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 데이비드 하비 비판
앤드루 클라이먼의 데이비드 하비 비판 ①
마르크스를 오해하기 *
이 글들은 마르크스주의 지리학자인 데이비드 하비와 마르크스주의자인 앤드루 클라이먼이 세계경제 대침체의 원인과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 등을 두고 벌인 논쟁에서 하비의 마르크스 비판(Harvey 2014)에 대해 클라이먼이 쓴 두 편의 글(‘Getting Marx Wrong’과 ‘Getting Profitability Wrong’)을 완역한 것이다. 앤드루 클라이먼의 글들은 모두 New Left Project에서 찾아볼 수 있다. 두 편의 글은 전재오가 번역했다.
마르크스주의 지리학자로 잘 알려진 데이비드 하비는 최근 논문(Harvey 2014)을 발표해 카를 마르크스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이하 LTFRP), 이 법칙이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경제 위기 이론에서 차지하는 지위, 이 법칙과 대침체 및 그 뒤에 지속된 침체 사이의 관련성을 강하게 비판했다. LTFRP는 자본주의 하에서는 노동 절약형 기술 진보로 이윤율이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하는 법칙이다. 기술 혁신은 생산비용을 떨어뜨려 생산물 가격 상승을 저지하는 경향이 있고, 이 때문에 기업의 이윤이 생산에 투입되는 자본의 양이 늘어나는 만큼 빨리 증가하는 것이 힘들어진다.
이 과정이 대침체의 근저에 놓인 요인 중 하나인지 아닌지는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문제다. 그 핵심에는 자본주의가 더 잘 작동하도록 고안된 정책들 ─ 신자유주의를 국가 주도적 자본주의로 대체하기, 금융을 규제하기, 불평등을 줄이기, 금융보다 생산에 친화적인 정책을 시행하기 등 ─ 이 미래의 중대한 경제 위기를 방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문제가 있다. LTFRP에 뿌리를 둔 경제 위기 이론은 그런 정책들이 결국에는 성공하지 못할 것임을 암시한다. 왜냐하면 그 정책들은 이윤 극대화 충동이나 기술 진보로 말미암은 수익성 하락 같은 온갖 형태의 자본주의에 내재하는 본질적 문제를 사실상 그대로 남겨 두기 때문이다.
하비의 주된 문제제기는 LTFRP와 그것을 바탕으로 한 위기 이론이 단일 원인론mono-causal이라는 것이다. 즉, 그 이론은 상쇄 요인들은 물론이거니와 위기의 다른 요인들을 무시하고, 그 지지자들은 하나같이 “다른 가능성들을 사고思考에서 배제하는” 방식으로 주장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주장은 ‘허수아비 때리기’일 뿐임을 주장할 것이다.
진정한 쟁점은 누군가가 단일 원인론을 옹호한다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원인 부재론apousa-casual theory이라고 부르는 것이 어울리는 이론, 즉 LTFRP가 아무런 구실도 하지 못한다고 보는 이론을 하비가 적극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 진정한 쟁점이다. 그도 무언가를 고려해야 할 대상에서 배제하려 하는 사람 중 한 명인 것이다. 하비가 자본주의의 “서로 충돌하는 힘들의 소용돌이”와 “다중적 모순과 위기 경향”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 그가 위기를 일으키는 잠재적 요인을 아무것도 배제하지 말고 모두 고려하자고 촉구하리라는 것을 누구나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비가 단지 위기를 일으키는 여러 잠재적 요인을 LTFRP와 함께 고려하자고 제안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LTFRP와 그것을 기초로 한 위기 이론을 역사의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단단히 결심한 듯하다. 그는 LTFRP가 정말로 법칙으로 볼 만한 것인지 아닌지, 마르크스가 최종 단계에서도 LTFRP를 고수했는지 아닌지, 이윤율이 하락한다는 타당한 증거가 있는지 없는지, 이윤율이 하락한다면 그것이 LTFRP가 말하는 경향 때문인 것인지 아닌지 의문을 던지는 데 논문의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도 모두 답할 것이다.
하비 논문은 다음의 두 가지 다른 측면도 다룬다.
1. 하비는 1980년대 이래 세계 노동인구가 성장한 것이 LTFRP가 작동하지 않음을 보여 준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것이 LTFRP에 대한 초보적 오해에 기초를 둔 것임을 보일 것이다.
2. 하비는 마르크스가 “임금이 너무 낮으면, 유효수요의 부족이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것이 마르크스 문헌에 대한 그 자신의 이전 해석(Harvey 2012)과 모순됨을 보이고, 그의 2012년 입장이 옳았음을 주장할 것이다.
1 최근 ‘교조주의자’ 회원 두 명의 자격을 정지시켰다. 잠재적 설명을 배제하려 애쓰는 것이 교조주의에 반대하는 것으로 제시되고 이런 편견이 매우 자주 받아들여지는 것은 특히 불쾌한 일이다.
우선 LTFRP를 대하는 그의 태도는 놀라운 일도 독특한 일도 아님을 얘기해야겠다. 비록 그가 LTFRP을 기초로 한 위기 이론이 “마르크스주의적 상상 내에서 우상의 지위를 점하고 있다”고 쓰지만, 사실 이보다 더한 모욕은 없다. 정치 영역에서만큼이나 학계에서도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좌파들은 LTFRP를 기초로 한 이론과 그 지지자들을 교조적이라고 단정해 놓고 줄기차게 비난하며 그 이론을 더는 고려하지 않으려 애써 왔다. 예를 들면 M C 하워드 교수와 J E 킹 교수는 자신들의 책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역사》A History of Marxian Economics에서 LTFRP가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의 학문적 신뢰에 큰 손상을 입혔다”고 썼다.(Howard and King 1992, ⅹⅲ) 크샤마 사완트의 조직 ‘노동자 인터내셔널을 위한 위원회’Committee for a Workers’ International는노동인구에 관한 통계 자료
하비는 고용이 현격히 증가하고 있다는 통계 ─ 1980~2005년 세계 노동인구가 11억 명 증가했다는 통계 ─ 를 인용하며, 이를 세계적으로 이윤율이 하락해 왔다고 보는 생각을 부정하는 증거로 사용하려 애쓴다. 그는 이 주제에 관해 1000단어 이상 얘기한 끝에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노동 참가에 대한 이런 증거를 가지고 판단하면, 현재 자본주의가 겪는 곤경들을 이윤율의 저하 경향 탓으로 보는 사람들이 심각한 오류에 빠졌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은 잉여가치 생산과 추출이 수축하는 것이 아니라 어마어마하게 팽창하고 있음을 가리킨다.
통계 자료는 확실히 잉여가치(또는 이윤)가 ─ 절대적 양의 면에서 ─ 크게 증가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여기서 쟁점은 이윤율, 즉 투하자본에 대한 잉여가치(또는 이윤)의 비율이 어떻게 변했느냐이다. 분자가 커진다고 해서 그 분수가 나타내는 값 전체가 커지는 것은 아니다. 이윤율을 계산할 때 분모에 들어가는 투하자본이 분자보다 더 크게 증가하면 이윤율은 떨어진다. 하비가 인용한 통계는 분모가 더 크게 증가하지 않았음을 보여 주지 못하므로 이윤율이 증가했다는 증거가 될 수 없다.
하지만 하비는 ─ 투하자본이 증가했는지 아닌지는 무시한 채 ─ 고용 증가가 그 자체로 마르크스의 LTFRP가 1980년대 초부터는 작동하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라고 힘주어 주장한다. “이윤율이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는 일반 이론이 옳다면, 노동 절약형 기술 변화의 확산은 … 자본에 고용된 임금노동자 수를 감소시키는 경향이 있어야 한다. 이는 마르크스 자신도 기꺼이 인정한 것이다.”
이 말은 틀렸다. LTFRP가 고용 감소를 함의한다는 것을 마르크스도 “기꺼이 인정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려고 하비가 인용한 마르크스의 말은 실제로는 이렇다: 노동 절약형 기술 변화(‘생산성 향상’)는 “특정한 자본에 적용된 노동의 양을 감소시킨다.”(Marx 1991a, pp355-356, 강조는 필자) 예를 들어, 처음에는 투하자본이 100만 달러이고 고용된 노동자가 10명이었는데, 나중에 투하자본은 400만 달러로 고용된 노동자는 20명으로 바뀌었다면, “특정한 자본에”, 이를테면 100만 달러어치 자본에 고용된 노동자는 10명에서 5명으로 감소했다. 그렇다고 해서 고용의 절대 규모가 감소한 것은 아니다.(하비는 그럴 것이라고 보지만 말이다.) 고용의 절대 규모는 10명에서 20명으로 두 배가 됐다.
게다가 마르크스는 LTFRP를 다루기 시작하는 부분에서 상세히 설명하며 하비가 “마르크스 자신도 기꺼이 인정한”다고 말한 것을 명백히 부인했다.
이윤율의 점진적 저하 법칙이 … 사회적 자본에 의해 운동되고 착취되는 노동의 절대량이 증가하는 것, 그리고 이와 함께 사회적 자본이 가로채는 잉여노동의 절대량이 증가하는 것을 막는 것은 결코 아니다. …
이윤율의 저하는 총자본 중 가변적 요소가 절대적으로 감소해서가 아니라 단지 상대적으로 감소해서, 즉 불변적 요소에 대한 가변적 요소의 비율이 감소해서 생긴다.
… 이처럼 이윤의 절대 크기, 즉 이윤의 전체 규모는, 일반적 이윤율이 어마어마하게 감소하는데도 50퍼센트 증가할 것이다. 그러므로 자본이 고용한 노동자의 수(즉, 자본이 운동시키는 노동의 절대 규모), 그에 따라 자본이 흡수하는 잉여노동의 절대 규모(즉, 자본이 생산하는 잉여가치의 양), 그리하여 자본이 생산하는 이윤의 절대 규모는, 이윤율이 점차 저하하더라도 증가할 수 있으며, 또 점진적으로 그리 한다. 이것은 자본주의적 생산이라는 기초 위에서는 가능한 일일 뿐 아니라 ─ 일시적 변동을 제외하면 ─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Marx 1991a, pp322~324, 강조는 원문)
이보다 더 분명하고 확실하게 요점을 설명하기는 힘들 것이다. 고용 증가는 LTFRP가 틀렸음을 입증하는 증거가 결코 될 수 없다.
마르크스의 “분명한 동요와 양면성” 하비는 “그 법칙[LTFRP]의 일반적 타당성에 대한” 자신의 “오랜 회의”를 정당화하려 애쓰며 이렇게 쓴다. “마르크스가 자신이 발견한 것을 법칙, 경향의 법칙, 어떤 때는 그냥 경향이라고까지 부르는 등 그의 말이 갈수록 오락가락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러나 하비가 보기에 마르크스가 ‘경향’과 ‘법칙’ 사이에서 오락가락한 것은 사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과 그 일이 왜 일어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어쩔 수 없이 구분되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마르크스는 한편으로는 이윤율이 하락하는 경향이 있음을 묘사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왜 이윤율이 저하하는 경향이 있는지를 설명하고자 법칙을 내놓은 것이다. 마르크스가 어디서 오락가락했다는 것인가?
마르크스가 LTFRP를 ‘법칙’으로 부를지 ‘경향의 법칙’이라고 부를지 오락가락한 것도 아니다. 그는 경제적 법칙을 모두 경향들의 법칙들로 여겼다. 예를 들어 그는 《자본론》 제3권 제10장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는 이런 일반적 잉여가치율을 하나의 경향으로 가정한다. 모든 경제적 법칙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Marx 1991a, p275) 요점은 매우 간단하다. 이윤율 같은 경제적 변수의 변동을 모두 설명하는 법칙은 없다. 그 변동들이 오로지 법칙에 따라 일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변동은 온갖 종류의 우발적 사건과 제약 요소들의 영향을 받는다. 우발적 사건과 제약 요소에도 불구하고 변수들이 보이는 경향들의 법칙들을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하비에게는 마르크스가 LTFRP에 대해 양면적이었다는 자신의 관점을 뒷받침할 근거가 더 있다. 그중 하나는 이렇다. “마르크스는 《프랑스 내전》 같은 정치적 저작에서는 이윤율 저하 경향에 대해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프랑스 내전》에는 잉여노동이나 잉여가치 같은 현상도 일절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하비는 이를 마르크스가 잉여노동이나 잉여가치의 존재를 확신하지 못했음을 입증하는 증거로 볼 것인가? “그[것들]의 일반적 타당성에 대한 오래된 회의”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여길 것인가?
하비는 마르크스가 LTFRP를 확신하지 못했다는 자신의 가정을 입증할 증거를 또 내놓는다. 하비는 마르크스가 1848년과 1857년의 위기를 분석할 때 그 위기들을 “상업 위기이자 금융 위기”로 묘사하며 이윤율 하락은 지나가듯이만 언급했다고 지적한다. 마르크스주의 학자 미하엘 크래트케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 현재 통용되는 마르크스주의 용어법(침체와 불황을 위기라고 부르는)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마르크스의 1848년·1857년 위기 분석이 중요한 증거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용어 사용법은 마르크스 시대 이후 꽤나 변했다. 마르크스는 상업 위기와 금융 위기를 경제 위기라고 불렀다. 마르크스는 이 위기들과 이 위기들이 촉발한 경기 하강을 구분하며, 경기 변동의 연속된 단계들을 “평탄한 시기, 번성기, 과잉생산 시기, 위기, 스태그네이션” 또는 “평균적 시기, 생산에 큰 압박이 가해지는 시기, 위기, 스태그네이션”으로 묘사했다.(Marx 1990, p580, p785)
게다가 마르크스는 이윤율의 저하 경향이 상업 위기나 금융 위기를 직접 초래하는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는 이윤율의 감소가 간접적으로, 그리고 약간의 지체를 겪은 후 위기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이윤율의 저하는 과잉생산을 촉진한다(이를테면 생산적 투자 수요를 떨어뜨려서). 이윤율의 저하는 금융 투기와 사기 행각도 조장한다. “이윤율이 저하하면 ··· 투기와 일반적 투기 촉진이 나타난다. 추가적 이윤을 얻기 위해 새로운 생산 방법, 새로운 자본 투자, 새로운 모험 등을 앞뒤 가리지 않고 시도하기 때문이다.” 부채가 결국 상환되지 못할 때에야 위기 ─ 즉, 금융 위기 ─ 가 터지고, 이 위기는 스태그네이션으로 이어진다. “특정일에 이행해야 하는 지불 의무의 연쇄 고리가 여러 곳에서 끊어지고, 이것은 자본과 함께 발전해 온 신용제도가 동반 붕괴하며 더욱 격화된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이 격렬하고 첨예한 위기, 갑작스럽고 강제적인 가치 하락, 재생산 과정의 실질적 정체와 교란, 따라서 재생산의 실질적 축소를 일으킨다.”(Marx 1991a, pp349~350, p367, p363)
마르크스가 상업적 금융적 관계망의 파열을 ‘위기’라는 낱말로 표현했고, 이윤율 저하와 위기 발생 사이에 많은 매개 고리가 있음을 인식했다는 것을 이해하면, 그가 때때로 위기를 이윤율 저하 경향과 연결시키지 않고 다룬 것은 놀랄 일도 특별히 의미 있는 일도 아니다. 마르크스는 단지 엄밀하고 변증법적인 인물로서, 한번에 모든 것을 다루다가 혼란스러운 잡동사니를 만들기보다 한번에 하나씩 다뤘을 뿐이다.
하비는 이런 말도 했다. 1868년 이후 “마르크스는 이윤율 저하 이론으로 결코 돌아가지 않았”고 “마르크스는 일찌기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the Grundrises에서 ‘정치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법칙’이라고 강조했던 것을 그의 연구 활동 마지막 10여 년간에는 무시하곤 했는데, 이는 매우 야릇한 일이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LTFRP를 ‘무시’했다는 이 추론에는 근거가 뒤따르지 않는다. 필자는 어떤 이론적 실증적 문제를 만족스럽게 해결하면, 더는 그 문제로 크게 씨름하지 않고 다른 문제를 다룬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도출했던 해답을 없는 셈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기정 사실로 여기는 것이다. 마르크스도 나와 비슷한 방식으로 연구했다는 증거가 있다. 하비는 어떤 식으로 연구하는가?
따라서 진정한 질문은, 마르크스가 다른 문제로 나아가기 전에 이윤율이 왜 저하하는지에 대한 스스로의 설명에 만족했느냐 아니냐는 것이다. 증거들을 보면, 의심할 여지가 거의 없다. 미하엘 하인리히(최근 하비와 비슷한 주장을 했다)의 주장에 답하며 필자와 공저자들은 “마르크스가 자신의 이론적 결론에 만족했으며 《자본론》(그가 출간한 제1권뿐 아니라 출간하지 못한 채 남겨 둔 제2~3권도)을 이론적인 면에서 완결된 결과물로 여겼음을 보여 주는 많은 증거를 마르크스가 1865~1877년에 쓴 편지들에서 찾아” 제시했다.(Kliman, Freeman, Potts, Gusev, Cooney 2013) 하인리히는 이 증거에 답하지 않았고, 하비는 이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피했다.
마르크스가 LTFRP를 정치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법칙으로 봤다는 것에 대해 말하자면, 마르크스가 LTFRP를 초기에만 말하고 그 뒤에는 ‘무시’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1857~1858년에 쓴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에서뿐 아니라, 1861~1863년에 쓴 《경제학 수고》에서도 LTFRP가 옳다고 단호히 말했다. “이 법칙은 정치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법칙인데, 자본주의적 생산이 진보함에 따라 이윤율이 떨어지는 경향을 띤다는 법칙이다.”(Marx 1991b, p104. 강조는 원문) 나중에 《자본론》 제3권의 내용을 쓸 때 마르크스는 LTFRP가 [정치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법칙이라고 주장하는 데서 더 나아갔다. 이제 마르크스는 애덤 스미스 이래 정치경제학이 모두 이 법칙을 찾는 데 초점을 맞춰 왔을 만큼 LTFRP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법칙은 자본주의적 생산에 지대하게 중요하므로 애덤 스미스 이래 정치경제학 전체는 이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춰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Marx 1991a, p319)
LTFRP가 단일 원인론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
하비가 마르크스의 문헌을 부적절하게 이해하는 것도 LTFRP와 그것을 기초로 한 자본주의 위기 이론이 단일 원인론이라는 그의 비난의 핵심에 놓여 있는 문제이다. 하비는 마르크스의 법칙이 ‘너무 경직된’ 여러 가정에 기대는 ‘고도로 단순한 모델’에서 이끌어 낸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비의 주장인즉 이렇다: LTFRP는 가정이 모두 충족될 때에만 유효하다. 그런데 그 가정들 탓에 LTFRP는 노동 절약형 기술 변화 말고도 존재할, 이윤율을 떨어뜨리는 잠재적 요인들을 모두 배제하고, 기술 변화의 효과를 상쇄해 이윤율 저하를 저지할 수 있는 요인들을 모두 배제한다. 그러므로 LTFRP는 단일 원인론이고, 간접적·부수적 요인들을 함께 고려하지 않은 채 LTFRP를 이용하는 위기 이론도 모두 단일 원인론이다.
그러나 하비도 마르크스의 문헌에는 그런 ‘너무 경직된’ 가정이 없다는 것을 안다. “마르크스는 [《자본론》 ─ 클라이먼] 제1권에서는 자신의 가정들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제시하지만, 이윤율 저하 이론을 다루는 부분[제3권 ─ 클라이먼]에서는 그러지 않는다.” 그런데 어떻게 하비는 마르크스가 ‘너무 경직된’ 가정들을 사실상 가지고 있었음을 안다고 말하는 것일까?
3 이 말이 바로 틀린 말이다. LTFRP는 《자본론》 제3권 제3편이 다루는 주제인데, 마르크스는 이미 제2편에서 한 가지 결론을 이끌어 냈다. 바로, 상품의 가치와 그것이 실제로 팔릴 때의 가격이 아무리 다르더라도, 한 경제에서 생산된 상품의 총가격은 총가치와 같(고 그러므로 총가격의 한계는 총가치이)다 하는 결론이다. 따라서 어느 기업이나 산업이 상품을 그 가치 이상의 가격으로 판매해 이득을 얻는 딱 그만큼 다른 자본가들이 손실을 입는다. 즉, 손실을 입은 자본가들의 생산물은 자기 가치보다 낮은 가격으로 판매된 것이다. 이로부터 이끌어 낼 수 있는 결론은 이렇다: 첫째, 총이윤은 생산된 총잉여가치와 같(고 총이윤의 한계는 총잉여가치이)다. 둘째, 가격과 가치의 차이는 LTFRP가 적용되는 경제 전반의 이윤율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4
하비는 최소한 한 번은 명백히 틀렸다. 하비에 따르면, 마르크스의 법칙은 (“노동력을 제외한”)상품이 모두 자신의 실제 가치대로 사고팔리는 것이지, 가치와 다른 가격에 따라 사고팔리는 것은 아니라고 가정한다.마르크스는 상품이 모두 제 가치대로 팔린다는 식의 가정이 아니라, 앞 단락에서 제시한 결론들을 기초로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을 이끌어 냈다.
우리는 이윤율이 개별 자본들의 투하자본 대비 잉여가치 비율과 다름을 살펴봤다. 그러나 자본가 계급의 총자본을 … 고려하면, 평균 이윤율은 이 총자본에 관련돼 계산된 총잉여가치와 다르지 않음도 살펴봤다. …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 번 견고한 기초 위에 서게 된다. 즉, 여러 자본들이 벌이는 경쟁을 고려하지 않고도, 어느 정도 발전한 자본의 일반적 성격으로부터 직접 도출한 일반 법칙을 결론으로 삼을 수 있는 기초 말이다. 이 법칙은 정치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법칙인데, 자본주의적 생산이 진보함에 따라 이윤율이 떨어지는 경향을 띤다는 법칙이다.(Marx 1991b, p104, 강조는 원문)
일반으로 말해, 하비는 마르크스의 법칙을 되도록 좁게 해석해 수많은 제한적 가정들에 기댄 모델로 바꾸었다. 하비는 《자본론》 제3권 제3편 전체가 아니라, 마르크스가 “법칙 그 자체”라고 부른 부분만을 재료로 삼아 그 부분이 LTFRP를 다 설명하는 것처럼 여긴다. 이 탓에 LTFRP는 단일 원인론인 것처럼 보이고, 마르크스가 《자본론》 제3권 제3편의 말미에 다룬 다른 현상이나 제도들과 별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LTFRP가 (필자가 앞에서 설명했듯이) 다양한 상쇄 요인의 영향을 받고 금융제도의 매개를 통해 작동하는 법칙으로서가 아니라, 현실 세계와 관계 없는 추상으로서, 즉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매우 많은 문제를 배제하고 무시한 상상 속에서만 법칙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으로서 보이는 것이다.
하비는 마르크스가 “[LTFRP의] 적용 가능성을 심각하게 제약하는” 매우 많은 요인을 “배제”했다고 말한다. 하비는 마르크스가 여러 현상과 제도를 잇따라 분석에 도입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법칙 그 자체’에만 골몰함으로써, 마르크스의 연구 방법이 LTFRP가 여러 요인을 고려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임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이제는, 분석에 현상과 제도들을 추가로 도입해 나가는 [마르크스의] 방법이 법칙을 그것의 구체적 발현 행태들 속에서 설명하며 풍부하게 만드는 변증법적 과정으로가 아니라, 법칙이 작동하려면 필요한 조건들이 현실에는 존재하는 않음을 암묵적으로 시인하는 것으로 보게 된다. 법칙이 훼손된 것처럼 보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자신의 앞선 논의와 동떨어진 별개의 논의, 즉 “법칙을 도출할 때 사용한 가정들이 제거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와 관련된 논의를 하는 것처럼 보게 된다. 마르크스가 법칙의 지위에 의문을 나타내며 “동요와 양면성”을 보이는 것처럼 보게 된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골자가 전혀 다른 위기 이론이, 즉 내재적 연계도 없고 서로 너무 달라서 “어떤 일원화된 이론으로 욱여넣는 것”이 불가능한 수많은 잠재적 설명 요소와 현상으로 가득 차 있는 체계화되지 않은 공간을 다루는 이론이 필요한 것처럼 보게 된다.
마르크스의 글을 이런 식으로 읽을 필요는 없다. 그럴 필요가 없으므로 그렇게 읽으면 안 된다. 이런 부당한 독서로는 적절한 해석이 나올 수 없다. LTFRP가 단일 원인론이라는 비난이 왜 틀렸는지를 이해하려고 복잡한 방법론적 논의를 할 까닭은 없다. 문제가 단순하기 때문이다.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경향이 있음을 설명하려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이때 필자가 만유인력의 법칙을 얘기하며 사과를 떨어뜨릴 수 있는 다른 요인(예컨대 바람)이나 상쇄 요인(예컨대 공기 저항)을 언급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들을 없는 셈 치는 것은 아니다. 그 요인들을 배제함으로써 쓸모가 거의 없는 단일 원인론 모델을 세우고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만유인력의 법칙이 뉴턴의 제2 운동법칙에서 비롯한 것임을 설명하면서 다른 요소들을 방정식에 삽입하지 않더라도 단일 원인론인 것이 아니다. 그런 다음 공기 저항과 바람을 다룬다고 해서 양면성과 동요를 드러내는 것도 아니고, 만유인력의 법칙이 오로지 진공에서만 적용되고 현실 세계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도 아니다.
LTFRP가 자본주의 동역학의 ‘절대적 진리’는 아니라고 지적한 점에서 하비는 옳다. 다시 말해 LTFRP는 유일한 요인이 아니다. LTFRP는 이윤율 궤적에 나타나는 각각의 변동을 설명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는 LTFRP의 목적이 아니다. 그 목적은 ‘단지’ 마르크스의 가치 이론이, 그의 자본 축적 이론과 결합되면, 이윤율이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하비가 자기 논문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할애해 비판하는 대상이 정확히 누구인지는 모호하다. 예를 들어 하비는 LTFRP에 뿌리를 둔 위기 이론의 지지자들이 “하나같이 … 다른 가능성을 사고에서 배제하는 식으로” 그 이론을 주장하며, “많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이 … 단일인과적 위기 이론”이 있다고 “주장하기를 좋아한다”는 혐의를 제기한다. 누가 그러는 것인지 이름을 적시하지 않아 그의 주장에 답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어느 부분에서 하비는 LTFRP의 “일부 지지자들”이 “금융화는 2007~2008년 공황과 관계 없다고 넌지시 내비친다”거나, “앤드루 클라이먼이 위기와 금융화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가장 강하게 주장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귀에 거슬리게 주장하지 않는다. 심지어 나는 선배들에 대한 존중을 표하면서도 하비가 말하는 것처럼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로 주장한다. “물론 금융 위기가 침체를 촉발했고, 금융 부문에서 나타난 구체적 현상들(과도한 부채비율, 위험한 부동산 담보대출 등)은 위기의 중요한 요인의 일부이다.”(Kliman 2012, p6)
6 그 다음 장은 “이윤율 저하를 … 최근의 경제 위기 및 불황과 연결시키는 두 가지 매개 고리 ─ 낮은 수익성과 신용제도 ─ 에 집중한다.(Kliman 2012, pp11~17) 그리고 3장은 거의 다 2007~2008년의 금융 위기를 다루며 다음과 같은 항목에 대해 논의한다: 1990년대 닷컴 버블이 터진 이후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취한 지나친 금융 완화 정책, 부동산 담보대출의 금융증권화, 서브프라임 대출, 주택 자산담보 대출, 부동산 담보대출에서 담보 인정 비율의 증가, 대출기관의 부채 비율 증가와 요구자본 감소, 1990년대와 2000년대 가계 부채의 증가, 닷컴 버블과 주택 가격 거품을 키운 심리학, 신용평가기관들의 비참할 정도로 부정확한 전망 모델, 금융 위기 초 미국 의회의 부실자산구제계획TARP 거부, 해외 저축의 미국으로의 유입. 이런 논의가 정말로 금융화를 2007~2008년 금융 위기의 발생 요인으로 보지 않는 관점이거나 7 단일 원인론적 접근법이라고 하비가 말한 것에 딱 들어맞는 사례라면, 그가 내놓은 다른 사례들은 더 볼 까닭이 없을 것이다.
필자가 인용한 이 문장은 대침체의 기저에 있는 요인들을 설명하는 내 책의 첫 장에 쓴 문장이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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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Andrew Kliman, ‘Getting Marx Wrong’, New Left 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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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WI: 영국에 시작된 트로츠키주의 조직. 영국 노동당 내 밀리턴트 경향에서 발원했으며 현재 세계 45개 나라에 조직을 두고 있다 ─ 옮긴이. ↩
- LTFRP의 기능과 이 맥락에서 LTFRP의 의미에 대해서는 Kliman, Freeman, Potts, Gusev, and Cooney (2013)를 보시오. ↩
- 하비는 《자본론》 제1권과 제2권 곳곳에서 나타나는 “(노동력을 제외한) 상품은 모두 자기 가치대로 교환된다”는 가정이 제3권에서도 유지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제의 이 가정은 노동력을 배제하지 않는다. 마르크스는 노동력도 자기 가치대로 구매된다고 가정했고, 이 덕분에 이윤이 시장이 아니라 생산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상품 교환이 “자유·평등·소유 벤담이 지배하는 … 천부인권의 참다운 낙원” 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도 설명할 수 있었다.(Marx 1990, p280) ↩
- 마르크스가 이렇게 이끌어 낸 결론들이 내적 일관성이 없다고 보는 관점이 있음을 안다. 그러나 그런 관점은 악의에 찬 거짓 믿음일 뿐이다. Kliman (2007) 8장을 보시오. ↩
- 이 비유는 여러 요소들을 차례차례 도입해 나아간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의 연구 과정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만유인력의 법칙은 LTFRP와 비슷하다. 제2 운동법칙은 노동시간에 따른 가치 결정 법칙(“가치법칙”)과 유사하다. ↩
- 하비는 자신의 논문에서 필자의 책을 언급하지만, 내가 그렇게 주장했다고 하는 그의 관점을 뒷받침하는 증거나 인용은 없다. ↩
- 섀넌 윌리엄스와 필자는 금융화가 대침체 이전 10년 동안 미국 기업들의 자본축적률을 하락시킨 요인이 아니었음을 보여 줬다.(Kliman & Williams 2014) 당연히 이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
참고 문헌
Harvey, David 2012. History versus Theory: A Commentary on Marx’s Method in Capital, Historical Materialism 20:2, 3-38.
Harvey, David 2014. ‘Crisis Theory and the Falling Rate of Profit’.
Howard, M. C. & J. E. King 1992. A History of Marxian Economics: Volume II, 1929-1990. Princeton, NJ: Princeton Univ. Press.
Kliman, Andrew 2007. Reclaiming Marx’s ‘Capital’: A Refutation of the Myth of Inconsistency. Lanham, MD: Lexington Books.
Kliman, Andrew 2012. The Failure of Capitalist Production: Underlying Causes of the Great Recession. London: Pluto Books.[국역: 《자본주의 생산의 실패: 세계대침체의 원인》, 정성진·하태규 옮김, 한울아카데미, 2012.]
Kliman, Andrew, Alan Freeman, Nick Potts, Alexey Gusev, & Brendan Cooney 2013. ‘The Unmaking of Marx’s Capital: Heinrichs Attempt to Eliminate Marxs Crisis Theory’.
Kliman, Andrew & Shannon D. Williams 2014. Why ‘Financialisation’ Hasn’t Depressed US Productive Investment, Cambridge Journal of Economics. Print version forthcoming.
Marx, Karl 1990. Capital: A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Vol.Ⅰ. London: Penguin.[국역: 《자본론: 정치경제학 비판》 제1권, 김수행 옮김, 비봉출판사, 2004.]
Marx, Karl 1991a. Capital: A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Vol.Ⅲ. London: Penguin.[국역: 《자본론: 정치경제학 비판》 제3권, 김수행 옮김, 비봉출판사, 2008.]
Marx, Karl 1991b. Karl Marx, Frederick Engels: Collected Works, Vol.33. New York: International Publish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