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침체 국면으로 들어선 세계 경제 *
세계적 금융 공황과 대침체라는 지진 같은 소동이 벌어진 지 이제 6년이 됐다. 2007년 8월 9일 [프랑스 은행] BNP파리바는 자사가 막대한 손실을 입고 있으며, 미국 담보대출저당증권에 대한 펀드 두 개를 판매 중지한다고 발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과 유럽의 다른 은행들도 비슷한 손실을 발표했다. 2007년 10월부터 주식시장이 폭락하기 시작했다.(주식시장은 3월부터 불안정했다.)
그 뒤로 전 세계에서 은행들의 손실 발표가 눈사태처럼 일어났다. 그러고 나서 미국 등 선진 자본주의 경제가 대침체로 빠져들었고, 이 대침체는 2008년 초부터 2009년 중반까지 18개월 동안 이어졌다.
대침체의 원인 이 경기 부진은 대침체라고 불리는데, 그야말로 “거대”했기 때문이다. 그림1이 보여 주듯이,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1929~30년에 시작된 대불황Great Depression 이래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 지리적으로는 대불황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지역으로 위기가 확산됐다.
세계 무역이 급감했고, 실업률이 치솟았고, 자본주의에서는 가장 중요한 투자가 폭락했다.(그림2를 보시오.) 부동산에 대한 투자는 2007년까지 신용을 기반으로 한 호황을 누리다가 큰 폭으로 하락했고, 생산적 자산에 대한 투자도 폭락했다.
이윤량이 뚝 떨어졌다. 특히 금융 부문의 이윤량이 크게 떨어졌는데, 금융 부문은 1990년대부터 2007년까지 선진 경제의 이윤에서 큰 몫을 차지하고 있었다. 금융 부문은 2007년 미국 기업 이윤의 40퍼센트를 차지했는데, 1980년에 이 수치는 단지 10퍼센트에 불과했다. 이제 그 몫이 급격히 떨어졌다.
금융 부문은 추풍낙엽의 처지였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특히 미국·영국·유럽에서 금융 부문이 그토록 중요했기 때문에 금융 부문의 위기는 이제 파산과 폐업의 사슬을 통해 자본주의의 생산적 부문도 끌어내릴 위험이 있었다. 정부가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정부가 내놓은 해법은 은행, 담보대출 대부업체, 보험회사를 정부 돈으로 살리는 것이었다. 거기에 필요한 돈은 일부는 봉급 생활자에게 더 높은 세금을 매겨서 충당했지만, 대부분 빌려서 충당했다. 다른 말로 하면 국가 연기금과 위기에 빠진 바로 그 은행과 보험회사들에 국채를 판매해서 돈을 마련한 것이다. 정부는 일부 기업(베어스턴스, 리먼브라더스)은 파산하도록 내버려 뒀지만, 확실히 다른 기업들은 대부분 구제해 줬다. 국제적 보험회사 AIG가 특히 많은 지원금을 받는데, AIG는 은행과 헤지펀드 투기꾼들이 담보대출채권 파생상품 등 “혁신적인” 허구적 자본[의제 자본, fictitious capital]에 투기하다 입을 손실을 보전해 주는 보험상품을 판매했다. AIG에 막대한 지원금을 준 것은, 골드만삭스 같은 기업들이 투기적 투자를 하다 입은 손실에 대한 보험금을 한 푼도 손해보지 않고 AIG한테서 타갈 수 있도록 해 주기 위해서였다. 즉, 거대 은행들이 무모하게 탐욕을 부리다 생긴 손실을 결국 납세자들이 모두 보상해 준 셈이었다.
3 거품이 터지자 은행들은 큰 곤경에 처했고, 국가가 은행들의 빚을 떠안아야 했다. 그 뒤 은행들은 납세자들의 희생을 대가로 부실 자산을 털어낼 수 있었다. 반면 가계는 담보대출금을 갚지 못해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졌다. 이처럼 가계에서 은행으로, 은행에서 정부로 빚 꾸러미가 옮겨 갔다.
금융 기업들은 가계에 대출해 주려고 돈을 빌리며 미국과 유럽에서 자산 거품을 만들어 냈다.정부 부채가 제2차세계대전 이래 보지 못한 수준으로 치솟았고, 단지몇몇 나라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나라에서 그랬다. 그림3을 보면 신용경색과 대침체 이후 공공부채가 어떻게 폭증했는지를 알 수 있다. 이제 정부는 채권 소유자(은행 등)한테 빚을 갚기 위해 납세자들, 특히 봉급 생활자들에게 당분간 막대한 비용을 청구할 것이다. 정부 예산 적자가 불어났다. 구제금융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경제가 급격히 수축하고 실업률이 폭증하면서 세입은 줄고 복지 지출은 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친자본주의 정부들은 이 적자를 줄이고 새로 생길 빚의 규모를 줄이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정부들은 대침체가 끝나자마자 ‘긴축’ 정책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긴축의 목표는 세 가지다. 첫째, 정부 지출을, 특히 공공 부문, 공무원, 정부 투자, 복지를 줄이는 것이다. 둘째, 봉급 생활자들에 대한 세금을 다양한 형태로 올리는 것이다. 셋째, 퇴직 연령[연금 지급 개시 연령]을 늦추고, 납부 기간을 늘리고, 납부액을 올려 국가 연금 지출을 줄이는 것이다.
5 자본주의의 결함이 오로지 금융 부문에 있다고 본다. 이와 반대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위기의 원인은 결국 자본주의적 생산 과정, 특히 이윤을 위한 생산에 내재해 있다고 봤다. 마르크스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본주의적 축적 과정에서 이윤율이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는 법칙을 바탕으로 [경제] 위기 이론을 발전시켰다.
케인스주의자들은, “야성적 충동” 학파든 금융 불안정성 학파(민스키)든, 짧게 말해 그 법칙은 이렇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가변자본(노동자 임금에 대한 투자)의 양에 견줘 불변자본(설비, 공장, 기술에 대한 투자)의 양이 더 커지는 경향이 있다. 가변자본으로 구매한 [노동자들의] 노동만이 잉여가치를 생산하므로 자본가의 전체 투자에 견줘 잉여가치의 양이 떨어진다. 즉, 이윤율이 떨어지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이 경향은 상쇄되기도 한다. 상쇄 요인은 많지만(잉여가치율의 급증이나 생산수단의 상당한 저렴화가 가장 중요하다), 마르크스는 하나의 법칙으로서 이 경향이 결국에는 상쇄 요인을 극복할 것임을 보였다. 결국 이윤율이 떨어지고 생산 위기가 일어난다.그렇다고 해서 금융 부문이, 특히 신용의 규모와 운동이 자본주의 위기에서 아무런 구실을 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신용과 허구적 자본(주식, 채권 등 금융 자산에 대한 투기적 투자를 가리키는 마르크스의 용어)은 바로 실물 자본의 축적에서 수익성이 하향 압박을 받는 것을 벌충하기 위해 크게 성장한다.
미국 이윤율 추이는 1947~2011년에 장기적 하락 추세를 보인다. 1947~65년에는 수익성이 높았다. 비록 1950년대에 떨어졌지만 1960년대 중반까지는 안정화됐다. 그 뒤 미국 경제는 수익성이 하락하는 단계로 진입했고, 위기 시기를 거쳐 결국 1980년대 초의 심각한 경기 후퇴 때 저점을 쳤다. 그 뒤 수익성이 올라갔다. 1960년대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상당한 수준이었다. 이 시기는 이른바 신자유주의 시대라고 불린다. 수익성은 1997년에 고점에 이르렀고 이런 점에서 신자유주의 시대는 1990년대 말에 종말을 고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2000년대 초에 신용 호황으로 수익성이 다시 올라갔지만 말이다.
7 그림4는 2005년 이후 이윤율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과 함께, 실물 경제의 이윤율(의 하락)이 허구적 자본의 엄청난 팽창을 지탱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결국 주택 부문과 금융 부문(자본주의적 투자 중 가장 비생산적인 부문들)에서 호황이 끝났고 추세가 역전됐다.
몇 가지 단계로 나눠 이윤율을 측정해 미국 이윤율의 변동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947~2011년 미국 이윤율은 30퍼센트 이상 하락했다. 그 하락은 대부분 1965~82년 있었는데, 그때 20퍼센트 이상 하락했다. 그 뒤 1982~97년에 이윤율이 거의 20퍼센트 회복됐다. 그때 이후로 이윤율은 (현재까지) 9퍼센트 정도 하락했다. 즉, 이전 하락의 절반 정도만 떨어진 것이다.분명, 이윤율의 하락 경향은 부동산, 신용, 주식시장에 대한 투기를 촉진한다. 자본가들은 상품 생산에서 충분히 이윤을 만들지 못하면 주식시장에서 도박을 하거나 여러 금융상품을 구입하거나 부동산을 구입해 돈을 벌려 할 것이다. 여러 자본가들은 이윤율 하락을 동시에 느끼므로 주식과 자산을 동시에 구입하려 하고, 그래서 가격이 올라간다.
돈이 금융 부문과 투기적 부문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은 생산적 부문의 이윤율이 하락하는 것에 대한 현실적인 “상쇄 경향적” 대응이다. 통화 당국이 기준금리를 낮게 유지하고 신용을 공급해 도와 주면 이 비생산적 부문에서 한동안은 이윤율이 높을 수 있다. 주식과 자산 가격이 오르면 서로 구입하려 하고, 그래서 거품이 커진다. 그러나 조만간 투자자들이 그 자산들에 그만한 가격을 지불할 가치가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 거품은 꺼진다. 거품이 터질 때까지 쌓인 부채 때문에 거품이 꺼질 때의 충격은 그만큼 더 크다.
근본 문제는 여전히 투자 요구를 억누르는 낮은 이윤율이다.(그림5를 보시오.) 기초 경제가 건강하면 신용 거품이 반드시 위기를 낳는 것은 아니고, 위기가 생기더라도 짧게 끝날 것이다. 그 예로는 1987년 주식시장 폭락이 있다. 당시에는 주식시장 거품이 꺼졌지만 생산 위기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전체 경제가 건강하고 이윤율이 높으면 [채무자들의] 이자 지급으로 생긴 수익이 이러저러한 식으로 다시 생산에 투자될 것이다.
8 자본주의에서 경기 부진은 이윤율과 이윤량의 하락을 바로잡고 역전시키는 데서 필수적인 것이다. 9
비생산적 부문에서 인위적이고 일시적으로 이윤을 올리는 것은 자본주의 경제를 유지하고 생산적 부문의 이윤율 하락으로 말미암은 타격을 회피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빚을 갚지 못하는 채무자의 비율이 증가하면 결국 채무불이행이 생기고 금융 부문에서 위기가 터진다.10 그러나 실증적 증거를 보면 이 위기를 마르크스 법칙에 따른 수익성 위기로 보는 관점이 옳다. 미국 경제의 이윤율은 2007년 여름에 시작된 금융 위기 훨씬 전부터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르크스주의적으로 계산한 미국 이윤율은 사실 2005년에 24.8퍼센트로 고점을 찍었고 2008~09년을 거치며 3퍼센트포인트 떨어졌다. 기업 이윤량(세전)은 2006년 3사분기에 1조 6550억 달러로 고점을 찍었고 2008년 4사분기에는 32퍼센트 줄어 1조 1240억 달러로 저점을 찍은 뒤 회복됐다. 이와 비슷하게 금융 부문의 미국 내 이윤은 2006년 2사분기에 4470억 달러로 고점을 찍은 뒤 무려 73퍼센트 줄어 2008년 4사분기에 1220억 달러로 저점을 찍었다! 비금융 부문의 미국 내 이윤도 곤두박질 쳤는데, 2006년 3사분기에 9880억 달러로 고점을 찍었고 그 뒤 36퍼센트 줄어 2009년 1사분기에 6290억 달러가 됐다. 어떤 식으로 측정하든, 이윤율과(또는) 이윤량은 금융 위기가 시작하기 꽤나 전부터 떨어졌다. 11 그러므로 “과도한 신용”, 주식시장 투기, 온갖 형태의 새롭고 낯선 허구적 자본의 확장은 경제의 생산적 부문에서 수익성이 떨어지는 것에 대한 대응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위기를 막은 것이 아니라 그 발발 시기를 늦췄을 뿐이고, 결국에는 더 깊고 긴 위기가 닥쳤다.
일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렇게 주장했다. 2007년의 신용경색과 뒤이은 대침체는 고전 마르크스주의가 말하는 수익성 위기가 아니고 마르크스도 이 위기의 원인을 금융으로 볼 것이라고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위기를 자본주의의 새로운 발전이 낳은 산물로 본다. 즉, 금융자본의 세계화와 금융자본의 자본주의 경제 지배가 낳은 결과라는 것이다. 그들은 이제 위기가 금융 부문에서 자체적으로[실물 부문과 상관없이] 일어날 수 있고 그 결과로 경기 후퇴가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이렇게 주장하기도 한다. 마르크스가 말한 이윤율 [하락] 법칙은 더는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러나 금융의 세계화는 전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1875년에도 은행가인 카를 폰 로스차일드는 “전체 세계가 하나의 도시처럼 돼서” 당시 은행들이 몰락했다고 말했다. 주식시장·신용과 ‘실물’ 경제의 상호의존은 전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미국의 국내총소득에서 금융과 보험이 차지하는 몫은 급격히 늘어 1947년 2.3퍼센트에서 2006년 7.9퍼센트가 됐다. 그러나 금융 부문은 지난 60년 동안 2008년의 위기만큼 큰 위기를 겪지 않고 확장돼 왔는데, 금융 부문의 성장을 대침체의 원인이라고 할 있을까?
대침체 이후 장기 불황 대침체 이후 2009년에 경제가 저점을 친 이후, 주요 자본주의 경제는 과거 경기 부진에 견줘 가장 느리게 회복하고 있다. GDP 성장률이 2009년 중반 대침체의 저점에서 경기 부진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는 데 걸린 시간은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일어난 그 어떤 경기 후퇴 때보다 적어도 세 배가량 길다. 적어도 미국에서는 그렇다. 무엇보다, 경제성장률은 아직 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표1을 보시오.) 경제성장률의 회복 곡선은 보통 나타나는 V자형이나 1990년대 일본에서 나타난 L자형이 아니라 루트(√─)형에 가깝다.
고점 | 저점 | 회복 | 회복에 걸린 시간(사분기) |
---|---|---|---|
1948년 4사분기 | "〉1949년 4사분기 | 1950년 4사분기 | 4 |
1953년 3사분기 | 1954년 2사분기 | 1955년 3사분기 | 5 |
1957년 3사분기 | 1958년 2사분기 | 1959년 2사분기 | 4 |
1960년 2사분기 | 1961년 1사분기 | 1962년 1사분기 | 4 |
1969년 4사분기 | 1970년 4사분기 | 1971년 3사분기 | 3 |
1973년 4사분기 | 1975년 1사분기 | 1976년 3사분기 | 6 |
1980년 1사분기 | 1980년 3사분기 | - | - |
1981년 3사분기 | 1982년 4사분기 | 1983년 5사분기 | 5 |
1990년 3사분기 | 1991년 1사분기 | 1992년 3사분기 | 6 |
2001년 1사분기 | 2001년 4사분기 | - | - |
2007년 4사분기 | 2009년 2사분기 | 진행 중 | 16 이상 |
또한, 2008년부터 지금까지 경제성장률이 유지됐을 때 예상되는 GDP와 현실의 GDP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측정함으로써 미국 경제가 얼마만큼 GDP 손실을 입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렇게 계산하면] 대침체와 뒤이은 느린 회복기 동안 미국 GDP의 22퍼센트 이상이 영원히 사라졌고, [그 손실은] 지금도 늘고 있다. 이는 그전까지 가장 손실이 컸던 1980~82년의 더블딥 경기 후퇴 때보다 훨씬 더 큰 손실이다.(표2를 보시오.)
경기 후퇴기 | 회복기 | 전체 | |
---|---|---|---|
1948년 4사분기 | 4.29 | 2.56 | 6.84 |
1953년 3사분기 | 4.07 | 3.16 | 7.23 |
1957년 3사분기 | 3.3 | 2.6 | 5.9 |
1960년 2사분기 | 2.12 | 1.46 | 3.58 |
1969년 4사분기 | 1.07 | 1 | 2.08 |
1973년 4사분기 | 4.75 | 4.48 | 9.23 |
1980년 1사분기 | 2.05 | 2.73* | 4.78* |
1981년 3사분기 | 8.65 | 3.07 | 11.72 |
1990년 3사분기 | 1.27 | 2.89 | 4.15 |
2001년 1사분기 | - | - | |
2007년 4사분기 | 5.54 | 16.57 | 22.10 |
* 1980년의 회복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GDP 성장률이 아직도 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손실을 다른 경기 후퇴와 비교할 수 없다.
출처: Fatas and Mihov, 2013
대체로, 경기 부진이나 경기 후퇴 때는 종국에 가서 생산 비용이 낮아지고 자본 가치가 하락해 [불황에서] 살아남은 기업들의 수익성이 올라간다. 이것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경기 부진의 ‘목적’이다. 실업 때문에 노동비용이 줄고, 파산과 인수·합병으로 자본비용이 준다. 그 뒤로 기업들은 서서히 생산량을 다시 늘리기 시작해, 결국에는 신규 자본 투자를 늘리기 시작하고, 마르크스가 “산업 예비군”이라고 부른 실업자를 다시 고용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투자재 수요가 늘고 마침내는 노동자들이 소비재를 더 많이 구매하게 돼서 경제가 회복하게 된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제조업과 건설 부문에서 유휴설비가 남아돌고, 기업·정부·가계 부채가 여전히 많아서 회복을 저해하고 있다. 제조업에서 유휴설비 비율은 과거의 경기 후퇴 이후 시기들과 비교했을 때 여전히 훨씬 더 높다.(그림6을 보시오.) 뒤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자본가들이] 새로 투자를 하려면 그전에 수익성이 어떤 식으로든 올라야 한다.
2010년의 상당한 회복 이후 주요 자본주의 경제는 성장 속도가 2퍼센트 이하로 느려졌다. 미국 경제는 현재 전년 대비 1.4퍼센트 성장하고 있고, 유로존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 중이며, 영국은 거의 0퍼센트 성장을 하고 있다. 심지어 지난해[2012년]에는 이른바 신흥 자본주의 경제들조차 성장 속도가 느려졌다. 물가 변동을 감안하면 세계경제는 해마다 3퍼센트 정도밖에 성장하지 못한다. 인구 증가를 감안하면 세계적으로 1인당 GDP 성장률은 2퍼센트 이하다.(그림7을 보시오.)
최근 몇 달 동안 전 세계 주식시장은 사상 최고치로 나아가고 있다. 이것은 주요 자본주의 경제들이 마침내 고용이 창출되는 지속적인 성장기로 접어들었음을 뜻하는가? 그렇지 않다.
미국 자본주의는 2009년 중반 대침체의 저점 이후 [유럽, 일본 등에 견줘] 가장 양호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조차 실질 GDP 성장률은 형편없는 수준이다. 2013년 상반기 실질 GDP 성장률은 전년 대비 고작 1.4퍼센트였던 반면, 실업률은 여전히 7.8퍼센트로 경기 부진 이전 수준보다 꽤 높다. 가장 두드러진 사실은 미국에서 생산연령인구 대비 경제활동인구가 줄고 있다는 것이다.(그림8을 보시오.) 대침체와 그 이후에 “산업 예비군”이 급격히 늘어났고 다시 줄어들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영국 경제는 2013년 2사분기에 소폭 성장했지만, 이전 몇 사분기 동안 지지부진한 이후에야 그럴 수 있었다. 올해 영국의 실질 GDP 성장률은 1퍼센트 정도에 그칠 전망이다. 유로존은 [2013년] 2사분기에 마침내 경기 후퇴에서 벗어났지만, 1년 전과 비교하면 실질 GDP가 여전히 0.7퍼센트가량 낮다. 그리고 이런 확장 국면조차 유럽의 이른바 핵심부 경제, 그것도 주로 독일에 집중돼 있다. 주변부인 남유럽 경제들에서는 명백한 불황이 계속되고 있다. 이탈리아는 2퍼센트, 스페인은 1.5퍼센트, 포르투갈은 2.3퍼센트, 그리고 가장 심각한 그리스는 5퍼센트만큼 경제가 수축했다. 긴축 정책이 “성공”한 전형적 사례라는 아일랜드에서조차 경제는 짧은 회복 이후에 큰 진전이 없다.
긴축과 유로존
15 왜 그런가? 소비를 독려해 수요를 촉진하는, 이름하여 전통적 케인스주의라는 “옛 모범이 더는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16 긴축이 노리는 것은 단지 공공 부채와 정부 지출 같은 것을 줄이는 것만이 아니다. 자본의 수익성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마리오 드라기는 이렇게 말했다. “바로 그래서 구조 개혁이 그토록 중요한 것이다. 이런 개혁이 있어야 [경제가] 단기적으로는 수축한 뒤 장기적으로는 지속 가능하게 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때문에 유로존 지배자들이 몇몇 정부의 긴축 속도를 늦추면서 “공급 중시 개혁”을 가속화한다는 조건을 걸었던 것이다. “공급 중시 개혁”[생산(공급) 비용을 낮추는 것을 중시하는 것으로 소비(수요)를 늘리는 데 주력하는 케인스주의에 반대하며 등장했다]이란 일자리 안정성, 임금 수준, 연금을 삭감하고 ‘보호 받는’ 산업을 민영화하는 것이다. 자본 부문을 복원하기 위한 더 많은 신자유주의 정책, 바로 이것이 긴축이 진정으로 노리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긴축이 두드러진다.17 재정 긴축 목표에서 이탈리아는 75퍼센트, 스페인은 겨우 38퍼센트, 그리스는 97퍼센트, 아일랜드는 고작 26퍼센트, 포르투갈은 55퍼센트를 달성했다고 봤다.
그런데 긴축이 이 목표를 달성하고 있는가? 최근 JP모건의 경제학자들은 [긴축의] 진전을 가늠할 몇 가지 기준을 마련했다. 공공·민간 부문의 부채를 얼마나 줄였는가, 취약 국가들이 무역에서 가격 경쟁력을 높였는가, 노동자 고용과 해고를 더 쉽게 만들었는가, ‘시장’을 개방했는가, 민영화를 진척시켰는가, (놀랍게도) 여러 나라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시행하는 데 장애물이 되는 민주적·헌법적 요인을 줄였는가가 그 기준이다. JP모건은 이런 신자유주의적 회복 프로그램이 유로존에서 절반밖에 진척되지 못했다고 결론지었다.의미심장하게도, 임금 삭감과 노동비용 감축은 다른 항목보다 더 진척돼, 아일랜드와 포르투갈은 [목표를] 달성했고, 그리스는 조금 더 해야 하고(이미 생활수준이 30퍼센트나 하락했는데도 말이다!), 스페인은 아직 25퍼센트를 더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공공부문 축소, 국유 자산 매각, 노동권 개악과 연금 삭감, 법인세 인하 등 ‘구조 개혁’ 측면에서는 진전이 훨씬 더뎠다고 봤다. [취약 국가인]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은 네덜란드나 아일랜드에 견줘 자본의 자유를 허용할 태세가 여전히 한참 부족해 보인다는 것이다.
유로존 프로젝트는 어떤 면에서는 특이하다. 유로존 프로젝트는 여러 유럽 자본주의 국가들을 통합하고자 고안됐지만, 단일 정부, 단일 예산 체계, 단일 세법, 단일 은행 체계를 갖춘 온전한 연방 국가를 설립할 계획은 없다. 경제 위기가 오기 전까지 이 프로젝트는 한동안 잘 작동하는 듯했다. 호황기에조차 구심력보다는 원심력이 더 강한 듯했지만 말이다.
지금 같은 시기에 이 어정쩡한 계획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유럽연합에 반대하는 우익 포퓰리스트 정당] 영국독립당UKIP이나 프랑스 [파시스트 정당] 국민전선FN의 국수주의적 회의론자들이 뭐라 불평하든지 간에, 유로존 프로젝트는 유럽 국가들의 연방 국가를 지향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하에서 “유럽합중국”은 [현실적인] 안이 아니다. 경제가 다시 성장하면, 어정쩡한 현 상태로 그럭저럭 굴러갈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성장은 투자에 달려 있다. 그리고 투자는 유로존 내 허약한 경제에서만 폭락한 것이 아니다. 2007년 이래 유로존 17개 나라들 중 투자가 늘어난 곳은 룩셈부르크 하나뿐이다.
대외경쟁력은 부차적 사안이다. 2007년에 견줘 2012년에 GDP가 성장한 나라 일곱 곳 중에서 세 곳에서만 무역수지 흑자가 GDP 성장의 중요한 요인이었다. GDP가 줄어든 나라 열 곳 중 일곱 곳은 무역수지가 상당한 흑자를 기록했지만 투자 손실을 상쇄하기에는 충분치 못한 경우였다. 다시 말해, 유럽 자본주의 국가 중 허약한 곳의 문제는 대외경쟁력이 아니라 투자에 있다. 아주 전형적인 자본주의 위기인 것이다.
수익성과 부채 줄이기
전반적으로 세계 GDP는 아무리 좋게 봐도 미약하게 성장하고 있고, 평균 실질성장률은 위기 이전보다 크게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그림9를 보시오.)
이런 식의 ‘루트형’ 회복(또는 장기 불황)은 두 가지 요인이 결합된 결과다. 하나는 주요 나라에서 수익성이 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지 못한 것이다.(1990년대 중반 더 높았던 시기와 비교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또 하나는 과도한 부채가 투자와 이윤을 무겁게 누르고 있는 것이다. 이 부채가 해결돼야 지속적인 회복이 가능하다.
18 그들은 지난 2년 동안 유럽과 신흥경제에서 자신들이 “이윤 폭”이라 부르는 지표가 하락했다고 결론 내렸다. 또한 그들의 잣대에 따르면 미국의 수익성이 지난 6분기 동안 정체했다. JP모건이 말하는 수익성은 마르크스주의적 의미의 이윤율도 아니고 [투자된] 자본에 대한 이윤의 비율을 측정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JP모건의 연구 결과는 세계적 수준에서 기업들의 수익성이 대침체 전에는 거의 9퍼센트였다가 2009년에는 최저치인 4퍼센트로 떨어졌고 2011년 8퍼센트로 회복했음을 보여 준다. 그런데 2012년에 다시 7퍼센트로 하락했는데, 이는 2008년 2월의 대침체 전 최고치보다 13퍼센트 낮은 수치다. 이처럼 세계적으로 수익성이 하락한 것은 유럽과 신흥경제들의 몰락 때문이다.(그림10을 보시오.)
최근 JP모건 경제학자들이 세계 기업 수익성에 관한 연구를 발표했다.물론 미국의 총 이윤량이 위기 이전의 고점보다 높은 수준에 도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윤율은 그렇지 못하다. 다른 선진 자본주의 경제들은 이윤량조차 위기 이전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런 스태그네이션을 설명하기 위해 불확실하고 “예측할 수 없는 부정적 외부 충격”이나 “시장에서 노동과 자본의 가격이 정해지는 데 대한 정부 간섭” 따위를 찾을 필요는 없다. 그저 이윤이 충분치 않아 자본가들이 이전만큼 투자하지 않는 것이다.
EC는 “위기 이후 투자 변화와 위기 이전 누적 부채 사이에 강한 역비례 관계가 나타났는데, 이는 부채를 줄여야 한다는[디레버리지] 압박이 투자가 미약한 중요한 요인임을 암시한다”고 했다. 또한 유로존 기업들이 GDP의 12퍼센트에 맞먹는 양만큼 부채를 더 줄여야 하고, 이를 향후 5년에 걸쳐 이행할 경우 기업 투자 감소분의 누적 규모가 GDP의 1.6퍼센트에 이를 것이라고 봤다. 오늘날 비주거용 투자가 12퍼센트로 낮은 수준임을 감안하면, 이런 투자 감소는 꽤 큰 타격이다.
21 [19세기 말 장기 침체 때는] 1890년대에 가서 영국과 특히 미국에서 지속적 성장기가 찾아왔다. 이 성장기는 1910년까지 이어졌다. [1930년대 대불황 때는] 제2차세계대전 이후 다시 지속적인 성장기가 도래했고 1946~65년의 ‘황금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오늘날 그러한 새로운 ‘호황’기가 찾아오는 것은 아직 요원한 듯하다.
이런 연구 결과들은 오늘날 자본주의의 상태가 1873년부터 1890년대(적어도 1880년대 중후반)까지 영국과 미국이 겪은 장기 불황(당시에는 대불황이라고 불렸다) 시기와 비슷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1929년부터 제2차세계대전 개전 전까지 이어진 1930년대 대불황과도 비슷하다. 두 경우 모두, 중간에 몇몇 회복기가 있었고 그 중 일부는 매우 빠른 회복을 보였지만, 성장은 지속적이지 못했고 회복기보다 더 빈번하고 심각한 경기 부진들을 겪었다. 결국 이윤율이 충분히 회복된 뒤에야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주요 경제들에서 축적된 자본의 수익성은 장기적으로 하락 추세를 보이며 2008~09년 대침체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전 세계(G7에 BRICS를 합한 것) 평균 [이윤율]은 1980년대 초 이후에는 상승했고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그럭저럭 유지됐지만, G7은 이윤율이 줄었다.(그림12를 보시오.)23 왜냐면 대기업들의 현금 유동성과 이윤은 커졌을지 몰라도, 영국과 유럽 등 많은 자본주의 경제들에서 이윤율은 회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국 상황만 봐도 알 수 있다. 기업들의 이윤율은 여전히 위기 이전보다 뚜렷이 낮고 그 결과로 기업 투자도 낮다.(그림13을 보시오.)
친자본 전략가와 케인스주의 경제학자 일부는 미국과 유럽 기업들이 현금을 막대하게 쌓아 두는 것을 보고 어리둥절해 한다. 이윤이 올랐고 현금이 많은데 기업 투자는 왜 그토록 초라한가?거대 다국적기업들도 자국보다 신흥 경제들에 투자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 양적완화로 풀린 돈 덕에 주가가 오르자 현금이 많은 기업들은 투자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사 주식을 사들이거나 배당금을 늘렸다. 그 덕에 경영진은 더 많은 보너스를 챙길 수 있었다! 작은 기업들은 현재 금리로는 돈을 빌릴 수가 없어서 투자를 할 수 없고, 많은 좀비 기업들은 이자만 간신히 갚고 있다. 이 기업들은 새로운 장비와 노동력 절감 기술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력만 붙잡아 두고 있다. 전반적으로 기업 부채 수준이 너무 높아서 신규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다. 그 대신 빚을 갚거나 그냥 현금을 쥐고 있는 것이 더 안전한 것이다. 이윤이 오르는데도 생산 설비 투자가 정체하는 수수께끼는 지금의 ‘회복’이 진짜 회복이 아님을 보여 준다. ‘회복’은 중앙은행이 푸는 돈에 의존하고 있는데 그 돈은 실물 경제가 아니라 금융 부문으로 향한다. 진짜로 현금이 많은 기업들은 실제로는 은행, 금융기관, 다국적기업들이지, 투자를 하고 노동자를 채용하는 비금융 기업들이 아니다. 케인스주의자들의 예상과 달리, 중앙은행의 양적완화 정책, 즉 돈을 “찍어 내서” 국채와 회사채를 사들이는 정책은 지속적인 경제 회복을 가져다주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친자본 전략가들은 양적완화를 ‘구조 개혁’과 결합하려 하고 있다. 다시 말해, 케인스주의 통화정책과 함께, 부채를 줄이고 복지 국가를 축소하고 조직 노동계급의 힘을 약화시키는 신자유주의 조처를 취해 착취율을 높이고 수익성을 회복하려 한다. 미국 연준이 2013년 8월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주최한 연례 하계 심포지움에서 IMF 총재 크리스틴 라가르드가 연설하면서 밝힌 것이 바로 이 내용이다.
불황의 둘째 이유가 여기에서 나온다. 커다란 경기 부진을 겪은 뒤에 여전히 제대로 회복이 되지 않는 것은, 1980년대 초 이후 이른바 신자유주의 시기와 특히 2002년 자산·신용 거품이 만들어질 때 생겨난 과도한 부채가 경제에 무거운 짐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그림14를 보시오.) 대침체와 은행 부도와 구제에도 불구하고 세계경제의 부채 수준은 그리 크게 줄지 않았다. 여전히 줄여야 할 부채가 많이 남아 있다.
25 미국, 유럽, 일본(‘G3’)에서 비금융 부문의 부채는 GDP 대비 285퍼센트인데 이는 대침체가 시작될 당시인 275퍼센트보다 높은 것이다.(그림15를 보시오).
단적으로, 선진국 경제에서 비금융 부문의 부채비율은 계속 오르고 있다.GDP 대비 기업 부채비율은 약간 떨어졌고 미국 같은 나라들에서는 가계 부채비율도 그랬다. 금융 부문 부채도 가장 높았을 때에 견줘 20퍼센트 낮아졌다. 그러나 G3의 모든 부채(비금융과 금융)를 합치면 부채비율은 GDP 대비 409퍼센트에서 2011년 9월 379퍼센트로 낮아졌다가 지금은 다시 400퍼센트로 올랐다. 부채가 별로 줄지 않은 것이다. 미국은 부채가 조금이라도 줄어든 유일한 나라다.(그림16을 보시오.) 가계 부문에서 담보대출 채무불이행이 많았던 영향이 크다. 미국을 제외한 나라에서는 신용이 뚜렷이 줄지 않았고 미국에서만 서서히 줄었다.
또 다른 경기 부진?
27 영세 기업의 생산성은 급락했다.(그림17을 보시오.)
자본주의 경제에서 너무 많은 부채와 너무 많은 비효율적 ‘좀비’ 기업을 ‘청산’하려면 새로운 경기 부진이 필요하다. 런던의 우익 금융 일간지 〈시티AM〉은 영국 경제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제로에 가까운 금리에 중독된 좀비 기업 군단이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와 자본·노동 재배치를 가로막고 있다.” 영국에서 상당수 중소기업은 고용을 유지하고 이자는 갚을 수 있지만 원금을 갚거나 투자할 만큼은 안 되는 정도로만 수익을 내는 좀비 상태다.결국 오늘날 세계적 저성장의 원인 중 하나는 부채가 [불황 이후에도]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잠재적 수익 대비 자본 조달 비용을 키우고, 결국 성장까지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경기 부진은 아직 제 구실(회계상이든 실질적이든 자산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금리가 오르기 시작하면, 그 결과로 기업과 정부가 이자로 지불해야 할 비용이 감당 못할 수준으로 올라 언제든 경기 부진이 새로 촉발될 수 있다.
29 그 많은 허구적 자본을 청산하는 과정이 신용경색과 대침체 이후 느리게 진행 중이다. 전 세계 GDP 대비 유동성은 신용 거품이 생기기 이전 추세보다 여전히 11퍼센트가량 높다.(그림18을 보시오.) 현재 줄어드는 속도로는 빨라도 2015년에야 과도한 허구적 자본이 모두 청산될 텐데, 그것도 생산 영역에서 전 세계적인 경기 부진이 찾아와야만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부채를 얼마나 많이 줄여야 할까? 전 세계 GDP 대비 유동성은 1990년 중반에 신용 거품이 생긴 이래 늘기 시작했다.세계 최대 채권 관리 업체 PIMCO는 투자자들에게 보내는 월례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통계적으로 봤을 때 세계경제는 약 6년에 한 번씩 경기 후퇴를 맞이한다. 세계적으로 부채가 많고 감소세일 때, 그 반대일 때(즉, 부채가 적고 증가세일 때)보다 더 자주 경기 후퇴가 찾아온다. 지난번 세계적 경기 후퇴가 4년 전이었고 또 세계적으로 부채가 4년 전보다 더 많아진 것을 고려할 때, 향후 3~5년 사이에 또 한 번 세계적 경기 후퇴가 찾아올 확률이 60퍼센트 이상이라고 본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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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Michael Roberts, From global slump to long depression, International Socialism 140(Autumn 2013)
↩
- Roberts, 2009와 Bacchetta and Van Wincoop, 2013을 보시오. ↩
- Barofsky, 2012를 보시오. ↩
- 노던록은 잉글랜드 북동부에 본사를 둔 소규모 담보대출 대부업체였다. 주식을 상장한 뒤 노던록은 담보대출에 공세적으로 나섰다. 거기에 필요한 자금은 은행 간 대출시장에 의존했다. 신용경색이 닥치자 노던록은 은행 간 대출시장에서 쫓겨났고 큰 위기에 빠졌다. 노던록이 파산 위기에 빠진 것은 미국 금융기관들의 담보대출저당 자산을 대거 구입했기 때문이 아니라, 부동산 호황에 참가하기 위해 [돈을] 빌렸기 때문이다. 영국 납세자들은 예금 인출 사태를 막으려면 노던록을 인수할 수밖에 없었다. 노던록에 관한 얘기는 Roberts, 2009, chapter 27을 보시오. ↩
- 연금은 실제로는 미래에 지급되는 임금이다. 왜냐하면 국가가 세전 임금에서 사회안전망 기여금을 공제해 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 연금 등 각종 연금을 삭감하는 것은 대침체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는 조처다. ↩
- 케인스주의자와 포스트 케인스주의자들의 자본주의 위기 분석에 대한 비평으로는 Roberts, 2010을 보시오. ↩
- 마르크스의 법칙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과 방어는 Carchedi and Roberts, 2013b(근간)를 보시오. ↩
- Roberts, 2011과 2012, Carchedi and Roberts, 2013a를 보시오. ↩
- Carchedi, 2011을 보시오. “기본적인 논지는 금융 위기가 경제의 생산적 기반이 수축돼 발생한다는 것이다. 어느 지점에 이르러 금융 부문과 투기적 부문에서 갑작스럽고 커다란 디플레이션이 일어날 것이다. 비록 위기가 이 부문들에서 생겨 난 것처럼 보이지만 궁극적 원인은 생산적 영역에 있고, 위기는 이 영역에서 이윤율이 떨어지는 것의 필연적 결과다.” ↩
- “자본의 주기적인 가치 감소 — 이것은 이윤율 하락을 저지하고 새로운 자본을 형성시켜서 자본 가치 축적을 촉진하는, 자본주의 생산에 내재하는 수단이다 — 는 자본의 유통 과정과 재생산 과정이 진행되는 기존 조건을 방해하고, 그러므로 생산 과정의 갑작스러운 중단과 위기를 수반한다.” Marx, 1981, p358. ↩
- 예를 들어 Duménil and Lévy, 2011. ↩
- 수익성이 ‘위기의’ 원인이라는 증거를 더 보려면 Tapia Granados, 2012, Izqiuerdo, 2010, Carchedi and Roberts, 2013a, Carchedi(unpublished)을 보시오. ↩
- 금융화 이론에 대한 비판으로는 Mateo, 2011을 보시오. ↩
- 나는 Roberts, 2009에서 이런 “루트형” 회복을 예측했다. “산출량의 폭락은 끝났다. 이제는 상승세일 것이다. 그러나 대침체 이전의 경제성장률을 회복하는 데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
- 아일랜드와 발트해 연안국들의 이른바 “긴축 성공”담에 대해서는 Roberts, 2013b[국역: ‘마르크스주의적 분석 — 케인스주의가 긴축의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레프트21〉 110호]를 보시오. ↩
- ECB 총재 마리오 드라기는 다음 입장을 고수한다. “재정건전화가 단기적으로는 경제 수축을 불러온다는 점을 부정하면 안 되지만, 그 외 대안은 없다. 향후에는 이른바 ‘신뢰 경로’[통화정책이 투자자들의 시장 신뢰를 회복시켜 실물 경제를 살린다는 것]를 통해 성장이 재개될 테지만, 그런 일이 금세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그런 일은 금세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
-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 크리스티앙 누아에는 드라기와 비슷한 소리를 했다. “신뢰 요정”이 나타나게 하려면 긴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정 수준을 넘으면 (우리 나라[프랑스]는 이미 넘은 듯한데) 공공 지출과 부채를 증대시키는 일체의 행위는 신뢰 [회복]에 극히 부정적인 효과를 미친다.” 다시 말해, 자본가들이 경제 회복을 확신해야만 경제가 회복될 수 있는데, 그러려면 재정적자와 부채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누아에는 프랑스가 “과거의 일자리를 보존하는 데 지나치게 집착하는” 공공정책을 벗어 던져야 하며, 미래에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자유화”를 허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 JP Morgan, 2013b. ↩
- JP Morgan, 2013a. ↩
- Roberts, 2013a를 보시오. ↩
- European Commission, 2013, pp18-21. ↩
- 19세기 말 영국 이윤율에 대해서는 Roberts, 2009, 13장을 보시오. 대불황 당시 미국 이윤율에 대해서는 필자의 블로그를 보시오. http://thenextrecession.wordpress.com/2012/08/06/the-great-depression-and-the-war ↩
- Roberts, 2012. ↩
- Robin Harding, Corporate investment: a mysterious divergence, http://tinyurl.com/p4tvblv ↩
- “저는 다른 전선에서 충분한 대응이 수반되지 않으면 중앙은행들의 갖은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것이라 우려합니다. 즉, 균형 잡히고, 튼튼하고, 모두를 위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필요하지만 더 고될 것이 명백한 정책들을 도입해야만 합니다. … [비전통적 통화정책은 — 로버츠] 개혁을 위한 공간을 열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기회를 현명하게 이용해야 합니다.” Lagarde, 25 August 2013. ↩
-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의 제라드 미네크 인용.(“만일 불가능한 일이라면 현실에서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비금융 부문 부채는 정부, 가계, 기업의 모든 부채를 포함하고 금융 부문 부채는 제외한다. ↩
- Bacchetta and Van Wincoop, 2013 ↩
- 영국 기업 열 곳 중 한 곳은 이자만 간신히 갚고 원금은 갚지 못하고 있다. “좀비 기업은 투자나 혁신을 할 수 없고, 가만히 앉아서 노동자와 고객만 서서히 잃고, 경제 전체에 짐이 된다.” 자산 관리 기업 KKR. ↩
- http://angrybearblog.com/2013/08/zombie-companies-live.html ↩
- 전 세계 유동성은 전 세계 은행 대출, 채무 증권, 파생상품을 합친 것이다. Roche and Mckee, 2009. ↩
- http://www.pimco.com/EN/Insights/Pages/Secular-View-of-Assets-2013.aspx ↩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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