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 데이비드 하비 비판
데이비드 하비에 대한 답변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은 경제 위기를 설명할 수 있는가? *
1 무엇보다 우선 이에 감사한다. 쟁점은 간단하다. 자본주의 생산에서는 반복적·주기적 위기가 일어나고, 그 위기는 산출, 고용, 소득의 급격하고도 지속적인 하락을 초래하는데,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이 위기의 주된 원인인가 아닌가? 하비는 그의 논문에서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은 위기의 유일한 원인이기는커녕 주된 원인도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그래서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은 마르크주의 위기 이론의 토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이에 반대한다.
데이비드 하비는 그의 미출간 논문의 초안을 공개하고, 그 논문이 다룬 쟁점을 두고 토론·논쟁하는 것에도 동의했다.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을 중시하는 견해는 다수가 아니다
2 사실, 1920~30년대에 이르러서야 헨리크 그로스만과 폴 마틱이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3
하비는 이런 말로 그의 논문을 시작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경제 위기 설명의 근저에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이 있는 경우가 흔하다.” 글쎄, 어떤 사람들은 필자처럼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 대다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그렇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지 않다.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을 자본주의에서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호황 및 불황과 관련지어 보는 견해는 다수였던 적이 없다. 마르크스 사후 초기 마르크스주의자들인 카우츠키 레닌·부하린 룩셈부르크·힐퍼딩, 스탈린주의 경제학자인 바르가는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을 마르크스주의 위기 이론의 핵심으로 보지 않았다.4 그럼에도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을 중시하는 견해는 여전히 소수였고(폴 스위지와 폴 바란을 보라 5 ) 지금도 그렇다. 하비를 포함해 오늘날 가장 저명한 마크르스주의 경제학자들은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미셸 아글리에타, 제라드 뒤메닐, 미셸 위송, 우노 코조, 마코토 이토, 라즈닉 울프 등). 6 전 세계의, 특히 유럽과 미국의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도 대부분 위기를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과 관련지어 보지 않는다. 7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적어도 1970년대 이후)에는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을 위기 이론의 기초로 삼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가 늘었다(야페, 카르케디, 코고이 등).8 헨리크 그로스만이나 폴 마틱, 또는 이와 관련해서 코고이나 카르케디를 ‘앵글로색슨’으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어쨌든 필자는 분명 앵글로색슨이다.
2011년 3월 런던대학교 동양아프리카연구대학SOAS의 마르크스주의 학자 코스타스 라파비차스는 제라드 뒤메닐(그도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을 위기의 주요 원인이나 유일한 원인으로 보지 않다)과 대화하며 이렇게 주장했다.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을 위기의 유일한 원인으로 지목하는 견해는 “앵글로색슨학파”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이 최근에 만들어 낸 것이고, ‘고전적 전통’이었던 적이 없다고 말이다.9 그래서 하비가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을 기초로 한 마르크스주의 위기 이론이 “마르크스주의적 상상의 대표 주자처럼 돼 있”으니 허물어 버려야 한다고 결심하게 된 것이다. 필자와 같은 입장의 사람에게는 이보다 더 큰 찬사가 없을 것이다.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을 위기 이론의 토대로 보지 않는 견해가 더 많다는 사실을 볼 때, 안와르 셰이크, 프레드 모슬리, 굴리엘모 카르케디, 앤드루 클라이먼, 앨런 프리먼, 믹 브룩스, 피터 존스, 에스테반 마이토, 세르지오 카마라, 타피아 그라나도스, 쥬앙 마테오, 그리고 필자가 최근에 수행한 연구들이 어느 정도 관심을 끌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유일한 인과관계
10 그리고 대다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에서 위기는 시기에 따라 원인이 다를 수 있다고 본다. 사실 하비가 그의 논문 말미에 썼듯이, “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처럼 나도 위기의 원인을 하나로만 설명하는 이론은 있을 수 없다고 본다.” 뒤메닐은 주요 위기들(1980년대 위기, 1930년대 위기, 1970년대 위기, [2008~09년의] 대침체)에는 각각 다른 ‘정세적’(하비의 표현) 요인이 있다고 주장한다. 11 이와 마찬가지로 레오 파니치와 샘 긴딘도 최근에 상을 받은 그들의 책에서 각 위기의 기원은 모두 다르다고 주장한다. 12
최근에 필자는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만을 위기의 원인으로 “편집증적으로” 보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라는 비난을 받는다. 이런 절충적이고 정세적인 견해에 필자는 즉각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카르케디의 말로 응수하겠다. “어떤 마르크스주의 저술가들은 특히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같은 것을 ‘단일 원인론적’ 설명이라며 거부한다. 그 대신 이렇게 주장한다. ‘모든 위기에 통용되는 단 하나의 타당한 설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위기는 모두 자본주의의 ‘속성’이며 위기는 시기와 맥락에 따라 상이한 형태로 나타난다고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손에 잘 잡히지 않고 신비스러운 ‘속성’이 상이한 위기의 상이한 원인으로 나타난다면(그 ‘속성’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 상이한 원인들이 모두 어디서 비롯했는지를 알지 못한다면, 위기 이론이라는 것은 없게 된다.카르케디는 계속하여 이렇게 주장한다. “위기가 반복되지만 그 원인은 모두 다 다르다면, 그 서로 다른 원인들은 서로 다른 위기를 설명할 수는 있을 테지만, 위기의 반복을 설명할 수는 없다. 위기가 반복된다면 공통된 원인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 공통된 원인은 각각의 위기에서 각각의 원인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래서 위기를 일으키는 유일한 인과관계를 에두를 방도는 없다.” ‘유일한 인과관계’라는 말은 조금 지나치기는 하다. 그보다는 이렇게 말하는 편이 낫겠다. 즉, 위기를 설명하는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사건의 겉모습과 직접 원인 이면까지 들여다보아 본질적이고 궁극적인 원인을 밝혀야 한다고 말이다. 뉴턴이 중력과 작용 반작용의 영향을 받는 지구 위의 물체들의 움직임에서 그 근본 원인을 가려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우리는 위기의 근본적이고 궁극적인 원인을 가려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위기를 ‘촉발’하는 요인은 따로 있을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즉, 위기는 주식시장 붕괴(1929년)나 주택시장 거품 붕괴(2007년)나 상품 가격의 급격한 상승(1974년 유가 폭등)으로 시작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들은 각각의 상이한 ‘정세적’ 사건 속의 위기 촉발 요인일 뿐이다.
《자본론》은 ‘일반적’(또는 ‘추상적’) 논의에서 시작해 구체적 논의로 한발 한발 나아간다. 15 이 점이 사활적으로 중요하다. 주류 부르주아 경제학의 방법이 저지른 최악의 최악이 사물의 겉모습만 보고 본질을 보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본질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고 경제 비평에 살을 덧붙여 가며 그 겉모습까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 제3권의 말미에야 나온다. 그렇다, 하비가 말했듯이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심지어 제3권조차 대부분 ‘자본 일반’(자본이 노동으로부터 잉여가치를 뽑아 내는 것)이라는 추상 수준의 논의로 돼 있는 것이다. 이는 매우 합당한 이유 때문이었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핵심 운동 법칙들을 이끌어내고자 했다는 이유이다. 그 법칙들은 축적을 추동하고 자본주의 자체의 몰락 가능성을 담고 있는데, 그 중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이 가장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마르크스는 많은 자본들(‘다수 자본’), 즉 자본가들 사이의 경쟁과 잉여가치 분배를 다룬 뒤에야 신용, 이자 낳는 자본, 국가를 다뤘다.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은 이윤을 우선 한 경제의 전체 잉여가치로 다룬 뒤에 그것이 ‘기업 이윤’, 지대, 이자로 나뉘는 것을 다룬다. 이것들은 《자본론하비는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이 “특정 전제 조건 하에서 도출된다”고 주장한다. 나중에 그는 그 전제 조건들이 “드라콘의 법” 같은 것이라고 했다. 곧, 제약이 너무나 심해서 실재와 별 관련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모델이나 법칙은 그 것들의 전제 조건이 충족되는 한 언제나 옳다. 중요한 것은 마르크스가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을 위해 세운 전제 조건들이 매우 현실적이라는 점이다. 그 전제 조건은 단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노동력만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둘째, 자본은 더 많은 가치를 축적해야 하는데, 보통 자본의 유기적 구성을 높임으로써만 그럴 수 있다.
자본의 유기적 구성은 생산수단(또는 자산)의 가치와 노동력의 가치(임금) 사이의 비율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비율은 상승한다. 그렇다고 해서 꼭 임금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임금이 오를 수도 있지만, 생산수단의 가치가 더 빨리 오를 것이다. 노동은 가치를 창출한다. 자본주의가 확장해서 전 세계로 뻗어 나감에 따라 시간이 지날수록 자본의 유기적 구성은 상승할 것이다. 마르크스가 세운 전제 조건은 이 두 가지가 전부인데, 내 보기로 현실적이다.
하비의 주장과 달리, ‘완전경쟁’은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을 위한 전제 조건이 아니다. 또, 하비의 주장과 달리, 축적 과정에서 그 가치가 ‘실현’돼야 하는 것도 전제 조건이 아니다. 상품이 원래 가치가 아니라 생산가격이나 시장가격으로 거래되더라도,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은 영향받지 않는다. ‘유효수요’가 떨어지지 않아도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은 작용한다. 상품이 모두 다 팔려도 이윤율은 떨어질 수 있는데, 이것이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의 장점이다. 그리고 독점이 나타나고 창출된 가치가 실현되지 않아도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의 작용은 ‘제약’받지 않는다. 오히려 독점 출현과 가치 실현 실패가 이 법칙이 작용한 결과다.
16 카르케디와 필자는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이 모호하다는 비판에 이미 답변했으며, 17 다른 사람들도 답변했다. 18
하비는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이 ‘불확정적’이라고 주장한다. 이 말은 이 법칙을 현실에서 검증해 봐야 한다는 뜻일 수 있다. 이런 뜻이라면 사실 법칙이란 모두 불확정적이다. 몇몇 현실적 전제 조건을 가지고(그래서 불확정적이다) 시작하면 그 법칙은 현실에서 검증될 수 있는 논리적 결과물로 이어진다. 또한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예측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이윤율이나 이윤량이 꾸준히 떨어지면 자본주의 생산이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하비는 ‘불확정적’이라는 말을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에서 위기로 이어지는 논리가 없다는 뜻으로 쓴 듯하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그 법칙 자체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사실 이 비난은 마이클 하인리히와, 그에 앞서 폴 스위지가 한 것이다.마르크스가 이 법칙을 버렸는가?
19 사실 하비는 엥겔스가 마르크스의 [《자본론》] 제15장에 “덧칠”을 하고 오해를 주는 제목을 달았다고 말한다. 하비는 자신의 입장이 다음과 같이 해석되는 것을 인정한다.(그리고 이것이 전부다.) “나는 오랫동안 이 법칙이 과연 유효한지 의심하고 있었는데, 하인리히의 설명은 대체로 내 생각과 일치했다.” 글쎄, 하비는 이 말로 위안을 삼을지 모르겠지만 사실에 들어맞지는 않는다.
마이클 하인리히처럼 마르크스 엥겔스 저작 전집MEGA 출판 작업을 하는 저명한 마르크스주의 학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마르크스가 말년에 가서는 십중팔구 위기를 설명하는 것으로서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을 버렸고, 마르크스 사후 엥겔스가 《자본론》을 편집하며 이 법칙을 위기 이론으로 왜곡해 재삽입했다고 말이다.20 최근 프레드 모슬리는 마르크스의 수고를 가지고 엥겔스가 《자본론》 제3권을 편집한 것을 다룬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엥겔스가 마르크스의 의중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결론지었다. 21
가엾은 엥겔스는 MEGA 출판 작업을 하는 현대 마르크스주의 학자들에게 비판을 받아 왔다. 듣자 하니, 그 학자들은 마르크스의 가까운 전우이자 공동 작업자인 사람보다 마르크스의 의중을 더 잘 안다고 한다. 그러나 하인리히의 주장과 달리 마르크스가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을 버렸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마르크스는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을 정치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법칙으로 여겼다. 내 보기로 “마르크스는 결코 자신의 이론으로 되돌아가지 않았다.”(하비) 왜냐하면 그 이론은 버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위기의 주기적 성격을 설명할 때 이 이론을 어떻게 적용할지를 연구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다.경향과 반대 경향 하비는 이렇게 말한다. “마르크스는 그의 발견을 어떨 때는 법칙으로, 어떨 때는 경향의 법칙으로, 어떨 때는 심지어 그냥 경향으로 부른다.” 그러면 한번 물어 보자. 이윤율 저하 경향은 법칙인가 경향인가? 사실 마르크스의 분석에서 ‘법칙’은 모두 경향이다. 다시 말해, 법칙들은 특정한 방향으로 이끄는 힘으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그러한 일반적 잉여가치율 ─ 다른 모든 경제 법칙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경향으로 볼 때 ─ 은 이론적 단순화를 위해 가정하는 전제 조건이다.”
23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윤율이 떨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윤율이 항상 떨어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 경향 때문이다. 실제로 반대 경향은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이 주기적으로 작용하는 성격을 갖도록 작용한다.
하비는 그의 논문 첫머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필자가 “현재 장기 불황이 전적으로 이 경향(이윤율 저하 경향) 때문이라고 본다”고 말이다. 이 말은 정확하지 않다. 왜냐하면 경향이라는 것은 반대 경향의 존재를 내포하고 있고, 그래서 그 경향 혼자서는 위기의 원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은 경향이자 ‘법칙 그 자체’이다. 하지만 변증법적으로 경향은 반대 경향과 함께 나타난다. 이 둘 사이의 차이가 중요하다. 경향은 결국에는 반대 경향보다 우위에 서는 법칙이다. 그래도 반대 경향은 얼마 동안은 경향을 유보하거나 역전시키거나 늦출 수 있다.24 필자는 《대공황》에서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은 장기적으로뿐 아니라 주기적으로도 작용한다고 주장했다. 반대 경향이 하는 구실 때문이다. 이 점에서는 ‘단일 인과적’ 저술가 굴리엘모 카르케디도 다르지 않다.
하비는 “이 법칙의 지지자들은 보통 반대 경향들을 경시한다”고 말한다. 정말로 그런가? 필자는 하비가 헨리크 그로스만을 읽었으리라고 확신한다. 그로스만은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을 자본주의 붕괴와 반복되는 위기를 설명할 이론으로서 ‘편집증적으로’ 지지하는 대표 인물이다. 그로스만은 그의 책에서 68쪽을 할애해 ‘법칙 그 자체’를 설명하고 71쪽을 할애해 반대 경향들을 모두 설명한다.25 나타나는데, 사실 이윤율 저하 경향이 핵심 반대 경향들보다 우세해 나타나는 결과물이고, 그러한 가치 창출 원천을 거의 다 소진시킨 국민경제에서는 이윤을 떨어뜨리는 압력을 가한다.
사실 반대 경향은 많이 있다. 하비는 그것들을 “잡다한 것들”이라고 부르다. 그런데 하비는 필자가 평소 두 가지를 핵심으로 여겼음을 지적했다. 잉여가치율 증대와 불변자본의 저렴화. 필자가 이 두 가지를 중시하는 것은 그것들이 법칙의 추상 수준, 즉 ‘자본 일반’의 수준에서 작용하기 때문이다. 세금, 대외 수익, 국가 신용도, 독점 등의 반작용 요소들은 ‘다수 자본’의 차원에서 작용하는 것들이다. 자본의 세계화라는 반대 경향은 자본이 이른바 신흥경제에서 값싼 농촌 노동을 도시화해 가치 창출의 새 원천을 찾아다니면서(하비가 이 과정을 분석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하비는 자본의 회전 속도를 높이는 것도 반대 경향으로 지목한다. 회전 속도 증가는 개별 자본가들에게는 이윤율을 높여 주겠지만, 오로지 회전 속도가 ‘더 느린’ 다른 자본가들을 희생시켜서만 그렇게 한다. 평균 회전 속도는 총자본에 적용된다. 그리고 평균 회전 속도는 통신, 운송, 재고 관리의 효율성 증대로 더 빨리질 수 있다. 하지만 불변자본이 동시에 증대하지 않는다면 평균 회전 속도 증가는 이윤율만 높일 뿐이다.27 하지만 이런 비판은 필자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 필자의 책 《대불황》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필자가 많은 지면을 할애해 미국 주택시장 거품 형성과 붕괴, 은행 위기, 파생상품의 구실 등을 다뤘다는 것을 알 것이다. 필자가 최근에 블로그에 쓴 글을 봐도, 이윤율, 신용(부채), 은행, 위기 사이의 관계를 다룬 글이 적어도 25개나 된다. 그리고 하비가 ‘히스토리컬 머티리얼리즘’(역사유물론) 대회에서 아이작 도이처 상을 받고 연설했던 2012년에 필자는 “부채 문제”라는 제목의 두툼한 논문을 발표했다. 28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을 중시하더라도 다른 요인들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하비는 필자 같은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 지지자들을 이렇게 비판한다. “[그들은] 금융화가 2007~08년의 위기와 아무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다. 현실의 실제 사태 전개를 볼 때 이 주장은 우스꽝스럽다. 또한 이 주장은 위기 형성에 일조한 은행가와 금융가들의 책임을 면제해 준다.”주기적 위기와 붕괴
하비는 마르크스가 “위기를 자본주의의 임박한 붕괴를 나타내는 징후로 보기보다는 점점 더 자본주의가 재편되고 갱신되는 국면으로 보게 됐다”고 주장한다. 하비의 말이, 마르크스에게는 자본주의의 붕괴를 향하는 위기를 설명하는 이론은 없고 오로지 주기적 위기를 설명하는 이론만 있다는 뜻이라면, 그것은 옳지 않다. 마르크스는 주기적 위기와 장기적 위기를 모두 설명했다. 그렇다, 위기는 가치(와 사용가치)를 파괴해,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으로 말미암아 떨어진 이윤율을 회복시킴으로써 ‘회복’의 조건을 창출한다. 그러나 마치 영구적 위기가 없듯이, 영구적 피난처도 없다.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이 다시 한번 힘을 발휘해 이윤율이 다시 떨어질 것이며, 결국 새 위기(불황)가 시작될 것이다. 그리하여 마르크스가 썼듯이, “옛 오물들이 다시 드러난다.” 게다가 반대 경향들이 발휘하는 지연 반전 능력이 약해질수록 자본이 가치와 잉여가치를 가져가기 더 어려워진다. 자본은 더는 생산력을 충분히 발전시키지 못한다. 그래서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은 위기의 원인을 설명해 줄 뿐 아니라,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일시적 성격도 보여 준다.
주기적 위기는 어떤 균형을 복구해 주지 않는다. 위기는 신고전파가 상정하는 균형을 복구해 주지 않는다. 오히려 축적 과정을 갑자기 재개시키지만 다시 역동적으로 움직이게 한다. 균형은 우연일 뿐이다.
증거
하비는 방법과 법칙을 다루면서 “그 법칙의 입증 증거로서 제시된 이윤율 하락을 보이는 그래프와 통계자료를 모두” 의심한다. 여기에서는 두 가지 쟁점이 있다. 첫째, 자료가 올바른가? 현대 자본주의 내내, 또는 적어도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주요 자본주의 경제들에서 이윤율이 하락했는가? 둘째, 이윤율이 장기적으로 하락한다는(중간중간 이윤율이 상승하는 시기가 끼어들겠지만) 명백한 증거가 있다면, 그것은 마르크스의 법칙으로 설명되는가? 또는 이윤율이 떨어지는 또 다른 (더 유효한) 이유가 있는 것 아닌가? 이것들이 하비가 제기한 문제들이다.
29 마르크스주의 학자들이 1970년대 이후, 그리고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세계 곳곳 여러 국민자본들의 이윤율을 측정해 얻어 낸 새 연구 결과들도 있다. 그 결과들을 보면 이윤율은 장기적으로 하락한다. 30 하비가 지적하듯이, 필자는 블로그와 발표문에 이런 연구들을 소개해 놓았다(하비의 주석 1번과 2번을 보시오).
이윤율이 장기적으로 떨어진다는 증거는 발에 채일 만큼 많다. 19세기의 가장 중요한 자본주의 경제인 영국,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자본주의 경제인 미국 모두에서 그렇다.다음 문제로 넘어가자. 자본주의에서 이윤율이 떨어지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것을 신뢰한다고 해도, 그 경향의 원인은 마르크스의 법칙이 아닐 수도 있다. 하비가 썼듯이, “이윤은 여러 이유 때문에 하락할 수 있다.” 하비는 수요 감소(포스트케인스주의의 설명), 임금 인상(이윤 압박설의 설명), 자원의 희소성, 독점력(산업자본한테서 지대를 받아내기) 등을 언급한다. 그렇다. 다시 잡다한 것들이다. 그런데 과학 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잡다한 가능성들로부터 주요 원인을 가려내려 노력하는 것 아닌가? 이윤율이 하락할 때 그것이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상승(잉여가치율의 상승으로도 모두 상쇄되지 않는) 때문이라는 것을 보인다면, 마르크스의 법칙이 위기의 원인이라는 좋은 증거가 생기게 된다. 사실 바로 이것이 여러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이 특히 미국(미국만은 아니지만) 이윤율 추이를 연구해 보여 준 것이다.
32 이윤율이 올라갈 때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떨어졌고, 이윤율이 떨어질 때 자본의 유기적 구성은 올라갔다. 달리 말해, 이것은 이윤율의 운동은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반대 운동이 일으킨다는 강력한 증거이다. 게다가 필자만 이것을 보여 준 것이 아니다.
사실 필자가 “잡다한 그래프들”에서 보여 준 것도 바로 이것, 즉 이윤율과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반비례 관계라는 것이다.다른 ‘잡다한’ 원인들은 이 운동을 강화하거나 이 운동에 반작용한다. 그것들은 상황에 따라 발생하거나 발생하지 않으므로 부수적이다. 그것들이 나타날 때는 위기에 특수한 형태를 부여한다.
유기적 구성의 상승과 생산성
하비는 이렇게 말한다. “여기서 전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노동생산성 변화가 이윤율에 미치는 직접적 영향을 측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법칙에 따르면,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올라갈 때 노동생산성도 같이 올라간다. 이것이 자본 축적의 이면이다. 하지만 노동생산성의 상승은 결국 이윤율 하락과 결합된다는 점에서 큰 모순이 생긴다. 자본이 노동생산성 향상으로 창출된 새 가치를 모두 가져가고 노동자들은 근근이 연명만 한다고 할지라도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올라 이윤율은 결국 떨어진다. 노동생산성 향상이 이윤에 미치는 영향은 노동착취율에 따라 달라진다. 생산성이 오른다고 자동으로 이윤이 오르지는 않는다. 생산성은 사용가치로 측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자본이 생산성을 높이면 그 자본은 뒤처진 자본으로부터 잉여가치를 가져갈 수 있다.
그런데 무엇이 이러한 생산성 혁명(예를 들어 헨리 포드가 조립라인 기술을 채택한 것)을 추동하는가? 그것은 분명히 살아 있는 노동보다 자본재에 더 많이 지출하는 것, 즉 자본 축적, 다시 말해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상승이다. 그래서 생산성이 올라가면 노동력의 가치가 떨어지며 불변자본이 저렴해진다. 이 상황에서 이윤율은 올라갈 것이다. 하지만 생산성 향상은 자본의 유기적 구성을 높임으로써만 가능한데, 이는 이윤율을 떨어뜨릴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이윤율이 하락하는 경향이 유력해진다.
하비는 자본의 가치 구성과 자본의 유기적 구성을 구분하고자 했다.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 “전체로서 자본의 가치 구성은 기껏해야 동어반복으로 보이고, 최악으로는 완전히 일관성 없는 개념으로 보인다.” 하비가 주장하기를, 이는 “잉여가치 생산이 자본과 관련한 생산성을 유일하게 측정할 수 있고, 이것으로 생산성의 변화를 모두 설명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비는 생산성과 이윤율을 동일시하는 잘못을 하고 있다. 이윤율이 생산성을 측정한 것이고 생산성 변화가 이윤율 변화를 설명할 수 없다면 이것은 동어반복이 된다. 하지만 이윤율 변화를 설명하는 것은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변화이므로 이 말은 동어반복이 아니다. 그리고 소위 ‘일관성이 없다’는 말은 이 두 개념에 대한 하비의 오해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자본의 유기적 구성과 가치 구성 ─ 전자는 한 기업이나 ‘직종’이나 부문 전체 내 가변자본에 대한 불변자본의 비율로 정의된다. 후자는 전체로서 자본의 생산성으로 측정된다.” 이 말은 틀렸다. 벤 파인은 마르크스의 의중을 더 잘 설명한다. “자본의 유기적 구성은 축적의 결과를 전적으로 생산 영역을 고려해 측정한다. … 반면 자본의 가치 구성은 축적 과정을 교환 영역의 측면에서 반영한다.” 파인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자본주의에 고유한 생산방식과 결합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상승은 ‘법칙 그 자체’의 원천이다. 반면, 자본의 가치 구성의 형성은 반대 경향들과 관련돼 있다.
정확하게 말해서 생산성 변화는 자본의 유기적 구성 상승을 동반하지만(생산성 증가가 가격을 떨어뜨려 그 효과가 완화된다고 해도), 잉여가치 ‘생산’은 잉여가치율 또는 착취율로 표현된다.
여기서 마르크스가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을 위해 세운 두 가지 전제 조건을 다시 만나게 된다. 오로지 노동력만이 가치(와 잉여가치)를 창출한다. 자본은 유기적 구성을 끌어올림으로써만 확장하고 축적할 수 있다. 이 전제 조건들이 현실에서 사라졌는가? 자본의 유기적 구성(과 가치 구성)은 상승하는가?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상승하면 이윤율이 하락하고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하락하면 이윤율이 상승하는가? 증거들을 보면 그렇다.
하비는 이런 복잡성의 본보기로서 한 경제 내 수직적 통합의 정도를 이용한다. 더 많은 경제 활동이 외주화되면 자본의 유기적 구성은 하락하는가? 그는 옳게도 이것으로는 실제의 자본의 유기적 구성을 측정하기가 더 힘들다는 점을 지적한다. 하지만 같은 수의 노동자가 정확히 같은 자본 설비를 이용해 정확히 같은 업무를 수행한다면, 그들이 모두 같은 회사 소속인지 아닌지, 그들의 활동이 외주화됐는지 아닌지는 확실히 전체 경제와는 무관한가? 필자는 해당 경제의 기업 투자 총체를 이용한다. 그래서 하비가 지적한 수직적 통합의 정도 문제는 개별 기업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하비는 어쨌든 화폐가 자료를 왜곡하고, 특히 인플레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가치 창조와 화폐가 하는 일 사이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진다”고 주장한다. 자료 수집가들은 이런 이례적 상황을 무시한다. 반대로 많은 사람들은 화폐 인플레의 효과를 제거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였고, 덕분에 가치 측면에 최대한 근접해서 기저의 변화를 식별할 수 있다(이와 관련해서는 클라이먼과 카르케디 등을 보시오).
필자 등이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이 이윤율 하락을 가장 잘 설명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자료와 증거를 들이 밀어도 하비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도 그는 친절하게도 이렇게 말한다. 화폐로 표현된 이윤율이 실질적이듯이, 필자 등의 자료도 모두 “무가치하지는 않다”고 말이다. 하비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화폐 형태로 표시된 이윤율이 하락한다는 확실한 증거는 중요한 사회적 사실로서,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고 우리는 그것에 반응한다. 전 세계에서 화폐로 표현된 이윤율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연구하는 것은 사활적으로 중요하다.” 이 말은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 지지자들이 수행한 경험적 연구 결과에 반대한 그의 앞선 비판들을 무색하게 만든다.
다른 가능성들
하지만 하비는 자료에 대해 회의적 태도를 내비치는 것을 넘어선다. 그는 어떻게 측정된 것이든 이윤율이 떨어진다는 것을 믿지 않고,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보다 자본주의에서 반복되는 위기를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있다고 주장한다.
첫째 문제와 관련해 하비는 현대 경제의 다양한 부문에서 이윤이 상승했다는 것을 언급한다. 주택시장, 주식시장 투자, 유명 상표가 부착된 제품 등. 그는 이렇게도 말한다. “오늘날 기업 언론 분야에서” 미국 기업들이 “높은 이윤율”로 영업을 한다고 알려져 있고, “이윤율은 아니지만 이윤량은 깜짝 놀랄 만큼 성장했다.” 글쎄, 이윤율에 대해서는 하비가 “일화적 증거”라고 부른 ‘기업 언론’에 의존하기보다는 적절한 연구와 자료 분석이 필요하다.
35 신문들이 보도하는 기업 이윤 상승 사실을 인용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은데, 왜냐하면 같은 시기에 이윤율은 하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음 얘기는 대체로 사실이다. 불황 직전 ─ 기업들(그 중 가장 취약한 기업들)이 신규 생산을 해 봐야 이윤율뿐 아니라 절대적 이윤조차 줄어드는 때 ─ 을 제외하고 한 경제에서 이윤량은 언제나 증대한다.
첫째, 마르크스의 법칙은 이윤율 하락에 관한 것이지 이윤량 하락에 관한 것이 아니다. 물론 이윤율 하락이 매우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해 이윤량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말이다. 하비는 마르크스의 법칙이 “하락하는 이윤”(p2)을 설명하는 것으로 언급하는 실수를 저질렀다.36 이러한 자본의 절대적 과잉 축적은 투자가 붕괴되는 순간을 불러오고, 그 뒤로 파산, 실업, 소득 감소가 이어진다. 달리 말해, 불황을 촉발한다. 37
둘째, 필자 등은 이윤량과 이윤율의 관계를 파악하려고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다. 마르크스 자신이 주장했듯이, 투자에 대한 이윤율이 떨어져 신규 투자가 이윤량과 새 가치의 하락으로 이어지는 지점이 축적 과정에 존재한다.38 믹 브룩스도 비슷한 연구 결과를 보여 줬다. 39 이에 대해서도 위기에 대한 이런 설명을 지지하는 필자 등에게는 “잡다한” 그래프와 자료가 있다.
타피아 그라나도스의 연구 결과를 보면, 이런 연쇄적 인과관계의 고리가 1945년 이래 미국 경제에서 나타났고, 필자와 카르케디의 연구 결과를 보면, 이번 2008~09년 대침체 때도 나타났다.하지만 하비는 마르크스의 법칙보다는 다른 원인으로 자본주의 위기를 설명하기를 더 좋아한다. 신용, 금융화, 금융시장, 노후화로 말미암은 고정 불변자본의 가치 하락, 무엇보다 자본가들의 투자와 이윤에 견준 실질임금의 하락으로 말미암은 소비자 수요의 제약 등이 이 원인들로 지목된다.
진부한 이야기
하비는 “대중의 빈곤과 제약된 소비”라는 흔해 빠진 이야기를 “모든 실질적 위기의 궁극적 원인들”이라고 주장한다. 이 문구는 사실 《자본론》 제3권의 화폐 자본과 실물 자본을 다루는 장에서 가져온 듯하다. 마르크스는 그 장을 “혼동”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놀랄 것은 없다. 그 장은 1844년 은행법과 관련해 통화정책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들에 대한 정리되지 않은 인용들로 이뤄져 있다. 《자본론》 제3권의 이 부분은 명확한 결론이 없으며, 그래서 마르크스 자신이 더 연구하기 위해 쓴 예비적 노트로 보인다. 이와 비교해 《자본론》 제3권의 이윤율을 다룬 장들은 매우 간결하고 일관성 있게 작성됐다. “대중의 빈곤과 제약된 소비”라는 인용문이 눈에 띈다. MEGA 출판 작업에 참여한 학자들은 이 말이 원래는 엥겔스가 본문에 포함시킨 괄호 안의 주석이라고 지적한다. “궁극적 이유”the Ultimate Reason는 MEGA에서는 “마지막 토대”der letzte Grund라고 돼 있다. 즉, “이유”는 진부한 의미로 잘못 번역된 것이다. 이 말은 자본주의 위기의 시작을 설명하고자 사람들이 사용하는 ‘원인’cause이라는 개념과 공통점도 전혀 없다.
《자본론》 제3권에서 인용된 그 말은 맥락을 무시하고 가져다 쓰면 마르크스가 과소소비론의 위기론을 가졌다는 견해를 지지하는 데만 이용될 수 있다. 인용된 그 말은 마르크스가 상업 신용과 실제 위기의 관계를 다루는 맥락에서 등장한다. 마르크스가 주장하길, 위기의 시기에는 시장에 공급은 과잉되지만 신용은 위축된다.(Marx, 1967c, p483) 그러므로 여기서 마르크스가 실현 위기, 즉 불변 가격에서 상품이 모두 판매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언급하는 것이 분명하다.
마르크스의 주장은 경쟁이 “생산력을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즉, 경쟁이 생산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비록 사회의 절대적 소비력만이 그것의 한계를 정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생산력의 발전은 노동의 방출과 함께 이뤄지며, 위기가 폭발할 때 이런 방출은 대중의 소비를 줄인다. 자본가들의 생산적 비생산적 소비도 줄어든다. 과소소비는 위기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무엇이 과소소비를 초래하는가? 그 대답은 분명한데, 바로 저임금이다. 그런데 임금은 왜 하락하는가? 임금이 하락하는 이유는 고용이 임금률과 함께 떨어지거나 임금률이 고용과 함께 하락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가치가 더 적게 생산되거나 자본이 더 많은 가치를 가져가기 때문에 임금이 하락한다. 고용이 일반적으로 줄어든다면 경기가 아랫쪽으로 향하고 있고 위기가 이미 시작됐을 수 있다. 이윤 증가로 임금이 하락한다면 이것은 위기의 원인이 아니라 이윤율 상승 때문이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위기가 수요 부족 또는 더 많은 유효소비 때문에 벌어진다고 말하는 것은 순전한 동어반복이다” 하고 말하면서 과소소비론의 위기 설명을 분명하게 거부했을 때 “문제들을 혼동하지”(데이비드 하비) 않았다. 과소소비론은 설명해야 할 것을 전제 조건으로 삼는다. 수요 부족은 실현 위기 또는 불황을 묘사할 뿐 그 원인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과소소비론은 다른 식으로 받아들이면 케인스주의의 부적절한 ‘설명’을 받아들이는 것이 된다.(케인스의 추종자들은 일부러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대안이 될 수 없는 다양한 이론들
42 이것들은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즉, 어떤 이론이 옳다면, 자본주의는 금융 규제(마틴 울프), 임금 인상(포스트케인스주의자들), 누진세(피케티)를 통해서 교정될 수 있고 자본주의 생산양식 자체를 제거하지 않아도 된다고 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이론들은 마르크스의 주장과 달리 자본주의 생산양식에는 주기적이고 반복적인 위기를 야기하는 근본적 모순이 없으며, 단지 유통의 문제만 있다고 주장한다.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이 그의 위기 이론의 토대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마르크스에게는 위기 이론이 아무것도 없다고 봐야 한다. 사실 이것은 MEGA 출판 작업에 참여한 마이클 하인리히와 로이텐이 이끌어내기 바라는 결론이다. 그리 되면 우리는 신용 호황(오스트리아 학파), 금융 투기(민스키), 수요 부족(케인스), 저임금과 불평등(스티글리츠와 포스트케인스주의자들)을 기초로 하는 부르주아 경제학의 다양한 이론들로 빠져들 수 있다.사실 하비의 결론도 이것이다. 그는 우리가 “자본의 부차적 순환”을 기초로 한 다른 이론을 채택하기를 바란다. 즉, 순환에서 가치와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부분의 바깥 영역에 기초를 둔 다른 이론을 고려하고, 그래서 특히 ‘투기적 과잉생산’을 포함하는 ‘많은 자본들’ 중에서 가치의 분배와 관련된 부분에 눈을 돌리기를 바란다. 다시 한번 하비는 ‘탈취’에 의해 형성되는 가치의 분배가 야기하는 위기에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기를 바란다. 탈취는 ‘시초 축적’의 형태로 부가 충분히 발전한 현대 자본주의 생산에서 일어나는 임금노동에 대한 착취가 아니라 폭력이나 약탈을 뜻한다.
하비는 이렇게 묻는다. “이윤율 하락이 실제 존재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상업위기와 금융위기로 나타난다.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네바다, 플로리다, 조지아(외부로는 스페인, 아일랜드, 헝가리 그리고 여타의 많은 국가들)의 주택시장에서 시작돼 글로벌 금융체계를 감염시키면서 전 세계로 확산되고 여러 지역과 시기에 상이한 강도로 모든 부분들을 감염시켰던 위기를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p12)
그런데 주택 가격 거품의 붕괴와 신용 경색(2007년에 시작된)은 2006년 이윤율과 이윤량이 떨어진 뒤에 찾아왔다. 이것은 미국 상무국 경제분석국BEA이 발표한 공식 수치로도 검증된다. 자본주의는 벼랑 끝을 향해 달리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 이미 벼랑 끝은 지나 버린 상태였다.
더욱이 이 위기는 세계적 경제 위기로서, 주택 가격 거품과 통제 불능의 신용이 있던 나라들뿐 아니라 그렇지 않은 나라들에도 영향을 미쳤다. 신용경색이 미국의 일부 주에서 일어난 주택 가격 거품의 붕괴로 촉발됐음을 받아들인다면, 그 신용경색이 왜 그렇게 빨리 전 세계로 확산되는가? 불황이 시작되기 전에 모든 주요 경제에서 이윤율이 하락하고 있었다. 금융 광기, 패닉, 붕괴는 자본주의에서 호황과 불황의 사이클이 왜 반복되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신용경색은 세계적 불황을 촉발시켰지만 근본 원인은 아니다.
불가능한 것을 배제하고
하비는 이렇게 말한다. 생산에서 일어나는 반복적이고 주기적인 위기나 불황의 근저에 있는 궁극적 원인으로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보통 “다른 가능성은 모두 배제하는 식으로” 그 법칙을 들이민다고 말이다. 근본 법칙을 논할 때는 사실 그렇다. 다른 가능성들은 위기를 설명하거나 새 위기를 예측할 수 없어서 배제된다.
하비는 그의 논문 말미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 생각에 마르크스는 자본 축적이 직면하게 되는 많은 장벽 중에서도 가장 큰 장벽은 자본 자체라는 원칙(??)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올바르다.” 하지만 하비는 분명하게 “마르크스는 이것이 어떻게 그리고 왜 그런지 더 많은 뉘앙스를 담은 이론이 필요했다”고 말한다. 나는 마르크스가 이 ‘원칙’을 유지하는 데서는 더욱 ‘편집증적’이었고, 그 원칙에 ‘더 많은 뉘앙스를’ 불어넣지 않았다고 본다. 우리는 여기서 마르크스를 따라야 한다.
주
-
출처: Monomania and crisis theory - a reply to David Harvey,
↩
- David Harvey, ‘Crisis theory and the falling rate of profit’. 2016년에 출판된 Great Meltdown of 2008: Systemic, Conjunctural or Policy created?, edited by Turan Subasat (Izmir University of Economics) and John Weeks (SOAS, University of London); Publisher: Edward Elgar Publishing Limited에 실린 북쳅터 초안. ↩
- 헨리크 그로스만은 마르크스 사후 1930년대까지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위기 이론을 훌륭하게 설명하고 있다. H Grossmann, 50 years of struggle over Marxism, 1883-1932, translated by Rick Kuhn, A Marxist left review publication, 2014. See also Howard and King. ↩
- Henryk Grossmann, The law of accumulation and breakdown of the capitalist system, being also a theory of crises, Pluto Press, 1992; Paul Mattick, Economic crisis and crisis theory. ↩
- Mario Cogoy, The falling rate of profit and the theory of accumulation, 1987; David Yaffe; Carchedi, Frontiers of Political Economy, 1992. ↩
- Paul Sweezy. ↩
- 너무 많아서 모두 언급하기 힘들다. 그렇지만 원한다면 다 언급할 수 있다. ↩
- 이들 또한 너무 많아서 언급하기 힘들다. 물론 남미의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그룹들은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
- http://thenextrecession.wordpress.com/2011/03/03/the-crisis-of-neoliberalism-and-gerard-dumenil/ ↩
- 필자의 블로그에 있는 http://gesd.free.fr/mr1213.pdf와 필자의 논문 http://gesd.free.fr/mrobprof.pdf를 보라. ↩
- Mike Treen, national director of the New Zealand Unite Union, at the annual conference of the socialist organisation Fightback, held in Wellington, May 31-June 1, 2014, and a seminar hosted by Socialist Aotearoa in Auckland on October 12. November 10, 2014. Links International Journal of Socialist Renewal. “하지만 위기를 설명하기 위해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에 거의 편집증적인 내용을 부여하는 것은 길을 잃게 만든다. 마이클 로버츠는 자본주의에서 10년 주기를 이윤율 하락의 결과로 설명하고자 한다. 물론 모든 위기는 이윤율의 하락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과 이윤율의 일시적 하락은 위기의 원인이 아니라 그 결과라는 점은 사실이다.” 트린이 지적한 이 점에 대한 답변은 며칠 걸릴 것이다. ↩
- G Dumenil, D Levy, The crisis of the early 21st century: a critical reviews of various interpretations, 2012; http://www.jourdan.ens.fr/levy/dle2011h.pdf and see my post, http://thenextrecession.wordpress.com/2011/03/03/the-crisis-of-neoliberalism-and-gerard-dumenil/ ↩
- The making of global capitalism: the political economy of the American Empire (http://www.versobooks.com/books/1527-the-making-of-global-capitalism) ↩
- G Carchedi, International Socialism, issue 125. (http://www.isj.org.uk/index.php4?id=614&issue=125) ↩
- 필자의 블로그에 있는 Tendencies, triggers and tulips, Amsterdam, 2014; http://thenextrecession.files.wordpress.com/2014/02/presentation-to-the-third-seminar-of-the-fi-on-the-economic-crisis.pdf를 보라. ↩
- Rodolsky, The making of Marx’s Capital 와 출간 예정인 Rick Kuhn, H Grossmann, Marx, Classical political economy and the problem of dynamics를 보라. ↩
- P Sweezy, Theory of Capitalist Development, 1946 and the modern day Monthly Review ‘school’. ↩
- Roberts M. (2013), Michael Roberts and Guglielmo Carchedi on Heinrich. ↩
- Miller J. (1995), Must The Profit Rate Really Fall? – A defense of Marx against Paul Sweezy April http://gesd.free.fr/miller95.pdf and George E. (2013), But Still It Falls: On the Rate of Profit July, 4. ↩
- Monthly Review, Volume 64, Issue 11, April. ↩
- 마르크스 주장의 핵심은 “상호 연관되어 있는 회전들로 이루어지는 수년 간에 걸친 순환 – 자본은 고정적 구성요소 때문에 이 순환에 얽매어 있다 – 은 주기적 순환(위기)의 물질적 토대 중의 하나다. … 그럼에도 위기는 항상 대규모 신규 투자의 출발점이다. 그러므로 사회 전체를 고려한다면 위기는 다음 번 회전주기를 위한 새로운 물질적 기반이 된다.”(CII, p264). ↩
- 필자의 블로그에 있는 http://thenextrecession.wordpress.com/2014/11/13/how-capitalism-survives/를 보라. ↩
- Capital Volume III p275. ↩
-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명확히 지적했다. “이윤율의 전반적 저하에서 하나의 경향을 만들어내는 그 영향들이 이윤율의 하락을 방해하고 지연시키며 부분적으로는 마비시키는 반작용 효과를 초래한다. 반작용은 법칙 그 자체를 없애지는 않지만 그 효과를 약화시킨다. 이런 반작용이 없다면 이윤율의 전반적 저하는 아닐 지라도 그 상대적인 완만성은 파악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법칙은 하나의 경향성을 갖는다. 특정 상황에서 그리고 장기간에서만 그 효과가 명백하게 나타난다.” Vol 3. p239 1959 edition. 필자는 이보다 더 명확하게 밝히기 힘들 거라 생각한다. ↩
- Henryk Grossmann, The law of accumulation and breakdown of the capitalist system, being also a theory of crises, Pluto Press, 1992. ↩
- John Smith in his excellent Imperialism and the globalisation of production paper. Imperialism & the Globalisation of Production. ↩
- 자본 회전의 역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기 위해서는 G Carchedi and also an unpublished paper by Carchedi and Roberts의 논문이 나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
- 공평하게 말해서, 그는 이런 ‘귀에 거슬리는’ 입장을 위해 앤드루 클라이먼만을 인용하고 있다. ↩
- https://thenextrecession.files.wordpress.com/2012/11/debt-matters.pdf ↩
- 필자의 논문 Measuring the rate of profit, profit cycles and the Great Recession, presented to the AHE conference 2011을 보라. 이 논문에서 필자는 마르크스에 따른 이윤율에 대한 모든 경험적 연구들을 모아 놓았고, 이윤율의 운동에 대해 공정하게 동의하고 있으며, 또한 이윤율 저하가 어떻게 투자에 영향을 미치고 위기를 야기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http://gesd.free.fr/mrobprof.pdf ↩
- E Maito, The historical transience of capital: the downward trend in the rate of profit since the 19th century; http://gesd.free.fr/maito14.pdf M Roberts, A world rate of profit; http://gesd.free.fr/mrwrate.pdf ↩
- Roberts M.(2013), The US rate of profit – extending the debate 19 December 2013. ↩
- Roberts M. (2011), Measuring the rate of profit; profit cycles and the next recession . ↩
- Ben Fine, Marx’s Capital. ↩
- A Kliman, The failure of capitalist production; G Carchedi, Behind the crisis. 카르케디와 필자가 공동으로 저술한 논문에서 카르케디는 가치로 계산한 이윤율과 화폐로 계산한 이윤율이 양적으로 다르지만 이 둘은 서로 밀접하게 서로를 따른다는 점을 보여 줬다. ↩
- 데이비드 하비가 자신의 논문 서두에서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해 경쟁은 자본주의 생산자들로 하여금 노동절약적인 기술에 투자하도록 한다”고 말하면서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관한 개요를 밝혔을 때 또 다른 실수를 저지른다. 여기서도 틀렸는데, 시장 점유율이 아니라 이윤율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
- 마르크스. “자본은 사용되는 자본의 규모가 증대되면서 이윤양도 증대될 때까지는 노동을 착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1959). ↩
- 이런 인과적 과정에 대한 증거를 원한다면 필자의 논문 Tendencies, triggers and tulips, Amsterdam, 2014; http://thenextrecession.files.wordpress.com/2014/02/presentation-to-the-third-seminar-of-the-fi-on-the-economic-crisis.pdf를 보라. ↩
- Jose Tapia Granados, http://sitemaker.umich.edu/tapia_granados/files/does_investment_call_the_tune_may_2012__forthcoming_rpe_.pdf and G Carchedi and M Roberts, The Long roots of the present crisis, World Review of Political Economy, spring 2013; http://gesd.free.fr/robcarch13.pdf and in an unpublished paper, G Carchedi finds that crises occur in years of negative percentage growth of value and surplus value. ↩
- Mick Brooks, Capitalist crisis, theory and practice: “미국 경제분석국은 2006년 3분기에 세전(稅前) 이윤량이 1조 8650억 달러라는 점을 보여 주었다. 2008년 4분기에 이윤량은 8610억 달러로 하락했다. 이것은 절반 이상 하락한 것이다. 경제분석국이 2006년 데이터에서 이끌어낸 이윤의 폭락은 은행 위기가 있든 없든 간에 경기침체를 초래했을 것이다. 이윤량이 반토막난 것은 자본주의로서는 재앙이고, 대침체의 심각성을 잘 설명한다.” ↩
- 이 맥락에서 ‘토대’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유명한 단락은 두 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문장은 ‘궁극적인 이유’에서 ‘대중의’까지이며, 두 번째 문장은 ‘반대되는’에서 ‘그 한계’까지이다. 이 유명한 단락을 더 낫게 번역하면 “궁극적으로 모든 실질적 위기가 발현되는 토대는 빈곤 등에게 있다.” 이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과소소비론 지지자들은 두 번째 문장을 무시하지만 이 문장이 논쟁의 출발점이다. ↩
- 케인스주의적 답변은 낮은 임금이 판매를 감소시키고 그래서 이윤과 이윤율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하지만 카르케디는 모든 상품이 판매되지 않는다면 이윤율은 불변이며, 일부 상품이 자본에 의해 구매되면 이윤율은 상승한다는 점을 보여 주었다. 그의 논문 Could Keynesian policies end the slump? An introduction to the Marxist multiplier, at http://gesd.free.fr/carch12.pdf을 보라. ↩
- 대침체(Great Recession)의 원인에 대해서는 the Association of Heterodox Economists Conference, July 2010에서 발표된 필자의 논문 https://thenextrecession.wordpress.com/2014/03/11/is-inequality-the-cause-of-capitalist-crises/을 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