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의 경제적 뿌리 *
우리는 문명적 측면에서 중대한 시기에 살고 있다. 인류는 지난 반세기 동안 끔찍한 전쟁을 두 차례 겪었고, 이제는 절멸의 그림자 속에 살고 있다. 지금 세대는 대규모 실업, 기아, 파시즘, 가스실을 경험하고 있으며 케냐와 말레이 반도, 알제리, 한국 등의 식민지 민중은 야만적 학살의 위협에 놓여 있다.
그러나 이러한 끔찍한 격변이 일어나는 와중에도 서구 ― 미국, 영국, 캐나다, 노르웨이, 스웨덴, 네덜란드, 덴마크, 독일 등 ― 의 많은 나라들에서 노동자 계급은 개혁주의를 강력히 지지하고 있다. 자본주의를 혁명적으로 타도하는 것을 반대하며 자본주의라는 조건 하에서도 처지를 크게 개선할 수 있다고 보는 신념을 고수하는 것이다. 이런 일은 왜 일어날까? 인류 전체가 생사를 건 투쟁을 하고 있는 이때, 일반적으로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사회의 혁명적 변화를 거부하는 일은 왜 벌어질까?
이 문제에 대한 올바른 답을 얻을 경우에만 우리는 다음의 질문에 답할 수 있다. 개혁주의는 얼마나 오랫동안 노동자 계급이 혁명적 염원을 느끼지 못하도록 할 수 있을까? 서구 사회주의자들뿐 아니라 세계 사회주의 운동에서 이것만큼 사활적으로 중요한 문제도 또 없을 것이다. 이 글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데에 기여하고자 한다.
레닌의 이론
개혁주의의 뿌리를 규명하고자 한 마르크스주의자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인물은 레닌이었다.
1915년 《제2인터내셔널의 붕괴》라는 글에서 레닌은 자신이 기회주의라고 이름 붙인 개혁주의를 이렇게 설명했다. “제국주의의 시기에는 ‘위대하고’ 특권적인 국가들 사이에서 세계 분할이 완료되고 다른 국가는 모두 그들에게 억압받는다. 이러한 억압의 결과로 특권층이 향유하는 전리품의 부스러기가 프티부르주아의 일부 그리고 ‘노동계 귀족’과 관료들에게 떨어진다.”
노동자 계급 가운데 ‘전리품 부스러기’를 향유하는 부분은 얼마나 클까? 레닌은 “이런 부문은 프롤레타리아트와 노동자 대중 가운데 극소수다” 하고 말했다.
그리고 레닌은 이 분석에 기초해 개혁주의를 “노동자 계급의 한 부문이 프롤레타리아트 대중에 반대하여 부르주아지를 지지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레닌에 따르면, 소수 ‘노동계 귀족’의 경제적 토대는 제국주의와 그 초과이윤에 있다. 레닌은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근 단계》라는 책의 1920년 7월 6일자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자본가들이 이 거대한 초과이윤(자본가들이 ‘본국’ 노동자들로부터 추출하는 이윤보다 더 많은 이윤을 얻는다는 면에서 ‘초과’이윤)의 일부를 사용해 노동자 계급 지도자나 ‘노동계 귀족’의 상층부를 매수할 수 있음은 명백하다. 그리고 실제로 ‘선진국’ 자본가들은 그들을 매수한다. 자본가들은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또는 공개적으로나 은밀하게 수천 가지 방식으로 그들을 매수한다.
이처럼 부르주아화한 노동자층 또는 ‘노동계 귀족’은 생활양식이나 소득 수준이나 세계관 등의 면에서 완전히 프티부르주아가 돼 제2인터내셔널의 주된 지지자로 이바지하고, 오늘날에는 부르주아의 주된 사회적(군사적이 아니라) 버팀목 구실을 한다. 그들은 노동운동 안에서 활동하는 부르주아의 실질적 대리인이고, 자본가 계급의 노동 보좌관이며 개혁주의와 국수주의의 실질적 수행자이다.
결론 대 사실
레닌의 개혁주의 분석은 소수의 얇은 보수층이 노동자 대중의 혁명적 욕구를 가린다는 결론으로 이끌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껍질을 깨뜨리기만 하면 혁명적 용암이 분출할 것이고, 혁명정당이 할 일은 그저 노동자 대중에게 ‘노동계 귀족’이라는 ‘극소수’가 노동자 계급의 이해관계를 배신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일 터이다.
그러나 영국과 미국 등지의 개혁주의가 지난 반세기 동안 걸어온 역사를 봐도 그런 결론은 확증되지 않는다. 오히려 개혁주의는 견고하게 유지되며 노동자 계급 전체로 확산됐고, 혁명적 소수는 모두 좌절감을 느끼며 대체로 주변화돼 있다. 이를 보면, 레닌의 주장과 달리 개혁주의의 경제적·사회적 뿌리는 ‘프롤레타리아와 노동 대중의 극소수’가 아님을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레닌의 분석이 어디에서 잘못됐는지를 살펴보면 개혁주의의 진정한 경제적·사회적·역사적 토대가 무엇인지를 더 명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부스러기는 어떻게 떨어지는가
레닌의 분석에 대해 제기해야 할 첫째 의문은 이것이다. 제국주의 국가의 기업들이 식민지에서 얻는 초과이윤의 ‘부스러기’가 어떤 방식으로 본국 ‘노동계 귀족’에게 떨어지는가? 이 문제에 대한 대답 앞에 레닌의 개혁주의 분석은 모두 무력해진다.
예컨대, 영국·이란석유회사는 수십 년 동안 초과이윤을 엄청나게 얻었다. 이 초과이윤의 부스러기는 어떤 방식으로 ‘노동계 귀족’에게 떨어질까? 우선 영국·이란석유회사는 영국에서는 아주 소수의 노동자만 고용한다. 그런데 이윤율이 매우 높다는 이유만으로 그 노동자들이 더 많은 임금을 받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말하는 자본가는 없다. “올해 이윤을 많이 얻었으니 임금을 기꺼이 많이 주겠다.”
물론 제국주의와 자본수출은 수출된 자본의 실제 내용인 기계, 철도, 기관차 등을 생산하는 많은 노동자들에게 고용 기회를 주므로 선진국의 임금 수준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고용 수준에 미치는 이런 효과는 일반으로 임금 수준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이것이 왜 ‘극소수’의 실질임금에만 영향을 미쳐야 할까? 고용 기회의 증가와 실업의 감소는 소수 ‘노동계 귀족’을 등장시키지만 노동자 계급 대중의 조건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일까? 완전고용이라는 조건은 숙련 노동자와 미숙련 노동자 사이에 차이를 키울까? 결코 그렇지 않다.
자본가들이 식민지에서 얻은 막대한 초과이윤은 다른 방식으로 [본국] 노동자들의 임금을 상승시킨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즉, 노동자들의 조건을 보호하는 노동법에 대해, 자본가들은 이윤이 적었다면 강력하게 반대했을 테지만, 그렇지 않으므로 그리 강하게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법률들 때문에 노동자 계급의 다양한 부문들 사이에 생활수준 차이가 커진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함께 상승하기
특정 산업에서 아동이나 여성의 노동을 금지하는 것 같은 단순한 예를 들어 보자. 이 조처가 노동력 공급에, 그 다음으로는 임금에 미치는 영향이 비숙련 노동시장보다 숙련 노동시장에서 더 큰 것은 아니다.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비숙련 반숙련 노동자 대중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 조처는 모두 비숙련 반숙련 노동자와 숙련 노동자의 생활수준 차이를 줄인다. 교육 수준을 포함해서 전반적 생활수준이 높아질수록 비숙련 노동자가 반숙련 또는 숙련 노동자가 되기는 점점 더 쉬워진다. 임금이 넉넉하면 수습 노동자들이 겪는 재정적 어려움은 경감될 것이다. 기술을 배우기 쉬울수록 숙련 노동자와 비숙련 노동자의 임금 격차도 더 줄어들 것이다.
선진국 노동자들이 후진국이나 식민지에서 들여온 식료품(그리고 원재료)을 매우 값싸게 구입한다는 사실을 들어 제국주의가 노동자들에게 ‘부스러기’를 던져 준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요소 역시 소수 ‘노동계 귀족’뿐 아니라 선진국 노동자 계급 전체의 생활수준에 영향을 미친다. 전반적 생활수준이 향상되는 만큼 노동자 계급 내 여러 부문들의 격차도 줄어들 것이다.
노동조합이나 노동운동의 정치 활동이 미치는 영향도 비슷하다. 노동자 계급의 전반적 조건이 좋을수록 노동자 부문들 사이의 소득 격차는 더 줄어든다.(노동조합이 숙련 노동자들로만 구성됐을 경우에만 부분적으로 정반대 결과가 나타난다.)
노동자들의 권리가 적고 탄압 수준이 높을수록 숙련 노동자와 비숙련 노동자의 격차가 더 크다는 사실은 모든 역사적 경험에서 알 수 있다. 이는 양차대전 사이 영국 같은 선진국과 루마니아 같은 후진국에서 숙련 노동자와 미숙련 노동자의 임금이 얼마나 차이가 났는지를 나타내는 표1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다른 예를 들어 보자. “스페인에서 평균 수준의 근무 경력과 직급의 기관사들은 평균 수준의 근무 경력의 비숙련 노동자보다 임금이 3.3배 많다. 반면, 뉴질랜드에서 이 비율은 2배이다.”(같은 책, 461쪽.)
표1. 숙련 노동자의 임금(비숙련 노동자의 임금 = 100)
주물제작공 | 조립 선반공 | 철 주물공 | 배관공 | 전기공 | 목수 | 도색공 | |
---|---|---|---|---|---|---|---|
영국 | 131 | 127 | 130 | 147 | 152 | 147 | 146 |
루마니아 | 200 | 210 | 252 | 300 | 182 | 223 | 275 |
지난 세기 (다른 많은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영국에서 노동자 계급 내 격차가 줄고, ‘극소수’ 노동자들뿐 아니라 노동자 계급 전체의 생활수준이 향상됐다는 사실은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이는 영국 노동자 계급의 현재 상태와 엥겔스가 《영국 노동자 계급의 상태》에서 묘사한 1845년의 상태를 비교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우리의 계급 배경
다음은 엥겔스가 묘사한 당시의 전형적 주거 상태이다.
《통계사회 저널》를 보면, 1840년 성 존 교구와 성 마거릿 교구에서는 5294채의 ‘집’(집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에 5366가구의 노동자 계급 가족이 살았는데, 남성과 여성과 아동이 나이나 성의 구분 없이 함께 살았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합쳐 2만 6830명이었다. 이 노동자 계급 가족의 4분의 3이 단칸방에서 살았다.
그래도 집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 사람들은 그조차 없는 사람에 견주면 그야말로 운이 좋은 편이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그날 밤 어디서 자야 할지 막막한 사람들이 런던에서만 5만 명이었다. 그들 가운데 저녁이 되기 전에 한두 페니를 얻은 사람들이 운이 가장 좋은 경우인데, 그들은 대도시 어디에나 흔한 여인숙에 들어가 침대에서 잘 수 있다. 하지만 말이 침대이지 상태는 끔찍했다. 그런 여인숙은 지하실에서 다락방까지 침대로 꽉 차 있으며, 한 방에 침대가 네댓 개, 심지어 여섯 개까지 있다. 방에 더는 넣을 수 없을 때까지 침대를 넣었다. 한 침대에서 네댓 명, 심지어 여섯 명이 같이 잔다. 환자든 아니든, 청년이든 노인이든, 술에 취했든 아니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가리지 않고 오는 대로 최대한 많은 사람을 집어넣는다. 말다툼, 주먹다짐, 상해 사건이 벌어진다. 몇몇이 작당을 하면 사태가 더 나빠진다. 도난이 빈번했고, 도저히 입에 담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그런데 이런 곳에라도 갈 돈이 없는 사람들은 어떠한가? 그들은 경찰이나 집주인이 건드리지 않고 내버려두는 골목길이나 처마 밑이나 구석진 곳을 찾아 잠을 잔다.
보건, 의복, 위생, 교육 등 모든 것이 이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지난 세기의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자 계급의 극소수뿐 아니라 전체의 상태가 급격히 향상됐다는 사실을 보이기 위해 증거가 더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제국주의와 개혁주의
앞에서 살펴봤듯이, 자본주의의 제국주의적 팽창과 개혁주의의 등장 사이에는 밀접한 연관이 존재한다. 반복일 수도 있겠지만, 둘 사이의 관련성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 후진적 식민지 나라들의 시장에서 선진국 상품에 대한 수요가 증대해, 선진국에서는 과잉생산 경향이 둔화되고 산업예비군인 실업자가 줄어들어 노동자의 임금이 개선된다.
■ 이런 식으로 임금이 오르는 것은 누적적 효과를 낳는다. 선진국의 내수 시장이 확대되면서 과잉생산 경향이 약화되고, 실업이 줄고, 임금이 늘어난다.
■ 자본 수출은 선진국 상품에 대한 시장을 창출하므로 비록 일시적이더라도 선진국에 번영을 가져다준다. 영국이 인도로 면제품을 수출하려면, 인도가 면화를 수출해서 번 돈으로 면제품에 대한 값을 바로 지불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한편 철로 건설을 위한 자본 수출은, 인도의 구매력이나 수출 능력을 넘어서는 상품(철로나 기관차 등)의 수출을 전제로 하는 일이다. 달리 말해, 자본 수출은 한동안은 선진국 산업을 위한 시장을 확대하는 데서 중요한 요소다.
부메랑 효과
그러나 이 요소는 시간이 지나면 반대 효과를 낳는다. 자본이 수출되고 식민지가 그 자본에 대한 이윤이나 이자를 지불하기 시작한 뒤에는, ‘본국’ 상품의 수출에 제동이 걸린다. (인도에 투자된 영국 자본에 대해) 1천만 파운드의 이윤을 지불하려면, 인도는 자신들이 수출보다 수입을 더 적게 만들어 그 1천만 파운드를 모아야 한다. 달리 말해, 영국이 인도로 자본을 수출하면 영국 제품에 대한 시장이 확대되지만, 인도로 수출된 영국 자본에 대한 이자나 이윤 지급은 영국 제품에 대한 시장을 제약한다.
그러므로 해외에 투자된 막대한 영국 자본은 영국에서 생겨나는 과잉생산과 대규모 실업을 결코 없애지 못한다. 레닌의 견해와는 반대로, 해외에 투자된 자본이 얻는 높은 이윤은 제국주의 국가들에서 자본주의가 누리는 번영이나 안정과 관계 있기보다는 대규모 실업과 불황을 낳는 요소이다.
■ 자본이 식민지에 수출되는 것은 제국주의 국가의 자본 시장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헛되이 투자처를 찾는 과잉 자본이 매우 적다 할지라도, 그것이 자본 시장에서 압력을 형성하고 이윤율의 저하 경향을 강화시키듯이, 그 누적된 영향은 거대할 수 있다. 그래서 이것이 자본의 활동 그 자체에 누적된 영향을 미치고 또 전체 경제활동과 고용 그리고 대중의 구매력에 영향을 미치며 다시 악순환을 거듭하여 시장에 누적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과잉 자본의 수출은 이런 어려움을 경감시킬 수 있고, 그래서 전체 자본주의의 번영과 개혁주의의 번영에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있다.
■ 자본 수출은 자본 시장에서 압력을 경감시킴으로써 서로 다른 기업들 사이의 경쟁을 약화시키며, 그래서 각 기업이 자신의 설비를 합리화하고 현대화해야 할 필요성을 경감시킨다.(이것은 산업혁명의 개척자인 영국 산업이 오늘날 독일 산업에 견줘 기술적으로 더 후진적이라는 사실을 어느 정도 설명해 준다.) 이것은 과잉생산, 실업, 임금 삭감 등의 경향을 약화시킨다.(물론 영국이 산업 세계에서 차지하던 실질적인 독점적 지위를 놓친 상황에서 이 요소는 세계시장에서 영국 산업의 패배와 실업과 임금 삭감을 낳을 수 있다.)
식민지에서 원재료와 식료품을 값싸게 구입하면, 선진국의 실질임금은 이윤율을 떨어뜨리지 않고도 늘어날 수 있다. 이런 임금 상승은 이윤율이나 이윤량의 감소 없이도, 즉 자본주의 생산의 주된 동력을 약화시키지 않고서도 내수 시장을 확대시킨다.
식민지 농업 국가가 선진국을 위한 시장을 확대시키는 시기는 다음의 요소에 따라 더 길어지게 된다. a) 선진 산업국의 생산력과 비교한 식민지 세계의 규모. b) 식민지의 산업화가 지연된 정도.
국경선의 존재 덕분에 얻는 이익
선진국과 그 식민지 사이에 국민국가적 경계가 없다면 제국주의가 자본주의의 번영에 이롭게 미치는 효과는 모두 사라질 것이다.
영국은 인도에 상품과 자본을 수출하고 값싼 원재료나 식료품을 수입했지만, 자신의 침략으로 더 늘어난 인도의 실업자가 영국의 노동시장에 들어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인도 대중이 영국으로 이주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장벽(재정적인 것도 포함하여)이 없었다면 지난 세기 영국에서 임금은 증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위기는 계속 깊어졌을 것이다. 개혁주의가 혁명적 차티스트 운동을 대체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여기에서 다시 한 번 레닌의 ‘노동계 귀족’ 이론의 약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레닌에 따르면, 개혁주의는 그가 ‘자본주의의 최근 단계’라고 부른 시기, 즉 자본 수출을 통해 높은 이윤율을 얻고, 그 일부 부스러기를 ‘노동계 귀족’의 손에 던져 줄 수 있는 시기의 산물이다. 영국에서 자본 수출이 대거 시작된 시기는 1890년대 즈음이었다.
제국 건설 이전에도 임금은 증가했다
사실 노동자의 임금은 이미 오래전부터 크게 증가했다. 1890년 영국 공업 노동자의 실질임금은 1850년보다 약 66퍼센트 높았다(레이톤과 크로우써의 《물가 연구》). 그 이유는 매우 명백했다. 영국에서 실질임금을 높인 가장 중요한 요인은 공업 상품 시장의 확대에 바탕을 둔 고용 기회의 확장(즉, 생산의 확장)이었다. 이런 현상은 자본 수출이 시작되기 오래전부터 나타났다.
간략하게 말해, 1750~1850년에는 영국의 공업 산출이 증가하며 영국의 많은 장인과 아일랜드의 농민들이 몰락해 영국 노동시장으로 흘러들어갔고, 그래서 임금이 매우 낮게 유지됐다. 그러나 19세기 중반부터는 영국의 장인들, ‘기아의 1840년대’ 이후에는 아일랜드의 잉여 농업인구가 거의 다 영국의 공업에 흡수되거나 해외로 이주했다. 그 뒤로 영국 공업과의 경쟁 속에서 몰락한 것은 인도의 장인과 농민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영국의 노동시장으로 흡수되지 않았고, 따라서 임금을 낮추지 않았다.
19세기 말이 되기 훨씬 전 영국의 임금 추세에는 전환점이 있었다. 영국의 장인과 농민들은 공업에 흡수된 반면, 식민지의 실업자들은 영국의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것이 가로막혀 있던 1830~1850년대이다. 표2는 그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연도 | 지수 | 연도 | 지수 |
---|---|---|---|
1759~1768 | 62 | 1833~1842 | 51 |
1769~1778 | 20 | 1843~1849 | 53 |
1779~1788 | 20 | 1849~1858 | 57 |
1789~1798 | 58 | 1859~1868 | 63 |
1899~1808 | 50 | 1869~1879 | 74 |
1809~1818 | 43 | 1880~1886 | 80 |
1819~1828 | 47 | 1887~1895 | 91 |
1820~1826 | 47 | 1895~1903 | 99 |
1827~1832 | 48 |
■ 제국주의가 자본주의의 번영과 개혁주의의 번영에 미치는 효과는 단지 제국주의 열강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 전체로 확대된다. 예컨대 영국의 경제 번영은 덴마크 버터에 넓은 시장을 제공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영국 자본주의가 식민지들을 착취해 획득한 이윤이 덴마크 자본주의로까지 확산될 수 있다.
노동조합 관료의 경제적 토대
■ 자본주의가 제국주의로 팽창함으로써 노동조합이나 노동당이 자본주의를 전복시키지 않고도 지배자들로부터 노동자들을 위한 양보를 얻어낼 수 있게 됐다. 그 덕에 개혁주의적 관료가 대거 성장할 수 있었고, 그들은 노동자 계급의 혁명적 발전을 가로막았다. 이런 관료의 주된 기능은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를 중개하고 양측이 타협에 이르도록 협상하며 계급 사이에 ‘평화가 유지되게’ 하는 것이다.
관료는 자본주의의 전복이 아니라 그 번영을 추구한다. 관료는 노동자 조직이 혁명적 세력으로 변모하지 않고 개혁주의적 압력집단으로 남기를 바란다. 관료는 자본주의의 이해관계를 따르는, 노동자 계급의 훈련 장교이다. 관료는 현대 자본주의에서 주된 보수 세력이다.
그러나 노동조합 관료와 노동당 관료는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경제적 조건을 감내할 수 있는 한에서만 노동자 계급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개혁주의의 토대는 바로 자본주의의 번영이다.
노동당 제국주의
■ 개혁주의의 뿌리가 제국주의라면 개혁주의는 제국주의를 보호하는 중요 보호막이 돼, 다른 제국주의 경쟁자들이나 성장하는 식민지 운동에 반대해 ‘자국’ 제국주의를 지지하게 된다.
개혁주의는 경제가 전반적으로 번영하고 있는 조건에서, 서방 자본주의 국가들의 노동자 계급 전체의 직접적·일상적이고 협소한 민족적 이해관계를 반영한다. 그런 이해관계는 노동자 계급과 사회주의의 역사적·국제적 이해관계와 모순된다.
노동시장의 조건이 비교적 좋은 것에 더불어 제국주의적 팽창과 식민지 착취도 자본주의의 번영에 일조함에 따라, 개혁주의는 대부분의 많은 후진국들에 대한 제국주의적 지배를 나타냈다.
그러나 영구군비경제 덕분에 적어도 한동안은 고용이 완전고용에 가까워지고 임금이 비교적 괜찮은 번영이 나타나면서, 제국주의적 전쟁 경제가 제국주의적 팽창을 대신하게 되는 데에도 개혁주의의 경제적 뿌리가 존재하게 된다.(《소셜리스트 리뷰》 1957년 5월호에 실린 ‘영구군비경제에 대한 전망들’을 보시오.)
전쟁경제
심각한 세계적 불황과 실업과 파시즘에 직면했던 1930년대에는 개혁주의의 토대가 완전히 허물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 시기를 평가하고 미래를 전망하면서 트로츠키는 이렇게 썼다. “일반으로 말해, 자본주의가 쇠락하는 시기에는 체계적 사회 개혁이나 대중의 생활수준 향상에 대한 논의가 있을 수 없다. 이때에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중대한 요구나 심지어 프티부르주아지의 중대한 요구들조차 모두 자본주의적 번영과 부르주아 국가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밖에 없다.”(〈자본주의의 단말마의 고통〉)
자본주의 하에서 철저한 개혁이 더는 불가능해지면 부르주아지의 의회주의적 민주주의가 조종을 울리고 개혁주의의 종말이 눈앞에 놓이게 될 것이다.
트로츠키에 따르면, 자본주의의 모순들을 더욱 첨예하게 만드는 전쟁이 그 과정에 속도를 붙일 것이다.
그러나 트로츠키의 전망은 현실과 맞지 않았다. 전쟁과 영구군비경제 덕분에 많은 서방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자본주의와 개혁주의의 수명이 더 늘어났다.
영국군비경제에 대한 개혁주의의 의존성이 커지는 것 자체가 개혁주의는 파산했음을, 그리고 자본주의를 그 쌍둥이들(영구군비경제와 개혁주의)과 함께 혁명적으로 전복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나 개혁주의의 파산이 일상적 경험을 통해 모든 노동자들에게 입증된 것은 아직 아니다. 《소셜리스트 리뷰》 1957년 5월호에 실린 나의 글에서 보여 줬듯이, 이런 상황은 영구군비경제가 노동자들의 조건을 크게 악화시키고 그럼으로써 개혁주의의 토대가 제거되는 몇 년 동안 계속 존재할 것이다.
물론 개혁주의의 토대를 제거하기 위해 노동자의 생활수준을 최대한 깎아내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자동차나 TV ― 비록 다른 나라 노동자들에게는 꿈도 꾸지 못할 사치품일지라도 ― 를 빼앗아 가려는 위협에 강력하게 반발할 것이다. 이전에는 개혁이었던 것이 이제는 필수품으로 받아들여지는 한 새로운 개혁에 대한 요구가 등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먹을수록 식욕이 생기는 법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가 쇠락해서 노동자 계급의 중대한 요구가 자본주의의 한계를 넘어설 때 개혁주의는 조종을 울릴 것이다.
개혁주의를 허무는 요소들과 함께, 개혁주의의 토대와 힘과 그 깊이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사회주의 운동의 미래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1백여 년 전 엥겔스는 이렇게 말했다. “노동자 계급의 상태는 현재 일어나는 모든 사회운동의 현실적 토대이자 출발점이다. … 프롤레타리아의 조건을 알아야만 사회주의 이론을 위한 견고한 기반을 놓을 수 있다. … ”(《영국 노동자 계급의 상태》의 서문)
물론 개혁주의의 경제적 토대가 사라졌을 때조차 개혁주의는 스스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상이 생겨난 물질적 조건이 사라진 뒤에도 그 사상이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사회주의자들의 의식적인 혁명적 실천과 선전·선동을 통해서만 개혁주의는 타도될 것이다. 앞으로 자본주의의 모순이 첨예화되면 개혁주의를 타도하는 일이 쉬워질 것이다.
노동계급의 모든 투쟁은, 아무리 제한적인 것일지라도, 노동자 계급의 자신감과 의식을 고취시킴으로써 개혁주의를 잠식해 들어간다. “모든 파업에는 혁명이라는 히드라의 머리가 있다.” 일관되고 진정한 사회주의자의 주요 과제는 일상 투쟁으로부터 이끌어 낸 교훈들을 결합하고 일반화하는 것이다. 그럴 때만 개혁주의와 싸울 수 있다.
MARX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