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 데이비드 하비 비판
데이비드 하비의 경제 이론과 정치 비판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이 르네상스를 맞고 있는 오늘날 데이비드 하비만큼 영향력 있는 인물은 드물다. 그는 《자본의 한계》, 《신제국주의》, 《신자유주의: 간략한 역사》 등의 저작을 통해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의 지평을 넓혔을 뿐 아니라 《자본론》을 심도 깊게 이해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그 외에도 하비는 여러 강연과 《자본이라는 수수께끼》, 《자본의 17가지 모순》, 《맑스 『자본』 강의》, 《맑스 『자본』 강의 2》 등으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대중적으로 알리는 데도 애썼다.
1 하비는 지리학에서 실증주의적 방법론에 내재된 문제점과 학문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방법론을 모색하는데, 그것이 바로 1960년대 후반 프랑스 ‘68혁명’으로 부상했던 마르크스주의였다. 하비는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공간 이론을 재구성하려 했을 뿐 아니라 기존의 마르크스주의 이론들을 공간적 관점에서 재구성하고자 했다. 이런 연구의 결실이 바로 1982년에 출간된 《자본의 한계》였다.
하비는 그의 학문적 궤적에서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에서 심대한 영향을 받았다. 그가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1800~1900년 켄트지방의 농업 및 농촌 변화의 제 측면들’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을 때(1961년), 지리학은 실증주의가 지배하고 있었다. 실증주의 지리학은 계량적 기법이나 모형 구축을 통해 공간적 유형들을 설명했다. 하비는 “실증주의적 과학은 우리에게 매우 예리한 도구를 제공”할 수 있지만 동시에 “이것이 잘못 응용될 경우 커다란 위험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자본의 한계》에서 하비는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이론에서 시작해 자본순환의 시간적 측면과 공간적 측면에 관해 설명한다. 특히 자본의 과잉축적 위기와 공황이 나타나는 1차 국면, 이를 해소하기 위해 신용화폐의 발달과 ‘의제적 자본’의 구실이 나타나는 2차 국면, 지리적 불균등발전과 공간적 조정을 통해 자본주의 위기가 확장되는 공황의 3차 국면이라는 설명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확장하여 자본의 과잉축적과 공황이 공간적 영역을 어떻게 재편하는지를 밝혔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자본의 한계》는 1960년대와 1970년대 세대가 자본주의를 더 잘 이해하고 타도하기 위해 《자본론》에 천착한 뒤에 나온 가장 중요한 성과물의 하나이다.
한편, 《신제국주의》는 2001년 9·11 참사와 그 후 미국 제국주의가 벌인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이론적 분석을 담고 있다. 여기서 하비는 자본주의 축적의 논리인 경제적 경쟁과 권력의 영토적 논리 사이에 모순이 내재돼 있다고 지적한다. 하비는 자본축적의 위기를 피하기 위해 ‘공간적 조정’을 하거나 ‘탈취에 의한 축적’을 하는 것과 신제국주의를 연결해 설명하는데, 탈취에 의한 축적은 노동자를 착취해 잉여가치를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비자본주의적 부문을 포섭하거나 기존의 잉여자본을 재분배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자본주의 세계화 과정에 대한 하비의 관심은 《신자유주의: 간략한 역사》에서 잘 드러나 있다. 신자유주의는 자유라는 보편적 가치와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유토피아적 대안으로 강조돼 왔지만 실제로는 자본가 계급의 권력 회복을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즉, 신자유주의의 기본 관심은 부의 창출이 아니라 재분배에 있으며, 이를 위해 탈규제, 공적 지출(복지) 축소, 민영화 등 “탈취에 의한 축적”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자본이라는 수수께끼》는 신자유주의와 이에 따른 계급 양극화가 2008년의 경제 위기를 초래했다고 지적한다. 또 자본 흐름의 과정마다 경제 위기를 유발하는 잠재적 장애물로 화폐자본의 부족, 노동 공급의 부족, 생산수단의 부적절성, 노동과정의 비효율성, 화폐에 의해 뒷받침되는 수요의 부족 등이 존재한다고 제시하며 이를 다루고 있다. 특히 제6장 ‘그 모든 것의 지리’는 자본주의의 지리적 불균등 발전과 자본축적 과정이 지리적 환경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는 모습들과 공진화 과정들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자본의 활동을 위해 모든 공간적 장벽을 해체하고 전 세계를 시장으로 정복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마르크스의 지적이 현실에 구현되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자본의 17가지 모순》은 자본의 여러 모순들을 기본모순 7개와 움직이는 모순 7개 그리고 위험한 모순 3개로 나눠 설명하고 있다.
데이비드 하비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기초해 자본주의 체제와 제국주의에 대해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풍부한 자원들을 제공했다. 그럼에도 그의 정치경제학과 제국주의 이론에서 나타나는 몇 가지 약점을 지적할 수밖에 없다.
하비의 방법론
3 1970년대에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이 부활했을 때조차 하비 자신이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 이윤압박설(임금 상승 때문에 경제 위기가 온다는)이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이론에 대한 강력한 경쟁자였다.
2008년에 시작된 세계경제 위기의 원인을 둘러싼 논쟁에서 데이비드 하비는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을 경제 위기의 주요 요인으로 보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과 논쟁을 벌였다. 하비는 이윤율 저하 경향이 “마르크스주의 내에서 우상과 같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도 이윤율 저하 경향을 받아들이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소수파였다. 마이클 하워드와 존 킹은 힐퍼딩, 룩셈부르크, 레닌, 부하린 같은 거인들이 활동하던 1920년대의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이들 다양한 학파들을 묶어 놓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마르크스의 《자본론》 3권과 특히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에 대한 철저한 무시였다.”최근에 로버트 브레너를 시작으로 마이클 로버츠와 앤드류 클라이먼 등이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을 주장하며 데이비드 하비와 논쟁을 벌였고, 이들 외에도 크리스 하먼, 굴리엘모 카르케디 등이 경제 위기의 핵심 원인으로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을 꼽았다. 이런 논의 과정에서 데이비드 하비는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더 나아가 노동가치설까지도 기각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이는 하비의 방법론이 마르크스와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4 이에 대해 하비는 “마르크스는 거의 법칙 수준의 일반성, 즉 생산의 부르주아적 개념에 최대한 집중하면서, 분배와 교환이라는 ‘우연적’, 사회적 특수성은 정치경제학 연구에서 제외(하고 소비라는 무질서한 개별성은 훨씬 더 제외)한다”고 지적했다. 5 그는 《맑스의 『자본』 강의 2》의 서문에서도 “맑스는 자본을 오로지 가치와 잉여가치의 ‘생산과 실현의 통일체’로만 이해할 수 있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이 말을 통해 맑스는 만일 여러분이 노동과정을 통해 생산한 물건을 시장에서 팔 수 없다면 그 물건의 생산에 들어간 노동은 가치를 가지 않는다고 했다”고 말함으로써 생산과 소비를 대등한 지위에 놓고 비교하고 있다. 6 결국 하비는 마르크스가 사용한 일반성, 특수성, 개별성의 요소들을 순서와 구분 없이 사용하자고 주장한 셈이다. 하비의 이런 주장은 두 가지 오류로 이어질 수 있다.
2011년 도이처기념상 수상식 강연에서 하비는 마르크스의 경제학 저작들에 ‘엄격한’ 지침 구실을 한 것은 1857년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의 서설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라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생산, 분배, 교환, 소비는 하나의 정연한 삼단 논법을 이룬다. 생산은 일반성, 분배와 교환은 특수성, 소비는 개별성이며, 여기에서 전체가 결합된다. 물론 이것은 하나의 연관이지만 피상적인 연관이다.”첫째, 이론적 일반성을 위해서는 세부적 경험을 제외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어떤 상품이 시장에서 그 상품을 생산하는 데 들어간 사회적 필요 노동시간만큼의 가치보다 많거나 적게 판매됐다 할지라도 그 상품의 가치가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 결정된다는 일반적 법칙은 변하지 않는다. 이런 점을 기각하기 때문에 하비는 개별적 경험을 중시하는 경험주의적 경향을 보인다.
만약 하비가 이런 주장을 끝까지 밀고 나아간다면 노동가치론도 부정하게 될 것이다. 하비의 주장대로라면 노동을 통해 생산한 재화를 시장에서 팔 수 없다면 그 재화의 생산에 들어간 노동은 가치를 생산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치가 실현되지 않았다고 해서 가치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하비의 주장은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중의 핵심을 곡해하는 셈이다.
둘째, 이런 하비의 주장을 보면 그가 공황의 원인으로 이윤율 저하 경향을 중요하게 여기는 주장을 일관되게 반박하는 이유를 할 수 있다. 앞서 지적했듯이, 그는 ‘생산과 실현의 통일성’을 깨뜨리는 다양한 요인들을 경제 공황의 원인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쉽사리 공황의 원인으로서 과소소비론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비는 《맑스 『자본』 강의 2》의 서문에서 좀 더 분명하게 지적한다. “시장에서 총유효수요의 부족은 자본축적의 연속성에 대한 심각한 장애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노동자계급의 소비는 유효수요의 중요한 구성요소를 이룬다.” 7 당연하게도 노동계급의 소비는 유효수요의 중요한 구성요소이긴 하지만 더 중요한 소비는 생산적 소비, 즉 투자이다. 따라서 시장에서 총유효수요의 부족은 바로 투자의 부족 때문이다. 투자는 예상되는 이윤에 의해 결정된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유효수요의 밑바탕에서 작동하는 요인들을 우선 해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수요의 원리를 규제하는 ‘사회적 필요’social need는 기본적으로 다른 계급들의 상호관계와 그들 각각의 경제적 지위에 의하여 제약되는데, 특히 첫째로 총잉여가치와 임금 사이의 비율에 의하여, 그리고 둘째로 잉여가치 그것이 분할되는 각종의 부분들(이윤·이자·지대·조세 등) 사이의 비율에 의하여 제약된다. 그러므로 수요와 공급의 상호관계가 작용하는 바탕을 해명하지 않고서는 그 상호관계는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여기에서 또다시 알 수 있다.” 8
9 “맬더스는 부르주아지의 입장에서 과시적 소비의 필요성을 이해했으며, 이를 자본축적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으로 확대 해석했다”고 언급하고는 얼른 마르크스는 “공황이 회피되려면 부르주아적 소비는 축적과 보조를 맞추어야만 한다고 인정하지만, 이러한 비생산적 소비자계급이 축적을 위한 절박한 상황의 해결사로서 기능할 수 있다는 맬더스의 사고에 비난을 퍼부었다”고 덧붙였다. 10
하비는 이미 《자본의 한계》에서 가치·잉여가치의 생산과 더불어 가치의 실현의 문제를 다루면서 과소소비론을 받아들이는 듯하게 말했다.11 “생산된 상품을 구매하는 데 유효수요가 충분하지 않다면 ‘과소소비’underconsumption라고 불리는 위기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12
하비는 그 뒤의 출판물에서 더 분명하게 주장했다. “2008~09년의 위기는 이윤압박 이론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 흘러넘치는 노동공급으로 인한 임금억압과 이로 인한 유효수요 부족이 훨씬 더 심각한 문제”라거나이윤율 저하 경향의 문제
데이비드 하비의 경제 위기 이론을 비판적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이유는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자들이 20세기 후반 이후 지속돼 온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적 위기를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2007~08년 시작된 경제 위기가 회복되기는커녕 장기 불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진영은 이 위기에 대한 설명을 두고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론, 과소소비론 그리고 금융화론 등으로 나뉘어 있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하비는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일찍이 1982년에 그가 쓴 기념비적인 저작 《자본의 한계》에서는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을 인정하기는 했다. 이 법칙이 불완전하고 엄격하지 않다는 단서를 달아, ‘법칙’으로서의 성격은 크게 약화시켰지만 말이다. 《자본의 한계》에서 하비는 이렇게 말했다.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 주장은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기술 변화를 향한 자본가들의 불가피한 열정이 ‘축적을 위한 축적’이라는 사회적 규정력과 결합될 경우, 그 자본을 사용하기 위한 기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과잉된 자본을 만들어 냄을 설득력 있게 증명한다. 이러한 자본의 과잉생산 상태는 ‘자본의 과잉축적’이라고 불린다.”
여기서 “과잉축적”이라는 용어가 모호하긴 하지만, 인용된 하비의 주장은 두 가지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첫째, 자본축적이 자본의 이윤 추구 능력을 초과해 이루어져 축적을 계속하지 못하게 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하비의 ‘과잉축적’ 개념은 이윤을 얻을 수 있는 투자 기회의 부족을 근본 문제라고 지적하는 셈이다. 이는 결국 이윤율 저하를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다른 하나의 설명은 이윤에 대한 강조에서 소비에 대한 강조로 옮아가는 것이다. 하비는 《자본의 한계》를 쓸 당시에는 과소소비론적 설명에 반대했다. 하지만 그는 위기에 대한 핵심 주장과 부차적 주장을 절충함으로써 논의를 모호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는 《자본이라는 수수께끼》에서 자본주의 위기를 설명하는 이론으로 이윤 압박 이론, 이윤율 저하 이론, 과소소비 이론 등 세 가지가 있다고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위기의 발생에 관해 숙고하는 데 훨씬 더 좋은 방법이 있다. 자본의 순환에 관한 분석은 여러 잠재적 한계와 장애를 정확하게 지적한다. 화폐자본의 부족, 노동문제, 부문 간의 불비례, 자연적 한계, (경쟁 대 독점을 포함한) 불균형적인 기술적·조직적 변화, 노동과정의 규율 약화와 유효수요의 부족 등이 그것들이다. 이러한 요인 가운데 어떤 것도 자본 흐름의 연속성을 둔화하거나 가로막을 수 있고, 따라서 자본의 감가나 손실을 야기하는 위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 하나의 한계가 극복되면, 자본축적은 흔히 다른 곳에서 또 다른 한계에 직면한다.”
… 생산된 상품을 구매하는 데 유효수요가 충분하지 않다면 ‘과소소비’라고 불리는 위기가 발생한다.” 16
이어서 ‘자본, 시장에 가다’ 장에서는 유효수요와 자본가들의 소비 등을 강조하는데, 여기서 그가 말하는 ‘과잉축적’은 낮은 이윤율이 아니라 과소소비와 연결된다. “좀더 부유한 사회에서는 ‘소비자 심리’와 ‘소비자 신뢰’가 끝없는 자본축적의 열쇠일 뿐 아니라, 점점 더 자본주의의 생존에 필요한 기초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잘 알려져 있다.… 생산성 증대와 고용 증대 그리고 잉여가치 생산이 특정 상황에서는 함께 나타날 수 있다. 그에 따라 마침내 이윤이 오르거나 내릴 것이라고 결론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17
하비는 ‘자본가들의 소비’가 사치재 소비인지 생산수단 소비인지를 가리지 않고 모두 유효수요의 원천으로 포함시키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투자 성향은 ‘불확실성’, ‘믿음’ 또는 ‘자신감’ 등과 같은 케인스주의적 용어로 설명하고 있다. 하비의 최근 논문은 이 방향으로 더 나아가고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충족되지 않은 필요, 욕구 그리고 바람에 기초해 유효수요를 늘리면 고용과 잉여가치생산이 증대할 수 있다.최근 마이클 로버츠와의 논쟁에서 하비는 “경제 위기를 구성하는 유일한 인과적 이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자본주의 위기가 상이한 시기와 맥락 속에서 상이한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저 상관관계만 있을 뿐인 여러 요인들을 절충한다.
그러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이 자본주의 경제에 위기를 일으키는 근본 원인이라는 점을 정교하게 주장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하에서 자본축적을 추동하지만 그 자체의 파멸적 요소를 담고 있는 결정적 요인은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이라고 주장했다. 자기증식을 하는 가치로서 자본은 노동자에게서 잉여가치를 추출해야만 가치 증식을 이룰 수 있다. 그런데 자본들 사이의 경쟁은 자본의 유기적 구성을 높이는 방식의 축적을 강요한다. 그러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 과정은 자본 일반의 이윤율을 하락하게 만든다.
그러나 하비의 주장처럼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가 결정적이지 않다면 그 법칙은 과소소비, 유효수요, 금융화 등의 요인들과 다를 바 없는 지위로 격하된다. 그리고 이윤율은 그것의 경향적 저하를 상쇄시키는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 쉽사리 상승할 수도 있게 된다. 급속한 자본축적의 시기에는 이윤율 저하 경향이 상쇄 요인들보다 더 우세한 모습을 보인다. 그 이유를 크리스 하먼은 《좀비 자본주의》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자본가들은 경쟁자들보다 앞선 기술 혁신을 추구하는데, 일부 기술혁신은 자본집약적이지 않은 기술을 이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더 많은 생산수단을 필요로 하는 자본가들도 존재할 텐데, 그중 성공하는 자본가는 노동집약적일 뿐 아니라 자본집약적인 기술에 접근할 수 있는 투자를 하는 쪽일 것이다. 그러므로 흔히 기술 혁신은 전체 자본에게는 상쇄요인이 아니라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를 재촉하는 요인이 된다.
또 상쇄 요인도 축적 과정에서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그 이유 하나는 불변자본의 저렴화가 미리 투자한 자본가들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값비싼 기계에 이미 투자한 자본가는 그 기계의 가격이 하락하는 것에서 득을 보지 못한다. 다른 한편, 후발 투자자들은 값싼 기계를 사용해 생산하기 때문에 그들이 생산하는 산출물의 가치는 하락한다. 그리고 산출물의 가치 하락은 선발 투자자들의 이윤을 하락시키고 이어서 전체 자본의 이윤도 하락하게 하는 압력을 가한다.
하비는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를 입증하는 통계 데이터가 존재하는지 의문을 나타낸다. 그는 《자본의 한계》에서 “1945년 이후 미국에서 기업 이윤들에 관한 자료들을 수집하여 그 역사적 기록에 의존하여 이 법칙을 입증하거나 반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19 여기에는 두 가지 쟁점이 있다. 첫째, 현대 자본주의나 제2차세계대전 이후 주요 자본주의 경제의 이윤율이 하락했는가 하는 점이다. 둘째, 이윤율의 경향적 하락을 다른 요인들이 아닌 마르크스의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첫째 쟁점과 관련해서는 마이클 로버츠, 굴리엘모 카르케디, 안와르 샤이크, 프레드 모슬리, 앤드류 클라이먼 등 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19세기의 가장 주요한 자본주의 경제였던 영국과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경제였던 미국에서 이윤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했다는 점을 보여 주었다. 또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1870년대 이후와 특히 제2차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의 많은 국민자본들의 이윤율을 측정한 결과들을 제공하고 있다. 그들이 제시한 통계들은 모두 세세한 부분에서는 차이가 있을지라도 대체로는 이윤율이 경향적으로 하락한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둘째 쟁점과 관련해 하비는 이윤율이 저하하더라도 그것이 마르크스의 법칙 때문이 아니라 다른 요인 때문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이윤은 많은 원인들 때문에 하락할 수 있다며, 수요의 감소(포스트케인스주의), 임금 인상(이윤압박설), 자원의 희소성, 독점(비독점 자본으로부터 지대의 추출) 등을 제시한다. 여기서도 하비는 절충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과학적 연구의 핵심은 여러 가능성들 가운데 핵심적인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다. 앞에서 소개한 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마르크스의 주장을 좇아 이윤율 저하 경향을 실증적으로 입증해 보였고, 이윤율 저하 경향은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상승 때문임을 증명해 보였다. 하비가 말한 다양한 요인들은 위기에서 부차적 구실밖에 하지 않았다.
신제국주의
20 그에게 전자(국가와 제국의 정치)는 한 국가가 세계 전반에서 그 자신의 이해관계를 주장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용하는 정치적·외교적·군사적 전략들을 의미한다. 후자(공간과 시간에서 자본축적의 분자적 과정)는 경제적 힘이 생산, 교역, 상업, 자본 흐름, 화폐 이전, 노동 이주, 기술 이동, 외환 투기, 정보의 흐름, 문화적 충격 등과 같은 것을 통해 국경선을 넘나들며 조직되는 방법들에 초점을 맞춘다.
하비는 9·11 테러 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이라크를 침공한 다양한 원인들을 검토하면서, 이것을 “역사지리적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비는 ‘자본주의적 제국주의’를 “‘국가와 제국의 정치’와 ‘공간과 시간에서 자본축적의 분자적 과정’의 모순적 결합”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하비는 조반니 아리기의 논의를 비판적으로 수용해 ‘권력의 영토적 논리’와 ‘자본주의적 논리’의 변증법적 또는 모순적 관계를 지적하면서 세계 역사 속에서 미국의 힘이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고찰한다. 하비는 자본주의가 발전하며 주기적 과잉축적 공황이 발생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자본의 감가devaluation가 공황 해소의 한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자본가들은 자본의 감가를 피해 잉여자본을 수익성 있게 처분하기 위해 지리적 팽창과 공간의 재조직을 이용한다. 하비는 이와 같은 메커니즘을 설명하기 위해 공간적·시간적 조정 spatio-temporal fix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자본주의 역사는 과잉축적의 문제를 겪고 있던 자본축적의 중심부들이 끊임없이 경쟁하는 역사였다. 그래서 하비는 “영토적 논리가 자본주의적 논리를 지배하고 좌절시켰으며, 이에 따라 영토적 갈등을 통해 자본주의적 논리를 거의 종착적 위기로 몰고 갔다”고 주장했다.23 바로 이것이 하비가 말한 ‘권력의 영토적 논리’와 ‘자본주의적 논리’의 결합 방식이다.
여기서 하비는 룩셈부르크의 주장을 바탕으로 삼아 ‘탈취에 의한 축적’accumulation by dispossession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냈다. 그런데 하비가 말하는 탈취에 의한 축적은 자본주의가 비자본주의적 영역으로의 확장한다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개념보다 더 넓은 개념이다. 하비는 “자본주의는 어떤 기존의 바깥(비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들 또는 자본주의 내에서 아직 프롤레타리아화되지 아니한 교육과 같은 부문들)을 활용하거나 또는 적극적으로 이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지적하고는 이를 “‘안-밖’의 변증법”이라고 불렀다. 그는 “한편으로 확대재생산과 다른 한편으로 흔히 폭력적인 강탈 과정 간 ‘유기적 관계’가 자본주의의 역사지리를 형성”한다고 주장한다. 요약하면, 하비는 마르크스의 시초축적 개념을 확장해 자본의 과잉축적을 해소하기 위해 자본주의가 자신의 외부를 만들어 내고 이것을 다시 자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탈취에 의한 축적’이라고 불렀다. 탈취에 의한 축적의 사례로는 민영화, 중국의 개방, 기존의 자산이나 노동력의 감가를 통한 염가 매매, 폰지금융 같은 금융사기, 인플레를 통한 구조화된 자산 파괴, 인수합병에 의한 자산 삭감, 부채 수준의 증대 등이 있다. 하비는 더 나아가 생물 해적질도 포함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WTO 협상에서 지적 재산권에 대한 강조는 유전물질의 특허와 허가, 종자 플라스마, 그 외 모든 방식의 제품들이 오늘날 개발에 결정적 역할을 담당했던 사람들에게 매우 불리하게 사용되도록 하는 방법들에 기초하고 있다.”하비의 신제국주의론은 몇 가지 장점이 있다. 그중 하나가 자본축적의 동학과 영토적 경쟁을 연결시켰다는 점이다. 하비는 《자본의 한계》의 마지막 절인 ‘제국주의들간의 대결: 감가의 궁극적 형태로서의 세계전쟁’에서도 자본축적과 공황이라는 내적 변증법과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외적 해결책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25 이는 크리스 하먼의 주장과 비슷하다. 하먼은 생산자본, 상업자본, 화폐자본의 무리들이 등장하면서, 이들이 자신들의 속한 지역의 사회적, 정치적 여견을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게 만들려고 서로 협력한 것이 역사적으로 자본주의 국가의 형성을 추동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생겨난 국가가 자본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착취의 논리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도록 적극 변형된다고 지적했다. 26
둘째 장점은 하비의 제국주의 개념이 경제 환원론이지 않다는 점이다. 보통 미국 제국주의 정책을 석유기업들의 이해관계로 이해하는 경우가 있다. 부시-체니 정부를 ‘미국석유협회의 집행위원회’라고 비꼰 마이크 데이비스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하비는 제국주의의 특징을 경제적 경쟁과 지정학적 경쟁의 변증법적 결합이라고 지적했다. 이때 지정학적 경쟁, 즉 권력의 영토적 논리에 따라 국가는 “어떤 지역의 지배적인 이익집단 또는 이익집단들의 연합”에 의해 장악되는 결과를 낳을 뿐 아니라 국가 자체가 “지역적 차별화와 지역적 동역학을 조직하는 데 자신의 권력을 사용하는” 결과도 낳는다고 지적했다.탈취에 의한 축적?
그러나 하비의 제국주의론은 몇 가지 단점도 있다.
첫째는 탈취에 의한 축적이라는 개념이 지닌 문제에서 비롯한다. 이 문제점은 가치·잉여가치의 생산과 실현의 불일치를 공황의 원인으로 보는 그의 방법론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에 따르면 자본은 과잉축적을 해소하기 위해 비자본주의 영역뿐 아니라 자본주의 내부에서 자본 관계에 포함되지 않은 영역을 항상 만들어 내야 한다.
탈취에 의한 축적 개념은 마르크스의 시초축적 개념(생산자들을 생산수단에서 분리하는 것이 핵심이다)과도 다를 뿐 아니라, 그 사례 중 많은 것이 생산과정에서의 착취에 기반한 축적이라는 점에서 개념적 엄밀성이 떨어진다.
이런 점들을 제쳐 두더라도, 탈취에 의한 축적이 오늘날 자본축적의 지배적 방식이 아니라는 핵심적 결점이 있다. 물론 민영화나 금융사기 등이 횡행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가치와 잉여가치의 창출이 아니라 이미 착취를 통해 만들어진 잉여가치의 분배 또는 재분배에 지나지 않는다. 노동자들로부터 잉여가치를 착취하고 그 결과 자본축적이 진행되는 과정, 즉 탈취에 의하지 않은 자본축적이 자본주의의 근원에 있는 문제이다. 이 점이 하비의 둘째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탈취에 의한 축적을 강조하는 것은 이른바 ‘정상적인’ 자본축적의 문제를 간과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상당한 차이를 만들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본문에서 주장한 바와 같이, 자본주의가 이러한 주요 위기를 다시 안정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새로운’ 뉴딜과 같은 것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27 이것은 반자본주의적이고 반제국주의적 대안의 필요성을 언급하고는 개혁주의적 결론을 제시하는 셈이다.
셋째 약점은 제국주의에 대항한 저항과 대안의 문제인데, 하비는 “워싱턴의 정권 교체는대안과 주체의 문제
하비는 신제국주의에 맞서기 위해서는 반자본주의적 투쟁과 반제국주의적 투쟁의 결합을 강조하고 있을 뿐 아니라, 대안세계화운동에서 제기된 ‘다중’multitude이라는 개념으로 주체를 모호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도 지적했다.
그러나 그가 제시한 사례들은 멕시코 치아파스 주의 사파티스타 반란 같은 제3세계 농민운동, 자본의 자원 약탈에 희생당하는 지역 주민들의 투쟁, 생물해적에 반대하는 농민 운동, 삼림훼손에 맞서는 원주민 투쟁 등이다. 탈취에 의한 축적에 반대하는 더 많은 집단들을 거론할 수 있는데, 금융사기의 피해자들도 이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
28 그러나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서도 1995년 프랑스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저항, 1999년 시애틀 시위에서 노동조합의 구실 등은 노동자 기반 운동의 잠재력을 보여 줬다.
하비가 탈취에 의한 축적에 저항하는 운동을 강조한 것과 비교하면, 정작 자본주의 생산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노동계급에 대한 강조는 상대적으로 부실하다. 그가 “전통적인 노동자 기반 운동들은 선진 자본주의국가들에서 신자유주의적 맹공에 의해 그 힘이 많이 약화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비는 임노동의 착취와 사회적 임금을 규정하는 조건들이 핵심 이슈가 되는 확대재생산을 둘러싼 투쟁과 탈취에 의한 축적에 저항하는 운동들이 존재한다고 지적하면서, “상이한 운동들의 유기적 연계를 찾는 것은 긴박한 이론적·실천적 과제”라고 올바르게 지적한다.그러나 이런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들 ― 자본주의 체제와 경제 위기의 원인에 대한 올바른 인식, 노동자 계급 중심성에 대한 명확한 이해, 혁명조직의 필요성 ― 을 하비에게서 찾을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
주
- 최병두 2016, px. ↩
- 이 잡지에 실린 김종현의 《신자유주의: 간략한 역사》 서평을 참고하라. ↩
- Howard & King 1989, p316. ↩
- 마르크스 2002, p58. ↩
- Harvey 2012. ↩
- 하비 2016, p10. 강조는 하비. ↩
- 하비 2016, p13. ↩
- 마르크스 1990, p214. ↩
- 하비 1995, pp128~143. ↩
- 하비 1995, p137. ↩
- 하비 2012, p101. ↩
- 하비 2012, p157. ↩
- 하비 1995, pp243~260. ↩
- 하비 1995, p264. ↩
- 하비 2012, pp168~169. ↩
- 하비 2012, pp156~157. ↩
- Harvey 2015, pp8~9. ↩
- 하먼 2012, pp91~100. ↩
- 하비 1995, p248. ↩
- 하비 2005, p41. ↩
- 하비 2005, pp42~43. ↩
- 하비 2005, p138. ↩
- 하비 2005, p139. ↩
- 하비 2005, p144. ↩
- 하비 2005, p108, 번역은 인용자가 수정. ↩
- 하먼 2015, pp42~46. ↩
- 하비 2005, p213. ↩
- 하비 2007, pp239~240. ↩
- 하비 2007, p244. ↩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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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ard, M C & King, J E 1989, A History of Marxian Economics, vol.1, Palgrave Macmill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