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 1:그리스 시리자와 좌파 개혁주의의 한계
그리스와 시리자에 관한 논평 *
1 사회민주주의는 계속 사회자유주의[사회민주주의 중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는 부류]로 전락하고 있다. 극좌파는 지배계급의 혼란을 이용하려고 분투해 왔다. 급진좌파 연합체들은 잘해야 정체했다. 이런 양상에 두 가지 예외가 있는데, 프랑스의 좌파전선과 그리스의 시리자다. 좌파전선은 많은 사람들이 기대한 것만큼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사회당올랑드가 당선한 2012년 대선에서 급진좌파가 크게 득표하는 데 한몫했다. 한편 시리자는 차기 집권이 유력한 정당이 됐다.
자본주의가 몇 세대 만에 가장 심각한 위기를 맞이한 가운데 좌파들이 “전략적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2 가장 일반적 수준에서 그는 자본주의가 위기에 빠지고 사회민주주의가 신자유주의에 굴복하면서 사회민주주의의 왼쪽에 공백이 생겨났다고 주장했다. 캘리니코스는 시리자와 좌파전선이 성공한 것은 “좌파 개혁주의자들”이 그 조직들에서 득세했기 때문이라는 듯 말했다. 좌파 개혁주의자들은 고전적 개혁주의 전통의 언어로 말하고 노동계급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으며, 그래서 노동자들의 불만을 성장 기회로 삼는 데서 혁명가들보다 훨씬 더 유리했다는 것이다.
《인터내셔널 소셜리즘》 135호에서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이런 사태 전개를 종합적으로 분석했다.3 한때 득세했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장기적으로 해체되는 지금 시기는 상황이 꽤 다르다. 급진좌파 정당과 연합체가 등장하면서 나타난 전형적 특징은 옛 개혁주의 정당들에서 좌파적 분파가 이탈해서 여기에 합류하고, 옛 개혁주의 정당과 관계 있던 일부 공산당도 재편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세력들이 선거에서 약속하는 것과 기층에서 대변하는 것 사이에는 구조적 격차가 있고, 그래서 그 성공은 깨지기가 매우 쉽다. 그럼에도 오늘날 우리 극좌파와 사회민주주의 사이에는 꽤 만만찮은 세력이 존재하고, 지금 같은 환경에서 이는 전혀 나쁜 일이 아니다.
나는 극좌파와 사회민주주의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보는 관점을 비판하고자 한다. 그런 관념은 1968년에 시작된 혁명가들의 성장기에는 적절했을지 모른다.시리자와 “좌파 개혁주의”
얼핏 보면“좌파 개혁주의”라는 규정은 대강의 세력 균형을 합리적으로 묘사하는 듯하다. 그런 일반화 속에서 나라별 특수성을 잊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캘리니코스는 그리스, 특히 시리자를 다루면서 몇 가지 중요한 세부 사항을 간과했다.
첫째, 캘리니코스는 시리자가 왜 “좌파 개혁주의” 조직인지를 설득력 있게 설명하지 못했다. 그는 시리자 내에 혁명적 세력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 조직들이 정책 결정에 영향을 거의 미치지 못한다”며 단지 “[시리자가 — 시모어] 매우 급진적으로 보이게” 할 뿐이라고 일축했다. 이는 공정한 평가가 아니다. 캘리니코스는 시리자를 옛 유러코뮤니스트 경향이 지배적인 시나스피스모스의 외피일 뿐이라고 말하려는 듯하다.
시리자를 결성하기로 한 시나스피스모스의 결정은 반자본주의 운동과 반전 운동의 영향 속에서 일어난 좌선회 흐름의 일부였다. 예컨대 시나스피스모스는 1992년에는 마스트리히트 조약[유럽연합을 출범시킨 조약]을 지지했지만, 시리자가 결성될 때는 그 입장을 버렸다. 나중에 시리자는 유럽 헌법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였고, 2006년 그리스 사회포럼에 참가했다. 시리자는 2009년 학생 반란을 지지한 유일한 의회 정당이었고, [혁명적 반자본주의 연합] 안타르시아와 함께 “광장 점거 운동”에서 중요한 구실을 했다. 시나스피스모스가 전통적으로 사회운동에 개방적 태도를 취해 왔던 것이 여기서 중요한 구실을 했다. 시리자 내 혁명적 좌파는 소수파이지만 결코 무시할 세력은 아니다. 마오주의 조직인 그리스 공산주의자단체KOE는 시리자 안에서 둘째로 큰 조직이다. 이와 함께 국제주의노동자좌파DEA 같은 소규모 트로츠키주의 조직과 공산주의 조직도 있다. 게다가 좌파 세력들을 광범하게 포괄하고자 한 노력의 결과로 시나스피스모스 내부에도 이질적 경향들이 있고, 그 결과 시리자에서 혁명적 좌파는 영향력이 아주 없는 것이 아니다. 이 혁명적 좌파들은 시리자의 전국 조직과 지도부의 일원으로 포함돼 있고 시나스피스모스의 좌파를 끌어들여 소기의 목표를 이룰 수도 있다.
공존주의Ecumenicism
시리자의 한계가 무엇이든 간에, 시리자는 자신들보다 좌파인 세력에 개방적이었고 민주적 방식으로 그들과 함께하려 해 왔다. 이런 점에서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시리자의 부상浮上을 자세히 분석하면서도, 통합 좌파 정부를 구성해 긴축 정책을 막자는 시리자의 호소가 어떤 구실을 하는지 다루지 않은 것은 놀라운 일이다. 캘리니코스는 시리자가 인기를 얻기 전에는 한동안 더 온건한 민주좌파당이 여론조사에서 앞서기도 했다고 지적하더니, 이 사실만 가지고 대뜸 사람들이 시리자의 “정치적 모호함” 때문에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게 됐다는 결론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분석하면, 위기가 격심해지자 균형추가 시리자 쪽으로 옮겨 왔고, [시리자 지도자] 알렉시스 치프라스가 좌파 정부를 구성해 긴축 정책에 저항하자고 제안한 이후 시리자의 우위가 굳어지게 됐다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놓치게 된다.
5 이 덕분에 시리자는 총선에서 주요 경쟁 세력인 민주좌파당·공산당과 대비돼 돋보였다. 그 결과 두 경쟁 세력은 모두 2012년 5월과 6월 총선에서 시리자에게 많은 기반을 잃었다.
시리자가 통합 좌파 정부 구성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것은 시리자가 다른 좌파와는 공존하면서도 긴축 친화적 세력과는 동맹을 맺지 않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 이런 접근법의 일환으로 시리자는 5월 총선 후에 [6월 총선을 앞두고] 안타르시아를 만나 선거 연합 구축을 논의했다. 시리자는 선거운동에서 안타르시아가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게 하고 정치적 독립성도 보장하겠다고 했다. 안타르시아는 거절했다. 이는 안타르시아의 권리이기는 하다. 안타르시아는 독자 출마를 결정하며 이 결정은 반긴축 투쟁을 위한 더 일관된 강령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안타르시아는 산업 투쟁에서 가진 자신의 기반을 선거에서 표로 연결시키기 어려운 처지였고 언제나 아주 적은 표밖에 얻지 못해 왔다. 안타르시아는 선거에서 기껏해야 선전만 했을 뿐이고 선거 결과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좌파 정부 구성을 바라는 대중의 정서와 긍정적 관계를 맺지도 못했다.혁명가들은 좌파 단결 요구가 정부 권력 문제를 중심으로 제기된다는 사실에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소비에트 권력 같은 것이 없는 상황에서 통합 좌파 정부를 구성하자는 요구는 그리스 노동자들 사이에서 반향을 일으켰다. 이 요구는 긴축 문제가 심각하고 사회민주주의가 신뢰를 잃은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반향을 일으킬 듯하다. 이런 상황에 건설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사활적으로 중요하다. “좌파 개혁주의” 딱지에 매달리는 것이 문제인 까닭이다. 그 분석이 근본적으로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특정 유형의 연합체가 성공한 것을 설명할 때 그 조직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고 행동하는지 언급하지 않으면 중요한 세부 사항을 놓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근본적 모순”
시리자 강령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유럽연합을 대하는 시리자의 태도가 일관되지 못하다는 것이다. 시리자는 유로존의 틀 안에서 긴축에 맞서 싸우겠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유로존과 신자유주의는 한 몸이다. 나는 이 “근본적 모순”(알렉스 캘리니코스의 표현)이 시리자식 관점의 진정한 한계라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우선 [그리스 등] 유로존 “주변부” 나라들에서 좌파가 겪는 현실적 딜레마가 있다. 다음은 아일랜드 사회주의노동자당의 주장이다.
그리스와 아일랜드 같은 주변부 나라에서는 유럽연합 지지 여론이 흔히 높다. 유로화 사용국이자 유럽연합 회원국이라는 지위가 저개발 상태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많은 노동자들은 유로존에서 이탈하면 가난하고 생활수준이 더 낮았던 과거로 돌아갈까 봐 두려워한다.
7 그리고 전술적으로는 좌파가 유로존 이탈 문제를 슬로건으로 내놓기보다는 반긴축 투쟁의 쟁점을 슬로건으로 내놓고 유로존 지배자들을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것이 옳다. 이런 점에서 [안타르시아가] 선거운동에서 자발적 유로존 탈퇴를 내세우며 차별점을 드러내려 한 것은 아무런 가망도 없고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우리가 하나의 정당[당시 필자는 알렉스 캘리니코스와 한 정당에 있었다]이나 정치 경향으로서 “그렉시트”Grexit[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문제에 관해 수용하는 유일하고도 자세한 강령은 코스타스 라파비차스 등이 틀을 잡은 강령이다. 8 형식적으로 이 강령은 좌파 포퓰리즘적 의제다. 유로존에서 나와 국민국가적 방식으로 그리스 자본주의를 구하자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이 강령을 잠재적인 “전환적 요구”으로 본다. 자본주의와의 충돌을 내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레이스 랠리가 주장했듯이, 유로존 탈퇴라는 강령은 어떤 맥락에서 누가 제기하느냐에 따라 그 성격이 달라진다. 9 그리스는 혁명적 상황이 아니고 혁명가들이 노동계급을 지도할 위치에 있지도 않다. “그렉시트” 의제로 공동전선 행동이나 정부 정책의 기초를 놓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따라서 이 의제를 중심으로 좌파를 분류하는 것에 구체적으로 어떤 득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혁명적 좌파가 이런 두려움에 굴복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보다는 “유럽연합을 어떻게 보든 노동계급의 이익을 방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편이 낫다.그렇다고 해서 시리자의 입장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시리자 안에서도 유럽연합에 대한 비판적인 정책들이 지지를 얻고 있고 시나스피스모스의 좌파와 혁명가들 사이에서도 그렇다. 실제로 유럽연합에 가장 친화적인 세력은 포티스 쿠벨리스와 함께 민주좌파당으로 분열해 나갔다. 선거를 앞두고 시리자는 “유로화를 위해서는 아무도 희생할 수 없다”는 정식을 마련했다. 실천에서 시리자의 지도적 정치인들은 선거운동 기간에 더 타협적인 자세를 취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심지어 그러고 나서도 그들은 양해각서 폐기 같은, 유럽연합 지배자들과 대립할 공약을 내놓았다. 내 생각에 혁명적 좌파는 시리자가 약속하는 것을 높이 사고 그런 대립이 실현되도록 분투했어야 한다. 즉, 좌파 정부를 구성하자는 제안을 지지했어야 했다.
결론
스타티스 쿠벨라키스가 지적했듯이, 현재 국면에서 핵심 문제는 어떻게 하면 개혁주의적 최소 강령과 혁명적 최대 강령을 “실행가능한 중간 목표들”로 연결할 수 있느냐다. “전환적 요구”를 둘러싸고 《인터내셔널 소셜리즘》에서 벌어진 논쟁은 바로 이 일을 해결하려는 한 가지 시도였다. 그러나 좌파의 어느 누구도 아직까지는 일관된 해법을 찾지 못했다. 실천에서 우리는 모두 “좌파 개혁주의” 의제를 추구하고 있다. 이어지는 투쟁과 위기 속에서 자주적 대중조직이나 노동자 반란이 등장해 그런 의제가 실제 변혁으로 나아갈 징검다리 구실을 하리라 희망하면서 말이다. 자본주의를 위협할 수 있는 대중적 권력 기구가 나타나기 전까지 이 문제는 계속 되풀이될 것이고, 주로 정부 권력 문제가 초점이 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시리자가 이 문제에 답을 제시하려고 통합 좌파 정부 구성을 제안한 것은 높이 살 만한, 발전 과정의 의미 있는 단계라고 본다. 혁명가는 이를 전폭 지지했어야 했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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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Richard Seymour, ‘A comment on Greece and Syriza’, International Socialism 136(Autumn 2012).
↩
- Kouvelakis, 2011. ↩
- Callinicos, 2012. ↩
- 크리스 하먼은 1968년 이후 혁명적 좌파가 성장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로 그런 정치적 공백을 들었다. Harman, 1979을 보시오. ↩
- 시리자의 내부 사정에 관한 설명으로는 다음을 보시오. Marlière, 2012; Davanellos, 2008; 2012; MacFhearraigh 2012. ↩
- Gilson, 2011에서 알렉시스 치프라스가 한 인터뷰를 보시오. ↩
- 그뿐 아니라 일부 안타르시아 지지자들은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종파적인 논리를 내세우기도 했다. 시리자는 “우파 개혁주의”를 대표하고 “일국적·국제적 체제가 ‘정상적’ 수단을 사용해 사태를 진정시키려고 꺼낸 최후의 카드”라는 것이다. Kloke, 2012을 보시오. ↩
- SWP Ireland, 2012. ↩
- Lapavitsas and others, 2012. ↩
- Callinicos, 2010; Lally, 2011. ↩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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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linicos, Alex, 2012, “The Second Coming of the Radical Left”, International Socialism 135 (summer), www.isj.org.uk/?id=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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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anellos, Antonis, 2012, “Where did Syriza come from?”, Socialist Worker (US) (17 May), http://socialistworker.org/2012/05/17/where-did-syriza-come-from
Gilson, George, 2011, “Warding Off a ‘Social Catastrophe’”, Athens News (2 October), http://www.athensnews.gr/issue/13463/48402
Harman, Chris, 1979, “Crisis of the Revolutionary Left”, International Socialism 4 (spring), www.marxists.org/archive/harman/1979/xx/eurevleft.html
Kloke, Andreas, 2012, “Answer to the statement of the FI on Greece” (1 June), http://4thinternational.blogspot.co.uk/2012/06/andreas-kloke-answer-to-statement-of-fi.html
Kouvelakis, Stathis, 2011, “Facing the Crisis: the Strategic Perplexity of the Left”, International Socialism 130 (spring), www.isj.org.uk/?id=727
Lally, Grace, 2011, “Discussing the Alternatives”, International Socialism 129 (winter), www.isj.org.uk/?id=708
Lapavitsas, Costas, and others, 2012, Crisis in the Eurozone (Verso).
MacFhearraigh, Donal, 2012, “SYRIZA and the Rise of Radical Left-Reformism in Europe”, Irish Marxist Review, volume 1, number 2, http://irishmarxistreview.net/index.php/imr/article/view/21
Marlière, Philippe, 2012, “Syriza est l’expression d’une nouvelle radicalité à gauche”, interview with Stathis Kouvélakis, Le blog de Philippe Marlière (6 June), www.blogs.mediapart.fr/blog/philippe-marliere
SWP Ireland, 2012, “Greece and the advance of the left” (21 May), www.swp.ie/content/greece-and-advance-lef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