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
여성 운동의 주요 쟁점들
1 ‘골드미스’ 2 같은 신조어가 많이 등장했는데 이것을 흔히 ‘여풍’의 상징처럼 여긴다. 오늘날 여성들이 사회 곳곳에서 두각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드물다. 지난 10년 동안 주요 고시 합격자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4~6배 증가해, 2008년에는 외무고시와 행정고시 여성 합격 비율이 65.7퍼센트와 51.2퍼센트로 남성보다 많았다. 특히 판검사에서 여성 임용이 늘었고, 그 밖에도 장관·CEO·정부 부처 등 상층부에 진입하는 여성들도 늘었다.
21세기 들어 ‘알파걸’,그래서 이제는 ‘여성 상위 시대’가 도래했다는 말도 제법 들린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런 말에 동의할 여성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여성차별은 모든 나라에서 두드러진 현상이지만 한국의 성 불평등 수준은 다른 나라들보다 높다. 2006년 11월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세계 각국의 성 평등 수준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의 성 평등 수준은 조사 대상 1백15개국 가운데 92위였다. 한국의 성 평등 수준은 튀니지, 방글라데시, 요르단, 아랍에미리트연합 같은 나라들과 비슷하다고 평가받은 것이다.
물론 위의 지표가 곧 한국 여성들의 삶을 측정하는 절대 지표는 아니다. 한국 여성들의 삶은 수십 년 동안 크게 바뀌고 개선됐다. 교육과 취업의 기회가 확대됐고 여성 차별적 법률이나 제도가 꽤 바뀌었다. 젊은 여성들은 자신의 어머니나 할머니 세대보다 더 많은 자유를 누린다. 그럼에도 ‘여풍’ 담론에는 상당한 허풍이 담겨 있다. 상층부에 진입하는 여성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상대적으로 소수다. 2007년 대기업 임원 가운데 여성 비율은 고작 4.4퍼센트였고 코스닥 기업 가운데 여성이 CEO인 기업은 0.93퍼센트에 불과했다. 전문직 여성들의 취업이 늘긴 했지만 여전히 5인 이상 기업에서 과장급 이상 관리직의 여성 비율은 7.3퍼센트에 그쳤다.
할당제 도입 등 정치관련법 개정으로 여성 의원이 13.7퍼센트(2008년)로 늘긴 했지만 여전히 주요 선진국에 크게 못 미친다. 광역단체장 중 여성은 아직 없고 기초자치단체장 2백30명 중에서도 여성은 3명뿐이다.
무엇보다, 여성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노동계급 여성들이 겪는 차별과 억압은 자본가 계급이나 상층 중간계급 여성들보다 훨씬 심하다. 지난 10여 년 동안 사회 양극화 때문에 여성들 사이의 차이가 매우 커졌다. 이런 문제들 탓에 여성 해방을 단순히 법과 제도의 평등으로 축소할 수 없는 것이다(물론 이런 평등도 중요하지만). 그러면 오늘날 여성들 삶의 주된 모습을 살펴보면서 그동안 진행돼 온 성 평등의 수준을 측정해 보기로 하자.
1. 결혼과 가족
가족을 변하지 않는 제도로 여기는 사람들이 흔한데(가부장제 이론을 받아들이는 많은 페미니스트들도 그렇다), 가족 제도는 역사적으로 항상 변해 왔다. 한국에서도 산업화 이후 가족의 기능과 모습은 크게 바뀌었다.
우선, 산업화와 도시화로 가족의 기능이 크게 변했다. 산업화로 생산이 대부분 사회적으로 이뤄지면서 가족과 일터의 기능은 분리됐다. 오늘날 가족은 생산의 단위가 아니라 사회에서 생산하는 상품을 소비하는 단위다. 가족은 모든 계급의 보편적 제도이긴 하지만, 계급에 따라 그 가족 구성원들의 삶은 천양지차다. 삼성가의 아내나 딸의 삶은 노동계급 가족의 아내나 딸의 삶과 결코 같지 않다. 노동계급 가족은 자본 축적에 필요한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구실을 한다.
4 여성의 취업이 늘면서 남성 혼자 가족의 생계를 부양하는 가족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맞벌이 부부가 늘고 여성 혼자 부양하는 경우도 증가하고 있다. 여성이 가장인 가구는 2008년에 전체 가구의 22.1퍼센트로, 1980년보다 7.4퍼센트 증가했다. 5
가족 형태도 크게 변했다. 드라마에 많이 나오는 전통적 대가족 형태는 오늘날 한국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3대가 함께 사는 가족은 2005년에 6.9퍼센트에 불과했다. 흔히 부부와 미혼 자녀로 구성된 전형적인 핵가족을 ‘정상 가족’으로 여기는데, 실제로는 이런 형태의 가족 수는 절반이 채 안 되고(45.7퍼센트) 이조차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결혼 기피나 이혼 증가로 혼자 사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데, 1인가구 비율이 전체의 19퍼센트에 이른다.결혼을 대하는 태도 변화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두드러진다. 2005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를 보면, 미혼남성의 29.4퍼센트, 미혼여성의 12.8퍼센트만이 결혼을 필수라고 응답했다. 결혼 기피는 자아실현 욕구의 증대를 반영하지만, 그 이면에는 젊은층의 높은 실업과 불안정 고용 형태 확산이라는 어두운 그림자도 짙게 깔려 있다.
오늘날 여성들은 늦게 결혼하거나 아이를 적게 낳는 경향이 뚜렷하다. 여성의 평균 초혼 연령은 2007년 현재 28.1세로 점점 상승 추세인데, 이 수치는 10년 전보다 3.6세 올라간 것이다. 여성이 평생 낳는 아이 수는 1명도 채 안 되는데, 2008년 출산율은 1.08명이었다. 이것은 1960년과 1970년에 각각 6명과 4~5명이던 것에 비춰 보면 급격한 하락이다. 현재 한국의 출산율은 세계 최저군에 속한다. 그래서 언론 보도는 저출산을 한국만의 독특한 현상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으나 육아와 출산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한국보다 훨씬 잘 돼 있는 북유럽 국가에서도 저출산 현상은 뚜렷하다. 출생률 저하, 결혼율 저하, 이혼 증가는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긴 해도 1960년대 중반 이래 유럽·미국·일본 등에서 나타난 공통된 변화 경향이었다.
한편, 서구든 한국이든 출산율이 크게 감소한 것은 자녀 양육과 교육 비용이 갈수록 늘어난 현실과도 관련 있다(한국의 출산율이 선진국보다 더 낮은 이유는 양육과 교육비 부담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산업화 전에 가족 단위로 생산할 때는 자녀가 일손이었으므로 농민 가족에서는 다산이 두드러진 특징이었다. 그러나 산업화 뒤에는 자녀 교육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자녀는 가정의 부담이 됐다. 요즘에는 자식을 둘 이상 낳으려면 부자여야 한다. 이것이 쥐꼬리만 한 지원을 하는 정부의 저출산 대책이 별 효과가 없는 이유다.
이혼율도 증가했는데, 한국의 이혼율은 1970년대 이래 계속 상승하는 추세다. 이혼율 증가를 걱정하는 언론들은 흔히 한국의 이혼율이 세계 1위라며 난리다. 이혼율이 가장 높던 2003년에 인구 1천 명당 이혼 건수(조이혼율)가 3.5건이었는데, 주요 OECD 국가의 이혼율보다 높긴 하다(영국 2000년 2.6, 프랑스 2002년 2.0, 스웨덴 2002년 2.4 등). 그러나 서구에서는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런 단순 비교는 옳지 않다. 한국에서 동거나 사실혼 비율은 겨우 1.2퍼센트(2006년)인데, 스웨덴은 동거·사실혼 커플이 35.8퍼센트이고 프랑스 파리에서는 35~44세 커플 중 동거·사실혼 관계가 31퍼센트에 이른다. 결혼과 가족을 대하는 대중의 태도 변화로 1990년대에 페미니즘이 확산됐는데, 1990년대 후반 이후 싱글 여성들의 삶을 다룬 영화나 소설이 붐을 이뤘고 동성애가 대중매체에서 수용되기 시작했다. 동거 커플 이야기를 다뤄 큰 인기를 끈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2003년 6월 방영)는 당시 젊은이들의 태도 변화를 잘 반영했다. 그해 1월 〈조선일보〉가 보도한 연세대 발달심리학연구실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20대의 63퍼센트, 30대의 59퍼센트가 동거를 찬성했다. 경남정보대학이 2008년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80퍼센트가 혼전동거에 찬성했다.
그러나 압축적 근대화로 짧은 기간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다 보니 결혼을 바라보는 시각은 세대별로 큰 차이를 보인다. 연세대의 같은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40대는 24퍼센트, 50대는 10퍼센트만 동거에 찬성했다. 결혼에 대한 가치관 차이가 크기 때문에 젊은 여성들은 부모나 친척들과 크고 작은 갈등을 자주 겪는다.
결혼의 현실이 변하고 남녀평등 의식이 성장하면서 결혼·이혼 관련 민법이 남녀평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계속 개정됐다. 이혼시 재산 분할이나 상속에서 여성들이 받는 불이익이 많이 사라졌고, 남성만 호주가 될 수 있었던 호주제도 2008년 폐지돼 부부 합의에 따라 자녀가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 있게 됐다.
육아 부담
하지만 가족은 여전히 여성이 억압받는 핵심 공간이다. 여성들이 가정에서 무보수로 남편과 아이들을 돌보기 때문에 가족 내에서 여성은 불평등과 억압을 경험하고, 이것은 사회적 차별로 연결된다. 그래서 그동안 여성운동에서는 육아에 사회적 지원을 더 늘리라고 요구하는 목소리가 컸다.
여성운동과 진보진영의 노력으로 육아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조금씩 늘어 왔다. 국가가 여성의 취업 확대와 저출산 때문에 안정적인 노동력 수급 차질을 우려하는 것도 출산과 양육 지원이 조금씩 늘어난 이유다.
그러나 최근 몇 년 간 보육 예산이 크게 늘긴 했지만 여전히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2006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총보육예산은 2조 3백54억 원으로 2000년보다 약 7배 이상 증가했지만, 보육 시설 지원은 주로 민간 시설에게 돌아갔다. 국공립 시설은 전체 보육 시설 중 고작 4.8퍼센트로, 아동 수용 수로 따져도 10.9퍼센트밖에 안 된다. 공공 보육 시설 대신 민간 보육 시설을 늘리는 정책은 김영삼 정부 이래 계속돼 온 시장주의 정책인데, 노무현 정부는 모든 민간 보육 시설의 보육료마저 자율화하려다 여성단체들과 진보진영의 반발에 부딪쳐 무산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도 이런 시도를 지속하고 있는데, 이미 보육료가 꾸준히 인상되고 보육 시설 사이의 양극화가 커져 왔다. 강남에는 1년 수업료가 몇 천만 원이 넘는 고급 유치원들이 있다. 몇 달 전 〈연합뉴스〉의 보도를 보면, 강남 지역 영어 유치원에 다니는 1년 비용은 평균 1천만 원 이상이고 2천만 원에 육박하는 곳도 있다. 다른 사교육비까지 합치면 취학 전 아이들의 사교육비가 7~8천만 원에 이른다.
정부의 보육 시설 확대 정책이 민간 보육 시설 육성에 치중하다 보니 대개 보육 노동자의 열악한 처우가 방치된다. 이는 대다수 보육 시설에서 보육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는 주요 요인이다. 직장 보육 시설 설치를 의무화한 영유아보육법도 상시 여성 노동자 3백 인 이상, 상시 남녀노동자 5백 인 이상의 대기업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대다수 여성 노동자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여성 노동자는 대부분 3백인 미만 작업장에서 일하기 때문이다.
9 높은 육아 비용은 대다수 부모들에게 커다란 부담이다. 2003년에 발표한 한 연구 보고서를 보면, 전체 가구의 월평균 자녀양육비는 1백32만 원이고 가구당 월평균 소비지출에서 보육비가 56.6퍼센트를 차지한다.
부모들에게 주는 보육비 지원이 늘긴 했지만, 보육 비용을 지원받는 사람은 여전히 매우 적다. 보육료 전액 지원 대상자는 최저생계비 1백20퍼센트 이하의 가구에만 해당한다. 도시 노동자 가구 평균소득 1백 퍼센트 수준의 가구는 보육 비용의 20퍼센트 정도만 지원받는다. 그리하여 0~5세 아동 중 보육 시설을 이용하는 아동은 29.8퍼센트에 불과하고, 보육 시설 이용 아동 중 보육비를 조금이라도 지원받는 경우는 44퍼센트에 그친다.가정폭력
자본주의 가족 제도를 이상화하는 관념은 현실의 가족에서 일어나는 많은 억압을 감춘다. 사람들은 흔히 살벌하고 험난한 사회에서 가족을 통해 보호받고 행복하게 살기를 꿈꾸지만 실제로는 많은 사람들이 가족 내에서 불행을 경험한다. 가정은 구타·학대·살인 같은 온갖 끔찍한 일들이 자주 일어나는 장소인데, 가정이 사회에서 분리된 사적 영역이라는 관념은 이런 폭력을 은폐하는 구실을 한다.
1990년대 여성 운동은 매맞는 아내를 사회적 이슈로 만들었다. 여성의전화연합 등 많은 여성 단체들이 가정폭력 추방 운동을 벌인 결과, ‘가정폭력방지법’이 제정돼 1998년 7월부터 시행됐다. 가정폭력방지법 제정은 아내를 구타하는 것이 남편의 권리인 양 여기던 남성우월주의에 큰 타격을 입혔다.
그러나 가정폭력방지법이 제정된 후에도 가정 폭력은 여전히 많이 일어난다. 많은 아내들이 구타와 학대에 시달리는데 이것이 이혼의 주요 사유 중 하나다. 가정 폭력은 아내 구타만이 아니다. 가족 제도는 권위주의적이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에게 저지르는 학대와 폭력도 심각하다. 지난해 끔찍한 아동 성폭행 살인 사건을 계기로 주목받은 아동 성폭력은 사실 낯선 사람이 아니라 부모나 친척, 부모 친구 등 잘 아는 사람이 저지르는 게 대부분이다. 어머니나 아버지에게 학대받은 아이가 가출해도 경찰은 그 아이를 다시 집으로 돌려보낸다. 구타와 학대로 심신이 찢긴 채 자라난 아이들이 커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은 살인 사건이나 성폭력 연구에서 종종 지적된다.
한편, 지난 1997년 경제 위기 이후 정부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치면서 가족 제도를 강화하는 일련의 정책들을 펼쳐 왔다. 노무현 정부 때는 이혼을 더 어렵게 하는 이혼 숙려제가 도입됐고 가족 해체 방지를 목적으로 ‘건강가정지원법’이 통과됐다. 존폐 논란이 뜨겁던 간통죄는 다시금 합헌 판정을 받았다.
이런 정책들은 이혼이나 혼외 출산에 관한 편견만 부추겼을 뿐, 사회적 지원이 절실한 한부모 가정이나 미혼모 지원은 거의 늘지 않았다. 2005년 현재 전체 가구의 8.6퍼센트에 이르는 한부모 가정은 대부분 여성이 가장인데, 많은 이들이 편견과 빈곤에 시달린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유전자 검사로 미혼부를 찾아내 부양의 책임을 나누게 하고 이혼시 자녀 부양비 합의를 지키지 않으면 국가가 강제하는 등의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런 정책들은 아이들이 버림받는 것을 막으려면 어쩔 수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제대로 된 해법일 수 없다. 올해 초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미혼모들은 대부분 일자리, 보육, 주거 지원, 미혼모 시설 확충 등을 요구했지, 미혼부 책임 강화를 지지한 사람은 5퍼센트밖에 안 됐다(〈여성신문〉, 2009년 7월 17일치). 이혼을 어렵게 하는 것에 사람들은 크게 반발하지 않는데, 많은 사람들에게는 비록 가족 안에서 사는 게 이상처럼 달콤하지는 않을지라도 가족 밖에서 사는 것은 그보다 더 궁핍하고 외롭고 힘들기 때문이다. 대중의 의식이 현재의 가족 제도를 넘어서려면 더 만족스러운 대안이 나타나야 할 것이다.
이주 여성에 대한 억압
국제 결혼 증가로 결혼이주 여성들이 겪는 성 차별과 억압이 여성운동의 쟁점으로 부각돼 왔다. 지난 10년 동안 전체 결혼에서 국제 결혼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7년 3.2퍼센트에서 2007년 11.1퍼센트로 늘었다. 국제 결혼은 대부분 한국 남성과 외국 여성 간 결혼이다. 그동안 여성 운동은 주로 국제 결혼에 대한 여성차별적 광고나 남편이 저지르는 가정 내 억압에 주목해 왔다.
그런데 결혼이주 여성들이 받는 천대는 흔히 가난한 나라 출신이라는 인종차별적 편견과도 결합된다. 결혼이주 여성은 대부분 가난한 나라 출신인데, 중국 출신이 가장 많고(48.4퍼센트) 그 다음이 베트남 출신이다(33.5퍼센트).
많은 결혼이주 여성들이 가정 안에서 큰 고통을 겪는다. 2005년 보건복지부의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결혼이주 여성 중 남편한테 구타당한 비율이 13~14퍼센트에 이른다. 외출 통제는 11퍼센트고, 본국 송금을 막거나 신분증을 빼앗는 경우는 7~8퍼센트에 이른다.
결혼이주 여성들이 고통을 겪는 데는 무엇보다 정부 정책의 책임이 크다. 현행 국적법은 결혼이주 여성들의 이혼 권리를 심각하게 제약하고 있다. 외국인 여성은 결혼한 지 2년이 지나야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데, 이때 남편이 보증을 서야 한다. 그러나 이조차도 실정법을 어기면 적용되지 않는데, 얼마 전 법원은 조선족 출신 이주 여성이 한국인과 결혼한 지 6년이 지났지만 성매매 전력이 있다는 이유로 그 여성의 귀화 신청을 거부했다. 현행 국적법은 외국인의 귀화시 ‘품행 단정’을 요구하는데, 앞으로도 가난한 나라 출신 이주자들의 귀화를 꺼리는 정부와 사법 당국이 이 조항을 악용할 소지가 다분하다.
설상가상으로 이명박 정부는 한국인과 결혼하는 외국인의 국적 취득을 더 어렵게 하는 국적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이것은 국제 결혼의 증가와 함께 늘어난, 가난한 나라 출신 이주자들의 국적 취득을 더 어렵게 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그동안 한국 정부는 부유한 이주자들에게는 영주권 취득 요건을 완화해 왔다(50만 달러를 투자하면 즉시 영주권을 주고 전문직들의 영주권 취득 요건을 완화하는 등).
이주 여성들이 단지 주부인 것만은 아니다. 많은 이주 여성들은 노동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때부터 추진돼 온 ‘다문화주의’ 정책은 이주 여성들이 자녀 교육을 잘 돕는 ‘훌륭한’ 어머니가 되거나 ‘좋은’ 며느리·아내가 되도록 돕는 데만 관심이 있을 뿐 이주 여성들의 일자리나 빈곤 문제는 전혀 다루지 않는다. 지난 10여 년 동안 이주노동자들이 늘어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여성 이주노동자들은 14~15만여 명이다. 많은 이주 여성이 식당 등 서비스업이나 제조업 등지에서 싼 임금을 받으며 부족한 일손을 메우고 있는데, 이들이 전체 이주 여성의 대부분을 차지한다(약 76퍼센트). 이주자들은 한국인보다 더 적은 임금을 받는데, 이주 여성들은 이주 남성보다 더 적은 임금을 받는다. 생산직 여성 이주노동자 중에는 월평균 71~80만 원을 받는 사람이 가장 많은데, 이것은 남성보다 20만 원 적은 것이다. 본국에 자신의 아이나 가족을 둔 채 떠나 와 한국인 가정에서 아이들을 돌보거나 집안일을 하는 이주 여성들도 있는데, 이런 가사 노동자는 약 9천 명(8.9퍼센트)에 이른다.
가난한 나라 출신 이주자들에 대한 정부의 인종차별적 정책 때문에 이주 여성들은 지독한 편견에 시달리고, 종종 성폭력과 인종차별적 폭력에 희생되기도 한다. 특히 미등록 여성 이주노동자들은 법무부와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에게 야만적인 대우를 받아 왔다. 지난해 말 마석에서 실시된 사상 최대 규모의 살인적 단속 과정에서 이주 여성들이 속옷 차림으로 머리끄덩이를 잡힌 채 남성 단속반원들에게 끌려가기도 했고, 한 여성은 화장실도 못 가게 하는 바람에 수갑을 찬 채 노상방뇨를 해야 했다. 그동안 지속된 단속 때문에 많은 이주 여성이 다쳤고, 자신이 추방당하거나 남편이 추방돼 생이별하는 아픔도 겪었다. 이주 여성들이 겪는 여성차별에 맞서려면 그것을 강화하는 한국 정부의 인종차별 정책에도 반대해야 한다.
sexuality
2. 성지난 20여 년 동안 성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가 더욱 개방되고 자유로워졌다. 피임과 낙태술이 보급돼 여성이 자신의 출산 능력을 통제할 수 있게 되면서 여성이 누리는 성적 자유가 크게 확대됐다. 고등교육의 확산과 여성 취업의 확대도 성을 대하는 개방적 태도가 확산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했다.
성이 출산과 분리되면서 많은 여성이 자신을 옥죄는 순결 관념에서 벗어났고, 자신의 성적 욕구와 사랑에 대한 관심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됐다. 1960년대만 해도 혼전 성관계가 금기시됐지만 오늘날에는 혼전 성관계라는 금기가 크게 무너져 내렸다. 여성의 혼외 성관계가 증가하고 이혼도 늘어났다. 1990년대에는 레즈비언이나 트랜스젠더 같은 문제도 사회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런 성 개방과 자유화는 여성의 삶에서 중요한 변화였다. 하지만 그것이 곧 성 해방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성 문제가 모순적 변화를 겪었기 때문이다. 성 개방은 성이 갈수록 상품이 되는 과정에 융합됐다. 그 결과 여성의 몸을 왜곡하고 비하하는 온갖 성 차별들이 생겨났다. 여성을 눈요깃거리로 보는 풍조가 팽배해졌고, 성관계와 성애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강화됐다. 대중매체를 강타한 ‘섹시’ 열풍 때문에 가슴 확대 수술을 비롯한 온갖 성형 수술이 유행이고, 무리한 다이어트를 하다 거식증에 걸리고 죽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
포르노의 확산은 여성의 몸을 왜곡하는 이미지와 여성 비하를 더욱 부추겼다. 성형이나 다이어트처럼 포르노도 거대한 사업이 돼 비디오나 DVD, 케이블 TV, 인터넷 등을 통해 널리 확산되고 있다. 성매매방지법이 제정된 지 5년이 지났지만 성매매는 여전히 번성하고 있다. 단속 강화로 성매매업소는 대폭 감소했지만, 룸살롱, 안마시술소, 전화방, 인터넷 광고, 노래방 등에서 여전히 성업 중이다. 1990년대에 여성 운동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성폭력 문제는 여전히 여성 운동의 주요 쟁점으로 남아 있다. 일부 개선은 있었다. 많은 여성 단체들이 참가한 운동의 성과로 1994년 제정된 성폭력특별법으로 피해자를 어느 정도 법적으로 보호하는 장치가 마련되고 2000년까지 전국에 170여 곳에 이르는 성폭력상담소가 생겨 피해자 지원이 늘어났다.
그러나 여전히 성폭력이 많이 일어나고 심지어 법조차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성폭력이 대부분 잘 아는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다 보니 신고율은 여전히 매우 낮다. 무엇보다 경찰이나 사법 당국의 성 차별적 태도는 그다지 바뀌지 않았다. 경찰 조사나 법원 심리 과정에서 피해 여성의 품행을 문제 삼는 일은 여전히 자주 일어난다. 가해자가 물리적 폭력을 사용했다거나 피해자가 완강히 저항했다는 점이 입증되지 않으면 법정에서 강간은 인정되지 않는다. 수사 당국과 사법 당국에 대한 불신은 성폭력 신고율을 낮추는 또 다른 주요 요인이다. 성폭력 피해자들을 비난하는 분위기도 여전히 많이 남아 있는데, 성 상품화의 확산은 이런 관념을 부추기고 있다.
12 하지만 모자보건법상 합법 낙태를 인정하는 경우는 매우 적기 때문에 낙태는 대부분 음성적으로 시술됐다. 그래서 많은 여성이 낙태를 하는데도, 안전하고 저렴하게 낙태 시술을 받을 수 있는 권리는 누리지 못한다.
한편, 피임과 낙태술의 발전으로 여성이 자신의 출산을 통제할 수 있게 된 것은 큰 진보지만, 낙태는 여전히 여성의 권리로 인정받지 못한다. 다만 산업화 이후 국가가 실시한 인구 억제 정책의 결과, 여성들이 낙태할 때 큰 규제 없이 시술받을 수는 있었다. 1973년 제정된 모자보건법 제5조 ‘모체의 건강을 저해 혹은 저해할 우려가 있을 경우’라는 모호한 조항 덕분에 낙태를 한 여성이나 시술한 의사는 처벌을 면할 수 있었다.논쟁
1990년대 이래 섹슈얼리티 문제는 여성 운동 안에서 가장 첨예한 논쟁을 부른 쟁점이었다. 이 논쟁에는 페미니스트와 좌파 여성 해방론자들 간의 성이나 여성 억압의 원인에 대한 인식 차이가 반영된 한편, 지난 20여 년간 진행된 성 개방의 추세가 낳은 모순이 기저에 깔려 있다.
1990년 이래 한국 여성 운동에서 제기된 섹슈얼리티 쟁점은 성폭력이나 성매매 같은 쟁점으로 집중됐고 여성의 낙태 선택권 같은 중요한 쟁점은 제대로 다뤄지지 못했다.
성폭력이나 성매매, 여성의 몸을 왜곡하는 것 같은 문제는 여전히 중요한 쟁점이지만,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의 핵심으로서 낙태 선택권 문제가 앞으로 여성 운동의 주요 의제로 제기돼야 한다. 무엇보다 성의 문제를 더 넓은 사회의 작동 방식 속에서 바라봐야 한다. 여성 억압의 원인을 계급 사회가 아니라 남성으로 보는 가부장제 이론이나 사회를 파편적으로 바라보는 정체성 정치가 1990년대에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크게 부상해 자본주의와 성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성폭력뿐 아니라, 성매매나 그 밖의 각종 성 상품화를 모두 ‘성폭력’으로 환원했는데, 이런 사고의 확산은 성 문제를 둘러싼 모순된 변화나 성 억압의 근원을 이해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결국 성 해방의 전망도 찾을 수 없게 만들었다.
오늘날 성 억압과 왜곡에는 자본주의 가족 제도와 체제의 이윤 추구 논리가 자리잡고 있다. 여성과 남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일부일처제에 바탕을 둔 자본주의 가족 제도는 개별 가정에 양육과 노인 부양 등을 떠넘기려는 지배자들의 노력으로 계속 지탱되고 있다. 국가와 언론, 교회 등 온갖 자본주의 기관과 제도들은 여성의 무보수 노동에 바탕을 둔 가족 제도를 정당화하려고 남성우월주의나 동성애 혐오를 부추긴다. 그리고 기업들은 돈벌이를 위해 여성의 성적 이미지를 이용하고,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려고 여성차별을 부추긴다.
따라서 진정한 성 해방이 가능하려면 개인들을 비난하는 것을 넘어 이윤 논리와 불평등에 바탕을 둔 체제를 공격해야 한다. 결국 체제의 변혁은 인간성을 회복하는 길이기도 하다.
3. 여성 노동
13 현재 노동인구의 41퍼센트가 여성이다. 이것은 선진국보다는 조금 낮지만 증가 추세에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1960년대 산업화 이래 여성 취업이 크게 늘었다. ‘남성은 노동자, 여성은 가정 주부’라는 흔한 가정은 현실과 맞지 않다. 오늘날 대다수 여성들은 노동자다. 임금노동에 종사하는 여성의 비중은 1985년 48.2퍼센트였으나 2006년에는 67.7퍼센트였다. 무급 가족 종사자 비율은 같은 기간 37.6퍼센트에서 13.5퍼센트로 하락했다. 기혼 여성 취업이 갈수록 늘어나는 게 특징인데, 미혼 여성 취업이 대부분이던 1980년대 초와 달리 1985년 이후부터는 기혼 여성 취업이 증가하고 있다. 물론 보육에 사회적 지원이 미비해 결혼과 함께 노동시장에서 이탈하는 여성 수가 여전히 많아 한국 여성 고용의 ‘M’자 곡선(출산과 육아로 직장을 그만뒀다가 자녀가 좀 성장한 뒤 다시 일하러 나서는)이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그 폭이 좀 더 완만해지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데, 직장을 그만두는 여성의 나이가 좀 더 높아지고 직장으로 복귀하는 나이가 좀 더 낮아졌다. 출산과 육아로 경제 활동 참가가 떨어지는 시기는 1985년 25~29세(35.9퍼센트)에서 2008년 30~34세(53.3퍼센트)로 이동했는데, 40~44세부터 다시 노동시장에 진출하는 여성이 증가한다(65.9퍼센트).그동안 여성 운동 단체와 노동조합의 압력으로 여성노동 관련 법과 제도도 상당히 개선됐다. 국가는 경제 성장을 위해서도 “여성 인력 활용”이 필요했는데, 그래서 남녀고용평등법이 1999년 이후에만 여러 차례 개정됐다. 1999년에 간접차별 정의와 직장 내 성희롱 관련 조항이 포함됐고, 2001년에 산전후휴가가 60일에서 90일로 확대됐고, 유급 육아휴직이 도입됐고, 2005년에는 유사산휴가가 도입됐고 근로기준법이 개정됐다. 2006년에는 ‘적극적 고용개선조치’가 도입돼 정부산하기관, 정부투자기관과 1천 인 이상 대기업들은 해마다 여성 고용 현황과 관리자 현황을 정부에 제출해야 하고, 지금은 그 적용 대상이 5백 인 이상 기업까지 확대됐다. 2007년에는 ‘일·가정 양립 지원’ 정책의 일환으로 배우자 출산휴가제(무급 3일),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 및 분할사용 제도, 근무시간 조정 등 육아지원을 위한 조처, 가족간호휴직 등 가족 돌봄을 위한 조처 등이 포함됐다.
그러나 개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신자유주의 정책의 강화 속에서 근로기준법이 여러 차례 개악됐고 이것은 조직력이 약한 여성 노동자들에게 더 큰 타격을 가했다. 유급 생리휴가 폐지, 근로자파견제 확대, 비정규직법 개악 등 각종 개악이 있었다. 지난 10여 년간 크게 늘어난 비정규직 노동자는 대부분 여성이었는데, 여성 노동자의 70퍼센트 가량이 비정규직이다. 여성의 고용 조건 악화 때문에 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제도 개선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지난 10년간 근로기준법 등 노동 관련 법 적용 대상이 계속 늘어 영세 작업장에 종사하는 많은 여성 노동자들도 혜택을 받게 됐지만, 근로기준법 중 근로시간·휴일·휴가·해고·퇴직금 등 일부 조항은 여전히 4인 이하 작업장에는 적용되지 않고 가내 노동자도 적용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한편, 지난해 하반기에 시작된 심각한 경제 위기 때문에 ‘여성 해고 1순위’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상황이 그리 단순하지는 않다. 2008년 12월부터 늘어난 취업자 수 감소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12배나 많긴 했지만, 대부분이 임금노동자가 아닌 자영업자였다. 1997년 경제 위기 때 많은 여성 노동자가 해고됐지만, 얼마 안 가 여성 취업이 남성 취업보다 더 빨리 증가했고, 그 뒤에 여성 취업률은 꾸준히 늘었다. 따라서 경제 위기는 여성들의 가정 복귀 증가보다는 여성 고용 불안정 증가를 의미한다.
2000년대에 기업주들은 여성차별 제도를 새로 도입하기도 했는데, 금융권에서 늘어난 분리직군제 도입이 대표적이다. 이것은 비정규직의 새로운 해법처럼 홍보됐지만, 사실은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오래전에 폐지된 여행원제의 부활이었다. 분리직군제 도입으로 여성은 임금과 승진에서 남성에 비해 체계적인 차별을 받았는데, 2007년 민주노총 사무금융연맹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대한생명에서는 28년 근무한 여성 노동자의 연봉이 종합 직군 남성 신입사원의 연봉보다 낮았다.
노동조건
남녀 임금 격차도 여전히 크다. 1989년에 개정된 남녀고용평등법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규정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여성 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남성의 66.4퍼센트밖에 안 된다(2007년 《임금구조기본통계조사》). 지난 10여 년간 남녀 임금 격차는 고작 5퍼센트밖에 줄지 않았다(1996년 대비). 2008년 세계노총이 발표한 ‘성별 간 임금 격차 보고서’를 보면, 한국은 조사 대상 63개국 중 성별 임금 격차가 네 번째로 크다. 한국의 남녀 임금 격차는 세계 평균(15.6퍼센트)의 갑절이 넘고 OECD 국가 중 최고다.
여성 고용 불안정은 지난 10여 년 동안 남성과 여성 간 임금 격차가 줄지 않는 주요 요인이었다. 여성은 대부분 비정규직이거나 노조에 가입하지 않아서 많은 고용주가 남녀고용평등법을 간단히 무시한다. 1980년대에 널리 퍼져 있던 남녀분리호봉제를 여전히 고수하는 기업도 상당히 많다.
노동시장의 성별 직종 분리도 임금 불평등의 주요 요인이다. 주로 여성이 근무하는 직종이거나 주로 남성이 근무하는 직종이 90퍼센트를 차지하는데, 보건·간호, 초등·학령전 교육, 비서, 섬유·봉제, 청소 등 ‘여성 직종’은 대부분 임금이 매우 낮다. 초등학교 교사 같은 일부 전문직을 제외하면 여성 노동자가 많은 직종일수록 그 직종의 평균 임금이 낮다. 여성 취업자 64.2퍼센트가 임금 10등급 중 하위 3개 분위 일자리에서 일한다(2004년).
직종 간 분리뿐 아니라 같은 직종 내에서 여성이 주로 하위직에서 일하는 것도 임금 격차의 요인이다. 여성 노동자 40퍼센트 이상은 아예 직급이 없다. ‘교직의 여성화’가 논란되는 학교에서도 대다수 여성은 지위가 낮다. 교장과 교감 같은 관리직의 여성 비율은 15퍼센트를 넘지 못한다. 사립학교에서 정규직 여교사의 비율은 현저히 낮고, 기간제 교사는 대부분 여성이다.
여성의 육아 부담은 고용 불안정과 차별 임금 등 노동시장에서 여성차별을 낳는 핵심 요인 중 하나다. 2005년 여성가족부 조사 결과를 보면, 여성 노동자 10명 중 1명이 출산휴가 후 3년 이내에 퇴직하는데, 이 중 68퍼센트가 아이 키우기가 힘들어서 퇴직한다고 답변했다. 영아가 있는 취업모의 61.9퍼센트가 조부모, 친인척 등에게 양육을 의지한다.
출산에 따른 여성의 퇴사는 여성의 경력 단절을 낳아 여성 임금을 낮추는 주요 요인이 된다. 남녀 임금 격차는 나이가 들수록 커지는데, 여기에는 경력 단절뿐 아니라 편견(여성은 생계부양자가 아니라는)도 함께 작용한다. 20대 여성이 받는 임금은 남성의 90퍼센트가 넘지만, 40대와 50대 여성은 60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한다(2007년).
한편, 직장 내 성희롱 금지가 법제화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성희롱은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을 악화시키는 주요 요인이다. 2000년부터 2008년 6월까지 민우회에 접수된 고용평등 관련 상담 내용을 보면 직장 내 성희롱은 매년 22.6~50퍼센트를 차지한다. 직장 내 성희롱 문제는 모든 여성 노동자가 겪을 수 있는 고통이지만, 특히 고용이 불안정한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이 피해를 보기 더 쉽다. 여성 노동자가 성희롱을 당했을 때 법에 의존하기 매우 힘든데, 현행 법규상 직장 내 성희롱 가해자를 징계하는 책임이 기업주에게 있기 때문이다. 성희롱을 회사 임원들이 저지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기업주들이 흔히 가해자를 감싸고, 거래처 직원이 저질러도 회사에 누가 될까 봐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직장 내 성희롱 피해가 인정되더라도 보복 발령을 받아 여성이 일자리를 유지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오늘날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에 대한 관심은 여성 운동에서 크지 않은데, 여전히 동일노동 동일임금 요구는 여성 노동자들의 평등과 더 나은 삶을 위해 필수적인 요구다. 또, 승진 차별이나 분리직군제 반대, 육아 지원 확대 등도 동등한 노동권을 위해 중요한 요구다. 직장 내 성희롱도 하루빨리 근절돼야 하는데, 노조가 있는 곳은 성희롱에 적극 대처해야 한다.
4. 전망
지난 수십 년 동안 여성들의 삶이 큰 변화를 겪고 상당히 개선되기도 했지만 해방을 위해서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더욱이 1997년 경제 위기 이후 가족 이데올로기가 강화되고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이 늘어나면서 제도 개선의 많은 부분이 빛이 바래거나 몇몇은 개악되기도 했다. 소수 여성들이 사회 상층부에 진입하고 부유한 여성들의 재산이 더욱 늘어났지만, 대다수 여성들은 실업과 빈곤의 확대, 고용 불안정 심화, 보육과 교육비 부담 증가 등으로 고통을 겪어 왔다. 1999년 위헌 판결을 받은 군가산점제 부활 시도가 노무현 정부 때부터 지금까지 거듭되고 이명박 정부는 교직에서 남성 할당제까지 도입하려 하는 등 역전 흐름도 존재한다. 특히 2008년 하반기 이래 불어닥친 심각한 경제 위기로 기업주들의 공세가 강화되고 이명박 정부의 여성 정책 보수화가 뚜렷해졌다.
이런 상황 때문에 여성차별에 맞선 운동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럼에도 여성 해방의 전망이 비관적인 것은 아니다. 상층부가 아니라 기층을 본다면 가능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2000년 이래 세계적으로 일어난 반자본주의 운동과 반전 운동에 고무돼 한국에서도 많은 여성들이 이런 운동에 참가했다. 최근에는 촛불 운동에서 수많은 여성이 눈부시게 활약했고, 지금도 민주주의 투쟁과 노동자 투쟁에서 여성들은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여성 해방의 전망은 이런 투쟁들이 앞으로 얼마나 성장할지에 달려 있다.
소수의 여성이 아니라 사회의 대다수 여성들이 해방되려면, 여성이 짊어진 커다란 부담을 사회가 책임지는 대대적 조처가 뒤따라야 한다. 체제에 축적된 막대한 자원을 분배해야 하고, 따라서 기업주와 부자들의 권력에 도전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자본주의 체제를 변혁해야 한다.
물론 여성차별은 단지 물질적 조건만이 아니라 의식의 문제도 있다. 오랫동안 형성된 악습에 찌들어 살아온 대중이 투쟁에 나선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의식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가 보여 줬듯이, 대규모 투쟁은 대중의 자긍심을 높여 그동안의 낡은 관념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 남성과 여성은 단결해 투쟁하는 가운데 서로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꾼다. 대중의 자신감이 높아지는 대규모 투쟁 물결 속에서 낡은 관념과 맞서 싸우기가 훨씬 쉬워질 것이다.
여성 해방 운동은 항상 더 넓은 사회를 바꾸려는 대규모 운동이 부상할 때 탄생했다. 현대 여성 운동의 진원지인 미국에서도 1960년대 말 거대한 반전 운동과 민권 운동의 파고 속에서 여성 운동이 탄생했고, 한국의 여성 운동은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성장 속에서 등장했다. 체제를 뒤흔드는 거대한 투쟁이 일어나면 여성 해방을 위한 투쟁도 다시금 고양될 것이다.
이런 투쟁에 모든 여성들이 동참할 리는 없다. 부유한 여성들은 비록 여성차별을 경험할지라도 불평등한 체제에서 많은 특권을 누리기 때문이다. 혁명과 거대한 격변에서 특권층 여성들은 항상 자신들과 같은 계급의 남성들과 한배를 탔다.
여성 해방을 위해서는 여성차별에 맞선 투쟁과 착취에 맞선 노동자 투쟁이 연결돼야 한다. 안타깝게도, 1990년대 초 이래 여성 운동에서는 여성 해방에서 노동계급 투쟁이 갖는 의의를 기각하는 조류가 득세했다. 비록 여성을 대하는 많은 남성 노동자의 태도에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노동계급은 기업주와 국가를 압박해 실질적인 양보를 따내고 체제까지 변혁할 수 있는 거대한 잠재력이 있다. 자신감 부족 때문에 이런 잠재력이 현실로 나타나지 않을 때가 많긴 하지만, 그럼에도 지난 1980년대 후반 이래 노동 운동의 성장은 여성들의 권리 향상에서 여성단체들과 함께 커다란 압력을 형성해 왔다. 남성과 여성 노동자들은 때때로 분열하기도 했지만 단결해 투쟁할 때도 많았다. 많은 여성 노동자들은 계급의 일부로서 남성 노동자들과 함께 파업을 벌이고 시위를 벌여 왔다. 노동운동 속에서 남성과 여성의 단결을 의식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혁명적 좌파의 주요 과제가 될 것이다.
주
- 미국 하버드대 댄 킨들런 교수가 2006년에 처음 사용한 ‘알파걸’alpha girls이란 말은 공부와 운동 등 모든 방면에서 남자를 능가하는 엘리트 소녀들을 일컫는 말이다. 알파걸의 특징으로는 당당하고 적극적이며 자부심이 강하다는 점뿐 아니라 페미니스트가 돼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점도 거론된다. ↩
- 2006~2007년에 등장한 신조어로, 직장에서 경력 쌓기에 성공한 고소득 미혼여성을 가리킨다. ↩
- 《시사IN》, 2008년 6월 23일치. ↩
- 여성가족부, 《일·가족 양립정책의 국가별 심층사례연구(2006)》, 한국여성정책연구원(2008), 288쪽에서 재인용. ↩
- 주재선 외, 《2008 한국의 성 인지 통계》, 한국여성정책연구원(2009), 41쪽. ↩
- 박선영 외, 《가족의 다양화에 따른 관련 법제 정비 연구》, 한국여성정책연구원(2008), 18쪽. ↩
- ‘20대가 취재한 20대 동거문화’, 《신동아》 588호(2008년 9월호). ↩
-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09/07/17/0200000000AKR20090717197500002.HTML ↩
- 홍승아 외, 《일·가족 양립 정책의 국가별 심층 사례 연구》, 한국여성정책연구원(2008), 295쪽. ↩
- ‘아시아 이주여성 국제포럼’ 자료집(2005), 《진보진영 여성 정책·의제 10년의 평가와 전망》, 진보신당(2009), 59쪽에서 재인용. ↩
- 한국성폭력상담소 기획, 《성폭력에 맞서다》, 한울(2009), 24쪽. ↩
- 조영미, ‘여성은 자기 몸의 주인이고 싶다’, 《여성학》, 미래M&B(2007), 132~133쪽. ↩
- 이병희 편, 《통계로 본 노동 20년》, 한국노동연구원(2008), 45쪽에서 재인용. ↩
- 주재선 외, 《2008 한국의 성 인지 통계》, 56쪽. ↩
- 《진보진영 여성 정책·의제 10년의 평가와 전망》, 26쪽. ↩