취업 연령의 성인 네 명 중 한 명과 18세 이하 아동의 거의 10퍼센트가 의료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다.
4천5백만 명 이상이 정부의 추가영양보조프로그램에서 나오는 식료품 지원비를 받는다. 이 지원비를 받으려면 4인 가족의 연소득이 2만 7천5백60달러[약 3천1백만 원 — 옮긴이] 미만이어야 한다. 그런 사람들은 2009년 7월 이후 3분의 1이 더 늘었다. 그때는 경기후퇴가 공식적으로 끝났다고 했던 때였다!
미국의 실업률은 2년 반 동안 9퍼센트를 약간 웃도는 수준이었지만, 이 공식 수치에는 풀타임 직장을 구하면서 파트타임 일을 하는 사람들과 일자리 찾기를 포기한 사람들은 포함되지 않는다. 노동시장 언저리에 간신히 붙어 있는 사람들과 구직 활동을 포기한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실업자를 계산하면 실업률은 16.5퍼센트까지 올라간다.
장기 실업자 수는 전후 최고 수준이다. 1년 이상 일을 하지 못한 사람들의 수는 2007년 64만 5천 명에서 2010년 중반 4백50만 명까지 증가했다. 6백만 명 이상의 미국인, 즉 전체 실업자의 40퍼센트 이상이 지금 6개월 넘게 일을 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2010년에 미국인 1백만 명이 집을 잃었고, 또 다른 1백20만 명이 2011년에 집을 잃을 것으로 예상되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이런 통계 수치들은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을 끊임없이 짓누르는 끔찍한 압력으로 작용하지만, 오바마 정부는 이런 문제를 다루는 데 완전히 실패했다. 오바마 정부에 대한 환멸이 현재의 항의 운동에 얼마나 반영됐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수많은 사람들, 특히 청년들은 체제의 우선순위가 바뀔 거라고 엄청나게 기대했다. 그런 염원은 이상주의적인 것이었을 수 있지만, 오바마의 배신 때문에 집단적 행동이 나타나고 기층의 민주주의가 많은 사람들의 수동성을 대체하고 있다.
계급 양극화, 불평등, 불안정이라는 똑같은 긴장이 전에는 티파티에 의해 왜곡되고 모순된 방식으로 표현됐지만, 이제는 우파적 강령을 바탕으로 선출된 자들에 맞선 저항 속에서 집단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결정적으로, 올해 2월 위스콘신 주의 주도州都인 매디슨에서 아래로부터 노동계급 운동이 분출했다. 3주 동안 교사, 학생, 공공부문 노동자 들의 대중 시위가 주정부 청사 점거로 발전해서 정부 청사가 해방구로 바뀌고 끊임없는 회의와 토론과 논쟁이 벌어지고 10만 명이 참가한 집회가 몇 차례 열리기도 했다. 그 운동은 티파티 소속 주지사인 스콧 워커가 노조의 권리를 공격하고 박탈하려는 것에 정면으로 맞서서 엄청난 저항과 힘을 보여 줬다.
위스콘신 투쟁은 결국 패배했지만,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대중적인 노동계급의 저항이 확실하게 의제로 떠올랐다. 그 힘, 그 창의성, 자발성, 조직화 능력이 ‘점거하라’ 운동에 반영됐고, 이 운동이 이번에는 일부 노조들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실천적 민주주의를 고무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점거하라’ 운동에 호응하는 이유는 이 운동이 경제 위기의 책임자들과 그 대가를 치러야 할 자들을 전국적 관심의 초점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 지도자들은 이런 주장을 제기할 수도 없었고 제기하려 하지도 않았다.
이런 정서는 월간지 《레이버 노츠Labor Notes》에 실린 인터뷰를 보면 분명히 드러난다. ‘보스턴을 점거하라’ 운동이 시작된 후 듀이 광장에서 텐트를 치고 생활한 철강 노동자 제이슨 챔버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것[‘점거하라’ 운동 — 옮긴이]은 정말 정곡을 찔렀어요. 사람들은 구제금융을 받은 이 은행들이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 것에 신물이 났습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권리는 미국 전역에서 공격받고 있어요. … 저는 ‘보스턴을 점거하라’ 운동의 총회에서 난생처음으로 진정한 민주주의를 목격했습니다.”
미국의 역사를 보면, 지배계급을 뒤흔든 파업과 반란이 거듭거듭 분출했고 공화당과 민주당 둘 다와 독립적인, 정치적 조직화를 향한 역동적 자극들이 나타났다. 경제 위기가 심각하고 미국인 다수의 매우 커다란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지금, ‘점거하라’ 운동과 조직 노동자들의 새로운 동맹은 그런 분출의 가능성을 다시 의제로 올려 놓았다.
MARX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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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Eric Fretz, ‘USA: Revolt of the 99%’, Socialist Review (December 2011). / Megan Trudell, ‘The Gathering Storm’, Socialist Review (December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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